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450화 (450/1,826)

§ 나는 될놈이다 450화

“아, 아니…… 살인마 백작까지는 좀 너무하지 않…….”

“살인마 백작을 만나다니! 흑흑! 오늘 내가 죽는구나!”

[테란드 남작이 공포에 빠져 착란 상태를 일으킵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이름만 말해줘도 알아서 상대가 공포에 빠지는 상태!

태현은 한숨을 푹푹 쉬며 말했다.

첫 단추부터 꼬이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수습을 해야지!

“안 죽여.”

“안 죽는다니! 죽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받는 거구나!”

“고통도 안 준다.”

“흑흑! 고통을 안 준다니! 내 영혼에 무슨 짓을 하려는 거구나! 흑마법사가 하는 것처럼!”

슬슬 귀찮아진 태현은 설득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설득에서 협박으로!

“……들켰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으헝헝! 살려줘! 난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테란드 남작이 완전히 겁에 질립니다. 협박에 성공합니다.]

“자자. 내 말을 들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널 블랙 드래곤의 브레스로 태워 버릴 테니까.”

“크흙흙흙…….”

테란드 남작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내가 나름 아키서스 교단 교황인데 이런 협박이 먹힌다는 게 말이 되나?’

그래도 아탈리 왕국 가면 국왕한테 사랑받는 백작인데 이런 편견을 갖고 있다니.

나라 하나 다르다고 너무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만큼 강력한 악명 스탯!

“흑흑, 저는 흑흑, 아직 죽을 수 없습니다, 흑흑. 국왕 폐하의 생신에 참석해야 하는 흑흑…….”

“내 말만 들으면 죽을 필요는 없…… 아. 국왕 폐하의 생신에 참가한다고?”

울음 반, 말 반으로 떠드는 테란드 남작의 말에서 용케 필요한 걸 잡아낸 태현이었다.

“예…….”

“잘됐군. 너한테 줄 게 있었는데.”

태현은 <진정한 미식가의 훈장>을 꺼냈다.

테란드 남작은 그걸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원래 테란드 남작이 활약하고 왕에게 받았어야 할 명예로운 물건이지만, 어떤 미친놈이 테란드 남작을 습격하고 대신 변장하고 나가서 받은 물건!

“그, 그건……!”

“내가 범인을 잡아서 회수해 왔지.”

“!”

뻔뻔하게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태현이었다.

“정말 강하고 위험한 상대였다고. 게다가 사디크를 믿는 놈이어서…… 여기 흉터 보이지?”

“안 보입니다만.”

“저런. 안 보이다니. 한 대 맞으면 보일 거야.”

[협박에 성공했습니다.]

“다시 보니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놈한테 당한 흉터라고.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이걸 회수해 왔는지 알아줬으면 좋겠군.”

[테란드 남작이 당신에게 감사해합니다.]

[친밀도가 오릅니다.]

“감,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감사해야지. 사람은 원래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 법이야. 어쨌든 내가 마탑 초대장을 받으려고 하는데 이게 에랑스 쪽 귀족이 줘야 하는 거라서. 써줄 수 있지?”

“?”

“?”

테란드 남작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태현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어…… 아농 백작님과 아는 사이 아니십니까? 아농 백작님께서 김태현 백작을 많이 칭찬하시는 걸 들었습니다만.”

아농 백작.

덩치 큰 용병같이 생긴 백작이었다.

마르덴 후작을 토벌하면서 알게 된, 태현을 매우 좋게 보는 백작!

“아농 백작님께 부탁드려도 되는 거 아닙니까?”

‘아. 맞다. 생각해 보니 그러면 되네.’

귀족 기사단을 빌린 것 때문에 아농 백작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태현이었다.

‘뭐…… 공적치 포인트 아깝기도 하고…….’

부탁하면 공적치 포인트가 들지만, 이렇게 찾아와서 협박하면 공적치 포인트가 0!

태현은 알뜰하게 절약하기로 했다.

“아농 백작한테 부탁하기는 좀 뭐해서. 그 양반은 마법사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잖아.”

“아닌데요. 아농 백작이 마탑에 기부금을 바쳐서…….”

“아, 시끄럽고. 추천장 줄 거야, 안 줄 거야?”

“지금 당장 쓰겠습니다!”

“그래. 그래.”

태현이 검집을 두드리며 말하자 테란드 남작은 황급히 편지를 갈겨쓰기 시작했다.

[테란드 남작이 마탑 추천장을 쓰기 시작합니다.]

[귀족의 추천장입니다. 마탑에 건넬 경우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내용을 정할 수 있습니다.]

테란드 남작이 태현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어, 그런데 추천장에는 뭐라고 쓸까요?”

“대충 알아서 써. 좋게 쓰라고. 그 정도도 혼자서 못 해?”

“아닙니다! 최대한 좋게 쓰겠습니다!”

원래라면 내용을 한 번 정도 확인하겠지만, 태현은 국왕의 생신에 대해 고민하느라 그냥 넘겼다.

이렇게 완벽하게 협박에 성공했는데 이상한 내용을 쓰지는 못할 테니까.

‘흠, 국왕 생신을 어떻게 해야 날로 먹을 수 있을까…… 가서 또 다른 놈들의 재료에 괴식 재료를 확 뿌려버려?’

이제는 요리를 직접 하는 것보다 남 요리를 망치는 게 더 익숙한 태현!

그렇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상대방이 바보가 아닌 이상 저번처럼 쉽게 당하지는 않겠지.’

그때야 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났으니 요리사들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어떤 놈이 그들의 요리에 뭔가를 했다는 것을!

이번에 상대를 방해하려면 새로운 방식으로 방해해야 했다.

언제나 남을 괴롭히는 데에는 창조적인 태현이었다.

“다, 다 했습니다.”

“고마워. 잘 쓰도록 하지.”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태현이 편지를 챙기자 테란드 남작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다 됐습니까?”

“그래. 그래. 테란드 남작. 그보다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어. 저번처럼 이번에도 사디크의 종자 한 놈이 국왕 폐하의 생신을 망치려고 계획하고 있다네.”

“예?!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물론이지. 아키서스 교단만큼 사디크 교단과 치열하게 싸운 교단이 또 어디 있겠어?”

테란드 남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이 모험가들을 갈아버린 것으로 악명이 더럽게 높아졌지만, 그렇다고 아키서스의 이름으로 사디크 교단을 격파한 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그놈을 쫓아서 여기까지 왔지. 테란드 남작이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만약 일이 잘 해결된다면 국왕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거야. 테란드 남작에게 큰 상을 내리겠지.”

“그, 그런……!”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는 태현에게 겁에 질린 테란드 남작은 손쉬운 상대였다.

[테란드 남작이 당신의 말을 완전히 믿습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자자. 나를 도와줄 거지?”

“예, 알겠습니다!”

* * *

밖에서 기다리던 이다비와 케인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 자식 잡힌 거 아니겠지?’

여기서 일이 틀어지면 퀘스트고 뭐고 에랑스 왕국 기사단을 만날 수 있었다.

아직 플레이어 중에서 귀족 기사단을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무도 없었다.

태현도 일단 문제가 생기면 튀어야 했다.

결국 판온은 레벨이 깡패!

그러나 태현은 테란드 남작과 어깨동무를 하고 훈훈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기다렸지?”

“?!?!”

도망쳐서 나오면 몰라도 저렇게 당당하게 나올 줄은 상상치도 못했던 둘!

‘뭔, 뭔 짓을 한 거야?’

태현은 이다비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르신이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시켜서 아직도 사재기하고 있지? 안 팔았나?”

“네.”

“잘됐네. 재료 좀 빌릴게.”

“어? 그래도 되나요?”

“뭐 어르신도 나한테 아쉬운 게 많을 텐데…… 애초에 그거 보관하는 곳이 어딘데? 내 영지잖아.”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보다 슬슬 사재기한 거 파는 게 낫지 않나? 내 영지에서도 농사 성공해서 뭐 이것저것 잘 수확됐다던데.”

“결정권은 어르신이 갖고 있는데 어르신은 아직 버티시려나 봐요. 연락이 따로 없는 걸 보니까요.”

“버티면 가격이야 오르지만 너무 과감한 거 아니야? 좀 위험한 느낌인데. 내 영지에서 성공한 거 보면 다른 영지에서도 농사 못 짓는 거는 아닌 거 같고. 어차피 어르신한테는 껌값이겠지만…….”

“그게 껌값이라고요!?”

이다비가 화들짝 놀랐다. 어느 세상의 껌이 저런 값이야?

“어르신한테는 껌값이지.”

사실 태현한테도 껌값이긴 했지만.

“그런데 어르신은 뭐하시는 분이에요?”

“어…… 음…… 할 거 없는 사람이지.”

“확실히 좀 오래 접속해 있기는 하셨어요. 요즘은 또 안 보이시지만.”

둘은 유 회장 이야기를 하며 사재기한 재료들을 찾았다.

유 회장답게 비싸고 좋은 재료들만 골라 놓았다.

“최고급 밀 한 부대에, 향신료도 모으셨나? 향신료도 챙기고…… 에이, 모르겠다. 일단 다 챙겨놓으면 알아서 하겠지.”

“누가 알아서 해요?”

“주현영이라고 요리사 있어. 요리 실력은 확실하니 대충 다 묶어서 주면 알아서 잘 할 거야.”

“그…… 아니에요.”

이다비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하다가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케인이 물었다.

“근데 그 사람은 왜 돕냐?”

“걔가 요리 대회에서 성공하면 나한테도 요리 스킬 보너스가 들어오거든.”

“와, 그거 좋은데?”

케인은 감탄했다. 이다비도 다시 얼굴이 환해졌다.

“좋아. 대충 다 정했으니 이거 보낸 다음 다른 요리사들 찾아내서 사디크 신도로 몰면 끝이겠다.”

“그래, 그러면 되겠…… 응?”

고개를 끄덕이려던 케인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마지막에 뭐라고 했지?

“그러면 움직이자!”

“야, 야! 잠깐만!”

* * *

“감사합니다……?”

주현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구하신 건가요? 지금 구하기 힘든 걸로 아는데요.”

“이거 사재기하는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서.”

“…….”

“어쨌든 이걸로 우승하라고! 다른 요리사 놈들은 재료 없지 않나?”

“많이 부족해서 다들 힘들어하네요. 아예 직접 밖으로 나가서 사냥하려는 요리사도 있을 정도예요.”

“요리사라면 사냥 정도는 직접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아무도 안 그러는데요…….’

태현의 상식은 일반 요리사 플레이어들의 상식과는 많이 달랐다.

말하던 태현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데 혹시 이번에 국왕 생신 축하 요리 퀘스트에 참석하는 다른 요리사 플레이어들 누구 있는지 알아?”

주현영의 눈빛이 수상쩍은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왜, 왜 그래?”

“그건 왜 물어보시죠?”

“아니, 궁금해할 수도 있지.”

“설마 PK를 한다던가…….”

주현영도 대회는 봤었다. 당연히 태현이 경기 전 PK를 시도하는 것도 봤었고.

태현이라면 분명 하고도 남는다!

“아니거든? 사람을 뭐로 보고.”

“죄송합니다.”

태현이 강하게 부정하자 주현영은 사과했다. 일단 태현은 도와주러 온 사람이었고, 실제로 구하기 힘든 요리 재료들을 잔뜩 갖고 왔다.

원래라면 엄청나게 고마워해야 할 일!

주현영이 고개를 숙이면서 사과하자 태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한 부분에서 눈치가 빠르다니까.’

하지만 주현영은 태현을 당해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너무 착했으니까!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던 케인은 고개를 저었다. 태현의 시꺼먼 속셈을 모르는 주현영이 안타까웠다.

결국 태현은 주현영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다른 요리사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차오, 파즈에 다른 요리사 랭커들도 있고…… 귀찮긴 하겠군.”

“걔네가 누군데?”

“헉! 둘이 있어요?”

케인은 눈치 못 챘지만, 이다비는 바로 알아차렸다.

“차오는 레스토랑 길드의 길마에요.”

“아, 그 태현한테 당한 놈…….”

“파즈도 유명한 요리사 랭커예요. 실제로도 요리사라서 인기도 좋고 실력도 대단하죠.”

“파즈는 잘 모르겠는데 혹시 이놈도 태현한테 당했나?”

케인은 대충 찍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왠지 김태현한테 당한 적은 있을 거 같다!

“세상 모든 놈이 다 나한테 당한 적이 있는 건 아니다. 케인.”

“그래? 파즈는 아닌가…….”

“물론 파즈는 나한테 당한 적 있다.”

“…….”

둘은 빤히 태현을 쳐다봤지만 태현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