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60화
가젠은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이제까지 태현에게 당했던 다른 사람들이 저 생각을 알았다면 ‘정신 차려라, 미친놈아!’라고 말했을 테지만, 불행하게도 지금 그런 사람은 없었다.
“자. 앞에 서라.”
“네?”
“앞으로 가라고.”
“어, 그냥 다 같이 가면 안 되나요?”
“어허. 내가 너희를 어떻게 믿고? 은신 걸고 다가온 놈들인데 갑자기 내 뒤통수라도 치면 어떡하란 말이야?”
태현은 지팡이를 들이대며 가델, 가젠 부자를 몰아붙였다.
“아버지. 말 좀…….”
가젠의 말에 가델이 나섰다.
망령한테 두들겨 맞은 탓에 깎인 HP와 걸린 상태 이상을 회복한 가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젊은 친구, 정말 그쪽에게 시비를 걸 생각은…….”
“앞으로.”
“아니 진짜로…….”
“앞으로.”
“야! 사람이 말하면!”
“PK할래?”
“아닙니다.”
가델은 빙글 돌아서 앞으로 걸어갔다. 가젠은 황당한 눈으로 가델을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초라해 보이는 가델의 등!
“…….”
“…….”
바하 파티는 냉정한 태현의 모습에 살짝 당황했지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뭐라고 하기에는 태현의 이름값이 너무 대단했던 것!
“저, 저…… 팬, 팬이에요.”
“아. 네.”
“저도요!”
“아. 예.”
수줍게 말을 거는 바허와 친구들!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말을 거는 그들의 모습은 팬 그 자체였다.
그에 비해 태현은 심드렁하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에이, 저 둘 장비나 좀 뺏으려고 했는데…… 어떻게 사고를 못 내나?’
그러는 사이 파티원들은 정수혁에게도 말을 걸어왔다.
오히려 태현보다 정수혁에게 더 친근한 그들이었다.
태현이야 직업도 다르고 너무 멀게 느껴지는 플레이어였지만 정수혁은 마법사 아닌가.
게다가 정수혁의 컨트롤은 그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주었다.
“대회 예선 잘 봤습니다!”
“방어막을 그렇게 활용할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
그러는 동안 김세형은 쓸쓸하게 혼자 서있었다.
-케인이세요?
-아니라니까!
-아. 네. 그러면.
케인이 아니라고 말하자 순식간에 꺼진 관심!
‘나, 나한테도 관심 좀……!’
* * *
“그나저나 다른 마법사들은 부술 엄두도 못 내는 벽도 부수고, 정말 대단하다 싶었는데 역시 유명한 랭커였군.”
“정말 대단한 건 마법으로 벽을 부쉈다는 거죠. 마법도 쓸 수 있다는 건 몰랐는데.”
“대회에서도 마법은 거의 안 썼지?”
“어.”
“왜 안 쓴 거지?”
“설마 일부러 그런 건가? 마법 스킬은 봉인해도 이길 자신이 있다!”
“대단하다……!”
옆에서 소곤거리는 바허와 친구들. 그 소리는 물론 태현에게 다 들렸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아니, 김태현은 근접전도 잘하고 대장장이 기술도 높고 요리까지 있는데 마법 스킬도 높다고? 이건 현실적으로 너무 불가능한데. 무언가 비밀이 있을 거야’라고 의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동경하던 플레이어를 만난 10대 소년들은 그러지 못했다.
“에이, 너무하네. 진짜.”
투덜투덜.
바하는 가델에게 투덜거렸다. 가델이 그 말에 반응했다.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법사를 탱커 위치에 세우는 건……!”
“어? 아니 그건 당연한 거고. 누가 그렇게 뒤에서 쫓아오래?”
“야!”
“아들 친구들한테 잘난 척 좀 하려고 했는데…….”
“지금 그게 중요하냐? 김태현이 있으면 못 깼던 던전도 깰 수 있잖아. 그거나 집중해.”
“하긴 그것도 그러네. 고맙다. 가델.”
“고마우면 저 젊은 놈한테 말 좀 해서 나 뒤로…….”
“아. 미안. 나도 저 젊은 놈이 무서워서. 엄청 무섭게 노려보더라고.”
“야!!”
바하는 바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앞에! 몬스터다!”
-쿠쿠쿵…….
“으아아악!”
가델과 가젠은 비명을 지르며 바로 준비에 나섰다.
앞에 나타난 건 <난폭한 붉은 카멜레온>이라고 불리는 덩치 큰 몬스터였다.
벽과 벽을 타고 다니면서 은신하다가 재빨리 나타나서 기습을 하는 몬스터!
은신 능력이 좋아서, 방어력이 낮고 체력이 낮은 마법사들에게는 상대하기 매우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탐색 마법! 탐색 마법 뿌려!”
“아냐! 카멜레온 상대할 때 그건 효과 없어! 얘가 계속 벽 타고 이동한다고!”
“일단 방어막부터 깔아! 한 번에 훅 간다고!”
마법사들은 모두 호들갑을 떨며 대비에 나섰지만, 태현은 냉정했다.
-저기 있네요. 주인님.
-응. 고맙다.
흑흑이가 위치를 계속 찍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카멜레온 몬스터는 탑의 벽과 천장을 타고 다니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저거 잡으려면 끌어내야 하는데…… 음…….’
태현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마법사들끼리 왔을 때는 저거 어떻게 잡습니까?”
“보통 방어막치고 버티면서 이동합니다. 그러면 카멜레온이 물러서는 경우도 있고, 공격하는 경우도 있는데…… 공격하면 그때 한 번에 잡는 거죠. 못 잡으면 도망가니까.”
“하긴, 그런 식이겠죠.”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외쳤다.
“모두 모여서 뒤로!”
“……?”
다른 사람들은 태현의 말을 듣고 우르르 움직였다.
‘왜 그래야 하죠?’라고 따질 수도 있었지만, 그런 간 큰 사람은 없었다.
태현의 이름만으로도 이미 모두가 믿고 있는 것!
“아. 둘은 말고. 그냥 둘은 거기 있어. 방어막은 좀 취소해. 불편해 보인다.”
“…….”
“자. 우리는 방어막 깔고 기다리자.”
“어, 설마…….”
노골적인 배치!
앞의 둘은 방어막도 못 쓰게 하고 내버려 둔 태현이었다.
이건 완전히…….
‘미끼잖아?!’
둘도 상황을 깨닫고 울상이 되었다.
“아, 아니 이건 좀…….”
“아. 누구는 맡아야 할 거 아니야. 내가 하리?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
뭔가 방송에서 봤던 태현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정의롭고 용감한 플레이어가 아닌, 뭔가 좀 많이 사악한…….
-캬아아악!
두 명이 방어막도 안 쓰고 가만히 있자 기회라고 판단했는지, 카멜레온이 천장에서 은신을 풀고 덤벼들었다.
“으아악!”
마법사들이 카운터를 치려고 했지만 카멜레온의 속도는 장난이 아니었다.
마법사들의 마법으로 카운터를 칠 수준이었다면 악명이 높지도 않았을 것!
팟!
그러나 태현의 반응이 더 빨랐다.
이미 흑흑이를 통해 카멜레온의 위치를 꿰고 있던 태현이었다.
“지금!”
태현은 말과 함께 그림자 도약으로 뛰어들었다. 카멜레온은 갑자기 앞에 나타난 태현을 보고 긴 혀를 휘둘렀다.
빡!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무기의 내구도가 하락합니다!]
‘아차.’
무심코 지팡이로 후려갈긴 태현!
그러나 공격력을 올린 스킬 덕분인지, 효과는 확실했다. 카멜레온은 비틀거리면서 물러섰다.
-주인님! 제가 갑니다!
파르륵! 콰직!
흑흑이가 튀어나오더니 카멜레온을 물어뜯었다.
[흑흑이의 힘이 오릅니다.]
‘오, 제법…….’
하긴, 블랙 드래곤이니 아무리 약해졌어도 저런 몬스터 상대로 지지는 않을…….
-캬아아악!
힘을 빨리던 카멜레온이 짜증을 내며 흑흑이를 집어 던졌다.
쿵!
흑흑이는 옆으로 날아가서 한 번 튀기더니 나뒹굴었다.
“…….”
태현은 떨떠름한 얼굴로 달려들어 카멜레온의 얼굴에 집중타를 꽂아 넣었다.
퍼퍼퍼퍼퍽!
-케엑! 케엑! 케에에엑!
태현의 폭딜에 걸리면 어지간한 몬스터는 그대로 녹아내렸다. 카멜레온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걸 혼자 잡았어!”
“거봐. 가젠. 태현 님이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라니까.”
“그러면 네가 여기서 미끼 할래?”
“그건 싫은데.”
“이 자식…….”
마법사들 파티도 고전하는 몬스터를 상대로 완전히 갖고 논 태현.
기습할 때부터 위치를 예측하고 있다가 바로 폭딜을 넣었으니 쉽게 끝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마법사들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반응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뒤에서 플레이어들이 감탄하고 떠드는 동안, 태현은 아이템을 확인하고 흑흑이를 불렀다.
-야. 일어서.
-…….
-안 죽은 거 다 뜨거든? 일어서.
-흑흑…… 주인님…….
흑흑이는 천천히 일어섰다.
-저 건방진 놈이 감히 저를…….
-그래. 그래. 알겠어. 다음부터는 완전히 제압시켜 놓고 힘을 빨게 해줄게.
흑흑이를 보니, 에너지 드레인 스킬로 힘을 회복하는 재주가 있었다.
물론 에너지 드레인 스킬은 생각보다 만만한 게 아니었다.
약한 상대한테는 해봤자 의미가 없었고, 강한 상대한테 했다가는 이렇게 두들겨 맞고 튕겨 나갈 수 있었다.
‘얘 생각보다 너무 약한데? 그러니까 브레스 좀 적당히 쓰지…….’
흑흑이가 알면 상처를 입을 생각을 하는 태현이었다.
‘그나저나 뭔 아이템 나왔냐?’
카멜레온의 간:
갖고 있으면 주변과 색을 맞출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물론 먹을 수도 있습니다.
“……?”
뭔가 쓸모 있는 거 같으면서도 애매한 아이템.
물론 이런 것도 주사위를 굴리는 게 규칙이었다.
“자! 주사위 굴립…….”
[100]
“가져갈게요.”
“…….”
* * *
“김태현! 이 자식 어디 간 거야!! 대체!”
태현을 쫓아 왔던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울분을 토해내며 길거리를 헤맸다.
-국왕 폐하의 생신이 이제 곧 시작됩니다! 모험가들은 중앙 광장으로 오세요!
“와! 신난다!”
다들 신이 나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들만 보이지도 않는 태현을 쫓고 있었다.
-이 자식 벌써 튄 거 아니야?
-맞아. 김태현이잖아.
-아니야. 추적 스킬을 썼는데 김태현은 수도에 있다고 나온다고!
-그 스킬 믿을 수 있는 거 맞아?
-스킬을 못 믿으면 뭘 믿으라는 건데!
-야. 게시판 봤냐?
-?
-게시판 켜봐!
<마탑 던전에서 김태현 플레이어를 만나다!>
저희도 놀랐습니다! 던전에서 김태현 플레이어를 만나게 될 줄이야. 놀랍게도 태현 님은 마법사로 뛰고 있었습니다!
-……?
-김태현이 마법도 쓸 줄 알았냐?
-난 김태현이 뭘 써도 안 놀랄 거 같다. 그래서 어딘데?
-마탑 던전에 있다는데?
-마탑 던전? 거기는 어떻게 들어갔어? 마법사도 아닌 놈이?
-어떻게 할 거야? 쫓아갈까?
-마탑 던전은…… 쫓아갈 만한 곳이 아닌데…….
길드원 중 마법사들은 마탑 던전이 뭐 하는 곳인지 잘 알았다.
쫓겠다고 들어갔다가는 그들이 같이 죽을 수 있는 곳!
게다가 태현은 저런 곳에서 치고 빠지는 데에는 달인이었다.
-마탑 던전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럼 네가 들어가든가.
-마탑에 들어갈 권한이 없어. 퀘스트 안 깨놨다고. 내가 마탑 가서 뭐하게.
-앞에서 대기할까?
-마탑 앞에서 싸우면 현상금 걸리지 않나?
-뭐 어때. 김태현만 잡으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원래 플레이어들은 도시 내에서 PK를 하지 않았다.
바로 경비병들이 달려오고, 현상금이 걸리는 데다가, 악명은 몇 배로 쌓이고…….
그러나 그런 모든 걸 감안하고서라도 잡고 싶은 게 태현!
-야. 진지하게 생각해 봐라. 김태현 한 번 잡으면 저런 페널티 정도는 비교도 안 된다고.
-뭐가? 김태현 잡으면 랜덤박스라도 나오냐? 김태현 잡으면 그냥 잡는 거지.
-아니야. 자식아. 이제까지 김태현 잡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잖아. 그걸 우리가 잡는다고 생각해 봐. 엄청나게 유명해질 수 있다고. 동영상 올리면? 그 날로 1위지. 너 개인 방송 하지? 너 같으면 김태현 잡은 놈이 방송하면 보고 싶겠냐, 안 보고 싶겠냐?
-……보고 싶을 거 같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남는 장사라니까. 오히려 김태현은 도시 안에서 더 방심할 수도 있어. ‘설마 여기서 그렇게까지 하겠어?’ 하면서 말이야. 그냥 던전 나오는 순간 찔러버리자고! 뭐든 간에 기습이 최고야!
길드원들은 결심을 굳혔다.
어떤 페널티를 받아도, 태현을 잡아서 얻을 수 있는 현실에서 얻을 명성에 비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