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47화
가브리엘과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팔짱을 끼었다.
그들 주변에는 망가진 기계공학 아이템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과 같이 기계공학, 대장장이 스킬에 몰두한 가브리엘 패거리의 실력은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어지간한 대장장이 길드는 상대하기도 힘들 수준!
게다가 아이템 제작이 아닌 기계공학, 그것도 폭탄 위주로 파고든 플레이어들이었기에 위력은 더 살벌했다.
영지를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도 <악마의 대장간> 근처는 얼씬거리지 않았다.
-왜 저기는 사람이 없어?
-쉿. 저기 쳐다보지 마! 괜히 엮이면 골치 아파진다고.
다들 꺼려 하는(태현도 포함해서) 대장장이들!
그렇지만 그들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런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줘야지.”
“동상에 쓸 만한 재료들을 다 갖고 가죠?”
“좋은 생각이야. 저 망가진 아이템들 다 녹여서 가지고 가자.”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재료를 가지고 골짜기로 합류했다.
우르르 몰려온 대장장이들의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꺼림칙한 표정이었다.
-쟤네 스킬 쓰다가 터지면 어떡하지?
-만들던 동상까지 망가지는 거 아냐?
-야. 누가 가서 좀 말하면 안 되냐?
-아니, 그건 좀…… 쟤네 무섭다고……
* * *
가브리엘 패거리는 겁 없는 미친놈들로 악명이 높았다.
예전에 한 번, 태현의 영지 밖에서 다른 플레이어들과 가브리엘 패거리 대장장이가 시비 붙은 적이 있었다.
-야, 여기서 우리가 사냥하고 있잖아. 꺼져. 방해된다.
전투 직업 플레이어들에게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은 만만한 상대였다.
딱히 대형 길드 소속도 아닌 것 같아, 플레이어들은 대장장이를 쫓아내려고 했다.
-제가 먼저 왔는데요?
-아. 어쩌라고. 꺼져.
-방해도 안 되잖아요. 그냥 여기서 광석만 캐는데…….
-아. 눈에 들어오니까 신경 쓰여. 꺼져.
-이거 드릴 테니까 봐주실 수 없으세요?
-오. 뭘 주려고?
-폭탄이요.
-?
콰콰콰콰콰콰쾅!
바로 붙어서 갖고 있는 폭탄을 전부 터뜨리고 자폭!
가브리엘과 함께 중앙 대륙 전체에 테러를 저질렀던 대장장이들은 겁이 없었다.
이 정도 상대들은 이제 하찮아 보일 뿐!
그리고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아오, 웬 미친놈들이…… 진짜 기계공학 하는 놈들은 또라이라는 게 사실이라니까. 멀쩡한 스킬들 내버려 두고 왜 기계공학이야?
-김태현이 애들 좀 많이 버려놨지. 으, 짜증 나네.
자폭으로 로그아웃 당한 플레이어들은 이를 갈며 접속했다.
신경도 안 썼던 상대한테 당해 로그아웃 당한 건 굴욕 그 자체였다.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린다!’
-저기요. 이거 받아주세요.
영지 밖으로 가려는 사이, 플레이어 한 명이 뭔가를 건넸다.
영지 주변에서 제작 직업들이 이렇게 공짜로 아이템을 주는 건 흔한 일이었다.
팔 수준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쓰면 스킬이나 경험치 보상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 뭔데?
-폭탄이요.
-…….
콰콰콰콰콰콰쾅!
그 후 가브리엘 패거리들은 시비 붙은 플레이어만 쫓아다니며 자폭을 시도했다.
한 달이 지나자 그 플레이어는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 * *
이런 일들이 있었으니 사람들이 꺼려 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가브리엘과 그 친구들은 의외로 정상적이고 친절했다.
“여기 있는 잡철 걸러서 분류했습니다. 이거 가지고 가셔서 바르시면 됩니다.”
“삽이 좀 낡으셨네요. 제가 수리해 드리죠. 수리비요? 하하. 이런 걸 뭘 수리비까지 받아요. 제가 살짝 개조해 드릴…… 아니, 개조는 됐다고요? 알겠습니다.”
아무 불평 없이, 궂은일들을 척척 해내는 대장장이들!
기계공학에 미쳐서 그렇지, 대장장이 기술 스킬도 나름 높은 대장장이들이었다.
이런 잡다한 일들을 실패할 리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폭탄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재료를 만드는 단순한 일일 뿐!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었다.
“뭐야…… 생각보다 친절한 사람들이잖아?”
“난 시비 붙으면 폭탄 던질 줄 알았는데.”
“내 장비도 수리해 줬어.”
“개조해 준다는데 그거 받아볼 거 그랬나?”
“피해 다녔는데 앞으로는 대장간 들려서 이용 좀 해볼까…….”
영지에 있는 큰 대장간을 안 쓰는 건 플레이어들에게도 손해였다.
이제까지 워낙 악명이 높아서 그랬지!
다 같이 동상을 만드는 퀘스트를 통해, 영지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뭉치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들이 대장장이들을 칭찬하는 동안, 가브리엘은 뼈대가 잡힌 동상을 보며 말했다.
“뭔가 부족해…….”
“……?”
“건축가들이나 조각사들, 화가들까지 나서서 자기 장기를 보여주는데 우리는 하는 게 너무 없는 거 같군.”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요?”
“우리의 장기가 뭐냐?”
“기계공학이요?”
“저 동상에 기계공학 스킬을 응용하자!”
“그런……! 생각지도 못한 발상입니다! 역시 가브리엘 님!”
“가브리엘! 가브리엘!”
태현이 옆에 있었다면 ‘그만해, 미친놈들아!’ 하며 뒤통수를 후려갈겼을 소리!
그러나 태현은 주변에 없었다.
그냥 동상을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 * *
“에휴, 에휴…….”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어도 절로 나오는 한숨.
이번에 오면 투기장 건물이 완성되는 걸 보나 싶었더니, 거기서 일하고 있던 플레이어들까지 다 데리고 동상을 짓고 있었다.
이미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걸 ‘야! 동상 짓지 마!’라고 해봤자 먹힐 리 없었다.
역효과만 나면 났지.
재료나 그런 걸 대부분 다른 플레이어들이 알아서 갖고 오니 망정이지…….
‘다른 건물들은…… 최대한 짓고 있지만 역시 한계가 있긴 하군.’
다른 필수 건물들을 제외하고 아키서스 건물들만 올리는데도 여전히 속도가 아쉬웠다.
아키서스 성기사 훈련소를 상급까지는 찍어야 쓸 만한 아키서스 상급 성기사들이 나오는데, 골드도 골드고 제작 시간도 제작 시간이었다.
‘다른 교단 놈들은 처음부터 갖고 시작하는데!’
생각해 보니 새삼 억울!
대형 길드가 없는 태현은 나중을 대비해 최대한 전력을 미리 뽑아놔야 했다.
이번에 100명이 모였을 때는 태현도 등골이 서늘했다.
다른 호구…… 아니, 친구들이 적절히 와서 도와주고, 운 좋게 따돌리고, 이제까지 쌓은 명성 스탯을 희생해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운 좋게 풀려나리란 법은 없었다.
‘동상이랑 투기장 건물은 일단 잊고…… 애초에 투기장 건물은 크게 도움 되는 건물은 아니니까…….’
태현은 아이템을 확인하기로 했다.
일단 PK로 뺏은 아이템부터!
랭커들에게서 뺏은 아이템들이니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가 가장 좋다니까.’
PK 후 전리품 확인하는 순간!
브레스에 녹아내린 바위 부족의 가죽 갑옷:
내구력 1/1, 방어력 20
스킬 ‘바위 부족의 함성’ 사용할 수 없음, ‘바위 부족의 격노’ 사용할 수 없음.
원래는 바위 부족의 비법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낸 명품이었지만, 난폭한 블랙 드래곤의 브레스로 망가진 갑옷이다. 이 갑옷을 만든 사람이 본다면 눈물을 흘릴 것이다.
“…….”
태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 아니. 다 이럴 법은 없으니까. 이 아이템만 그런 걸 거야.’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이미 벌벌 떨리는 손!
브레스에 녹아내린 아다만티움 합금 대검:
내구력 1/1, 공격력 1
스킬 ‘삼 연속 휘두르기’ 사용할 수 없음, ‘붙잡고 치기’ 사용할 수 없음, ‘아다만티움의 힘’ 사용할 수 없음, ‘마법 방어’ 사용할 수 없음.
아다만티움을 섞어 만든 금속으로 제련된 검이다. 아무나 건드릴 수 없는 금속이기에 최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가진 대장장이가 직접 제련했다.
아쉽게도 브레스에 녹아내렸다. 만약 이런 검을 파괴했다는 게 알려진다면 모든 대장장이들이 분노할 것이다.
“……사디크, 네 이놈!”
태현은 분노해서 외쳤다.
물론 브레스를 쏘라고 시킨 건 태현이었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쯧…… 분리해서 재료나 챙겨야 하나…….”
브레스에 당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의 장비는 멀쩡했지만, 초반에 화살받이로 먼저 덤벼든 플레이어들의 수준이야 뻔했다.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일괄로 경매장에 올려버렸다.
남은 건 망가진 장비들.
태현의 행운 스탯 때문에, 랭커들은 좋은 장비들만 골라서 뜯겼다.
태현은 배부른 소리를 하며 장비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아다만티움을 다루는 데 페널티를 받습니다.]
[대검에서 추출되는 아다만티움의 양이 줄어듭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로도 페널티를 받는다면 어쩔 수 없었다.
태현은 악마의 대장간의 용광로를 사용해 아다만티움을 분리해내기 시작했다.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이 그걸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미친놈이 그런 명품을 망가뜨린 거지?”
“……사디크가 그랬지!”
“허. 사디크…… 정말 사악한 신이군. 저런 명품을 망가뜨리다니, 내 마음이 아플 정도야.”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이 사디크에 대해 분노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부분에서 오르는 스킬들.
태현은 얼굴 표정을 관리하며 장비를 하나하나 분리해서 떼어 냈다.
“그런데 여기 대장장이들 어디 갔지? 설마 다른 곳에 갔나?”
“동상 건설을 돕는다던데.”
“……걔네들이?”
폭탄 테러리스트들이 동상을 건설하겠다고 나서다니.
벌써부터 불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사루온은 다른 생각을 가진 것 같았다.
“훌륭한 대장장이들이니 동상도 잘 지을 거야.”
“악마한테 인정받는 건 좀…….”
악마 대장장이한테 인정받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뭔가 좀 문제가 많다는 뜻!
“에이, 됐다. 동상은 신경 끄기로 했으니까.”
태현은 다시 용광로로 시선을 돌렸다.
사루온이 뭘 넣었길래 아주 화끈하게 불이 지펴지고 있었다.
가브리엘 패거리가 독점하고 있어서 그렇지, 이 정도 수준의 대장간은 찾기 힘든 고급 시설이었다.
‘아다만티움 조금, 오리하르콘 조금, 흑철 조금, 적철 조금, 청은 조금…… 깨진 마법석 몇 개. 뭐 이 정도면 좋긴 한데…….’
사실 날로 먹은 것치고는 엄청난 소득이었다.
워낙 랭커들의 장비가 좋다 보니 망가진 장비에서도 그만큼이 추출되는 것!
‘이걸로 또 아티팩트나 만들어 봐? 쿨타임도 좀 있으면 끝나니…….’
태현이 남들에게 뺏은 장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동안, 저 멀리서는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 * *
-이제 우리는 진지하게 힘을 합쳐야 한다! 어설프게 힘을 합치는 시늉만 내니까 이렇게 당하는 거다. 이게 뭐냐! 오스턴 왕국도 아직 못 먹고! 판온 1 때를 생각해봐라. 왕국 전체를 순식간에 먹었는데!
-맞는 말이다. 손을 잡자! 저 김태현 같은 놈을 봐라! 우리를 얼마나 비웃었겠냐! 대놓고 날뛰는데도 우리가 가만히 있었으니 말이다. 놈은 우리가 이럴 거라고 예상한 거다! 여기 중에 판온 1에서 김태현한테 당한 적 있는 놈은 손 들어봐라!
우르르-
대형 길드 연합의 회의장.
분위기는 매우 뜨거웠다.
그 모습에 쑤닝은 속으로 생각했다.
‘김태현, 고맙다! 아주 고맙다! 이 은혜는 곧 갚아주마!’
이기적이고 서로 견제하는 대형 길드들의 연합.
말이 연합이지 제대로 연합의 힘을 보여준 적이 없는, 이름뿐인 연합이었다.
그런 연합이 오늘 제대로 힘을 합치려고 하고 있었다.
이유야 여럿 있었지만, 이 모든 흐름의 원인은 바로 태현이었다.
대회에서 폭탄 발언을 한 태현.
100명이서 덤벼들었는데도 놀리듯이 포위망을 빠져나가고 남은 랭커들을 쓸어버린 태현.
태현이 모두의 두려움에 불을 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