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63화
-태현 님! 태현 님! 좋은 소식이에요!
-어! 뭔데?
이다비의 활기찬 목소리에 태현은 살짝 기대했다.
얼마나 좋은 소식이길래?
-영지에 동상이 완성됐어요!
-어…… 그래…….
급격히 시무룩해진 태현이었다.
-네? 안 좋아요?
-애초에 그 동상 내가 지으라고 한 것도 아니거든…….
-그래도 동상 만들어졌는데 좋지 않으세요?
-없는 것보단 낫겠지. 아. 이제 다른 것도 좀 짓겠네. 내 투기장 건설 진행되고 있니?
-네? 아니요.
너무 당연하게 아니라고 대답하는 이다비.
태현은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물었다.
-왜?
-다들 지금 아키서스가 축복 내려서 평소에 못 만들었던 아이템 만든다고 난리예요.
-……이놈의 아키서스는 인생에 도움이…….
-아, 그리고 여쭤볼 게 있는데요. 지금 농부들이 한 방 노리겠다고 농사를 짓는데, 농부들이 바치는 농산물들이랑 지금 쌓인 농산물들 어떻게 하실래요? 그냥 계속 보관?
-음…… 아냐. 그냥 팔자.
-네? 그래도 괜찮나요?
-어. 나오는 대로 족족 다 팔아줘. 난 이 정도에서 만족할래.
유 회장이야 어디서 뭐 하는지 접속도 안 하고 버티기를 시전하고 있었지만, 태현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빠르게 팔아치우고 골드로 바꾸자!
안 그래도 영지 운영하는 데 골드가 팍팍 들어가고 있었다.
-네. 그러면 그렇게 전할게요.
-응. 고마워.
* * *
“헉, 헉헉…….”
“살아 돌아왔다! 안 죽고!”
마탑 던전의 출구까지 도착한 플레이어들은 서로 기뻐서 얼싸안았다.
바하가 끌고 갈 때만 해도 ‘아. 로그아웃 당하겠지’ 하며 각오를 하고 갔던 그들이었다.
‘김태현 덕분이지.’
‘맞아. 태현 님 아니었다면…….’
‘앞으로 바하 아저씨가 부르면 일단 무시하자. 또 던전 가고 싶지는 않다고.’
“크흠. 크흠. 태현 님.”
“?”
바하가 헛기침을 하며 다가오자 태현은 의아해했다.
이 아저씨가 왜?
“저, 흠, 그러니까 말입니다…… 혹시 얻으신 아이템을 다 어떻게 처리하실지 궁금해서…….”
“설마 아이템을 나눠달라는 건 아니겠죠?”
“아닙니다! 누구를 뭘로 보고!”
바하는 상대하기 너무 좋았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바로 반응이 오는 것이다.
“그…… 있잖습니까. 혹시 경매장에 올리실 거면 제가 좀 먼저 사고 싶은데…….”
‘아. 그런 거군.’
태현은 바하가 왜 이러는지 깨달았다.
태현이 얻은 아이템 중 바하가 원하는 아이템이 나온 게 분명했다.
‘생각해 보니 세 번째 던전 보스 방에서 저 아저씨가 좀 이상하긴 했지.’
-헉! 켁! 컥! 큭! 켁!
-왜 그러시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 주, 주사위 굴, 굴, 굴릴까요?
-……?
분명 그때 아이템이 나왔지만, 자존심 때문에 말을 못 한 것!
물론 태현은 가차 없는 주사위 100으로 그 아이템을 뺏어갔다.
‘근데 거기서 뭐 나왔더라?’
<영민한 자의 아뮬렛>, <지옥 마력이 담긴 반지>, <기발한 주사위>, <마탑 선구자의 마도서>, <화염 문양의 로브>…….
마탑 던전답게 마법사들이 탐낼 만한 아이템들이 많았다.
물론 태현은 다 경매장에 올릴 생각이었지만.
“뭔 아이템이요? 아뮬렛?”
“아니요.”
“반지?”
“아니요…….”
“아니, 뭔 아이템을 원하시는데?”
귀찮아진 태현이 묻자, 바하는 우물쭈물 대답했다.
“주사위…….”
“……?”
태현은 아이템을 확인했다. <기발한 주사위>.
기발한 주사위:
주사위 굴림 때 한 번 원하는 숫자를 낼 수 있습니다.
‘이 인간…….’
태현의 측은한 눈빛을 눈치챘는지, 바하가 급하게 변명했다.
“아, 아니! 이거 주사위 굴림 때 쓰려는 게 아니라! 그냥 주사위가 예뻐서! 예뻐서 갖고 싶었던 건데!”
“아, 예. 그러시겠죠.”
평소 주사위 굴리는 것에 얼마나 빠졌으면 이 아이템 하나 얻자고 마탑 던전에 들어왔겠는가.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행운 덕분에 언제나 주사위 100을 찍는 태현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고민이었다.
그러나 사실, 태현이나 그렇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이 아이템이 상당히 좋은 아이템이었다.
파티 사냥 시 원하는 아이템을 한 번은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 아닌가!
“그래서 얼마를 드리면 되겠습니까?”
“흠.”
“?”
“저도 이걸 얼마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엄청나게 마음에 든 아이템이라…….”
“아, 아니. 태현 씨가 저걸 어디에 쓰려고요?”
“아니. 저도 이 주사위가 예뻐서요.”
“…….”
바하는 깨달았다.
태현이 지금 이 아이템의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이, 이 쪼잔한…… 방송에서는 엄청 멋지게 나왔는데 전혀 아니잖아!’
방송에서는 쿨하고 거침없는 영웅의 이미지였는데, 실제로는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 상인의 마음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를 원하시는…….”
“아. 고민 중이잖습니까. 왜 이렇게 재촉을 하세요?”
“…….”
* * *
출구로 나가기 전, 태현은 플레이어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태현과 마탑 던전에서 사냥하고 있다고 눈치 없게 글을 올린 플레이어였다.
“잠깐. 이리로 와봐.”
“네?”
“나가기 전에 오른팔을 이렇게 들고, 좋아. 여기 복면 아이템 줄 테니까 이 복면도 좀 쓰고.”
“감사합니다?”
“그래. 잘하네.”
마치 인사하는 것처럼 오른팔을 들고, 복면까지 쓴 플레이어!
“??”
“이렇게 좀 나가라고.”
“?????”
플레이어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태현이 하라니까 일단 하라는 대로 따랐다.
파아아아앗!
마탑 던전에서 밖으로 나오자, 앞에 있던 마법사들이 깜짝 놀랐다.
“나왔다!”
“저거 맞지? 김태현이랑 마탑 던전 도전했다던 파티!”
“맞는 거 같아!”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님! 팬이에요!”
우르르 몰려드는 플레이어들.
태현은 그 순간 오른팔을 든 파티원의 등을 떠밀었다.
마치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주는 것 같은 모습!
복면까지 쓰고 있어서 사람들은 다들 그 플레이어가 태현인 줄 알고 외쳤다.
“김태현! 와! 김태현!”
“잠깐, 이게 뭔…….”
“죽어라, 김태현!”
파아아앗!
갑자기 마법사 중에서 몇 명이 로브를 벗어 던지고 덤벼들었다.
화려한 암살자 세트를 맞춰 입고 사납게 덤벼드는 플레이어들!
눈빛에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게, 아주 작정을 하고 덤벼드는 모습이었다.
-붉은 거미의 포박!
-절대적인 살인 명령!
-영혼의 소각!
복면을 쓰고 오른팔을 들고 앞으로 떠밀렸다는 이유만으로 집중 공격을 받게 된 플레이어!
그 뒤에서 태현은 감탄했다.
‘와. 대단한데?’
암살자들의 연계 스킬은 태현이 봐도 섬뜩해질 지경이었다.
태현의 장점인 회피 스킬을 묶고 피하지 못하도록 폭딜을 꽂아 넣는다.
잘만 풀리면 HP가 낮은 태현은 한 방에 갈 수 있었다.
실제로 지금 암살자 한 명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로그아웃 당하고 있었다.
자기 목숨을 희생해서 남에게 데미지를 넣는 비장의 스킬!
태현을 얼마나 잡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크어어어어억! 어째서!”
“우리가 김태현을 잡았다!”
“길드 동맹 만세! 으하하하! 이제 우리가 왕이다!”
“김태현의 시대는 끝났어!”
삐이이이이익!
-신성한 마탑에서 살인을 저지르다니!
-놓치지 마라!
마탑의 마법사들이 분노해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들은 암살자 플레이어들은 재빨리 움직였다.
“잘 있어라! 우리는 김태현을 잡았…….”
-영혼을 태우는 화염!
“크아아악!”
“튀어! 튀어!”
마탑의 NPC들은 암살자 플레이어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 빨랐다.
우르르 몰려와서 마법을 퍼붓자 방어력이 낮은 암살자 플레이어는 그대로 녹아내렸다.
“난 버리고 튀어!”
한 대 맞고 발이 묶인 암살자 플레이어는 그렇게 외쳤다. 그러는 동안 동료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저 새끼들이……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면 어디가 덧나나?’
기껏 폼을 잡고 외쳤는데 받아주지 않는 동료들만큼 얄미운 것도 없었다.
‘후. 그래도 김태현을 잡았으니까…… 후회는 없다! 그런데 뭐 아이템이나 경험치 없나? 메시지창을 못 본 거 같은데…….’
암살자 플레이어는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이미 빠져나가기는 글렀으니 그냥 편하게 보자!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응? 뭐지?’
“!!!!”
암살자 플레이어는 눈을 깜박였다.
저 마법사들 파티 사이에 김태현처럼 생긴 놈이 있었던 것이다.
“뭐, 뭐…… 뭐야?”
확인하기도 전에, 메시지창이 떴다.
[HP가 0으로 내려가 사망합니다.]
-야! 김태현 잡은 거 맞지?!
-뭔 헛소리야. 김태현 잡았잖아.
다들 ‘김태현! 김태현!’을 외치자 손을 흔들며 나온 복면 쓴 플레이어.
그게 김태현이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그, 그렇지? 내가 착각했나 보다.
* * *
“…….”
파티원들은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은 슬프고 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나쁜 놈들! 마탑에서 사람을 공격하다니!”
“아니, 태현 님이 위장시켰…….”
“뭐라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교롭게도 남이 어디 있는지 게시판에 올린 놈이 당했군요. 이게 꼭 인과응보란 건 아닌데, 원래 사람이 입이 싸면 화를 많이 당하는 법이긴 하죠. 그렇죠?”
“…….”
파티원들은 등에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웃고 있는 태현이 정말 무섭게 느껴졌던 것!
“여러분, 그러면 일단 여기서 해산하고 다음 공략은 다시 고민해 보도록 합시다.”
“어, 아이템은…….”
태현은 바하의 말을 무시했다.
어차피 아쉬운 사람이 알아서 오게 되어 있으니까!
“그러면 나중에 다시 뵙…….”
탁-
“?”
마탑의 마법사 NPC들, 그것도 흑마법사들이 태현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뭡니까?”
“김태현 백작님. 체시자 님께서 백작님을 부르십니다.”
“……나 튈 생각 없는데?”
“예?”
“아무것도 아니다. 가자!”
괜히 찔렸던 태현이었지만, 반응을 보고 들킨 게 아닌 걸 깨닫고 안심했다.
“잠, 잠깐! 태현 씨!”
바하가 애절하게 외쳤지만 태현은 흑마법사들과 함께 떠났다.
* * *
“아. 왔군. 내가 왜 불렀는지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마탑 던전을 공략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있는 사람이 그런 위험한 일을 하면 쓰나!”
“앗. 그러면 흑마법사 NPC들을 좀 빌려주시면…….”
태현은 기대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흑마법사들을 빌릴 수 있다면 엄청난 전력이 됐다.
언데드 군대로 마탑 던전을 밀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아니, 그건 안 되네.”
[공적치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설득에 실패했습니다.]
‘쯧. 날로 먹을 수는 없나.’
태현은 다시 시도해 보려고 했다.
“그렇지만 제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한…….”
“더 안전한 방법이 있지.”
“?”
“그때까지 그냥 마탑에 있으면 되는 거야. 그동안 마법 연습이나 하라고.”
“…….”
태현의 표정이 구겨졌다.
점점 일이 꼬이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제가 사실 할 일이 많아서…….”
“잠시 미루라고.”
“아니, 그게 미룰 수가 없는 일이라서…….”
“지금 설마 마탑의 신성한 행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는 거는 아니겠지?”
물론 더 중요한 일이었다.
도망치는 것!
그렇지만 체시자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젠장.’
“하하, 아닙니다. 물론 마탑 행사를 먼저 챙겨야죠!”
“그걸 아니 다행이군. 다른 학파 마법사 놈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리라고! 크하하하핫!”
“크하하하핫…….”
태현이 체시자를 따라 힘없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