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49화
-영지로. 마탑 가려고.
-에랑스 왕국 마탑이요?
-어.
-알겠습니다! 지금 세형 선배하고 같이 가겠습니다.
-응? 둘이 같이 있었냐?
-선배님이 세형 선배한테 따라다니면서 배우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 *
체육관에서 개처럼 두들겨 맞는 격투기 선수들을 보고 나서, 김세형은 순한 양이 되었다.
‘그냥 나간다고 해도 안 보내주겠지?’
그런 김세형에게 태현은 ‘정수혁을 따라다니면 많이 배울 게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김세형은 일단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 자리에서 ‘네’나 ‘알겠습니다’ 말고 다른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그리고 태현이 저렇게 말하니, 정수혁을 따라다니면 뭔가 배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실제로 정수혁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않았던가.
물론 본선은 못 갔지만…….
그래서 김세형을 쫄래쫄래 정수혁에게 찾아갔다.
정수혁이 하는 플레이를 보기 위해서!
-제, 제 플레이는 봐봤자 배우실 게 없을 것 같습니다만.
-아니야! 아니야! 그래도 네가 대회에서 잘나가고 그랬잖아. 그때 마법 너한테 박아서 튕겨 보내는 거 진짜 개쩔었지.
-그, 그거 실…….
-응?
-……력이었습니다.
-역시!
초롱초롱한 기대의 눈빛을 보니, 정수혁은 차마 진실을 말해줄 수 없었다.
김세형은 기대에 가득 차서 정수혁을 쳐다보았다.
자! 어서 네 실력을 보여줘!
-어, 음,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파지지직!
정수혁이 저 멀리 있는 몬스터들을 향해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용하는 마법은 간단한 매직 애로우!
그걸 보고 김세형은 의아해했다.
왜 저런 약한 마법을?
[네 갈래의 독소 저주가 발동됩니다.]
[화염 화살비가 발동됩니다.]
[불투명한 마나 방패가 발동됩니다.]
“??”
쓴 건 매직 애로우였는데 나오는 스킬들은 다른 스킬들!
김세형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정수혁은 계속해서 마법을 사용했다.
가끔은 정수혁 본인한테 마법이 날아와 정수혁이 비명을 질렀다.
사냥이 계속되자, 김세형은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자식 그냥 대충 마법 쏟아붓는 거 아니야?’
아무리 봐도 컨트롤이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냥 방법!
닥치는 대로, 쉬지 않고 마법을 많이 사용해서 퍼붓는 거 말고는 어떤 센스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그냥 뽀록 같은데…….’
물론 그게 맞았다.
* * *
“그런데 마탑에는 어떻게 접근할 거냐? 아는 귀족이 있어?”
“지금 떠오르는 귀족이 하나 있는데.”
“누구?”
“테란드 남작이라고…….”
“오. 누군데? 그 귀족 NPC 퀘스트라도 깬 거냐? 공적치 포인트 많아?”
“아니. 납치한 적이 있지.”
“?!”
테란드 남작.
태현이 에랑스 왕국에서 요리사들 퀘스트에 참견할 때 납치해서 묶어놓고 변장했던 귀족이었다.
“그 NPC한테 부탁한다고?”
“그러려고.”
‘드디어 미친 것인가?’
케인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태현을 쳐다봤다.
“미친 거 아니야, 인마.”
“?!”
“네 생각이 뻔히 보인다. 이게 있거든.”
에랑스 국왕에게 인정받고서 받은 아이템은 둘.
<에랑스 왕가의 구리 솥>과 <진정한 미식가의 훈장>이었다.
태현은 이 두 번째를 들고 협상에 나설 생각이었다.
고급 화술 스킬+악명+<진정한 미식가의 훈장> 정도면…….
꼭 귀족한테 부탁할 필요가 있는 건 아니었다.
협박을 해도 되는 거였다.
“그러니까 협박하러 가자!”
“…….”
케인과 이다비는 ‘이래도 되나?’ 싶은 얼굴로 뒤를 따랐다.
그들이 영지를 벗어나려는 순간, 누군가 앞을 막았다.
“태현 님! 찾고 있었습니다!”
“오냐. 덤벼라.”
“네?”
“응? 아. 미안. PK 하려는 줄 알았네. 하하. 하도 요즘 덤비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동반사적으로 무기부터 뽑고 보는 태현!
그러나 상대는 덤비려고 한 게 아니었다.
“저번에 드리려고 했는데 먼저 떠나셔서……!”
“그보다 네가 누군데?”
“케빈입니다! 아. 제가 장비가 많이 바뀌어서 못 알아보셨군요!”
“어…….”
그냥 얼굴을 기억 못 하는 거였지만, 태현이 말하기도 전에 케빈은 알아서 납득해 버렸다.
연금술사 케빈.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 레어 아이템 제작을 위해 찾아와 갖고 있던 재산을 꼬라박은 플레이어였다.
태현은 그런 케빈을 한심하게 보고 행운 포션을 주고 갔었고.
“아아! 그! 한심한…… 읍읍.”
이다비가 태현의 입을 막았다. 다행히 케빈은 못 들은 것 같았다.
“여기, 받아주십시오!”
“이게 뭐지?”
“경험치 세 배 증가의 물약입니다. 제가 만들었습니다!”
“?!”
태현은 깜짝 놀랐다.
방금 뭐라고?
“경험치 세 배 증가의 물약? 이걸 어떻게 갖고 있는 거지?”
“제가 만들었는데요?”
“네가?”
“제가요! 태현 님이 주신 포션 마시고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거 말고 다른 것도 성공했어요! 그건 다 팔았지만!”
케빈의 겉모습이 달라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본전의 몇 배를 남겼으니 장비부터 다시 맞춘 것이다.
인생은 한 방!
태현은 케빈이 내민 유리병을 쳐다보았다.
안에서 찰랑거리는 경험치 증가의 물약.
그걸 보자 태현은 깨달았다.
역시 착하게 살면 복이 오는구나.
“케빈. 처음 봤을 때부터 네가 뭔가 해낼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
사실 전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감사합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태현은 흐뭇한 얼굴로 물약을 챙겼다.
이다비는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경험치 증가 물약을 만들었다는 글을 최근에 본 기억이 없는데, 만들고 아무 말도 안 했나요?”
“예? 어디에 올려야 하나요? 경매장에 올릴 것도 아닌데…….”
“그건 아니더라도 이런 건 자랑을 하는 게 좋아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이름을 아니까. 이름을 알면 경매장에 같은 포션이 올라와도 ‘아, 그 사람이 만든 포션이군’ 하고 사거든요.”
“그런……! 올리겠습니다!”
이다비의 조언을 들은 케빈은 글을 올렸다.
<경험치 세 배 물약 만들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진짜 만든 놈 있냐? 두 배도 아니고 세 배를 만들었다고?
-제작법이야 다 퍼져 있어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데 확률이 극악으로 알고 있는데. 저걸 뚫네.
-직업 스킬이 있나 본데? 연금술사 관련 희귀나 영웅 직업 있나 보다.
이다비의 말대로 사람들은 케빈의 이름을 빠르게 기억해 줬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제안이 왔다.
-저희 XX 길드인데 경험치 증가의 물약 만들어 주신다면 저희가 재료부터 시작해서 다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저희 길드 들어오시면 혜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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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은 감격에 손을 떨었다.
판온 시작하고서 처음 경험하는 관심!
케빈은 결심했다.
경험치 증가의 물약을 계속 만들어서 여기의 장인이 되리라!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경험치 세 배 물약을 만드느라 모든 힘을 쏟아낸 케빈은 그 이후부터는 거짓말처럼 연속으로 제작에 실패했다.
* * *
“악명이 높아서 걱정이야.”
“뭐?! 네가?!”
케인의 반응은 무시했다.
이제까지 플레이어들한테 원한은 많이 샀지만, 대부분의 NPC들은 태현에게 친절했다.
고급 화술 스킬과 아키서스 직업 스킬인 <화신의 매력> 덕분이었다.
거기에 백작 작위까지 갖고 있었으니…….
그런데 이제는 악명이 명성보다 높아졌다.
과연 NPC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뭐, 어차피 가면으로 위장하고 움직일 테니까 상관은 없지만…….’
<마르덴 후작의 살아 움직이는 가면>.
정말 잘 쓰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쓸 때마다 새삼스럽게 마르덴 후작에게 고마워지는 기분!
“맞다. 너도 이제 그 코랑 귀 아이템 떼고 다녀라.”
“보너스 좋은데…….”
“저번에도 너 때문에 들켰잖아 이 자식아. 다음에 들키면 두고 간다.”
“떼면 되잖아……!”
케인은 눈물을 머금고 장비를 파괴했다.
이제까지 부끄러움을 참고 다녔는데 뭔가 억울했다.
이걸 끼고 있으면 걸리기 쉬우니 어쩔 수 없지만…….
“그보다 에랑스 왕국은 또 이벤트 하나 보네요.”
“대도시는 좋다니까.”
“태현 님은 영지에서 이벤트 할 생각 없으세요?”
“이벤트?”
태현은 이다비의 말에 이벤트를 상상해보았다.
과연 영지에서 어떤 이벤트를 할 수 있을까?
-당신의 운을 시험해 보십시오! 골드 놓고 골드 먹기! 동전을 뒤집어서 맞추면 2배!
-절망과 슬픔의 룰렛에 어서 오십시오!
‘이건 사기야!’, ‘왜 동전이 앞면만 나오는 거야!’ 하는 반응이 우르르 나올 것 같았다.
저런 이벤트를 벌이면 아키서스 관련 인물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지금 당장 태현만 해도 누군가와 동전 던지기 배틀을 하면 연승을 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어…… 이벤트라고 할 게…… 있나?”
“꼭 여기처럼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플레이어 길드가 관리하는 영지도 이벤트는 해요. 거기는 무슨 요일마다 세금을 깎거나, 포션을 지원해 주거나, 축복을 무료로 걸어주거나 하지만.”
“나는 더 깎을 세금도 없고, 포션 지원하기에는 사냥 나가는 플레이어도 그렇게 많지 않은 데다가, 그나마 축복 정도? 근데 내 사제들은 효과 별로 안 강한데.”
“그럴 필요 있나요? 더 좋은 거 있잖아요.”
“이벤트 연 다음 우승한 사람들에게만 <아키서스의 축복>을 같이 써주면 되죠.”
“!”
아키서스의 축복.
일정 시간 동안 태현과 행운 스탯을 공유하는 강력한 버프 스킬!
제작 직업에게는 특히 효과가 더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방법이……!’
“역시 파워 워리어 길마. 남들을 속여먹는 솜씨가 나보다 더 뛰어난 거 같아.”
“아직 태현 님에 비하면 멀었죠!”
서로 칭찬하는 둘.
케인은 뜨악한 시선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태현은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 주현영과 만났을 때, 주현영은 곧 있으면 에랑스 국왕의 생신이라고 했다.
그 생신 이벤트를 위해 요리사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다고.
‘마탑 가기 전에 그거 처리하고 가도 되겠는데?’
주현영은 분명 ‘스스로의 실력으로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는 것도 스스로의 능력이 아닐까?
‘완벽한 논리야. 흠잡을 곳이 없군!’
주현영이 안다면 프라이팬을 휘두를 소리였다.
‘일단 테란드 남작부터 찾아봐야지.’
태현은 기억을 되살려 예전에 찾아갔던 저택으로 찾아갔다.
정문 앞에 멈춰 서자 이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귀족은 아무나 안 들여보내지 않아요?”
“응. 그래서 몰래 들어갈 거야.”
“이런 담벼락은 못 넘어가게 마법 걸려 있잖아요.”
“하하. 그것도 다 대비를 했지.”
태현은 웃으면서 장비를 꺼냈다.
고대의 망치!
이런 작업에는 완벽한 장비였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바로 <신의 예지>를 켰다.
“너희 둘은 저기 입구에서 그냥 서있기만 해. 누구 오면 말하고.”
“…….”
케인은 입맛을 다셨다.
예전에 에랑스 왕국에서 PK 몇 번 하고서 현상금이 걸렸을 때는, ‘현상금은 아무나 걸리나’ 하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지금 태현을 보니 부끄러워졌다.
정말 숨 쉬듯이 현상금을 걸릴 일을 하는 태현!
마치 현상금이 걸리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았다.
쿠르릉!
담벼락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태현은 은신 스킬을 사용한 후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 무슨 소리가 난 것 같…….”
“반갑습니다, 남작님.”
태현은 은신을 풀고 가면도 풀었다. 그러자 테란드 남작이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으악! 살인마 백작 김태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