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466화 (466/1,826)

§ 나는 될놈이다 466화

“…….”

이동팔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진지하게 ‘김태현 정도의 선수에게는 어떤 제안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을 뉴욕 라이온즈 교섭인들을 생각하니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지금 자기가 어떤 위치인지 알고 있으려나…… 아니다, 됐다.’

이동팔은 말하려다가 말았다.

괜한 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으니까.

현재 판온에서 태현의 위치는 기묘한 위치였다.

첫 번째 대회에서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이어질 판온 프로 리그에서 보증 수표 그 자체로 취급받고 있는 상황.

그러나 일반인들과 달리, 게임단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조금 더 냉정하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했다.

-과연 김태현이 이후 대회에서도 첫 번째 대회 같은 성적을 낼 수 있을까?

-대단하긴 하지만 역시 확실하게 보증된 건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리그 대회 몇 번은 더 거쳐야…….

물론 게임단으로 데리고 올 수 있다면 양손을 들고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조건!

얼마 정도의 조건을 제시해야 할지가 문제였다.

평범한 판온 선수 정도의 조건은 의미가 없었다. 다른 팀한테 무조건 뺏길 테니까.

그렇지만 엄청나게 고액의 조건을 투자하는 것도 좀 조심스러웠다.

만약 그랬다가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게임단 입장에서는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

‘김태현은 데리고 오고 싶다. 그렇지만 데리고 오려면 엄청나게 파격적인 제안을 해야 할 거 같은데, 위험을 감안하고서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가 태현을 고민하는 게임단들의 생각이었다.

이동팔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몇몇 게임단에서는 ‘아예 대회를 좀 더 기다렸다가 확실해지면 그때 선수를 돈으로 사자’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였다.

충분한 자금력이 있기에 가능한 생각!

‘지금 다들 제안을 하면서도 내심 걱정을 하고 있을 텐데, 이럴 때 본인이 나서서 확신을 줘야 하지 않나?’

내심 걱정하는 게임단 팀의 사람들에게 ‘내가 김태현이다!’란 걸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당연한 일!

방송이나 영화 제작에서도 확신을 주는 건 그 사람이 직접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게 제일이었다.

“뭐, 알겠습니다. 연락 잡고 만나죠.”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이 만나준다는 듯한 태도!

이동팔은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사고 치는 건 아니겠지?’

순간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미래의 미국 기사!

[김태현 선수, 거만한 태도로 <뉴욕 라이온즈>를 푸대접…… 오만함의 극치.]

[미국 판온 선수들 대분노. 명예와 전통을 무시한 김태현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밝혀…….]

“가서 이상한 소리는 하지 않을 거지? 그렇지?”

갑자기 불안해진 이동팔은 다짐을 들으려고 했다. 그러자 오히려 태현이 정색했다.

“사람을 뭐로 보시고. 제가 뭘 할 거 같은데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하하. 그냥 해본 소리였지.”

이동팔은 말끝을 흐렸다.

태현이 불안하기는 해도 지금 상황에서 최고의 유망주라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곧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하면 더욱더 크게 될 것이 분명!

이동팔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화난 건 아니지? 그렇지?”

“화 안 났습니다. 계속 물으시면 화가 날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두 가지라고 하셨는데, 다른 한 가지는 뭡니까?”

“아. 이거지.”

이동팔은 책상을 뒤적거리더니 서류를 꺼냈다.

순간 태현은 ‘생존의 법칙, 김태현-무인도 조합은 어떨까?’라고 쓰여 있는 다른 서류를 본 것 같았지만,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잘못 본 거겠지?’

“찾았군. 유성기획…… 그러니까 유성그룹에서 판온 프로게이머들을 모아서 자선대회를 한다더라고.”

이동팔은 서류철을 탁탁 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신기한 게, 유성그룹이 다른 스포츠 자선대회는 열었어도 이런 E스포츠 관련 자선대회는 연 적이 없단 말이지? 그룹 회장이 직접 E스포츠 관련으로는 손도 대지 말라고 말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갑자기 왜 이렇게 대회를 여는지 모르겠어.”

“……요즘 유행이잖습니까?”

“아니, 판온이 대세긴 하지만 원래 이런 기획은 젊은 친구가 아이디어를 내서 되는 게 아니라 윗선에서 통과를 해줘야 되는 거지. 왜 자선 골프 대회 같은 게 자주 열리겠어. 정말 이상하지만…… 뭐 어쨌든 우리 김태현 선수한테는 좋은 기회지!”

이동팔은 다시 밝은 목소리로 말하며 태현의 등을 두드렸다.

“그래 봤자 자선대회인데 뭘…….”

“……이라고 하려고 할 줄 알았지. 그렇지만 같은 자선대회여도 유성그룹이 주최해서 그런지 확실히 다르더라고. 방송국도 다 잡고 벌써부터 홍보를 하는데…… 참. 이거 이렇게 요란하게 한다는 게 신기하네. 자선대회여도 그렇지 이 정도까지 하나?”

말하다 보니 이동팔은 다시 신기해져서 혼자 고민에 잠겼다.

유성그룹에 뭔 일이 있길래?

태현은 속으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나가면 되는 겁니까?”

“그렇지. 설마 안 나가려는 건 아니지? 다른 선수들은 다들 나가고 싶어 한다고.”

“저야 뭐…….”

“설마?”

“나가고 싶죠.”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태현은 미리 유 회장과 선약을 해서 그런 것이었지만, 이동팔은 오해했다.

‘다른 건 귀찮아해도 자선대회는 이렇게 나가고 싶어 하다니. 역시 겉은 저래도 속이 깊어.’

완전히 헛다리를 짚는 오해!

“상금도 좋고, 관심도 많이 받고. 프로 리그 열리기 전 선수들에게는 황금 같은 기회지. 가서 관심 좀 많이 받고 와!”

“어, 그런데 대회 종목이 뭡니까?”

* * *

“정말 고민이었지.”

유 회장은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근 여러 문제를 처리하느라 판온에 접속도 못 하고 있었다.

판온 자선대회와 관련해서 직접 나서서 일을 진행하고, 거기에다가 뒤에서는 몰래 유성그룹 게임단의 물밑 작업까지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쁠 수밖에 없는 일정들!

약간 불안했지만 유 회장은 확신했다.

‘저주도 그렇고, 그렇게 빨리 해결될 문제들이 아니야. 다른 곳에서 사재기를 방해할 물량이 나오지 않을 거다!’

수십 년의 경험이 말해주는 감!

물론 그사이 태현이 아키서스의 영지에서 농작물들을 촥촥 뽑아내고 있었지만, 유 회장은 상상치 못하고 있었다.

“회장님의 의견에 감탄했습니다.”

“금칠하지 말게. 물론 나도 감탄하긴 했지.”

유 회장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유 회장이 고민한 건 하나였다.

판온 선수들을 모아놓고 어떤 대회를 열어야 할 것인가?

판온 내에서 하는 종목은 일단 제외했다.

뭐든 간에 태현한테 너무 유리할 것 같았던 것이다.

‘투기장? 김태현 그놈이 이길 거 같아. 판온 내 경주? 그것도 김태현이 이길 거 같다. 아니, 그놈은 진짜 뭘 해도 다 이길 거 같아!’

이번 대회에서 유 회장의 목적은 간단했다.

-최근 유행인 판온의 힘을 빌려 자선대회를 성공적으로 진행, 그룹의 이미지 홍보를 매우 효과적으로 한다.

-김태현 놈이 만들어서 내놓을 기계공학 탈것을 손에 넣는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자선대회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어마어마한 상금에 눈이 멀었지만, 유 회장은 탈것에 눈이 먼 상태였다.

태현이 1:100에서 플레이어들의 공격을 뚫고 탈출하는 장면을 보니 욕망이 더 타올랐다.

반드시 손에 넣고야 말겠다!

문제는 이게 대회는 대회다 보니, 종목을 잘못 정하면 태현이 만들어서 내놓은 탈것을 태현 본인이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유 회장이었다.

-판온 내에서 안 될 거 같다면 판온 밖은 어떨까요? 현실에서 선수들이 직접 대회에 참가하는 겁니다.

시청자들은 판온 내 컨텐츠들도 좋아하지만, 유명 플레이어들의 현실 모습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좋은 아이디어였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어떤 종목으로 하려고?

-음, 무난하게 체육 쪽이라면…… 달리기나…… 양궁, 아니면 구기 쪽은 어떻습니까? 저희 쪽 직원 중에 이런 쪽으로 경력 있는 젊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판온이야 젊은 친구들은 다 하고 있을 테니, 슬쩍 대회에 끼워 넣으면 우승은 분명…….

정지용 비서실장의 계획은 사악하지만 강력했다.

천하의 유성그룹이다 보니, 사원들 스펙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각종 구기 종목이나 달리기 대회에서 메달을 딴 사원들이 은근히 있었다.

그러나 유 회장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절대 안 돼!

-역시 회장님께서는 고작 이런 대회 때문에 이런 짓까지 하고 싶어 하지는 않으시는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

유 회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정지용을 쳐다보았다. 지금 이놈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의도 자체는 좋네.

-네?

-자네가 그놈을 몰라서 하는 소리야. 몸 쓰는 종목이면 그놈은 분명히 우승해!

유 회장 생각에, 아무리 생각해도 사원들이 태현을 당해낼 것 같지 않았다.

-당해내려면 적어도 올림픽 메달리스트는 데리고 와야지. 그렇지만 아무리 일반인 참가로 속인다고 해도 메달리스트는 들킬 수밖에 없지 않나?

정지용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유 회장이 농담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농담이…… 아니시군요?

-내가 농담하는 걸로 보이나?

-회장님. 지금 판온 선수 이야기하시는 거 맞습니까……?

-그래. 김태현 그놈.

-????

정지용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유 회장이 그렇다니 바로 받아들였다.

이런 충성심이 그가 신뢰를 받는 이유였다.

-회장님.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

-예전에 유행했던 게임을 고르는 겁니다.

-……?

-김태현 선수는 젊으니 예전에 유행했던 게임까지 잘하지는 못할 겁니다. 게다가 예전에 유행했던 게임은 프로게이머들을 모아놓고 진행하는 자선대회라는 컨셉에도 잘 맞습니다. 또, 재미있지 않습니까?

-으음…….

유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정지용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컨셉에도 잘 맞았고, 주제도 재미가 있었다.

최근에는 과거에 인기 있었던 것들을 다시 다루는 방송들이 인기가 있지 않은가!

-다 좋은데 말이야.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 거기서도 김태현 그놈이 우승하면 어떡하지?

유 회장의 걱정은 할 만한 걱정이었다. 정지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이 몸 쓰는 대회에서 쟁쟁한 사원들을 이길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건 게임이었다.

태현 같은 프로게이머들은 천부적인 게임 센스를 타고난 이들!

빠르게 적응하고 믿지 못할 실력을 보여줄지도 몰랐다.

-그래서 생각해 놓은 게 있습니다.

-?

-그때 뛰던 프로게이머를 초대하는 겁니다. 저는 배중환-배중열 해설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지용의 계획은 실로 악마적이었다.

배중환, 배중열 형제.

지금은 판온 해설가로 방송에서 활약하고 있는 둘!

그들은 해설가가 되기 전에는 프로게이머로 현역에서 뛰고 있었다.

판온과 관련이 있었으니 이벤트성으로 부를 수 있는 명분이 있었고, 판온 선수들 중 유일하게 예전 게임의 프로 리그를 경험해 본 선수들이었다.

경험치가 차이 날 수밖에 없는 것!

-그건 정말…… 좋은 생각이군!

유 회장은 무릎을 쳤다. 태현이 본다면 ‘이 사람들은 대체 뭔 헛짓거리를 저렇게 열심히 하냐’라고 말했겠지만, 유 회장은 진지했다.

-그 계획, 진행하도록 하게!

-예!

* * *

“판타지 크래프트? 그거 대체 몇 년 전 게임…….”

“요즘 복고가 유행이잖아. 재미있지 않냐?”

“뭐 엄청 히트 친 게임이니까…… 확실히 사람들은 좋아하겠네요.”

태현은 김태산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판타지 크래프트의 전성기를 직접 본 사람이었다.

자선대회 종목이 <판타지 크래프트>라는 걸 알면 좋아서 펄쩍 뛸 게 분명했다.

‘이거나 말씀드려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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