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74화
일단 전설 직업 <토끼 몰고 다니는 사람>은 그렇다고 치자.
직업 이름이 이상하고, 심지어 그 직업이 전설 직업이기는 했지만…….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미 잘 있는 <몬스터 조종> 권능은 왜 가져가서 없애 버리는 건데?’
권능 스킬은 스킬 중에서도 상당히 좋은 스킬에 속했다.
고대 뱀파이어의 권능 스킬인 <몬스터 조종>.
아직 레벨이 낮아서 약한 몬스터들밖에 조종할 수 없었지만, 태현은 이 스킬을 나름 꾸준히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권능들이 합쳐져서 <토끼 지배>로 변해 버리다니.
그만한 스킬이 아니라면 손해였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토끼 지배>라는 스킬이 그렇게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확인.
<토끼 지배>
토끼를 완벽하게 지배합니다. 스킬 레벨이 올라갈수록 강력해집니다.
‘음…….’
판온의 스킬들은 이해하기 쉬운 스킬과 이해하기 어려운 스킬로 나뉘었다.
설명이 어렵고 불친절한 스킬들은 직접 써보면서 파악해야 했다.
<토끼 지배>는 전형적인 후자.
‘생각해 보면 토끼들과 엮였던 것부터가 실수였던 것 같기도 해.’
-김태현!!! 이 자식!! 죽여 버리겠다!!
저 멀리서 길드원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물론 태현은 무시하고 계속 생각에 잠겼다.
-김태현! 듣고 있냐! 듣고 있다면 정정당당하게 나와라! 일대일로 대결을 신청한다!
“저, 김태현 백작님. 저쪽에서 뭐라고 하는…….”
“무시해. 내가 엄청나게 불리해지면 일대일로 싸우겠다고 전해줘.”
-토끼 지배.
태현은 일단 스킬을 사용했다. 그래야 뭔가 알 것 같았으니까.
[토끼 지배 스킬을 사용합니다.]
[현재 가능한 것은 <일반 토끼로 변신하기>, <언데드 토끼 소환>, <토끼 광폭화>, <토끼 조종>, <독이빨 부여>입니다.]
‘아, 이런 건가?’
토끼 관련된 여러 스킬들을 <토끼 지배> 하나만으로 쓸 수 있는 것.
강력한 권능 스킬이기는 했다. 스킬 하나를 얻기 위해 온갖 퀘스트나 귀찮은 짓을 해야 하는 판온에서, 이렇게 여러 가지 스킬을 하나로 쓸 수 있는 권능은 매우 귀했으니까.
게다가 스킬 레벨이 올라갈수록 관련 스킬이 증가하는 것 아닌가.
‘토끼 관련만 아니라면 말이지!’
만약 저 권능이 <언데드 지배> 스킬이라고 쳐보자.
가능한 건 <언데드로 변신>, <언데드 군세 소환>, <언데드 광폭화>, <언데드 조종>, <독성 부여>…….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단어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건 토끼들이었고, 태현은 토끼들을 쓸 수밖에 없었다.
“쯧. <언데드 토끼 소환>.”
[언데드 토끼를 소환합니다.]
[현재 토끼들의 시체가 많습니다. 소환할 수 있는 양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고급 전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소환할 수 있는 양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높은 행운을 갖고 있습니다. 소환할 수 있는 양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다른 언데드들과 달리, 토끼는 행운과 관련된 몬스터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태현은 행운에 관해서는 이미 신 그 자체!
-콰르르르르륵…….
“…….”
“…….”
“…….”
자리에 있던 모두가 입을 벌렸다.
무너진 거리에서 무언가 거대하고 꿈틀거리는 것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언데드 토끼의 군세였다.
“이, 이게 무슨……?”
“역시 김태현 백작님!”
[위대한 언데드 소환을 목격했습니다. 에랑스 왕국 마탑 흑마법사들의 평판이 올라갑니다.]
흑마법사들은 엄청나게 많은 토끼들을 언데드로 만들어 부리는 태현을 보고, 감동한 눈빛을 보냈다.
물론 다른 일행들은 아니었다.
‘아니, 왜 토끼지?’
‘토끼를 언데드로 부릴 이유가 있나?’
‘잘 모르겠는데…….’
그러나 아무도 물어보지 못했다.
태현이 ‘물어보면 죽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김태혀어어어어언!!”
파아앗!
거리 반대쪽에서, 엉망진창이 된 길드원 몇 명이 나타났다.
도시를 휩쓸고 있는 언데드들을 뚫고 용케 여기까지 도착한 것이다.
여러 가지 저주에 걸렸고, HP도 절반 이하로 깎였지만 그들의 눈빛만은 불타올랐다.
절대로, 이대로 끝나지는 않는다!
반드시 김태현에게 한 방 먹이고 말겠다!
“크아아아앗!”
“?!”
“빠르다!”
어떤 스킬을 썼는지, 길드원들의 속도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걸 본 태현 일행은 당황했다.
“잠깐, 거기는…….”
“이제 와서 그래 봤자 늦었다!”
태현 일행이 당황한 걸 본 길드원들은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방심한 놈들을 한 방 먹일 수 있는 기회…….
“?!?!?”
와르르르!
바닥에 발을 디딘 순간, 뭔가가 엄청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급 언데드 토끼가 당신을 공격했습니다. HP가 1 깎입니다.]
[하급 언데드 토끼가 당신을 공격했습니다. HP가 1 깎입니다.]
[…….]
“뭐야?!”
HP가 1 깎이는, 정말 의미 없는 공격.
그렇지만 숫자가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 발이 묶이면…….
“뭐 하냐?”
“안, 안녕하십니까?”
태현이 앞에 다가와서 검을 겨누자 자연스럽게 존댓말이 나오는 그들!
“방금 내 이름 부르지 않았냐? 되게 죽일 듯이 불렀던 것 같은데.”
“그게, 원래 존경하고 흠모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되니 기뻐서…….”
“오. 그래? 그러면 지금 길드 상황 좀 말해봐.”
“네?”
“길드 상황. 길드 채팅에서 이것저것 말하고 있을 텐데.”
태현의 예측은 정확했다.
현재 길드 동맹의 안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대화가 오가고 있었으니까.
* * *
-김태현이 살마란 시에 등장! 언데드 군단을 데리고 있답니다!
-성기사, 사제들 모아! 공적치 포인트 쓸 수 있는 대로 써서 교단 NPC들도 데리고 간다!
-살마란 시의 전력이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사이 놈을 포위해서 끝내 버립시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길드 동맹은 나름 침착하게 대응했다.
이미 태현이 어떻게 날뛸지는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태현은 언제나 예상을 벗어났다.
-살마란 시 함락! 지금 끝장났답니다!
-뭐 XX?!
-뭐 벌써 함락이야?! 거기 있는 놈들 뭐하냐?!
-느레, 느페! 너희 두 산적 새끼들! 너희 둘이 거기 담당이었잖아! 아무것도 못 봤어?!
-김태현은 여기로 안 왔습니다!
-김태현이 그러면 저 많은 일행 데리고 어디로 왔다는 건데!
-김태현이라면 혹시 단체 순간이동 마법을 썼을지도…….
-마법사 랭커도 쉽게 못 쓰는 스킬을 김태현이 어떻게…… 헉, 혹시 마탑 퀘스트 보상인가?!
-가능성 있다.
-빌어먹을, 하필 이럴 때! 김태현이 그런 스킬을 쓸 수 있으면 계산이 몇 배로 복잡해진다고!
물론 그런 스킬은 없었다.
느레, 느페 두 형제의 당당한 변명 때문에 혼란에 빠진 길드 동맹!
쑤닝은 그걸 보고 복잡한 기분이었다.
‘이 멍청한 돌대가리들…… 날 보는 다른 놈들이 이런 기분이었나…….’
원래라면 ‘내가 나선다! 나와 같이 김태현을 잡자!’라고 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다른 놈들이 실수하면 실수할수록 쑤닝의 자리는 올라간다.
벌써 쑤닝은 뒤에서 물밑 작업에 들어간 상태였다.
다른 길마들을 매수하고 포섭해, 길드 동맹 내 쑤닝의 세력을 올린다!
‘길드 동맹? 너무 어중간해. 나는…… 더 올라간다. 위로! 더 위로!’
판온 최강 길드의 길마.
쑤닝이 노리는 건 그거였다.
‘1위 랭커? 그래 봤자 혼자지. 정말로 강한 건 집단이다!’
시련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태현에게 당하고, 당하고, 또 당하고, 거기에서 또 당하고…… 하여튼 더럽게 많이 당한 쑤닝!
본인은 부정하겠지만, 그 시련 덕분에 쑤닝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 * *
“그래서 오고 있대?”
“네. 포위하려고 뒤에서부터…….”
살마란 시는 길드 동맹의 영역 가장 바깥쪽에 있는 도시.
길드 동맹은 완전히 포위하기 위해 태현이 온 방향에서부터 사람을 모은 모양이었다.
“흠. 그렇군.”
“어떻게 할 거냐? 지금이라면 빠질 수 있을 텐데.”
“아니. 더 들어갈 건데?”
“…….”
기껏 비싼 공적치 포인트 내고 흑마법사들을 빌렸는데, 도시 하나 파괴하고 물러설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더 안으로 들어간다!
“나, 나올 때는 어떻게 나오려고?”
“그건 그때 생각하고, 지금은 일단 더 부수고 더 파괴하는 데에 집중하자.”
“야……!”
그러는 사이 태현에게 메시지창이 떴다.
[살마란 시의 영주 자리를 얻었습니다.]
[도시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현재 도시 상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있는 골드는 전부 챙기고, 창고에 있는 아이템도 전부 챙기고…… 에이, 이거밖에 없어? 거지들인가?”
태현이 도시를 부숴서 많은 아이템들이 사라진 것이지만, 물론 그런 걸 신경 쓰지는 않았다.
“좋아. 다 챙겼다! 가자!”
“그, 그냥 가나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과 바허, 바허 친구들은 깜짝 놀랐다.
기껏 고생해서 영지를 점령했는데 그냥 간다고?
다른 길드들이 영지 하나를 얻기 위해 그렇게 고생을 하는데!
“그러면 뭐 어떡하려고?”
“영지를 얻었으니까, 점령해서 수리한 다음 수비를 해서 잘 가꾸면…….”
“퍽이나 통하겠다. 어차피 다른 놈들이 몰려오면 아무리 잘 지켜봤자 무너질 곳인데. 다 부수고 가자!”
[도시의 건물을 파괴합니다.]
[악명이 크게 오릅니다!]
-주인님! 역시 주인님이십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도시를 버리고 이동하는 태현.
다른 플레이어들과 달리, 태현은 이런 부분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도시 하나를 그냥 버리다니……!’
‘아깝지도 않은 건가?!’
다른 플레이어들도 냉정하게 생각하면 알 수 있었다.
지금 이런 위치의 영지를 먹고 버티면, 나중에는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게 사람의 욕심!
이런 영지 하나를 그냥 버린다는 건 정말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자! 아직 더 부술 곳이 많다!”
살마란 시에서 얻은, 흑마법사들이 부리는 대량의 언데드 군단.
겉모습만 보면 무시무시한 군대였다.
뒤에 따라오는 언데드 토끼들과 그냥 토끼들만 빼면!
* * *
“김태현이 길드 동맹과 싸우고 있다니……! 이건 분명 그거다! 같이 일어나서 싸우라는 그런 거다!”
“어, 길마님 메시지 받으셨나요?”
“아니.”
“그런데 무슨……?”
“메시지는 안 받았지만 마음이 통했다는 거야!”
‘아닌 것 같은데…….’
우드스탁 길드의 길마는 길드원들을 불러 모았다.
한때는 길드 연합에 있었지만, 저번 사건 이후로 쫓겨나와 영지 없는 길드로 바뀐 그들!
게다가 <악마화> 스킬 때문에 종족도 <저주받은 떠돌이 악마>로 바뀌어서, 적응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에 성공한 상태였다.
레벨을 올리자 <저주받은 떠돌이 악마> 종족도 나름 바뀌었고.
“지금 안 움직이면 언제 움직이겠냐? 지금 움직이는 거다.”
“근데 김태현이 뭐라고 말 안 했는데 멋대로 움직여도 되는 거 맞아요? 나중에 괜히…….”
“이 자식들이 진짜. 영지 다시 안 찾고 싶냐?!”
“찾고 싶긴 한데…….”
“자, 봐라! 여기 악마들을!”
-…….
침울한 표정으로 조각상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날개 악마들.
태현이 갈그랄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랭커들에게서 도망칠 때 버리고 간 악마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우드스탁 길드와 같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자기들이 부리던 악마들을 맡기고 갔다는 것. 이것만큼 김태현이 우리를 믿고 있다는 증거가 어딨겠냐!”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은데…….’
비교적 새로 들어온 길드원들은 아직까지도 정신줄을 붙잡고 있었다.
덕분에 이런 상황에서도 냉정한 판단이 가능!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가자! 가자! 영지를 되찾으러 가는 거야!”
“길마님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