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67화
“연습은 어떻게 하려고?”
“네? 자선 대회인데 연습까지 해야 해요?”
태현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만약 판온 대회였다면 태현도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자선대회.
종목도 달랐고, 진지하게 최선을 다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태현에게만!
이동팔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우승은 안 탐나나?”
“자선 대회에서 우승해서 뭐 해요? 명예?”
“상금이지! 상금이 세다니까? 지금 초대받은 다른 선수들 SNS 안 봤지?”
“……?”
“벌써부터 판타지 크래프트 연습하고 있다니까. 그게 왜겠어.”
“하라는 판온은 안 하고 왜 그런대요?”
“방금 상금이라고 말했잖아. 옛날 게임 연습 좀 해서 몇억이 굴러들어오는 건데. 탐이 날 법하지.”
상금!
명예와 사람들의 관심도 관심이지만, 유 회장이 통 크게 건 상금이 선수들의 눈을 돌아가게 만들었다.
예전 판타지 크래프트 팬들이 ‘아 나도 참가하면 잘 할 수 있는데!’ 이러면서 아쉬워할 정도!
태현은 그걸 듣고 혀를 찼다.
“쯧쯧. 대회 우승도 못 한 놈들이 그러다니. 그러니까 우승을 못 하죠.”
“…….”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많이 얄미운 태현의 말!
“그 시간에 판온이나 좀 더 해야지, 다른 거 해놓고 판온에서 지면…… 응?”
태현은 말을 멈췄다.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케인이 건 전화였다.
“잠시 전화 좀 받겠습니다. 어. 무슨 일이야?”
-야! 야! 소식 들었냐?!
케인의 목소리는 기쁜 듯 올라가 있었다.
“뭔 소식? 그보다 좋은 일이라도 있냐?”
-좋은 일? 당연히 좋은 일이지. 이번에 유성그룹에서 하는 자선 대회 상금 봤지?! 같이 판타지 크래프트 연습하자!
“…….”
* * *
‘하여간 이놈의 자식은…….’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캡슐에 들어갔다.
-이 자식이 지금 따로 다니라고 했더니 잿밥에만 관심이 있네. 그 시간에 스킬 레벨이나 올리고 경험치나 쌓을 것이지. 네가 그러니까 맨날 어디 가서 맞고 다니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다비는 지금 길드원들 데리고 열심히 골드 벌고 있는데!
대회 정보가 공개되었다는 말에 신나서 연락을 걸었다가 괜히 구박만 들은 케인이었다.
파아앗-
접속한 태현의 눈에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흑마법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
“아, 오셨군요. 김태현 백작님.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습니까?”
“열심히 하고 있긴 하지.”
‘도망칠’ 준비였지만!
흑마법사들은 웃으면서 말했다.
“체시자 님께서 은둔하고 있는 다른 대마법사들도 모두 다 호출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좀 시끄러울 겁니다.”
“어…… 그냥 마탑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마법사들만 데리고 소소하게 해도 되지 않나?”
“무슨 소리! 천 년에 한 번 나올 것 같은 흑마법 학파의 인재가 나왔는데 그냥 할 수 있나! 참고로 마탑에 들어온 모험가들도 전부 부를 생각이지.”
“…….”
슬슬 태현도 진지하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거 수틀리면 체시자가 언데드 부대를 이끌고 영지로 쳐들어오는 게 아닐까?
다른 학파의 마법사들과 달리, 흑마법사는 시간만 주면 군대 하나를 이끌 수 있었다.
체시자 정도 되는 흑마법사라면 데리고 올 언데드도 어마어마할 것이 분명!
‘안 되겠다. 되든 안 되든 한 번 해보고 가야지.’
태현은 도망칠 생각을 버리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지금 생각나는 건 역시 <행운 전환> 스킬인데…….’
행운 전환이 만약 지혜로 된다면?
자리에 모인 마법사들을 상대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행운 전환을 잘못 쓰면, 한동안 행운 스탯이 0이 된다는 점이었다.
기껏 행운 전환을 했는데 지혜가 아니라 힘이 될 경우, 도망칠 때 매우 불리해졌다.
안 그래도 HP가 낮은 편인 태현인데 행운이 0으로 된다면…….
‘흑마법사들이라 저주도 잘 쓸 텐데.’
피하지도 못하게 저주가 작렬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고민하던 태현은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 번 해보자!
솔직히 지금 그냥 도망치는 건 힘들뿐만 아니라 너무 위험성이 높았다.
마탑을 적으로 돌릴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영지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
‘행운 전환이 실패하면 그때 가서 생각해야겠군.’
* * *
-소문 들었어? 마탑에 이벤트 떴다던데. 어떻게 된 거지?
-학파의 계승자 칭호 이벤트는 보통 방법으로는 얻는 게 불가능할 텐데…….
-말이 불가능이지 불가능한 건 아니잖아? 판온에서 그런 일이 한두 번이었어?
-그렇긴 해. 그런데 지금 이거 진행한다고 나온 랭커 있나?
-내가 알기로는 없는데.
-뭐야, 그러면 또 새로 나오는 거야? 경쟁자는 한 명이면 족하다고. 게다가 흑마법사는 이미 이세연도 있는데…….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의 퀘스트나 직업들.
그렇지만 판온에서는 그런 퀘스트들을 깨거나 직업을 얻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아무리 게임의 조건이 어렵고 복잡해도, 클리어가 가능한 이상 사람들이 깨기 마련!
-한번 보고 싶긴 하네. 일단 완전히 클리어한 건 아니지?
-대마법사들 모아서 한다니까 아직 깬 건 아니지. 거기서 통과해야 깨질걸.
-그래도 거기까지 간 거 자체가 대단하네.
이번에 에랑스 왕국 마탑에서 흑마법사 학파의 대마법사, 체시자가 ‘계승자를 찾았다!’ 하면서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은 마법사 플레이어들의 주목을 샀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마탑에서 퀘스트를 많이 깬 고렙 마법사 플레이어들은 바로 눈치를 챘다.
지금 어떤 이벤트 퀘스트가 진행되고 있는지!
‘마탑에 들어가서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난 업적을 보여주면 그 학파 대마법사의 총애를 받을 수 있지. 거기서 또 대마법사가 내는 시험을 통과하면 학파의 계승자 칭호를 얻을 수 있고.’
‘학파의 계승자 칭호는 마탑의 지원을 받아낼 수 있는 엄청나게 좋은 칭호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 이벤트 퀘스트를 깨는 건 불가능하다고 봤는데.’
이 퀘스트가 어려운 점은 시간제한이 있다는 점이었다.
마탑에 가입하고 나서, 일정 시간 안에 대마법사가 인정할 만한 엄청난 업적을 세워야 하는 것!
보통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초보자 때 마탑에 들어간다는 걸 생각해봤을 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중에 고렙이 되고 나서 이런 퀘스트가 있다는 걸 찾아낸 마법사 플레이어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이걸 어떻게 깨?’
‘아예 마탑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레벨 업 한 다음, 고렙 되고 나서 가입하고 업적을 보여주고, 그다음에 다시 시험을 또 통과해야…….’
‘그 짓을 누가 하냐?!’
결국 <학파의 계승자> 칭호 퀘스트는 다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탐이 나기는 했지만 알아냈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다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네가 보기에는 깰 수 있을 것 같냐?
-솔직히 이건 시험을 본 적이 없어서 장담을 못 하겠다.
-그러게. 대마법사들이 뭔 시험을 낼지 모르겠어. 게다가 체시자면 흑마법 쪽 대마법사잖아. 시험장에서 언데드라도 소환하나?
-아. 실패했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경쟁자 많은데…… 왜 자꾸 새 랭커들이 튀어나오는 거야?
* * *
“크…….”
“……?”
흑마법사 NPC들은 고개를 푹 숙인 태현을 보며 의아해했다.
“크하하하하!”
“?!”
“역시 착하게 살면 복이 오는군. 세상에 정의가 아직 살아 있어.”
-…….
흑흑이는 뭐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다른 블랙 드래곤들과 사디크는 멀고 태현의 주먹은 가까웠으니까.
태현이 기분 좋은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행운 전환이 지혜로 성공한 것이다!
5,000이 넘는 지혜.
어떤 마법사 플레이어도 갖고 있지 못한 어마어마한 스탯이었다.
‘덕분에 일시적으로 마법 스킬도 여러 개 생겼고…….’
<순간 마나 방어막>, <마나 불태우기>, <세계수의 지혜>, <상급 진실의 눈>…….
평소에 얻고 싶어 했던 마법 스킬들이 우르르!
물론 행운 전환이 끝나면 사라질 마법들이긴 했다.
‘그런데 뭘 보여준다?’
행운 전환이 성공하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대마법사들 앞에서 어떤 마법을 보여줘야 할까?
‘사디크의 화염…… 은 안 되겠고. 폭탄 설치해서 사기 치는 건…… 좀 그렇지.’
본능적으로 샘솟는 사기 욕구!
그렇지만 태현은 참았다. 체시자 혼자면 모를까 플레이어들에 대마법사들이 있는데 어지간해서는 성공하기 힘들었다.
‘음,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흑마법 스킬을 더 찾아서 익혀야 하나? 그렇지만 스킬 레벨이 낮은 걸 쓰기는 좀 애매한데…… 잠깐만…….’
스킬 목록을 훑어보던 태현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중급 악마 소환> 스킬.
예전에 얻었지만, 한동안 쓰지 않고 있었던 스킬이었다.
원한을 진 악마들이 너무 많아서 함부로 쓸 수가 없었던 것!
만약 소환했는데 아다드의 부하 악마나 에다오르의 부하 악마가 나온다면, 그 뒤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태현의 위치를 확인한 아다드가 직접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게다가 소환 스킬은 어느 정도는 랜덤이라서 더 불안했다.
A 악마가 나올 확률 몇%, B 악마가 나올 확률 몇% 같은 방식!
더 좋은 소환수일수록 나올 확률이 낮아졌다.
그래도 설마 <중급 악마 소환> 정도로 아다드 같은 고위 악마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
그리고 태현은 잘 알고 있었다.
‘에이 설마 이렇게 확률이 낮은데 일어나겠어?’ 싶을 때는 일어난다는 것!
판온 1 때도 그래서 이세연한테 지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지금은 지혜가 5,000이 넘는 상황.
분명 지금 소환 스킬을 쓰면 어마어마한 보너스가 붙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 쓰면 엄청난 고위 악마가 나오는 게 아닐까?
‘그리고 지금 마탑 대마법사들 다 모여 있지?’
플레이어들은 엄두도 못 낼 고렙의 대마법사들이 우르르 모여 있는 상황.
‘대마법사들 힘을 빌려서 악마를 잡으면……?’
케인이 봤다면 ‘저거 저거, 미친놈 또 미친 짓 한다!’ 하고 기겁했을 짓!
그러나 태현은 진지하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점점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 * *
“언제 시작하는 거지?”
“곧 시작하겠지. 그보다 진짜 누구인지 모르겠네. 들어보니까 이 퀘스트 조건 마탑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만 가능한 거라던데, 그러면 레벨 50도 안 되는 거 아닌가?”
“레벨 50 넘기고서 마탑에 들어왔을 수도 있잖아.”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그 마법사가 정수혁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아, 그 정수혁?”
“어. 그 정수혁.”
“그 정수혁이라면 그럴 수 있지.”
“와. 부럽다…….”
몇몇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신의 컨트롤로 유명해진 정수혁!
“나온다!”
마탑 안에 드넓은 공터.
마법사 플레이어들은 그 공터를 빙 둘러싸고 기다리고 있었다.
슈슈슉-
각 학파의 대마법사들은 대마법사답게 순간이동으로 공터 가운데에 나타났다.
“오오…… 오오오오……!”
“처음 봐! 내가 그렇게 퀘스트를 깨도 얼굴 한 번 안 보여주던데! 저 시……!”
“야. 쉿쉿. 들릴라.”
웅성웅성!
저렙 마법사 플레이어들은 평소에 못 보던 대마법사들을 보고 신기해했다.
각자 개성 있는 차림새를 하고 있는 대마법사들!
랭커들도 까마득하게 멀게 느껴지는데, 저렙 플레이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자. 이리 오게, 김태현 백작.”
“응?”
“누구?”
“김태현?”
마법사들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김태현……? 잠깐만, 길드 동맹에서 잡았다며?”
“멀쩡하잖아?”
“설마 다른 사람을 잡고서 착각해서 올렸을 리는 없고…… 이 자식들 사기 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