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69화
“그래도 정도가 있지! 에다오르 같은 마계의 한 층을 맡고 있는 악마를 부르다니!”
“보여주려면 확실하게 보여줘야지. 어디 약하고 비리비리한 악마 보여줘봤자 자네들이 트집이나 잡았겠지!”
“에다오르가 마탑에 나타나다니. 놈이 원한을 품으면 어쩌려고 그러나!”
말꼬리를 잡았기 때문에 완전히 반박은 못 해도, 대마법사들은 연신 투덜거렸다.
에다오르 같은 강력한 악마를 상대하는 건 대마법사들에게도 부담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눈치챈 태현은 대마법사들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대마법사님들…… 겁먹으신 건 아니죠?”
마법의 말!
‘겁 먹었냐’, ‘쫄았냐’, ‘두려운가?’ 같은 식으로도 응용이 되는, 마법의 말!
이 말을 듣는 순간 상대방은 어떻게든 간에 ‘아니! 겁 안 먹었는데!’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무슨 소리를!”
“에다오르 같은 악마라고 해도 마탑에서 우리를 이길 수는 없다!”
[도발에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역시! 믿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강한 에다오르라고 해도 대마법사님들에 비하면 보름달 앞의 반딧불! 드래곤 앞의 강아지! 아키서스 앞의 사디크죠!”
“크으음…….”
-주인님, 마지막 말은 처음 듣는 말인데요?
-시끄러워.
태현의 말에 대마법사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부정하지 못했다.
에다오르는 상황이 이상하게 굴러간다는 걸 깨달았는지, 공격을 멈추고 회유에 들어섰다.
악마들마다 각자 다 개성과 성격이 달랐다.
에다오르는 한동안 도시에 숨어서 음모를 꾸밀 정도로 교활하고 음험한 악마!
불리하든 아니든 무조건 덤비고 보는 다른 악마들과 달리, 에다오르는 교묘하게 속임수를 쓸 줄 알았다.
-마법사들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원한이 없다! 저 아키서스 쥐새끼한테만 원한이 있을 뿐!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조용히 넘어가 주겠다!
“무슨 소리! 총독으로 위장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도시를 불태운 악마 놈이 어디서!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저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도시를 적극적으로 불태우고 다른 플레이어들을 PK하고 다녔던 건 태현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자리에서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대마법사님들! 설마 저런 악마의 말에 흔들리지는 않으시겠죠?”
“으음…… 그렇지…….”
“그, 그렇지.”
[대마법사를 설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이런 멍청한 마법사 놈들! 내 말을 믿어라! 나는 너희들에게 원한이…… 커헉!
-어둠의 화살!
태현은 에다오르의 면상에 화살 한 방을 꽂아 넣고 시작했다.
지혜 5000이란 스탯은 어디 가질 않는지, 에다오르도 무시하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이 사악한 악마 놈! 저번에는 사람들을 속이고 도시를 파괴했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너도 해놓고 뭐라는 거냐, 이 아키서스의 쥐새끼…….
태현은 에다오르의 말을 끊었다.
“저 악마 놈이 이간질을 하다니! 여러분! 모두 공격합시다!”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에다오르의 설득을 차단합니다.]
콰콰콰콰콰쾅!
-불사조의 분노!
-상급 용암비!
-얼음의 동굴!
-칼날 서리 회오리!
말과 함께 마법 폭격이 시작됐다.
대마법사들이 아니라, 지켜보고 있던 플레이어들 쪽에서였다.
“저거 잡자!”
“발만 담가도 대박이다!”
멍하니 에다오르와 태현의 대화를 듣던 플레이어들이 상황을 깨달은 것이다.
평소라면 절대 참여할 수 없을, 강력한 악마의 레이드!
물론 그들만 있었다면 당연히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마법사들과 태현까지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질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크으으으윽!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저, 저놈 보십쇼! 본색을 드러냅니다! 마탑의 마법사를 버러지라고 하다니!”
태현은 그사이에도 충실하게 이간질을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대마법사들이 ‘음 둘 사이 일어난 일이니 둘이 알아서 하게’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모습에 에다오르는 극도로 분노했다.
-크아아아아아! 전부 죽여 버리겠다!
[에다오르가 <악마의 포효>를 사용합니다!]
[마법 시전이 취소됩니다. 데미지를 입습니다.]
“큭!” “으으윽!” “안 돼!”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튀어나왔다.
마법이 취소됨과 동시에 데미지를 입은 마법사들이 비틀거렸다.
레벨 낮은 몇 명은 저것만으로 로그아웃을 당할 정도!
-이 아키서스 놈! 널 찢어버리겠다!
에다오르는 날아드는 마법을 무시하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노리는 건 당연히 하나.
태현의 목!
-언데드 소환, 언데드 소환, 언데드 소환, 언데드 소환, 언데드 소환, 언데드 소환, 언데드 소환, 언데드 소환…….
거기에 맞서 태현은 정면으로 나섰다.
현재 행운 스탯은 지혜 스탯으로 바뀐 상황.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서 활용할 뿐!
콰아아아아아아아-
마치 폭포수처럼, 허공에 대량의 망령 언데드들이 생겨났다.
태현의 지혜 스탯 덕분에 하나하나가 던전의 준 보스 몬스터만큼 강력한 언데드!
-가라!
거기에 태현의 고급 전술 스킬까지 합쳐지자 에다오르도 무시할 수 없는 격렬한 공격이 되었다.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에다오르의 거대한 육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뒤덮어서 물어 뜯어대는 언데드 망령들!
-성가신 놈들이……!
에다오르는 손으로 망령들을 잡아 뜯으며 성질을 부렸다. 그러나 언데드들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현재 태현의 MP는 거의 끝이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에다오르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와라!
쾅!
에다오르가 발을 구르자 허공에 마법진들이 생기며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뱀 형태 악마들이 튀어나왔다.
“독이다! 조심해!”
그걸 본 마법사들이 기겁하며 앞에 방어막을 치기 시작했다.
HP가 낮은 마법사들은 저런 독을 잘못 맞으면 한 방에 갈 수 있었다.
-어디 한 번 버텨봐라. 전부 다 죽여줄 테니까!
에다오르는 으르렁거렸다.
태현과 마법사 플레이어들이 숫자로 몰아붙인다면 에다오르도 마찬가지로 할 생각이었다.
보아하니 저 마법사들은 별로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몰아붙이면 쓰러진다!
그러나 에다오르는 한 가지 놓치고 있었다.
지금 상대하고 있는 건 플레이어들뿐만이 아니라는 것!
“더 이상 봐줄 수 없군. 감히 이 마탑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에다오르, 네가 아무리 강한 악마라 하더라도 여기가 어디인 줄은 알았어야지!”
가만히 있던 대마법사들이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레드 드래곤의 영원한 화염!
-크아아악!
태현이 부리는 언데드 망령 군대에 발이 묶여 있던 에다오르는 그대로 등에 마법을 직격당했다.
안 그래도 태현에게 당해 역소환한 상처가 다 회복되지 않은 상황.
대마법사의 일격은 아플 수밖에 없었다.
-크으윽…… 이 건방진…….
에다오르가 팔을 휘둘렀다.
-지옥 마법 창 연사!
그러자 허공에서 짙은 검은색 창들이 나타나 날아가기 시작했다.
캉!
그러나 그 공격도 헛되이 막혔다. 허공에서 거대한 빙벽이 나타나 공격을 막아버린 것이다.
태현의 예상은 완전히 맞아떨어졌다.
마탑에서, 대마법사 NPC들이 쌩쌩하게 있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강한 악마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길 수 없으리라는 것!
게다가 나온 악마가 하필 에다오르라는 것도 태현에게 유리하게 굴러갔다.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 악마인 것!
‘무기를 얻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이걸로도 충분해!’
* * *
갑자기 열린, 마탑 안에서의 에다오르 레이드.
마법사 플레이어들과 태현이 에다오르에게 공격을 퍼붓는 동영상은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가장 애타게 보고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김태현 잡았다면서!! 이 자식들은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알아보니까 김태현이 다른 사람을 대신 잡게 했다는데요.
-그걸 변명이라고 하냐?! 응? 지금 게시판 봤어? 우리 비웃는 글이 절반이다!!
길드 동맹의 채팅창은 뜨거웠다.
잡은 줄 알았던 태현이 멀쩡히 살아서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굵직한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길드 동맹 입장에서는 이만한 굴욕도 없었다. 거의 조롱하는 수준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장 가서 다시 잡아!
-지금? 저기 대마법사 있는 데다가 김태현도 알아차려서 힘들지 않나?
-그러면 가만히 있을 거냐? 김태현이 에랑스 왕국 안에 있을 때 잡아야지, 밖으로 나가면 잡지도 못해!
말이야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섣불리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태현을 잡겠다고 나서다가 개망신을 당한 암살자들 때문에 기가 팍 죽은 것이다.
‘마탑이 만만한 곳도 아니고, 거기 가면 잘못하면 현상금 붙잖아.’
‘게다가 김태현이 함정을 파고 있을 수도 있고.’
-저거 근데 에다오르 잡으면 뭐 나오지? 악마 무기 나오는 거 아닌가?
-……저기 지금 가면 낄 수 있나?
누군가의 말에 솔깃한 길드원이 물었다.
‘저걸 말이라고…….’
‘지 일 아니라 이거지?’
-그보다 한국에서 판온 선수들 자선 대회 연다던데, 이거 해외 선수는 참가 못 하나?
-이번 대회에 참여했던 선수들은 다 초대받았다던데.
-판온 자선 대회라고 해봤자 결국 판타지 크래프트 대회잖아. 그게 뭔 판온 대회냐?
-뭐든 간에 상금이 세잖아.
-시끄러워!! 헛소리는 나중에 해. 지금 중요한 건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야.
쑤닝은 분노해서 외쳤다.
여전히 이놈들은 배가 불러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태현은 좀처럼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를 않았다.
안 보이는 곳에서 굵직한 퀘스트를 깬 다음 나타나는 게 보통!
그런 태현이 이렇게 에랑스 왕국에 나타났는데 길드원들은 계속 헛발질만 해대고 있었다.
기회를 날리는 것도 날리는 거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길드 동맹의 이미지가 우스워지는 건 더 큰 문제였다.
‘이 자식들은 머리가 없나?’
계속 이렇게 우스워지면 앞으로 길드 동맹에서 태현을 잡는다고 해도 ‘저거 합성 아냐?’ ‘에이, 저번에도 거짓말하더니……’ 같은 식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지금 에랑스 왕국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전부 모여. 마탑으로 들어간다.
-뭐? 미쳤어?
-잘 들어라, 멍청한 놈들아! 만약 김태현이 에다오르 레이드를 끝내고 마탑 퀘스트까지 끝내면 어떻게 될지 아냐? 우리는 계속 비웃음당할 거다. 전부 모여라! 에다오르 레이드는 방해해야 한다!
* * *
‘수월하게 잡겠군.’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계산을 마쳤다.
에다오르는 몇 가지 강력한 스킬들을 쓰며 플레이어들을 몰아붙였지만, 초반에 로그아웃 당한 사람들 말고는 추가로 당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마법사들이 나서서 막아준 덕분이었다.
대마법사들은 정말로 굉장했다.
추정 레벨이 최소 300.
공방일체로 닥치는 대로 퍼붓는 마법들은 에다오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게 만들었다.
아까까지는 태현한테 기를 쓰고 덤벼들려던 에다오르도 지금은 완전히 수비 상태로 바뀌었다.
-크으으어어어어!
에다오르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몸을 칭칭 감은 화염의 밧줄이 에다오르를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거의 다 잡았다!”
“이대로 밀어붙여! 계속 밀어붙여!”
플레이어들의 눈빛이 점점 더 빛나기 시작했다.
그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악마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급 악마면 모를까, 마계의 층 하나를 담당하고 있는 강력한 악마를 잡는다니.
태현이야 몇 번째 하고 있는 짓이었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은 판온을 하면서 한 번 할까 말까 하는 일이었다.
‘잡기만 하면……!’
‘접을 때까지 자랑할 수 있을 거야!’
그 순간 뒤에서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