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48화
‘이대로라면 정말 위험할지도 모른다!’
각자 대형 길드를 세우고, 판온 1의 최강자가 되겠다고 날뛰었던 때.
많은 돈을 투자하고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쏟았는데도 결국 승자는 이세연이나 김태현 같은 독불장군들이었다.
완전 죽 쒀서 개 준 꼴!
그런 두려움과 태현에 대한 원한까지 합쳐지자 대형 길드 길마 중 몇 명이 진지하게 나섰다.
-합치자!
아예 합쳐서 움직인다면 아무리 태현이라도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움직임을 들은 쑤닝은 무릎을 쳤다.
‘착하게 살다 보니 이런 행운이 있구나!’
김태현이 대회에서 우승하고 랭커들을 싹 쓸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쑤닝은 자리에 드러누워서 끙끙 앓았다.
정말 배가 아파서 못 살겠던 것!
세상에는 정의가 없나 진지하게 고민이 될 정도였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세상에는 아직 정의가 살아 있다!’
쑤닝은 그런 길마들을 부추기고 꼬드겨서 손을 잡았다.
대형 길드 연합의 모든 길마들이 통합을 원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 중에서는 김태현과 원한이 없는 사람도 있었고, 김태현을 ‘에이, 그래도 혼잔데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지’라며 넘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끝까지 이기적으로 ‘통합? 그런 거 왜 해? 내가 가져가는 몫 주는 거 아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다 일일이 설득할 필요는 없었다.
절반 정도만 설득해서 흐름이 만들어지면, 그들도 도망치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지금, 흐름이 만들어졌다.
-합치자! 합치자!
-길드 연합 만세! 미래를 위해서!
-김태현을 조지자!
-……아니, 지금 길드 미래 이야기하는데 꼭 그런 놈 이야기를 넣어야 해? 기분 잡치게?
-미, 미안.
* * *
“길드들이 합쳤다고?”
“예. 형ㄴ…… 아니, 길마님.”
“아니, 그 이기적이고 지들밖에 모르는 놈들이? 왜지?”
김태산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현재 그들은 오스턴 왕국의 영지를 일구며 열심히 잘살고 있었다.
주변에 대형 길드들의 영지들도 많았지만 김태산의 길드는 승승장구였다.
강력한 단결력!
심심하면 하는 현질!
남는 게 시간밖에 없는 아저씨들의 노력!
이런 요소들이 합쳐지니 숫자 차이 정도는 그대로 밀어버릴 수 있는 수준!
그렇게 잘 먹고 잘살고 있었는데 길드들이 아예 통합을 해버리다니.
“음…… 건축가들 더 불러서 공성전 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지금도 영지는 충분하니까 더 늘릴 필요는 없겠지.”
“그러고 보니 태현이는 프로게임단 입단 안 합니까?”
“아, 그놈이 진짜…….”
김태산은 푹푹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가서 사정을 말하면 미친놈 취급을 받을 사정!
“됐다. 말을 말자.”
“아니, 왜 그러세요?”
“맞아요. 태현이 정도면 자기 일 알아서 잘 하는 편이지!”
다른 아저씨들 입장에서 김태산은 엄살을 떠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태현이 같은 아들이 어디 있겠는가.
자기 할 일 알아서 척척 잘하고 이제 방송에서 인기까지 얻고 있는데!
“너희가 상대를 해봐야 속이 터지는 걸 알지!”
“아, 거 엄살 좀 그만 떠세요.”
“그보다 길마님, 우리 영지에 음식 재료 없다고 요리사들이랑 농부들이 부탁하는데, 어떡하죠?”
“그놈의 토끼들 진짜…….”
김태산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륙에는 지금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겨울과 미쳐 날뛰는 토끼!
전자는 어떻게 버티면서 농사를 짓는다고 쳐도 후자는 정말 지긋지긋했다.
잡고 잡아도 또 나오는 토끼들!
“뭐 어떻게 하겠어. 잡자! 리X지 때처럼!”
“그럽시다!”
단순무식!
토끼가 많이 나온다면 계속 잡으면 된다!
* * *
쉬이이이익-
매서운 칼바람이 탐험가 플레이어, 호마의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지금 호마는 프로즈란드에 와있었다.
“여러분! 제가! 프로즈란드에 와있습니다! 대륙의 추위를 풀기 위해서!”
호마가 외치자 방송 채팅창에서는 뜨거운 반응이 돌아왔다.
-호마! 호마! 호마!
-제카스보다 네가 낫다!
“제가 조사를 해본 결과! 중앙 대륙이 갑자기 겨울이 된 데에는 이 프로즈란드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말을 마친 호마는 추위 저항 포션을 다시 마셨다.
시간이 될 때마다 안 마셔 놓으면 순식간에 상태 이상에 걸렸던 것이다.
‘헤헤, 이것만 성공하면 한동안 방송 1위 자리는 내가 먹는다!’
제카스와 같이 탐험가 랭커를 다투는 호마였지만, 제카스에 비해 한 단계 밑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꾸 하는 실수 때문!
탐험가 플레이어는 단서를 조합해서 온갖 함정과 미궁을 돌파해야 하는데, 실수가 잦으면 안 됐다.
물론 호마의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호마의 실수를 기대했다.
-호마 또 실수하는 거 아니냐 ㅋㅋㅋㅋ.
-실수하더라도 저주는 풀고 실수하자!
“응원은 못 할망정…… 간다!”
호마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프로즈란드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
* * *
일차적으로 장비 분해와 정리를 끝낸 태현은 다음 아이템을 꺼냈다.
<프리카 투기장 우승자의 황금 상자>!
프리카 투기장 우승자의 황금 상자: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한 우승자에게만 주어지는 상자입니다.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이건 절대 꽝이 나올 수가 없지!’
랭커들의 장비는 브레스에 박살이 났어도, 이 상자만큼은 진짜였다.
태현은 상자를 아끼는 마음으로 쓰다듬었다.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세요?”
“헉, 언제 온 거야?”
“방금요…… 지금 그 상자 쓰다듬은 거예요?”
“아, 아니거든?”
이다비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분명 쓰다듬은 것 같았는데…….’
“그거 여실 거예요? 구경해도 되요?”
“잠, 잠깐. 아직 마음의 준비가…….”
“무슨 상자 여는데 마음의 준비를 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이다비도 영지에 온 플레이어들이 도박에 미쳐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제작 하나 할 때도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플레이어들!
“좋, 좋아. 연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거든? 기껏 PK한 장비가 브레스에 다 녹았고 영지의 다른 건설이 다 멈춰지고 사람들은 웬 개떡 같은 동상을 짓고 있기는 하지만…….”
“…….”
“하지만 괜찮아!”
“그, 그래요.”
딸칵-
태현은 말과 함께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나온 것은…….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황금 열쇠:
무엇을 여는 열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지 않습니까?
“…….”
“…….”
아이템을 감정으로 알아본 이다비는 입을 다물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태현의 손!
“내가…… 이딴 거 얻으려고 대회에서 그 고생을 한 게 아닌데…….”
“대, 대신 인기도 많아지고 상금도 받았잖아요!”
꽉-
태현은 열쇠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때 케인이 도착했다.
“이야! 좋은 아침이야! 다들 모여 있네!”
케인의 얼굴은 싱글벙글이었다.
게임단에서 연락이 안 와서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기분은 최고였다.
인생의 봄날을 맛보고 있었으니까!
“다들 뭐 하는…… 어?”
이다비는 슬슬 뒤로 피했다. 곧 벌어질 일이 눈에 들어왔다.
* * *
케인의 희생 덕분으로 태현은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너무 개떡 같아서 당황했지만, 이 정도 상자에서 나올 열쇠면 평범한 열쇠는 아닐 거다. 나중에 분명 쓸 일이 오겠지.’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 했다!
아니면 프리카 투기장에 폭탄을 설치하러 갈 수밖에 없으니까!
“크으윽…… 내가 뭘 잘못했다고…….”
케인은 억울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저 행복한 얼굴로 왔을 뿐인데!
“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지가 난리쳐놓고……!’
할 거 다 해놓고 화제를 넘겨버리는 태현의 뻔뻔한 모습에 케인은 울컥했다.
“이제 투기장도 끝났으니까 난 내 직업 퀘스트 깨러 갈 생각이거든.”
태현의 직업 퀘스트.
즉 아키서스의 권능을 찾는 퀘스트였다.
태현은 갈락파드에게 물어봤다.
-권능을 찾아 프로즈란드를 뒤지던데, 혹시 다른 권능이 있는 곳은 아나?
-물론입니다. 태현 님.
-오, 다 말해봐.
-권능이 있을 가능성이 희박한 곳은 꽤 많이 알고 있습니다. 가능성이 높은 곳은 몇 군데가 있고, 확실하게 있는 곳은 한 군데 있습니다. 제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곳부터 하는 게 좋지. 어디지?
-에랑스 왕국의 마탑입니다.
-!
태현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갈락파드를 쳐다보았다.
에랑스 왕국의 마탑이라니.
지금 플레이어 수준의 레벨보다 몇 배는 높은 레벨의 마법사 NPC들이 우글거리는 마굴 아닌가.
거기에 권능이 있다고?
‘아니, 뭐 꼭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 평화롭게 가서 해결을 보면…….’
백작 작위+명성+화술 스킬로 해결을 보려던 태현은 멈칫했다.
‘아차! 지금은 악명이 높지!’
흑흑이를 소환한 덕분에 치솟은 악명!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야 태현의 영지니 악명이 높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테지만, 다른 곳은 얼굴 드러내는 순간 ‘힉! 살인마다!’ 같은 반응 나오기 딱 좋았다.
그만큼 태현의 악명이 높았던 것이다.
-제가 마탑에 있었을 때 권능이 있는 곳을 확인했었지만, 빼올 수는 없었습니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워낙 강해서…… 송구합니다.
갈락파드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펠마스가 옆에서 비웃었다.
-죄송해야지! 어! 그것도 못 갖고 오고!
-……넌 조용히 하고 있고. 음, 에드안을 불러서 같이 공략을 해봐야 하나…….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에드안과 같이 마탑을 공략해서 권능을 가지고 나올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적 많은데 마탑 마법사들까지 적으로 만들면 좀 그렇지.’
-태현 님.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말이든 해도 좋아. 저기 펠마스 떠드는 거 안 보여?
-마탑에 들어가서 몰래 가지고 오는 것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갈락파드의 말에 펠마스가 시비를 걸었다.
-갈락파드 이 자식! 태현 님을 못 믿는다는 거냐! 태현 님은 사디크 신전을 불태우시고 악마도 속이신 분이시다! 마탑 놈들에게 도둑질 정도야…….
-야. 저거 좀 닥치게 해봐.
-읍읍! 읍읍읍!
갈락파드의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와 펠마스의 입을 묶었다.
-왜 하지 말라는 거지?
-정말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간단명료한 갈락파드의 설명.
그래서 오히려 더 와 닿았다.
‘이거 진짜 위험한가 본데?’
갈락파드도 상당히 제정신이 아닌 사람인데, 그런 갈락파드가 ‘마탑에 가서 훔치거나 그러지는 마십시오’라고 말하니 태현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면 정면으로 들어가서 잘 구슬려야 하는데…….
‘내가 마탑에 해줄 게 뭐가 있냐? 공적치 포인트 쌓으려면 한세월일 거고. 교환할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에랑스 왕국의 마탑에 들어가려면?
마법사 직업으로 마탑에 가입해서 차근차근 퀘스트를 깨고 공적치 포인트를 얻거나.
아니면 귀족이나 왕족의 힘을 빌려 소개장을 받거나…….
‘이거다!’
태현은 만족했다.
다른 방법보다는 그나마 가능성 높은 방법 중 하나였다.
‘일단 수혁이부터 불러야겠다.’
정수혁이 아키서스 교단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원래 <에랑스 마탑 마도사> 직업을 갖고 있었다.
에랑스 왕국에서 시작하는 마법사 꿈나무들은 대부분 마탑 위주 플레이를 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직업은 바뀌었지만 마탑에서 NPC와 쌓은 관계가 어디 가지는 않을 테니, 정수혁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수혁아! 와라!
-예! 근데 어디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