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58화
구박을 받던 가델의 아들, 가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사람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뭐? 누군데. 드디어 기억이 난 거냐?”
“음…… 잘 모르겠어.”
“……넌 앞으로 캡슐 쓰지 마라.”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어!”
“여기 있다! 내 돈으로 사줬잖아! 너희 엄마는 사주지 말라고 했는데!”
쪼잔하게 구는 가델의 모습에 가젠은 펄쩍 뛰었다.
가젠이 알아본 건 정수혁이었다.
한때 대회 예선에서 미친 컨트롤을 보여준 것으로 유명해진 정수혁!
그 영상을 본 적이 있었기에 가젠이 고개를 갸웃거린 것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어쨌든 저런 위력이라니. 랭커가 분명해.”
“그러면 돌아갈 거지?”
마탑 던전은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위험해졌다.
그걸 아는 가젠은 나가고 싶어 했다.
“아니.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왜 그런 부분에서 고집을 부려?”
“시끄럽다. 일단 좀 더 쫓아가다가…… 기회를 봐서…….”
“공격을 하겠다고?! 너무 무모한 거 아니야?!”
딱 봐도 태현은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의 랭커 같았다.
저 정도 되는 마법사 랭커가 왜 이 마탑 던전에 와서 바하 부자와 파티를 맺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랭커니까 오히려 마탑 던전을 깰 자신이 있는 건가? 부러운데…… 아니, 지금 그거 생각할 때가 아니지. 말려야 해!’
“아니.”
“?”
가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격을 안 하면 뭐 하려고? 항복?”
“친한 척을 하는 거다.”
“……어?”
“우리도 이 던전을 깨러 왔는데, 그러다가 만난 척을 하는 거라고!”
“……그다음에는?”
“그다음에는 같이 파티를 맺는 거지.”
“어, 그러다가 기회를 봐서 공격을 하겠다고?”
“아니. 그냥 같이 파티 플레이나 하자.”
“……??”
가젠은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물었다.
“그러면 어…… 그 복수는?”
“복수는 나중에 하자.”
“아, 응…….”
가델은 매우 현실적으로 판단을 내렸다.
몇몇 멍청한 놈들은 랭커를 보고서 ‘후후 놈들도 잘만 기습하면 한 방이야’라고 생각하지만, 가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밥만 먹고 게임만 하는 놈 중에서도 센스 있고 실력 있는 놈들만이 되는 게 랭커였다.
그런 놈들을 기습 한 번으로 이기려는 게 말이 되나.
‘그건 도둑놈 심보지!’
그냥 지금은 친하게 지내고 복수는 나중에 하자!
누군지는 몰라도 랭커가 이끄는 파티에 들어갈 수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기회였다.
‘근데 진짜 저 랭커는 누구냐?’
나름 판온 게시판을 챙겨보는 가델이었지만 정말 태현은 본 적도 없는 마법사였다.
* * *
벽을 부수고, 정면으로 당당하게 나아가는 태현 파티.
태현은 시시때때로 <신의 예지> 스킬을 사용했다.
MP를 아끼긴 해야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최대한 많이 써야 그나마 안전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덕수 씨는 어디까지 들어가실 겁니까?”
보통 마탑 던전을 진지하게 깨려고 하는 사람들은(일단 그런 사람들은 거의 없지만) 목표를 세웠다.
물론 던전을 끝까지 가서 깨겠다는 목표는 아니었다.
마탑 던전은 애초에 그런 게 불가능한 던전이었으니까.
보통 목표는 ‘보스 몬스터를 몇 마리 정도 잡겠다’ 정도!
보스 몬스터가 있는 방을 찾아, 그걸 잡고 보상을 얻는다.
이걸 목표치만큼만 해도 충분히 성공적인 레이드였다.
물론 태현의 목표는 하나였다.
“원하는 게 나올 때까지요.”
권능이 나올 때까지 뒤진다!
“역시……! 싸나이라면 그래야죠!”
바하는 그걸 보고 좋아했다. 바허는 질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저도 원하는 게 나올 때까지 마탑 던전을 돌 생각입니다. 크하핫!”
보아하니 바하도 원하는 아이템이 마탑 던전에 있어서 이렇게 온 모양이었다.
[<행운 전환>스킬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행운이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음. 끝났군.’
시간이 됐으니 돌아오는 건 당연했다.
다시 돌아온 행운 스탯을 보며 태현은 생각했다.
‘잠깐. 근데 저 사람이 원하는 아이템이 나와도 주사위 굴릴 텐데, 그러면 내가 먹게 되지 않나?’
태현은 관대한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려고 했다.
그래도 이렇게 같이 고생하면서 던전을 돌았는데, 원하는 아이템 하나를 못 챙기고 나가는 건 좀 불쌍하지 않은가.
<차가운 울음의 검> 하나 때문에 눈물겨운 고생을 했던 구성욱처럼!
“그러면 원하시는 아이템 나오면 그건 주사위 굴리지 말고 그냥 가지실래요?”
“그럴 수는 없죠! 처음에 약속한 대로! 다 주사위입니다! 주사위!”
바하는 정말 주사위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사위!
뭐가 나오든 주사위!
태현은 그렇게 해주기로 했다.
상대가 알아서 저렇게 나오는데!
“아, 예.”
“덕수 씨. 말하시는 거 보니 아까 제 주사위 운에 겁먹으신 모양입니다? 크하핫!”
“…….”
태현의 눈빛이 더욱더 따뜻해졌다.
-주인님. 주인님.
-왜?
-뒤에서 누가 쫓아오고 있습니다.
-?!
태현은 깜짝 놀랐다.
지금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즉 누군가 은신 상태로 쫓아오고 있다는 것.
문제는 태현이 <중급 은신> 스킬을 갖고 있고, 높은 행운 스탯까지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쫓아오고 있는 상대방은 저걸로도 안 들킬 수준의 은신 스킬을 갖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적어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게다가 태현은 안 그래도 적이 많은 상황.
암살자나 도적 플레이어 몇몇이 쫓아오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들켰나? 얼굴은 바꿨는데. 수혁이를 따라서 쫓아온 건가?’
태현은 긴장한 눈빛으로 뒤를 쳐다보았다.
-몇 명이냐?
-두 명입니다. 둘 다 마법사 같습니다.
-대단한데? 저걸 잡아내다니.
-별거 아닙니다. 주인님. 제가 이래 봬도 블랙 드래곤에 사디크의 힘까지 계약해서 받은 신수…….
-1절만 하자.
-네.
태현이 말을 자르자 흑흑이는 곧바로 수긍했다.
계속 떠들다가는 한 대 맞을 것 같은 분위기!
-그런데 넌 어떻게 잡아낸 거냐? 나도 눈치 못 챘는데.
-블랙 드래곤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존재는 많지 않습니다. 주인님. 제가 아무리 약해졌다고 하더라도…….
-아. 블랙 드래곤이 확실히 그런 드래곤이긴 하지.
판온에서 드래곤을 만날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그래도 각각의 드래곤마다 이미지가 있었다.
화끈하고 다혈질인 레드 드래곤!
정정당당하고 고지식한 골드 드래곤!
그리고 사악하고 비열한 블랙 드래곤!
괜히 사디크와 계약한 게 아니었다.
기습과 암습에 능한 블랙 드래곤이니만큼, 은신을 눈치채는 능력을 타고났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흑흑이가 태현의 말에서 뭔가 기분 나쁜 부분을 눈치채고 물었다.
-……주인님. 그런 드래곤이란 게 뭡니까?
-뛰어난 눈과 판단력을 가진 드래곤이란 뜻이지. 블랙 드래곤이 그렇잖아. 드래곤 종족 중에서 가장 뛰어난 드래곤!
-헤헤, 그 정도는 아닌데…….
-어쨌든 마법사라…… 음, 마법사 복장으로 위장했나?
태현도 마법사로 위장했으니 쫓아오는 암살자들도 마법사로 위장하고 들어왔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게다가 마탑에 들어와야 했을 테니…….
‘일단 주의 좀 해야겠군.’
* * *
“헉. 여기 왜 쳐다보는 거야?”
“눈치챈 거 아니에요?”
“이걸 어떻게 눈치채? 이 은신 마법이 그냥 투명 마법인 줄 아냐? 무려 <타르카의 투명 망토> 마법이라고!”
이름에 신 이름이 들어간 마법은 보통 강력하고 구하기 힘든 마법이었다.
실제로 가델은 이 마법을 얻기 위해 8개의 연계 퀘스트를 깨야 했다.
정말 고생고생하면서 얻었지만, 그 효과는 탁월했다.
어지간한 도적이나 암살자들도 눈치 못 채는 강력한 은신 효과!
쪼잔하고 겁 많은 가델에게는 딱 맞는 스킬이었다.
“다시 앞에 본다. 그냥 고개 돌린 모양이네.”
“랭커면 눈치챘을 수도…….”
“너 저주하냐? 용돈 깎는다.”
“아니 걱정하는 거잖아요!”
“랭커여도 눈치 못 채! 이걸 한두 번 써보는 줄 아나. 그 누구냐…… 유명한 랭커 있었는데. 걔도 이걸 눈치 못 챘었다고.”
“유명한 랭커 누구요?”
“그, 저번에 대회에서 유명해진 애였는데.”
“그런 사람이 한둘이에요?”
“아. 기억났다. 그, 지가 판온 1에서 당했다고 대회에서 꼬장 피우다가 처맞은 애!”
“아! 도동수!”
“그래! 걔!”
말하자마자 바로 떠올리는 그 이름!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그러나 가젠은 도동수의 이름을 듣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도동수는 좀…….”
“아니, 도동수가 뭐가 어때서! 걔도 일단은 랭커야!”
“도동수 속인 걸로는 확신을 못 하겠는데요…….”
대회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일반 플레이어들한테도 실력을 의심받는 도동수였다.
“네가 실제로 봤어야 한다니까. 진짜 무서웠다고. 샥샥 하니까 몬스터들 쓰러지고 플레이어들도 쓰러지는데…… 내 은신은 눈치도 못 채더라니까.”
“…….”
믿지 못하겠다는 가젠의 표정!
가델은 답답했지만 이해도 갔다.
대회와 대회 밖의 모습이 워낙 차이가 났으니까!
콰콰쾅!
그렇게 떠드는 사이 앞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다.
“!?”
“앗. 사냥하나 보네요.”
“기회다! 지금 가서 보다가 적당할 때 나타나자!”
하는 짓은 되게 숙련된 PVP 플레이어 같지만, 말하는 건 정말 쪼잔했다.
가젠은 말하려다가 말았다. 용돈을 깎이는 건 싫었으니까!
* * *
[썩은 살덩이 골렘이 부식액을 내뿜습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피하지도 않아?!”
“방어막을 쓴 건가? 방어막 보이지도 않았는데?!”
몬스터가 내뿜는 녹색 독액.
맞으면 체력이 낮은 마법사는 HP가 절반 이상 깎여나갔다.
당연히 마법사들은 미리 방어막을 치거나, 앞에 소환수를 세워 피해를 방지했다.
그러나 태현은 피하지도 않고 스킬을 쓰지도 않았다.
그냥 정면에서 맞는다!
다른 마법사들의 눈에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대체 레벨이 얼마나 높길래?
“가라!”
태현은 이번에 직접 덤벼들지 않았다. 뒤에서 오고 있는 놈들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대신 부리고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보냈다.
-저주를! 저주를!
-네 살을 좀먹겠다!
망령 몬스터들이 사납고 거칠게 울부짖으며 골렘에게 덤벼들었다.
[고급 전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부리고 있는 몬스터들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습니다.]
[<직감과 행운의 지휘>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부리고 있는 몬스터들이 적의 공격을 더 잘 피해내고 반격합니다.]
-죽,어,라,귀,찮,은,망,령,들!
골렘이 주먹을 휘두르고 부식액을 뿜어냈지만, 망령 몬스터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재빠른 동작으로 피해냈다.
“?!”
마법사들은 더더욱 경악했다.
보통 흑마법사가 소환한 언데드 몬스터들은 저런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명령을 내리면 자기들이 알아서, 둔하고 투박하게 움직이는 게 보통이었다.
그게 언데드들의 약점!
그런 걸 보완하려면 숫자를 엄청나게 늘리거나, 아니면 언데드를 진화시켜서 고위 언데드 몬스터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태현이 부리는 망령 몬스터들은 중급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도 엄청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얼마나 놀라웠는지, 바하와 바허 부자는 화염 마법을 쏘다 말고 입을 벌리고 멍하니 구경하고 있었다.
“아, 아빠. 앞에! 쏘셔야죠!”
“어? 어. 근데 대체 레벨이 몇이길래……?”
그나마 그 둘은 나은 편이었다.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다른 부자는 더 충격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
“……그, 그냥 돌아가죠?”
랭커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엄청나게 강해 보였다.
‘괜히 잘못 말 걸었다가 당하는 거 아냐?’
갑자기 덜컥 겁이 난 그들이었다.
애초에 지금 오해받기 좋은 상황이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