§ 나는 될놈이다 478화
“이 자식이!”
마이크의 눈에 불꽃이 확 튀었다.
자존심이 유난히 강한 마이크였다. 다른 놈이면 모를까 케인한테 저런 비웃음을 사다니!
탓!
-검투사의 의지!
[스턴 상태에서 풀려납니다.]
[순간적으로 공격력과 이동 속도가 상승합니다. HP가 하락합니다.]
“!?”
먼저 뒤에서 선공을 가해 스턴에 빠뜨렸는데도 움직이다니.
케인은 살짝 당황했다. 그걸 본 마이크는 비웃듯이 외쳤다.
“먼저 선공 가해서 이긴 줄 알았냐, 이 자식아!”
“속박의 쇠사슬!”
“……!”
마이크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 왔다!
케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저 스킬. 쇠사슬 스킬!
한 번 잡히면 시전자 앞으로 끌려오는 사악함 때문에 여러모로 유명한 스킬이었다.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대회에서 많이 봤고,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도 생각해 두고 있었다.
-사라지는 잔상!
마이크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원래 있던 곳 반대쪽으로 마이크가 빠르게 이동했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검투사의 요긴한 탈출기!
“어?”
쇠사슬을 피하고, 케인의 뒤를 잡았다고 생각한 마이크의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나왔다.
케인의 손에서 쇠사슬이 나와야 하는데 쇠사슬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뭔…….”
-노예의 쇠사슬!
“?!”
촤르륵!
콱!
케인은 <노예의 쇠사슬> 스킬을 정확하게 마이크에게 적중시켰다.
“설, 설마…….”
“내가 김태현한테 얼마나 당하고 산 줄 아냐! 너 같은 놈하고는 차원이 달라, 이 자식아!!”
케인은 분노의 일갈을 퍼부으며 마이크에게 덤벼들었다.
처음에 쓴 <속박의 쇠사슬>이란 스킬은 그냥 외친 것이었다. 그런 스킬은 없었다.
그 이름만 듣고 마이크는 바로 피했던 것!
그다음이 진짜 스킬이었다.
-이야, 용케 스킬을 맞췄네? 질 줄 알았는데.
태현은 성으로 도망치면서 그렇게 말했다. 케인은 못 들은 척 하기로 마음먹었다.
퍽! 퍼퍽! 퍼퍼퍽!
케인은 대검을 휘두르며 연속으로 공격을 꽂아 넣었다. 마이크는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큰일 났다……!’
마이크의 머릿속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PVP에서는 한 번 실수가 치명적이었다.
레벨이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싸움에서는 한 번 실수하면 회복하기도 전에 끝장나는 것이다.
마이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길드 채팅으로 말했다.
-도와라! 지금 당장!
태현과 싸우는데(사실 태현과 싸우지는 못했지만), 마이크는 당연히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몇몇 길드원들에게 미리 말을 해놓은 것이었다.
‘1:1 싸움이지만 만약의 경우 죽을 수는 없으니까…… 내가 신호 보내면 바로 나와서 도와라.’
[1:1 싸움에서 명예롭지 못하게 타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명성이 크게 하락합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칭호:비겁한 결투자를 얻었습니다.]
‘아니, XX 김태현은 저 짓을 해놨는데 왜 나한테만?!’
마이크는 억울했지만 판온 시스템한테 따져 봤자 의미가 없었다.
슈슉-
“?!”
케인은 갑자기 달려오는 길드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뭐야, 1:1이라며?!”
“시끄러워! 김태현 따라다니는 놈이 어디서!”
궁지에 몰린 마이크는 부끄러움을 잊고 오히려 적반하장 식으로 화를 냈다.
“지금 이러기 있냐? 어?”
“네가 어쩔 건데?”
카카캉!
케인은 공격을 멈추고 한 걸음 물러섰다. 바로 앞에 나타난 길드원들은 마이크를 보호하듯이 둘러쌌다.
“너희가 그렇게 치사하게 나오면 나도 생각이 있지.”
“흥. 그래 봤자…….”
“야! 김태현!! 도와줘! 얘네들이 치사하게 다구리 치려고 해!”
“!??!?”
길드원들은 식겁해서 고개를 들었다. 아까 먼저 성으로 도망쳤던 태현이 성벽에서 다시 뛰어내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 전부 앞으로! 김태현 잡아!”
이미 1:1이 깨진 상황.
토끼들을 잡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길드 동맹은 기민하게 반응했다.
대기하고 있던 랭커들 모두 총출동!
그들은 태현만 노리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태현이 한발 빨랐다.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랭커들이 오기 전에 끝낸다.
스팟!
처음 공격에 가장 앞에 있던 길드원 한 명이 로그아웃 당했다.
다음 길드원은 재빨리 스킬을 써서 태현을 치려고 했지만, 오히려 <반격의 원>으로 역으로 당했다.
여기까지 1초.
“케인, 잡아라!”
“오케이!”
서로 눈빛만 봐도 뭔 짓을 하려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케인은 재빨리 쇠사슬을 뿌렸다.
저렇게 뭉쳐 있으면 한 명은 걸린다!
탁!
아쉽게도 마이크는 피했지만, 다른 길드원이 걸렸다.
“안 돼……!”
-완벽에 가까운 연격!
푹찍푹찍!
2초. 길드원은 세 명이 로그아웃 당했다. 태현은 힐끗 고개를 돌렸다.
랭커들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언데드들은 전부 나와서 공격해라! 저놈들을 막아라!”
-예, 주인님!
부르지도 않은 흑흑이가 데스 나이트들을 태우고 재빨리 성벽 위에서 튀어나왔다.
-사디크의 응축 화염!
화르르륵!
터져 나오는 화염 공격. 생각지도 못한 신성 공격을 퍼붓는 블랙 드래곤의 모습에 랭커들은 당황했다.
“저거 왜 사디크 스킬을 쓰는 거야?!”
쿵쿵쿵-
랭커들이 잠깐 멈춘 틈을 타 언데드들이 튀어나와 자세를 갖추었다.
“마이콜. 이 비겁한 놈! 일대일을 하자고 해놓고 이렇게 치사한 수를 쓰다니!”
“닥쳐! 적어도 너한테 들을 소리는 아니야!!”
뻔뻔하게 ‘난 너한테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는 태현을 보고 마이크는 분노했다.
-어둠의 화살!
“허어억!”
마이크는 어둠의 화살을 보고 기겁해서 몸을 굴렸다.
“……?”
“??”
태현과 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거 그냥 흘려 내거나, 막았어도 마이크 정도 레벨이면 크게 데미지가 없었을 텐데?
애초에 견제용으로 쓴 스킬이었다.
‘아, 저놈 영상을 봤구나.’
태현은 피식 웃었다. 마탑 퀘스트. 그 퀘스트에서 태현이 쓰는 마법을 보고 괜히 겁을 먹은 것이다.
이미 스킬 다 끝나서 효과는 사라진 지 오래였는데!
-어둠의 화살, 어둠의 화살, 어둠의 화살!
“헉! 허억! 허어억!”
마이크는 감히 맞거나 흘려낼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공중제비를 돌았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태현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스킬 하나에 농락당하는 마이크를 보자 신이 나서 그만 갖고 논 것이다.
“케인! 튀자!”
“그, 그래!”
잡을 만큼 잡았고, 공성 병기들도 부쉈으니 이제 원하는 건 달성한 셈이었다.
남은 건 후퇴!
촤르르르륵-
-발사, 발사해라! 살아 있는 놈들에게 죽음을!
몇 겹의 버프를 받고, 온갖 스킬로 강화 떡칠이 된 언데드들이 공격을 퍼붓자 랭커들도 쉽게 뒤를 쫓지 못했다.
소수의 인원으로 돌파하는 건 랭커들에게도 큰 부담이었던 것!
결국 태현과 케인은 원하는 걸 다 챙기고 성안으로 후다닥 돌아갈 수 있었다.
남은 길드 동맹은 이를 갈며 뒷모습만 지켜볼 뿐이었다.
* * *
사실 첫 번째 싸움에서 길드 동맹이 입은 피해는 거의 없었다.
공성 병기들이 토끼들에게 파괴됐지만, 그 이후 토끼들은 바로 제압당했다.
길드원 몇 명이 태현에게 당한 게 피해의 전부!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누가 봐도 태현 측의 승리였다.
아주 제대로 상대를 농락한 승리!
길드 동맹 쪽에서는 분노의 고함이 여럿 튀어나오고 있었다.
“애초에 이렇게 인원 모아놓고 아끼는 게 멍청한 짓이지! 총공격 가자! 총공격 가야 한다고!”
“공성 병기 있을 때도 안 했는데 무슨…… 좀 기다렸다가 해! 다시 만들면 되잖아.”
“어느 세월에? 그사이에 김태현은 저기 성벽 더 보강하고 함정 몇 개는 더 깔겠다. 우리가 지금 유리하니까 지금 쳐야 한다고!”
“맞아. 나도 저 의견에 동의.”
“이 인원이면 솔직히 공성 병기 없어도 돼. 그냥 확 밀어붙여야 저놈들이 수작을 못 부린다니까? 괜히 1:1로 가고, 공성 병기로 가고, 아끼면서 하니까 수작에 당하는 거야. 힘 싸움으로 가야 해.”
대부분의 랭커들이 총공격을 주장했다.
방금 당한 개망신을 빠르게 잊기 위해서는 총공격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동안 내내 [길드 동맹vs토끼] 같은 동영상이 게시판 1위를 계속 차지하고 있을 테니까!
“좋아. 그러면 명령을 내려! 공격 준비한다!”
둥둥둥둥-
“어, 들어오나 본데요?”
“해보라 그러던가.”
공성 병기도 부순 상태. 태현은 별로 겁을 먹지 않았다.
물론 상대방의 숫자도 어마어마하기는 했지만 태현 쪽 언데드도 보통 정예가 아니었다.
“마법 다 깔고 있지?”
“예!”
오단 성 바닥은 어둡고 칙칙한 색의 오오라가 퍼져가기 시작했다.
언데드들에게 버프를 주는 장판이 몇 겹이고 깔리고 있는 것이다.
<이른 죽음의 오오라>, <증오의 오오라>, <인내의 오오라>…… 온갖 버프가 중첩된 언데드들은 사제나 성기사들의 신성한 공격에 맞아도 버틸 수 있었다.
“어느 놈부터 먼저 팰까요…… 음?”
태현은 눈을 깜박였다.
“왜 그러세요?”
“아니, 저 밑에서 방금…… 내가 잘못 본 거겠지.”
태현은 스스로의 눈을 의심했다. 저 멀리서 모여 있는 플레이어 중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오크들!
김태산과 아저씨들이었다.
그들은 주변 플레이어들 사이에 섞여서 떠들다가 재빨리 다시 복면을 썼다.
너무 잠깐 사이의 일이어서 아무도 보지 못한 것 같았지만, 태현의 예리한 눈은 확실하게 잡아냈다.
“아니…… 아니…… 잠깐만?”
태현은 혼란스러워했다.
설마 아버지가 뒤통수를 쳤나? 이 상황에서?
김태산이라면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길드 동맹이 강해지면 가장 직접적으로 피를 보는 게 김태산이었으니까.
바로 옆에 영지를 두고 다투는 사이 아닌가.
그렇지만 김태산이 뒤통수를 친 게 아니라면 저기에는 어떻게 있는 거지?
‘길드 동맹이 아무리 호구여도 그렇지 이 자리에 아버지가 아저씨들 데리고 낄 수는 없을 텐데?’
아무리 사기의 달인이어도 그렇지, 사기를 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었다.
태현도 김태산이 대체 어떻게 저기에 들어간 건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 순간 김태산에게서 귓속말이 날아왔다.
-녀석. 긴장 좀 되냐?
-해당 플레이어는 현재 귓속말을 받을 수 없는 상태입…….
-네가 네 입으로 말하는 거 알고 있다!
-아니, 그보다 거기는 어떻게 계시는 거예요?
-어? 넌 어떻게 알았냐?
-눈으로 봤죠.
-이런 멍청한 놈들. 복면 벗지 말라니까.
-아버지도 복면 잠깐 벗으셨는데요.
-그, 그러냐? 하하. 이 복면이 은근히 답답해서…… 오크 종족이 참 좋은 게, 이게 얼굴 알아보기가 은근히 힘들어.
인간 종족과 달리, 오크 종족은 플레이어 간 얼굴 구별이 은근히 까다로웠다.
다 거기서 거기 같아 보이는 얼굴!
게다가 복면이나 투구까지 쓰면 더욱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거기는 어떻게 계시는 건데요?
-으하하하. 녀석. 궁금한가 보구나. 그래. 궁금하겠지! 어때. 너라면 할 수 있겠…….
-끊습니다. 참고로 지금 드래곤 브레스 준비 중인데 아버지 있는 곳으로 꽂아 넣고 시작합니다.
-이놈이 진짜! ……진짜 브레스 준비 중은 아니지?
김태산은 은근히 걱정이 되어서 물었다. 태현이 저런 걸 준비하고 있어도 전혀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에요. 그래서 뭔데요? 뭘 한 건데요?
-아들아. 내가 몇 번을 말하지만, 세상은 가끔 단순한 방법이 최고란다.
-??
태현은 점점 더 알 수 없어졌다.
뭔 방법을 썼길래 저러는 거야?
-네가 떠올리지 못할 법도 해. 너는 절대 하지 않을 방법을 썼거든.
-……?
-돈으로 매수했다.
-…….
태현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저 멀리 있는 김태산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