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51화
‘저러니까 100명이 죽이려고 달려오지…….’
케인은 새삼스럽게 판온 1의 태현을 떠올렸다.
그때는 팬이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네 눈빛이 뭔가 기분 나쁜데.”
“기분 탓이겠지. 흠흠.”
“어쨌든 다른 놈들을 사디크 신도라고 몰면 일이 쉽게 풀릴 거야.”
“말이야 쉬운데 그걸 어떻게 몰아?”
“흠…….”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다른 사람을 사디크 신도로 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확히 3초 후 태현은 입을 열었다.
“방법 떠올랐다.”
“?!”
케인은 깜짝 놀랐다.
진짜 남 괴롭히는 데에는 슈퍼 컴퓨터를 능가하는 두뇌 능력을 보여주는 태현!
* * *
“사왔는데…….”
케인은 떨떠름한 얼굴로 <붉은색으로 염색된 하급 천>과 <싸구려 유리 구슬> 등을 들고 왔다.
태현이 사오라고 시킨 것이다.
“이건 왜?”
“이걸로 이걸 만들 거다.”
태현은 창을 켜고 <상급 화염 정령의 불타는 가호 로브> 아이템을 가리켰다.
유명한 아이템이었다.
한때 랭커 화염술사 크로포드가 애용했던 로브!
기본 레벨 제한이 200이 넘으니, 보통 방법으로는 입을 수도 없는 강력한 옷이었다.
“이걸 만든다고? 어떻게?”
“가짜로.”
“야. 그냥 겉모습만 맞추는 것도 힘들 텐데 제작 직업들 상대하는 거잖아…… 감별이나 확인 스킬들은 다들 갖고 있을 텐데…….”
“걱정 마라. 그것도 다 생각이 있지.”
태현이 믿는 건 <장비 위조> 스킬이었다.
<장비 위조>!
<장비 위조>
장비의 겉모습과 상태 창을 위조할 수 있습니다. 스킬 레벨이 높아질수록 지속 시간과 가능한 위조 범위가 늘어납니다.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라제단 대장장이 스킬은 태현과 너무 잘 맞았다.
기본적으로 사기 치고 남 속이는 데에 치중되어 있는 라제단 대장장이!
[높은 행운을 갖고 있습니다. <장비 위조>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고급 대장장이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장비 위조>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신의 예지.
거기에 태현은 신의 예지까지 사용해 작업에 들어갔다.
슥삭슥삭-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가짜 로브!
[<상급 화염 정령의 불타는 가호 로브(가짜)>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재봉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이, 이건……! 정말……!”
케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봐도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좋아. 다 됐군. 지팡이도 하나 위조하고…… 자. 가자! 이다비. 믿음직한 파워 워리어 길드원 좀 불러와 줘.”
“네!”
* * *
에랑스 왕궁 근처의 요리사들에게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랭커 화염술사 한 명이 정말 강력한 화염을 빌려주고 있다는 소문!
“그 소문 들었냐?”
“어. 랭커 화염술사면 크로포드인가?”
아무래도 크로포드가 가장 유명하다 보니, 사람들은 크로포드부터 떠올렸다.
“크로포드 아니라던데? 처음 보는 사람이더라.”
“근데 랭커인 건 어떻게 알아?”
“장비, 자식아. 장비. 크로포드나 입을 수 있는 장비를 입으면 당연히 랭커지.”
“와. 왜 랭커인데 자랑 안 하고 다니지? 나 같으면 엄청 자랑하고 다닐 텐데.”
“글쎄. 김태현도 자랑 안 하고 다녔잖아.”
“하긴. 랭커들은 우리랑 생각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판온은 워낙 플레이어 수가 많았고, 랭커라고 해서 꼭 유명한 건 아니었다.
자고 일어나면 갑자기 새로운 랭커가 툭 튀어나와서 유명해지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저 화염술사도 그런 거겠지?’
에랑스 왕국 마탑에서 퀘스트 깨면서 힘을 기르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랭커!
요리사들은 이름 모를 화염술사를 그렇게 추측했다.
사실, 지금 화염술사의 정체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화염술사가 빌려주는 화염이었다.
화염!
판온에서 화염을 다루는 직업이 화염술사만 있는 게 아니었다.
대장장이도, 요리사도, 화염을 다뤘다. 실제로 화염을 다루는 스킬도 있었다.
화염을 다루는 제작 직업에게 화염의 질은 매우 중요했다.
더 좋은, 더 강력한, 더 많은 속성을 담고 있는 화염!
그런 화염이 있다면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의 한계가 늘어났다.
물론 그런 화염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도 화염 빌릴 수 있을까? 국왕 생신 잔치 때 요리 하나 내려고 하는데 화염 빌리면 좋잖아.”
“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랭커한테 어떻게 말 붙이냐? 너 돈 있냐?”
“아니, 돈은 없는데…… 그래도 불 하나 붙여주는 거잖아.”
“불 하나가 아니지. 너 저번에 <중급 향기 화염석> 구하느라 돈 얼마나 썼는데. 그런 걸 누가 공짜로 해줘?”
“생각해보니 그러네. 에이. 결국 고렙 요리사들이나 빌리려나.”
그렇게 평범한 요리사 플레이어들은 먼저 포기했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요리사 플레이어들은 고민에 잠겼다.
“뭐? 정말 강력한 화염을 켜주는 화염술사가 있다고?”
“네. 그렇다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찾아가 볼까요?”
“으음…….”
파즈는 팔짱을 꼈다.
랭커 화염술사가 붙여주는 강력한 화염.
끌리긴 했다.
그게 있다면 정말 강력한 화력으로 멋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아니다. 난 됐다.”
“정말요?”
“그래. 내가 준비한 게 있는데 이제 와서 바꾸고 싶지는 않다! 주현영은 분명 그러지 않을 테니까! 난 내가 왜 저번에 졌는지를 생각해 봤다. 그 이유는 하나! 내가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다!”
‘그래서가 아닌 거 같은데…….’
그때 참가했던 다른 요리사 랭커들은 모두 다 부정행위를 의심하고 있었다.
차오는 아예 ‘그거 분명 김태현 때문이다!!’라고 못을 박고 있었고.
그러나 눈치 없는 새ㄲ…… 아니, 눈치가 부족한 파즈는 혼자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야, 그거 부정행위 아니야?’ 말해줘도 ‘절대 그럴 리 없다! 내가 그런 거에 당할 리 없다!’라고 귀를 막는 파즈!
조수 요리사 플레이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파즈는 열변을 토해냈다.
“내가 준비한 화염석! 내가 준비한 스크롤들! 내가 준비한 요리 재료들! 이 모든 게 나를 증명하고 있다!”
“아, 네.”
현실에서 유명한 요리사인 파즈.
그래서 존경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솔직히 조금 깼다.
“나는 나를 믿는다! 이대로 간다! 이제와서 급하게 도움을 빌려서 이긴다면 그건 내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요리사들이 파즈처럼 자신만만한 건 아니었다.
* * *
“화염술사? 랭커?”
“예.”
“어떻게 알아?”
“장비 확실했습니다. 상인 직업도 불러서 멀리서 확인 스킬도 썼고요.”
“그러면 최소한 가짜는 아니고. 그…… 김태현 따라다니던 그놈은 아니지? 김태현이랑 친하던 마법사 있잖아.”
“그 마법사는 다른 곳에 있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휴. 그래. 그러면 김태현과 상관이 없는 게 확실한가 보군.”
하도 당하고 당하다 보니, 이제는 정수혁까지 확인해 보는 차오였다.
“길드 없는 랭커 화염술사라. 길드에 초대해도 괜찮겠는데? 보아하니 길드나 파티 플레이 안 하고 혼자서 퀘스트 깨면서 레벨만 올린 친구 같은데.”
“네. 그런 거 같더라고요.”
“그런 친구가 길드 구경시켜 주면 껌뻑 죽지.”
우리 길드가 이런 혜택이 있다! 우리 길드에 들어오면 이런 걸 해준다!
솔로 플레이만 고집하던 사람도 이런 걸 보면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차오는 자신 있었다.
“좋아! 가자!”
“직접 가시게요?”
“이런 건 직접 가줘야 상대가 감동하는 거야. 또 화염도 내가 보고 싶고 말이야.”
웅성웅성-
차오가 도착했을 때, 이미 태현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서 구경하고 있었다.
“와, 진짜 대단하다!”
“저거 무슨 화염이지? 화염석도 없이 그냥 마법으로만 쓴 거야?”
“야, 랭커가 괜히 랭커겠냐!”
주변의 호들갑을 듣자 차오는 더 기대가 됐다.
화르르르륵!
태현은 지팡이를 휘둘러 파워 워리어 길드원 요리사의 냄비 밑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냄비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놀라울 정도의 화력!
“감사합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제가 좀 더 도와드리겠습니다.”
태현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화염 속으로 손을 뻗었다. 그걸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위험해요!”
“화염 데미지가……!”
그러나 태현은 멀쩡했다.
<화염 재생> 스킬 때문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화염술사로서 화염 저항 덕분이라고 보였다.
‘역시 랭커구나!’
슥슥-
태현은 불꽃 속에 손을 넣어 냄비를 똑바로 잡아준 다음 멋지게 돌아섰다.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거릴 정도!
멀리 있던 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 요리 잘하십시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 잠깐!”
태현이 쿨하게 떠나려고 하자 차오가 급하게 나섰다.
“?”
“우리 이야기 좀 합시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제가 지금 선약이 있어서…….”
“아. 무슨 선약이요?”
“방금 본 것처럼 요리사들 도와주는 약속입니다. 그…… 유명한 요리사라고 들었는데.”
“설, 설마 파즈?”
“아니요. 아. 주현영이라고 들었습니다.”
“!!”
차오의 얼굴이 다급해졌다. 차오는 태현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오, 오래 안 걸릴 겁니다. 잠깐만 이야기합시다. 잠깐만!”
“허, 참. 바쁜데.”
태현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차오에게 끌려갔다.
차오는 주변을 둘러보며 낮게 말했다.
“주현영 요리사한테 얼마 받기로 했습니까?”
태현은 대답 대신 손가락 하나를 올렸다. 차오는 안심하며 물었다.
“백 골드?”
“천 골드 받기로 했습니다만.”
“불 하나 붙여주는데?!”
차오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현실 돈으로 몇천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불 한 번 붙여주는 데에 쓰다니!
그러자 태현이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오는 아차 싶었다.
“아, 아니. 그쪽 능력 무시하는 게 아니라…….”
“됐습니다. 흥. 제가 꼭 골드를 받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이제까지 열심히 캐릭 키운 김에 다른 사람들 돕고 싶어서 이러는 건데 그런 취급을 하시다니.”
“아니, 아니라니까. 그냥 놀라서 그런 거예요. 저도 골드 줄 수 있습니다. 두 배로 줄 수 있어요!”
차오는 태현을 살살 달랬다. 그러자 태현은 살짝 흔들린 표정을 지었다.
“두 배?”
“그럼요! 그리고 우리 길드에 들어오게 해줄 수도 있고.”
“제가 그쪽 길드를 왜 들어갑니까? 저는 혼자서도 잘했는데.”
“하하.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자자. 이쪽으로 오세요.”
“알겠습니다. 일단 주현영한테 가서 불을 붙여주고…….”
“잠깐! 세 배! 세 배를 줄 테니까 주현영한테는 가지 마시죠!”
“예? 아니. 다른 요리사들 도와주고 싶은데…….”
“우리 길드 요리사들 도와주면 되겠네요! 우리 요리사들 많습니다. 도와주면 엄청 보람 느껴질 겁니다!”
차오는 어떻게든 태현을 독점하려고 들었다.
주현영은 그렇다 쳐도, 방금 저 요리사가 골드가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보아하니 혼자 솔플로 캐릭을 키운 덕분에 다른 플레이어들 부탁을 들어주고 감사를 받는 것에 푹 빠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인데, 길드나 방송 같은 건 안 하십니까?”
“예. 그런 건 좀 어색해서…… 계속 혼자서 퀘스트만 깨고 했습니다.”
‘역시!’
차오는 쾌재를 불렀다. 이대로만 가면 날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랭커 화염술사 하나를 공짜로 영입!
‘역시 세상은 행동하는 사람의 것이지!’
파즈나 주현영처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이렇게 먼저 움직여야 얻는 게 있는 법이다.
차오는 흐뭇하게 웃으며 태현을 데리고 길드원들이 있는 공터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