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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454화 (454/1,826)

§ 나는 될놈이다 454화

태현은 새삼스레 자기가 갖고 있는 마법 스킬들이 얼마나 꼬여 있는지 깨달았다.

다른 마법사 직업들이 본다면 ‘뭐 마법 스킬을 저딴 식으로 익혔냐?’라고 할 수준!

‘아, 빨리 악마들하고 관계를 회복해서 <악마 소환> 스킬이나 좀 편하게 써야 하는데…….’

물론 그러려면 퀘스트를 몇 개나 깨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악마 소환> 같은 마법을 갖고 있는 마법사들 중에서 태현 같은 이유로 고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통 마계 층의 주인격 악마한테 원한을 사지는 않았으니까!

‘<언데드 소환>은 중급이긴 한데 하필이면 망령 계열이고. 이건 실력 보여주기 좀 미묘하지 않나?’

같은 언데드 소환 마법이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었다.

태현이 갖고 있는 건 <중급 언데드(망령) 소환>.

망령 언데드는 어지간히 레벨이 높지 않는 한 혼자 쓰기 힘들었다.

자기 자신이 강한 게 아니라, 다른 튼튼한 언데드가 싸우는 동안 상대방에게 저주를 걸고 디버프를 거는 식으로 싸우는 언데드!

‘에이. 기왕 소환이면 데스 나이트나 언데드 와이번 같은 게 좋은데…….’

마법사 직업도 아니면서 양심 없는 생각을 하는 태현이었다.

‘이건 위험해서 안 되고, 저건 잡혀갈 거 같아서 안 되고…….’

그러다 보니 결국 남은 건 <어둠의 화살>이었다.

초보 흑마법사부터 고수 흑마법사까지 모두 쓰는 기본 마법 스킬.

고수가 쓰면 충분히 강한 위력이 나왔지만, 태현은 한동안 쓰고 있지 않았었다.

<사디크의 화염 화살>이 더 나았던 것이다.

그러나 마탑에서 사디크 관련 스킬은 쓸 수 없으니, <어둠의 화살>을 써야 했다.

‘후…… 그 방법을 써야 하나.’

지금 떠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잊혀진 망자의 왕관>을 착용하는 것이었다.

이세연과 스미스가 다투는 사이 태현이 먹고 튄 강력한 아이템.

이세연이 원했던 아이템인 만큼 강력한 흑마법사 장비가 분명했다.

문제는…….

‘설명이 너무 불길한데.’

잊혀진 망자의 왕관:

내구력 ∞/∞, 마법 방어력 ?

스킬 ‘잊혀진 망자의 강림’ 사용 가능, 스킬 ‘잊혀진 망자의 복종’ 사용 가능. 착용 시 ‘잊혀진 망자의 저주’ 상태 이상에 걸림. MP 회복력 50% 상승, 마법 저항력 50% 상승.

고급 흑마법 스킬, 고급 마법 스킬 필요.

이제는 이름이 사라진, 잊혀진 망자가 사용했던 왕관이다. 자격이 되지 않는 흑마법사는 건드릴 수도 없는 비범한 아이템이다.

(추가 옵션)봉인이 되어 있음

착용이야 태현의 스킬로 억지로 착용할 수 있었지만, 그 뒷감당이 두려웠다.

쓰는 순간 분명 문제가 터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안 그래도 악명 때문에 골치 아픈데 저주까지 늘리지는 말아야지…….’

태현은 다른 방법은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행운 전환!

<행운 전환>

랜덤으로 스탯 하나를 고릅니다. 일시적으로 행운 스탯을 그 스탯으로 전환시킵니다. 행운 관련 스킬 페널티는 유지됩니다.

[행운 전환 스킬을 사용합니다.]

[행운이 소모됩니다.]

태현의 행운은 4500을 넘긴 상황. 여기서 몇십 소모되어봤자 의미가 없었다.

행운 스탯의 단점이자 장점은, 몇 점 올리고 내리는 것으로는 티도 안 난다는 것!

‘지혜! 지혜 걸려라!’

[전환될 스탯이 정해집니다.]

[행운이 민첩으로 전환됩니다.]

-우기기!

[다시 굴립니다.]

[행운이 힘으로 전환됩니다.]

‘…….’

태현의 얼굴이 구겨지고, 메시지 창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힘이 5000을 넘었습니다. 다른 스킬들을 쓸 수 있습니다. 스킬이 풀릴 경우 이 스킬들은 사라집니다.]

[<괴력의 타격> 스킬을 얻었습니다.]

[<잡아 뜯기> 스킬을 얻었습니다.]

[<짐승의 일격> 스킬을 얻었습니다.]

[……]

[……]

꿈틀꿈틀 차오르는 거대한 힘!

물론 태현은 기뻐하지 않았다.

‘젠장. 어쩐다?’

지혜가 걸렸으면 막대한 지혜 스탯으로 부족한 마법 스킬을 커버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힘!

가장 마법과 거리가 먼 스탯 아닌가!

덜컥-

“오래 기다렸군.”

들어온 건 검은색 로브를 입고 있는, 어딘가 날카롭고 음침해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태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정말로? 마력이 별로 안 느껴지는데.”

“테란드 남작님께서 보장하셨으니 실력은 확실할 겁니다.”

“그 테란드 남작이 보장했다면야…… 혹시 협박이라도 당한 건 아니겠지?”

“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마법사 NPC와 문지기의 대화를 듣던 태현은 뜨끔했다.

들키면 마탑을 무사히 빠져나오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이 마탑의 흑마법사들을 이끄는 대마법사, 체시자다. 다른 대마법사들은 자기 일들로 바빠서 오지 못했지. 다른 대마법사에게 시험을 받길 원하나?”

“아닙니다. 체시자 님에게 받는다면 영광이죠. 헤헤헤.”

아쉬운 게 많은 태현은 바로 비굴하게 태도를 바꿨다.

그나마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화술 스킬!

“가면은 좀 벗지.”

“아. 예.”

아부에도 불과하고 체시자의 태도는 삐딱했다.

“백작이군. 미안하지만 마탑에서는 신분의 의미가 없다.”

“당연합니다. 저도 신분 대접 받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거죠.”

“악명 때문이 아니라?”

“하하. 오해십니다. 대륙의 정의를 위해 활동하다 보니 이런 오해를 사게 되더라고요.”

“하긴, 사악한 사디크 교단과 치열하게 싸웠다고 들었지. 명성을 들으니 오해를 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악명만 높은 게 아니라, 악명과 명성이 동시에 높으면 이런 반응이 나왔다.

‘너는 나쁜 놈으로 알려져 있지만 혹시……?’ 같은 반응!

체시자는 스태프로 바닥을 두드리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악명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원래 우리 흑마법사에게는 악명이 훈장 같은 거니까.”

“사실 제 별명이 <살인마 백작>입니다.”

바로 태도를 바꾸는 태현!

“……저,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옆에서 듣던 문지기가 슬슬 뒷걸음질 치더니 도망쳤다.

후다닥!

시간 되는 대마법사가 체시자밖에 없어서 ‘괜찮을까? 저런 괴팍한 대마법사를 불러도?’ 하고 생각했던 문지기였다.

그러나 지금 보니…….

둘은 아주 잘 어울렸다!

* * *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실력을 보도록 하지. 과연 추천장을 받고 나를 이렇게 부를 자격이 있는지. 만약 자격이 안 된다면…….”

체시자는 말끝을 흐렸다. 그걸 들은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체시자를 죽여야 하나? 죽인다면 죽일 방법은? 체시자가 갖고 있는 장비나 아이템은? 지금 저 로브부터 꽤나 비싸 보이는데…… 기왕 잡는 거면 저 놈 방 가서 싹 쓸어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마탑의 대마법사를 보고 견적부터 뽑아내는 태현!

습관의 무서움이었다.

‘아, 아니. 진정하자. 지금은 잡을 때가 아니야.’

태현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체시자를 잡고 아이템을 뜯는다면 기쁘기는 하겠지만 그 뒷감당이 어려웠다.

마탑에서 도망쳐야 하고, 마탑에서는 태현을 죽이러 올 테니…….

태현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박수를 칠 것이 분명했다.

“뭐 하나? 안 하나?”

“지금 합니다. 저는 <어둠의 화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둠의 화살이라. 기초 중의 기초지만 많은 걸 보여주지.”

체시자는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체시자가 당신의 선택에 만족합니다.]

일단 첫 번째 관문은 통과한 것 같았다. 태현은 과녁 앞에 가까이 섰다.

“뭐 하는 거지? 화살을 왜 그렇게 가까이서 쏘나?”

“저는 좀 다른 식으로 사용합니다.”

과녁은 거대한 바위였다. 마법이 꽂히면 그 위력을 알 수 있었다.

태현은 심호흡을 했다. 타이밍이 중요했다.

-어둠의 화살!

태현의 손끝에서 뭉클거리는 어둠이 생겨나더니 뾰족한 화살의 모양으로 바뀌었다.

‘흡!’

태현은 그 상태로 주먹을 휘둘렀다.

손끝에서 화살이 던져지기도 전에 주먹이 과녁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화살이 쏘아져 나가고, 주먹이 동시에 과녁 앞에 박혔다.

꽈르릉!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쩌저적!

그리고 과녁 역할을 맡은 바위가 가운데서부터 쪼개지더니 무너져내렸다.

[막대한 힘으로 바위를 부쉈습니다!]

[무기를 끼지 않고 주먹으로 바위를 때렸습니다. 상태 이상 마비에 걸립니다. 잠시 동안 오른손을 쓸 수 없습니다.]

[힘이 오릅니다.]

태현이 선택한 건 눈속임이었다.

어둠의 화살을 쓰고 동시에 힘으로 때려 부순다!

‘판온 1에서 농담 삼아서 하던 걸 진짜 하게 되다니…….’

판온 1에서 태현은 대장장이를 했지만, 힘법사도 한 때 고민하긴 했었다.

그걸 이렇게 하게 될 줄이야.

‘과연 통할까?’

태현은 힐끗 체시자를 쳐다보았다.

체시자는…….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대단한 위력이군!”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가까이서 쏘는 거지?”

“위력을 늘리기 위해서 최대한 붙어서 사용합니다.”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설득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체시자를 속이는 데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체시자가 당신의 실력에 감탄합니다.]

“이 엄청난 위력…… 괜히 살인마 백작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어.”

“…….”

뭔가 이상한 부분에서 감탄하는 체시자였다.

“흑마법사 중에서도 이렇게 위력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문데 말이야.”

보통 이렇게 강력한 화력을 보여주는 마법은 원소 계열 마법이었다.

화염이나 냉기, 번개 같은 마법들!

흑마법은 언데드를 소환하고 저주를 거는 것이 많았다. 이런 식으로 화력이 높은 마법은 많지 않았다.

“좋아. 네 실력을 인정하도록 하지!”

[에랑스 왕국 마탑의 출입을 허가받습니다.]

[현재 당신의 소속은 흑마법사 파입니다.]

[타 파의 구역에 함부로 출입했다가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흑마법사들에게 퀘스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공할 시 공적치 포인트가 쌓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새로 온 마법사가 이렇게 뛰어나다니. 게다가 그 마법사가 흑마법사라니! 다른 놈들이 알면 부러워 죽으려고 하겠군!”

“감사합니다?”

“다른 놈들을 불러서 이 사실을 자랑해야겠어. 그놈들 앞에서 이 마법을 다시 보여 달라고. 흑마법의 위력을 무시하던 놈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궁금하군! 크하하하하!”

“…….”

별로 감사하지 않은 상황!

<흑마법사 파의 명예를 드높여라-에랑스 왕국 마탑 퀘스트>

놀라운 힘, 아니, 놀라운 마법 실력을 체시자에게 보여준 당신은 에랑스 왕국 마탑의 출입을 허가받았다.

그뿐 아니라, 당신의 실력에 깊은 감동한 체시자는 다른 대마법사들을 불러 당신의 마법을 보여주려고 한다.

흑마법에 위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있지만, 당신의 마법을 본다면 그런 말은 사라질 게 분명하다.

물론 그게 마법이 아니라는 게 들키지 않는다면 말이다.

보상:?, ???

-퀘스트 실패 시 체시자와의 관계 악화

산 넘어 산!

기껏 체시자를 속여 넘겼더니 이제 다른 대마법사들까지 속여 넘겨야 할 상황이 찾아왔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다른 대마법사들 앞에서 이 짓을 다시 하면 안 들킨다는 보장이 없었다.

“저, 체시자 님. 이게 MP를 많이 쓰고 저도 지금 좀 힘들어서…… 다음에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도 만반의 준비를 해서 오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지. 내일?”

“아, 아니…… 내일은 좀…….”

“내일 모레?”

“내일 모레는 제가 약속이 있어서…….”

“내일 모레 내일?”

“그때는 제가 죽일 놈이 있어서…….”

“아, 그러면 언제가 좋은가!”

태현이 자꾸 말을 돌리자 체시자는 짜증을 냈다.

“일주일 후가 어떻습니까?”

“그래. 일주일 후. 알겠네. 시간 여유가 있으니 잘됐군. 다른 마법사들도 더 불러 모아야겠어.”

“…….”

태현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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