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57화
“고…… 맙습니다?”
“그래. 고마워해야지.”
‘……이 사람 아저씨 같은데.’
바허는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보통 그의 아버지, 바하와 잘 맞는 사람은 드물었던 것이다.
젊은 사람보다는 아저씨들이 대부분!
처음 보는 태현이었지만, 바하와 잘 맞는 걸 보니 수상했다.
태현이 알게 된다면 ‘아니거든 이 자식아’ 하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을 생각을 하는 바허!
‘이름도 아저씨 같고…….’
케인이 알게 된다면 ‘내 이름이 뭐가 어때서!’ 하고 했을 생각까지 덤으로!
-스으으…… 스으으…….
탑의 통로 앞쪽에서, 둥둥 떠다니는 푸른빛의 정령들이 나타났다.
하급 마나 정령.
초보자도 잡을 수 있는 만만한 몬스터였다.
그들 파티에는 안 맞는 몬스터였지만, 마탑 던전은 원래 밸런스 안 맞는 것으로 유명한 던전!
언제 어디서 위치가 바뀔지 몰랐고, 언제 어디서 강력한 몬스터가 나올지 몰랐다.
“하급 마나 정령 나왔다. 잡아봅시다!”
그러나 바하는 의욕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이런 약한 몬스터를 상대한다고 쳐질 필요 없었다.
지금이 바로 팀워크를 연습할 기회!
급조된 파티인 만큼 이런 기회를 잘 살려야 했다.
“덕수 씨. 우리 지금 탱커가 없는데 언데드 좀 소환해 줄 수 있겠습니까…… 어? 덕수 씨?”
바하는 옆을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그러나 이미 태현은 그 자리에 없었다.
타다다닥-
“덕수 씨?!”
지팡이를 들고 달려가는 태현!
“선배님?!”
“덕수 씨!”
아무리 하급 마나 정령이라도 그렇지, 마법사가 지팡이 들고 덤벼드는 모습은 처음 보는 그들!
그들은 기겁해서 말리려고 들었다.
-스으으…….
하급 마나 정령이 푸른 빛을 뿜어내고, 태현이 고개를 살짝 꺾어 피해냈다.
뒤에서 보는 사람들이 ‘와, 대단한데?’ 하며 감탄할 동작!
바허는 감탄한 다음 의아해했다.
‘아니, 잠깐, 마법사가 뭐 저렇게 잘 피해?’
그러나 아직 더 놀랄 게 남아 있었다.
빠아아아아아아악!
태현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거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하급 마나 정령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
“…….”
-선배님! 마법사 복장 하고 계십니다!
-아, 맞다. 습관이…….
습관은 무서웠다.
마법사 복장을 하고 있어도 일단 달려들어서 두들겨 패게 되는 것!
‘4시간 정도면 힘 스탯이 다시 행운으로 돌아오겠군. 그때까지는 방어 조심 좀 해야겠다.’
행운 스탯이 너무 편리하다 보니 실수를 할 때가 있었다.
“저, 저기 방금 대체 뭐였죠?”
바허의 친구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물었다.
태현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대답했다.
“마법사 스킬입니다.”
“예……? 그런 게 있어요?”
“흑마법사 스킬 중에 MP를 소모해서 근접 전투력을 올려주는 게 있거든요.”
“정말요?!”
처음 듣는 마법 스킬!
그렇지만 판온에는 플레이어가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스킬들이 있었으니, 이런 거짓말은 잡아낼 수가 없었다.
‘아니, 뭔 흑마법사가 그런 마법을 익혀?’
‘이 사람…… 변태 아닌가?’
‘잘 싸우는 거 같긴 한데 대체 마법사가 저런 걸 왜……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던데…….’
‘그러고 보니 바하 아저씨 제안을 받은 것부터가 수상했어.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제안을 안 받지.’
파티원들이 태현을 보는 눈빛이 바뀌었다.
변태를 보는 눈빛으로!
“그러면 언데드 소환하겠습니다.”
“아, 네.”
-중급 언데드 소환!
푸스슷!
망령 몬스터들이 바닥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악명이 높습니다. 부리는 망령 몬스터들이 더욱 사나워지고 강해집니다.]
[악신 사디크의 권능을 갖고 있습니다. 부리는 망령 몬스터들 중 일부가 그 힘을 받습니다.]
‘응?’
태현도 생각하지 못했던 효과들!
악명이 너무 높아지고, 악신 사디크의 힘까지 받은 덕분에 알아서 언데드들이 강해진 것이다.
‘이래서 흑마법사 놈들이 악명 좀 올리겠다고 날뛰는 거였나…….’
그러나 태현은 모르고 있었다.
악명 높이겠다고 작정하고 날뛴 흑마법사들보다 그가 훨씬 더 높다는 것을!
태현의 악명 스탯을 게시판에 공개한다면 ‘아니, 이 인간은 밥만 먹고 나쁜 짓만 했나요? 대체 어떻게 이렇게 악명을 쌓았죠?’ 같은 반응이 나올 것이다.
“어라? 이거 중급 언데드 맞죠?”
“망령이 원래 이렇게 생겼나?”
마법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탑에서 퀘스트를 깨다 보면 당연히 다른 흑마법사들도 많이 만나보게 됐다.
그들이 부리는 중급 언데드 망령 몬스터들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던 것!
뭔가 좀 더 약하고, 좀 더 비리비리하게 생겼던 느낌이었는데…….
‘왜 이리 사악하고 무섭게 생겼지?’
‘뭐, 언데드가 사납고 무서우면 더 좋은 거겠지…… 이것도 스킬인가 보다.’
“근데 다른 언데드는 소환 안 하나요?”
움찔!
태현의 어깨가 움찔거렸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저는 망령 언데드를 컨트롤하는 걸 좋아합니다.”
“아니…… 그래도 앞에서 막아줄 덩치들은 있어야 하지 않나요?”
“제 망령 언데드들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습니다! 한 번 보시면 알 겁니다!”
“아, 네.”
태현의 박력에 밀린 바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상대가 망령 언데드밖에 소환하지 못한다는 건 상상치도 못했다.
“아. 잡템 나왔는데 주사위 굴릴까요?”
그 말에 김세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잡템은 그냥 잡은 사람이나 먼저 먹은 사람 주지 않나요?”
“그렇지만 재밌지 않습니까!”
주사위 중독자!
바하는 도박을 안 하는 대신 이런 주사위를 굴리는 걸 너무 좋아했다.
“그럼 굴리세요.”
파티에서 주사위 굴리겠다는 건 별로 단점도 아니었다.
세상에는 훨씬 더 미친놈들이 많은 것이다.
떼구르르-
“으하하! 90! 90 나왔다!”
가장 높은 숫자가 나온 바하는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바하의 아들과 다른 아들 친구들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아빠…… 그거 잡템이야…….”
“잡템이면 뭐가 어때서! 중요한 건 이 주사위 눈금이지! 오늘 내 운이 좋은 거 같다. 이따 끝나고 가서 복권이나 살까?”
태현은 따뜻한 눈길로 둘을 쳐다보았다.
지금 많이 좋아해야 할 것이다.
4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아이템을 먹지도 못할 테니까!
* * *
처음으로 갈림길이 나왔다.
-신의 예지.
다들 마탑 던전을 두려워했지만 태현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던전을 공략할 때 맵을 작성하기 위해 몇 번을 들락날락하지만, 태현은 거의 한 번에 끝냈다.
아키서스가 함께 있으니까!
그러나…….
‘길이 바뀐다!’
태현은 혀를 찼다. 신의 예지는 길이 한 개 나와야 쓰기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사방으로 퍼져 있었다.
갈림길 왼쪽, 갈림길 오른쪽, 심지어 뒤쪽까지.
잠깐 사이에 신의 예지로 만들어진 길이 깜박이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났다.
이 던전의 구조 자체가 계속 바뀌고 있어서가 분명했다.
‘어쩐다? 이대로면 길을 간다고 해도 의미가 없는데…….’
지금은 왼쪽, 1초 후에는 오른쪽, 2초 후에는 뒤쪽…….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행운만 믿고 가야 했다.
그리고 태현은 행운 스탯이 높기는 하지만 운에 모든 걸 거는 사람이 아니었다.
“……!”
순간 태현은 눈을 깜박였다. 방금 신의 예지가 정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면 벽!
그리고 다시 사라졌다.
‘음…… 차라리 정면으로 갈까.’
이제까지 플레이어들이 정석으로 길을 가다가 전부 헤맸으니, 차라리 안 간 길로 가볼까 싶었다.
-애들아. 시선 좀 끌어주라.
-네?
-시선 좀 끌어달라고.
태현은 말과 함께 지팡이를 들고 어둠의 화살을 준비했다.
“벽에다 쏘시려고요?”
“예! 벽을 부술 겁니다.”
“아니, 그거 안 부서집니다. 다들 해봤어요. 저도 해봤거든요.”
바하는 민망하다는 듯이 말했다.
마탑 던전에 들어오면 다들 한두 번씩 해보는 것들.
벽 부수기!
계속 바뀌는 통로에 길을 잃은 사람들은 결국 포기하고 벽을 부수려 들었다.
“저는 안 해봤습니다. 지금 해보려고요.”
“……파이팅! 열심히 해보시죠!”
바하는 진심으로 말했다.
“아빠. 저런 건 말려야지 왜…….”
“저런 걸 안 해보면 아깝잖아!”
“아니 그래도 그렇지 시간 낭비에 MP 낭비인데…….”
그 순간 정수혁이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 저거 뒤에 몬스터 아닙니까?”
“??”
모두의 고개가 돌아간 순간, 태현은 <고대의 망치>를 꺼냈다.
-어둠의 화살!
스킬 이름을 말하고, 어둠의 화살을 벽에 쏘고(물론 턱도 없었다), 고대의 망치를 들고 전력으로 휘둘렀다.
현재 서버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는 압도적인 힘 스탯과 <고대의 망치>가 합쳐지자…….
우지끈!
콰르르르르…….
[에랑스 왕국 마탑의 벽을 부쉈습니다!]
[오래된 고대의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벽을 부쉈습니다. <철거의 달인> 칭호를 얻었습니다.]
칭호:철거의 달인
당신은 무언가를 정말로 잘 부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무언가를 부수고 다니겠죠. 그게 벽이든, 건물이든, 성이든 말입니다.
무언가를 부술 때 전체적인 보너스를 받음.
안 그래도 테러에 특화된 능력치와 스킬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 칭호까지 덤으로 얹어주고 있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힘이 오릅니다.]
[에랑스 왕국 마탑의 마법사들이 알면 이 사실에 대해 격렬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좋아한다는 거야, 싫어한다는 거야?’
알쏭달쏭한 메시지창!
마탑의 건물을 부쉈으니 싫어할 거 같기도 했고, 기발한 발상이니 좋아할 거 같기도 했고…….
‘슬쩍 말 띄워본 다음 반응 안 좋으면 다른 놈들이 했다고 해야지.’
고급 화술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완벽한 계획!
“말, 말도 안 돼…….”
“어떻게?!”
뒤에서 마법사들이 놀란 얼굴로 외쳤다.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 어둠의 화살이 벽을 부순 것이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맞아요! 어떻게 한 거예요?!”
파괴력 좋은 화염술사나 다른 마법사들도 벽을 부수지는 못했다.
그런데 흑마법사인(겉모습만) 태현이 벽을 부순 것이다.
“어둠의 화살로 부쉈습니다.”
“어, 어둠의 화살? 겨우 그걸로요?”
“바허야. 바허야. 실례잖아. 그만 물어봐.”
바하가 아들을 말리려 들었다. 원래 플레이어들은 자기 스킬을 잘 공개하지 않았다.
언제 어떤 순간에 싸우게 될지 몰랐으니까!
숨겨놓은 스킬은 비장의 한 수 같은 거였다.
“하하. 죄송합니다. 너무 신기하고 대단해서…… 허 참. 이런 파괴력이 나오긴 나오는군요.”
바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별거 아닌데요.”
“이게 별거 아니면 우리는 다 게임 접어야 할 거 같네요! 으하하! 그러면 일단 가볼까요? 길도 새로 생겼는데?”
바하는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 * *
“저건 대체 뭐 하는 놈들이냐?!”
가델은 깜짝 놀라 외쳤다.
그의 현실 친구이자 라이벌, 바하가 마탑 던전을 공략한다는 말을 듣고 잘됐다 싶었다.
‘뒤에서 따라다니다가 곤란할 때 공격해서 아이템 좀 뺏어 먹어야겠다!’
들켰다가는 현실 우정이 금 갈 것 같은 사악한 계획!
그러나 가델은 자신이 있었다.
그는 이런 쪽 PVP에 특화된 마법 스킬들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 쪽팔리는데 그냥 가면 안 돼? 들키면 쪽팔린다고.”
“시끄럽다. 바하 저놈 저번에 우리 집 왔을 때 고스톱 친 거 기억 안 나냐?”
“그건 아빠가 못 친 거 아닌 읍읍!”
“그런데 저놈들은 대체 뭐지?”
“잘 모르겠는데. 랭커 아니야?”
“저런 랭커 아니?”
“모르겠는데. 본 적 없어.”
“이놈 자식! 평소에 하라는 판온은 안 하고 뭐 한 거야! 네 친구들은 랭커 얼굴만 봐도 신상명세가 탁탁 나오는데!”
“난 평소에 공부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