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52화
화르륵-
공터에 도착해서 불을 붙이기 시작하자, 길드원들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여기도 해주세요!”
“저부터 먼저 해주시죠!”
요리사 직업을 가진 만큼 이런 부분에서는 다들 욕심이 많았다.
“이 녀석들! 마법사님이 곤란해하시잖아!”
차오는 근엄한 척 길드원들을 야단쳤다. 그러고는 태현한테 말했다.
“저부터 먼저 해주시죠.”
“물론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태현은 싱긋 미소 지었다.
그 모습에 차오는 뭔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불길함이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어, 뭐지?’
그러나 차오는 그 불길함을 눈치챌 수준이 아니었다.
화르륵!
태현은 공터를 돌며 설치된 요리 기구 밑에 불을 붙였다.
특히 차오의 불에는 더 공을 들였다. 열심히 하는 태현의 모습에 차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내가 착각을 했나보군. 내가 길마인 걸 알아서 내 건 더 공을 들이는 게 아주 마음에 들어.’
누가 중요하고 누가 중요하지 않은지 잘 알아차리고 줄을 서는 능력!
그런 능력이 좋아야 예쁨을 받는 법이었다.
“야. 창고에서 저 사람 주게 <상급> 칸에서 요리 좀 갖고 와.”
“<상급> 칸에서요? 아깝지 않나요?”
“이 자식이, 지금 랭커 마법사 데리고 왔는데 그게 아쉽냐? 저거 봐. 저렇게 열심히 호구처럼, 아니, 자기 일처럼 나서주는 랭커 놈 찾기 힘들다고. 원래 랭커 정도 되면 어깨에 힘 뻣뻣하게 들어가고 남 거만하게 대하는 게 보통인데 저놈은 혼자 솔플만 해서 그런지 저러잖아. 이럴 때 인상을 팍 강하게 줘야 감동을 받는다니까.”
“알겠습니다!”
길드원은 차오의 말을 이해하고 후다닥 달려갔다.
그러자 다른 길드원이 손을 들었다.
“넌 또 왜?”
“그런데 저분 이름이 뭡니까?”
“어…… 그러게?”
“…….”
길드원들이 당황해서 쳐다보자 차오는 억지를 부렸다.
길마로서 권위는 잃을 수 없다!
“마음이 통했으면 이름은 몰라도 이야기가 되는 거야!”
“아, 알겠습니다.”
“그래도 이름은…….”
“알겠어. 물어보면 되잖아. 저기! 마법사님!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차오는 태현을 불렀다. 열심히 불을 지르던 태현은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제 이름은 <차이나넘버원>입니다.”
“???”
“저 봐라. 얼마나 좋은 이름이냐. 분명 애국자일 거야.”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짓나?’
‘뭔가 무서운데?’
그러는 사이 태현은 슬슬 작업을 끝내가고 있었다.
“자, 이거 좀 받으시고. 드시면서 하시죠. 맛도 좋고 효과도 엄청 좋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
…….
요리사 길드의 장점 중 하나.
요리사들이 만드는 효과 강력한 요리들을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것!
태현은 아이템들을 확인하고 반색했다.
<잘 만들어진 상급 화염초 야채 샐러드>, <서리 언데드를 이용한 샤베트>, <체력에 좋은 특급 고기 꼬치> 등등!
새로 온 랭커 마법사를 대접하기 위해 길드원들은 잘 만들어진 요리들을 꺼내온 것이다.
“어, 그런데 이걸 지금 만드신 겁니까?”
“하하. 아닙니다. 예전에 잘 만들어둔 걸 보관한 거죠.”
“어떻게 보관하는 거죠?”
“훗. 요리사들의 비법입니다. 알려드릴 수 없습…….”
“…….”
“……니다만 길드원인데 못 알려드릴 게 뭐가 있습니까?”
태현의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차오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어차피 마법사니 요리사들의 아이템을 알려줘도 별 상관은 없을 것이다.
“이 <에르지의 냉기 유지 창고> 아이템이 있으면 요리가 오래 유지됩니다.”
겉모습도 그렇고 그냥 냉장고처럼 생긴 아이템이었지만, 태현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이거 어떻게 만들어요?”
“제작법은 이건데……. 잠깐.”
태현은 아차 싶었다.
너무 막 나갔나?
“이거 밖에 공개하시면 안 됩니다. 아직 풀린 제작법이 아니라서 요리사 대부분이 갖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냉장고 역할을 하는 아이템은 많이 풀렸지만, 각자 성능이 많이 달랐다.
그런 면에서 차오의 길드가 퀘스트를 깨서 제작법을 얻은 이 <에르지의 냉기 유지 창고> 아이템은 상위권에 속하는 강력한 아이템!
“물론입니다. 제가 뭐 대장장이 할 것도 아닌데 이걸 왜 공개하겠어요? 그냥 제작법이 궁금해서요. 저는 이런 거 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태현은 술술 거짓말을 했다.
“하하! 그러네요!”
[<에르지의 냉기 유지 창고> 제작법을 얻었습니다.]
[고급 대장장이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이해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고급 기계공학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이해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에르지의 냉기 유지 창고> 제작법을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만들 수 있습니다.]
얻는 순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태현 정도의 대장장이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에게 이런 제작법을 보여준다는 건 그냥 떠먹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
태현은 꾹 입술을 깨물었다. 입가가 올라가는 걸 참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슬슬……. 아니, 아직 하나 더 할 수 있군.’
다른 사람이라면 겁을 먹거나, 긴장을 해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태현은 반대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뜯고 먹고 즐기고 가자!
우걱우걱-
“아, 이거 맛있네요. 좀 더 구워주실 수 있습니까?”
요리사가 옆에서 고기 요리를 하자 바로 와서 집어 먹는 태현!
육즙도 적절하고 적절히 구워진 고기 맛이 환상이었다.
“아, 잠깐만요. 지금 양념에 재우고 있어서…….”
“그냥 더 구워 주세요!”
“……알겠습니다.”
요리사는 짜증이 났지만 일단 고기를 더 올렸다.
일단 귀하게 대접해야 하니까!
‘걸신이 들렸나?’
냠냠 쩝쩝!
태현은 공터 주변을 돌며 요리사들의 요리를 뺏어, 아니, 얻어먹기 시작했다.
[힘이 영구적으로 1 오릅니다.]
[민첩이 영구적으로 1 오릅니다.]
[지구력이 영구적으로 1 오릅니다.]
[냉기 저항력이 일시적으로 오릅니다.]
[<완벽한 미식> 스킬의 레벨이 오릅니다.]
…….
…….
수십 개가 되는 버프가 우르르 걸리자, 태현의 얼굴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괴식 요리> 스킬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 <구걸 요리> 스킬을 얻었습니다.]
<구걸 요리>
남이 만든 요리를 이용해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냅니다. 보통 요리사들이 쓰는 요리법은 아닙니다.
[요리사들 앞에서 쓸 경우 친밀도가 하락할 수 있습니다.]
“……뭐 어쨌든 있으면 좋은 거니까!”
* * *
[너무 많이 먹어서 일시적으로 민첩이 내려갑니다.]
[여기서 더 먹을 경우 추가적으로 상태 이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요리사들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이 주변 요리를 거의 거덜 낸 태현!
차오는 흠흠 헛기침을 하며 말을 걸었다.
“자, 이렇게 처먹……. 아니, 이렇게 먹었으니 슬슬 길드 가입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말은 공손했지만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처먹고 받을 거 다 받았는데 설마 튀지는 않겠지!
다행스럽게도 태현은 튀지 않았다.
“아, 그럼요. 가입해야죠.”
그 순간 저 멀리서 철컥거리는 소리와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소리였다.
“?”
“여기 사디크를 믿는 놈들이 있다고 들었다!”
지휘관이 분노한 얼굴로 외쳤다.
“????”
“뭔 사디크?”
“이거 뭔 이벤트야?”
NPC들이 갑자기 이러자 요리사들은 당황했다.
전혀 상관이 없는 그들이었던 것이다.
“대답해라, 모험가들!”
“아, 아니. 저희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저희 길드원은 다 착한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저희는 요리밖에 몰라요!”
“으음…….”
뜻밖의 상황에 차오가 나섰다.
길마인 만큼, 명성이 높았고 에랑스 왕국에서도 공적 포인트가 높았다.
거기에 초급 화술 스킬까지(일부러 키운 건 아니었지만)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장 잘 맞는 사람!
실제로 지휘관이 멈칫할 정도였다.
그러나.
“사디크 만세! 사디크 만세!”
“?!?!?!?!?!”
“죽어라, 에랑스 왕국의 개들! 너희의 국왕도 위대한 사디크 님의 힘에 굴복하리라!”
태현은 말과 함께 지휘관을 향해 화염 화살을 갈겼다.
콰앙!
“저, 저 미친 사디크 놈이!”
“역시 사디크의 광신자가 맞았다! 잡아라!”
태현은 최대한 미친놈처럼 보이기 위해 날뛰었다.
“히히! 불꽃 발사!”
“너, 너 왜 이래?! 미쳤어?!”
차오는 태현에게 항의했지만 이미 태현은 후다닥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마법사가 뭐 저렇게 빨라?!”
안 그래도 빠른 태현이 온갖 요리 버프까지 받자, 그냥 달려 나가도 잡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자 병사들은 일단 요리사들부터 체포하기로 했다.
“모두 붙잡아라!”
[에랑스 왕국의 정예 병사들이 당신들을 체포합니다. 저항할 경우 에랑스 왕국에 수배당할 수 있습니다.]
[체포될 경우 한동안 감옥에 갇힙니다.]
“……$*#&!#(!”
요리사들로 병사들한테 덤빌 수도 없고, 차오와 요리사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병사들에게 끌려갔다.
병사들과 같이 온 사제 NPC가 기겁을 하며 외쳤다.
“여기, 여기 사디크의 화염입니다! 사디크의 화염으로 요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 사악한 놈들! 어허! 국왕 폐하의 생신에 무슨 요리를 바치려고! 정말로 사악한 놈들이로다!”
* * *
일이 끝나자마자 태현은 바로 옷을 갈아입고 얼굴을 바꾼 다음 케인과 이다비에게 에랑스 왕국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둘 다 변장했지만 혹시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마탑 퀘스트 깰 때 둘의 힘은 크게 필요 없을 거야. 괜히 있다가 잡히는 것보다는 필요할 때 부르는 게 낫지.’
이번 퀘스트는 정수혁 정도만 데리고 해도 충분했다.
[남들을 모함해서 궁지로 몰았습니다. 흑흑이의 힘이 늘어납니다.]
[왕국 한복판에서 사디크의 이름을 외쳤습니다. 흑흑이의 힘이 늘어납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주인님. 주인님은 타고난 사디크의 신도이십니다!
흑흑이가 감탄할 정도의 악행!
‘아차. 악명 관리를 또…….’
태현은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한 번 악명이 명성보다 높아지니 정말 수습하기가 어려웠다.
태현이 하는 짓들은 대체로 악명이 높아지는 행동!
어떻게든 수습을 하려면 착하고 고운 마음으로 살아야 했는데, 태현은 그것과는 가장 거리가 멀었다.
나쁜 짓을 할 때는 마치 물 흐르는 듯이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였던 것!
그나마 흑흑이가 힘을 회복해서 다행이었다.
‘그래. 경험치를 뺏어먹지 않고 회복한다는 게 어디냐.’
용용이는 아직도 영지에서 토끼들을 잡고 있었다.
태현은 사실 용용이에게 흑흑이를 소개해 주지 않았다.
아무리 태현이라도 지금 용용이한테 흑흑이를 소개해 주는 건 차마 할 수 없는 짓!
아무리 착하고 성실한 용용이라도 삐뚤어질지 몰랐다.
‘사디크 같은 놈은 하나로 족하니까…….’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마탑으로 향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태현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판온 1에서도 ‘어? 누가 상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나를 엿 먹였네? 그렇다면 김태현이 한 짓이다!’라고 추측하는 놈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런 추측은 은근히 잘 맞았다.
-아니, 판온에서 누가 널 엿 먹이면 다 내가 한 짓이냐? 물론 이번 건 내가 했지만!
태현은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 일에서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그러면 빠르게 튀자!
언제나 도망은 상대방이 예상치 못하는 방향으로 쳐야 했다.
그리고 그게 지금은 마탑이었다.
밖이 아니라 안으로 치는 도망.
‘도망도 치고 퀘스트도 깨고.’
태현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탑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테란드 남작이 써준 추천장을 내밀었다.
“여기 추천장입니다.”
“귀족의 추천장을 갖고 오다니 꽤 대단하신 분인 것 같군요. 하지만 저희 마탑은 이런 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
추천장을 본 문지기가 화들짝 놀랐다.
그걸 본 태현은 갑자기 불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