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46화
케인이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고 후회와 반성을 하고 있는 동안, 태현은 최대한 빠르게 속력을 내서 영지로 움직였다.
오토바이 뒤에 매달린 흑흑이가 비명을 질렀다.
-주인님! 속도! 속도 좀 줄여주십시오!
“너 드래곤 맞냐?”
-주인님! 저기 주인님입니다!
“알겠어. 속도 줄이면 되잖아. 헛소리는 하지 마.”
나름 ‘마수+블랙 드래곤’인데 저렇게 약한 소리를 하다니.
그러나 흑흑이는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저거 주인님 얼굴 아닙니까?
“……?!”
그 말에 태현은 저 멀리 영지 뒤 절벽 위에 우뚝 솟은 동상을 발견했다.
아무리 봐도 태현의 얼굴처럼 생긴 동상이었다.
“…….”
* * *
“펠마스 이 새끼 어디 있냐?”
태현은 살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영지에서 이상한 일이 생기면 먼저 의심해야 할 것은 펠마스!
그러나 이번 일은 펠마스가 벌인 게 아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태현은 펠마스가 꽁꽁 묶여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사디크 놈들이 반란을?!”
“읍읍! 읍읍읍!”
태현은 일단 펠마스를 풀어주었다.
그러자 펠마스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태현 님! 돌아오셨군요!”
[아키서스의 신도인 펠마스를 풀어주었습니다. 명성이 1 오릅니다.]
‘정말 하찮게 오른다.’
펠마스의 하찮은 존재감!
“너 설마 일 저지르고 나한테 맞을까 봐 일부러 묶인 척 하는 거 아니지?”
태현은 의심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펠마스 입장에서는 분통 터질 소리!
“아닙니다! 제가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한불신교단!
펠마스는 가슴을 탕탕 치며 외쳤다.
“밖에 보십시오! 세금도 제대로 안 걷고! 사제들은 공짜로 축복을 뿌려대고 친절하게 대해주고! 제가 있었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흠. 확실히 그건 네 말이 맞다.”
순식간에 납득하는 태현.
펠마스가 미치지 않고서야 저렇게 플레이어들한테 친절하게 굴 리 없었다.
맹물도 ‘이건 아키서스의 물약일지도 몰라’ 하고 팔아먹을 놈인데…….
물론 그 덕분에 지금 영지에 새로 온 플레이어들은 ‘아니! 이렇게 좋은 영지가 있다니! 역시 김태현이야! 초보자들도 배려해 주지!’하며 감격하고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된 건데?”
“흑흑, 어떻게 된 거냐면 말입니다…….”
펠마스는 눈물을 흘리며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갈락파드와 그 패거리들이 영지에 도착하자마자 갈락파드는 분노했다.
-네 이놈 펠마스! 신성한 아키서스 님의 영지를 이렇게 관리하다니!
-아, 아니…… 이거 내가 혼자서 독단으로 한 것도 아니고 태현 님 허락을 받고 한 건데…….
-거짓말하지 마라 이놈! 어디서 그런 중상모략을! 화신인 태현 님께서 그런 지시를 하실 리가 있겠느냐!
-직접 이렇게 다단계식으로 하라고 하셨다고!
-네놈이 태현 님의 눈을 흐리게 하고 귀를 막아 혼자 이익을 챙기려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지금 당장 목을 베어도 모자라겠지만 네 처분은 태현 님이 오면 맡기도록 하겠다. 저놈을 감금해라!
이쯤 되자 펠마스도 화가 나서 맞섰다.
-뭐 이 자식아? 내가 이 영지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물론 내가 내 이익을 좀 챙기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 이렇게 대뜸 와서 날 잡아갈 수 있을 거 같냐? 내가 여기서 얼마나 오래 있었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이 널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말과 함께 펠마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
-…….
모두 펠마스의 시선을 피했다.
-……너, 너희들! 명령이다! 저놈을 잡아라!
-정확히 따지면 김태현 백작님이 명령하실 수 있는 거지, 펠마스 님이 명령할 수 있는 건 아닌데요.
-내가 대리잖아! 일단은!
-김태현 백작님께서도 펠마스 님께서 이상한 소리 하면 들을 필요 없다고 하셔서…….
-이게 이상한 소리냐?!
-두 분이 친한 사이 같은데 그냥 알아서 해결 보시죠.
펠마스 근처에 있던 상단 용병들, 아키서스 성기사들, 기타 NPC들은 모두 슬슬 물러섰다.
펠마스는 귀족 기사단이라도 부를까 생각했지만 그들은 더 냉정했다.
-김태현 백작 말 아니면 듣지 않는다!
결국 펠마스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펠마스. 얌전히 있어라. 네 처벌은 태현 님께서 할 거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갈락파드! 내가 널 속여서 성물 찾도록 뺑뺑이를 시키고 그사이에 태현 님과 만나기는 했지만…….
제 무덤을 파는 펠마스였다.
갈락파드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지만 펠마스는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영지를 위하고, 아키서스를 위한 마음에는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다!
-그래서 싸우겠다는 것이냐?
-아니! 항복이다!
* * *
“?”
이야기를 듣던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
“항복했습니다.”
“……근데 뭐 이리 폼을 잡았어?”
“…….”
쾅!
“?!”
문이 열리고 갈락파드가 돌아왔다. 그걸 본 펠마스가 기세등등해져서 외쳤다.
“태현 님! 저놈이 갈락파드입니다! 아주 본때를 보여주십시오!”
“태현 님! 오시는 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갈락파드.
일단 여기서 태현의 호감도가 1 올랐다.
“태현 님이 없는 동안 불초한 제가 영지를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영지의 논밭이 새로 생겼고 모험가들의 숫자가 대폭 늘었습니다. 이번에 농부 모험가들이 바친 수확물들은 신전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철저한 관리력까지.
태현의 호감도가 다시 올랐다.
“여기 있는 이들은 제 손발 같은 사람들로, 모두 다 아키서스를 충실히 믿는 사람들입니다! 오랫동안 아키서스의 성물을 찾아다닌 사람들이니 태현 님의 도움이 될 겁니다. 어떤 명령이라도 내려주십시오!”
마지막으로는 전투 능력까지!
태현은 감동했다.
이제까지 웬 이상한 놈들하고만 어울려 지내며 고생한 것을 드디어 보상해주나 보다!
다른 대륙의 교단들은 빵빵한 고렙 NPC들의 지원을 받아가며 잘 나가는데, 태현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야 한다니.
그게 말이 되나.
‘그래! 이게 진짜 교단이지!’
“태, 태현 님? 태현 님?”
펠마스는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굴러간다는 걸 깨닫고 당황해서 말을 걸었다.
당장 갈락파드를 패야 할 태현이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던 것!
“그리고 태현 님.”
“그래. 그래. 갈락파드. 또 뭘 했지?”
“이번에 태현 님께서 위대한 승리를 거둔 기념으로 동상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
태현의 얼굴이 빠르게 굳었다.
* * *
시간이 지나자, 태현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키서스 교단에 멀쩡한 NPC는 없다!
멀쩡해 보이는 NPC가 있다면 그건 속임수다!
그래도 갈락파드는 우수한 NPC였다. 약간 미친 것 같다는 점만 빼면.
데리고 온 부하들은 각자 다 훌륭한 전사, 마법사, 도적 등 NPC였다.
빈약한 아키서스 NPC들을 생각해 보면 감동스러울 수준!
물론 다들 눈빛이 맛이 가 있기는 했다.
흑흑이가 뒤에서 속삭일 정도!
-주인님. 저놈들의 눈빛이 위험합니다. 아키서스를 저렇게 믿다니. 위험합니다.
-사디크의 마수인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거 같다.
-주인님. 기분 나쁘게 들으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 사정을 아는 존재들 사이에서는 사디크보다 아키서스가 더 위험한 신 취급을 받습니다…….
-……기분 나쁜 소리를 하면서 어떻게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는 거냐?
태현은 한숨을 쉬며 영지 정리에 들어갔다.
일단 갈락파드와 펠마스를 화해시켰다.
-이 자식과 화해를 하라고요?!
-싫으면 둘이 싸울래?
-화해하겠습니다.
펠마스를 설득하는 건 쉬웠다.
그에 비해 갈락파드는…….
-태현 님께서 말하시니 그렇게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말과 달리, 갈락파드의 눈동자는 뜨겁게 타올랐다.
펠마스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갈락파드!
‘네가 태현 님을 속였구나!’ 하는 눈빛이었다.
-태, 태현 님. 저거 좀 어떻게 해주세요.
-알아서 해라.
그다음으로 한 건 영지의 정책을 되돌리는 일이었다.
세금을 아예 안 받고, 사제들도 아무것도 안 받고 운영하는 건 아무래도 오래 갈 수 없었다.
‘최소한은 받자. 유지는 시켜야지.’
이 정도만 해도 다른 플레이어들의 영지에 비하면 엄청나게 적게 받는 것!
-무슨 일 할 때는 서로 상의해서 합의한 다음 해라. 패지 말고. 협박하지 말고. 그리고 저 동상은…….
태현은 말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골짜기 위에 세워지고 있는 동상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
* * *
“영차! 영차!”
“자!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그것만 끌고 오면 됩니다!”
태현의 동상을 짓자고 했을 때, 모인 플레이어들은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적당히 짐 옮기고 경험치랑 공적치 포인트 받아야지.
-이런 건설 퀘스트는 뭐 별거 아니니까…… 여기서 크게 할 것도 아니고…… 시키는 것만 한 다음 축복이나 받자.
제작 직업 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다들 의외로 건축 퀘스트에 참가한 경험이 있었다.
대도시에서 초보자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참여해 본 건축 퀘스트!
도시에서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짐을 옮기거나, 재료를 구해오거나 하면 되는 간단한 퀘스트였다.
초보자들에게는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어서 인기가 좋았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런 퀘스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는 조각사 플레이어도, 건축가 플레이어도 있었다.
그들은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기회다!
조각사나 건축가는 자기가 직접 뭔가를 만들려면 다 일일이 재료를 구해야 했다.
교단의 조각상이나 건물을 만드는 건 엄청난 기회였다.
보통 공적치 포인트를 엄청 쌓은 플레이어한테 상으로 오는 기회인 것!
그런데 아키서스 교단은 놀랍게도 그냥 기회를 열어주고 있었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봐라!’라고 지시해 주는 아키서스 교단!
그 친절함에 플레이어들은 감동을 먹었다.
-이번 기회를 살려 최대한 멋지고 위대한 동상을 만들어보리라!
“재료는 맥크레니 상단이 제공해 준 청동으로 할까요? 부족하면 돌 더 깎아서 위에 입혀도 되고…….”
“아니! 그거로는 부족합니다!”
“?!”
“더 크게! 더 웅장하게! 저 절벽 위에 세워서 멀리서도 보이게 만듭시다!”
“아, 아니…… 그렇게 만들 수 있어요? 그렇게 만들려면 여기 있는 재료로는 턱없이 부족할 텐데?”
“이 주변 골짜기는 안 건드린 부분이 많잖습니까. 들어가서 재료를 캐옵시다! 돌이든 광석이든!”
“그,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해야 합니다!”
조각사와 건축가 플레이어들의 열정에 밀려, 다른 플레이어들은 재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일단 퀘스트가 어려워지면 보상도 더 커지니 손해는 아니었던 것!
조각사, 아론은 총대를 맡았다.
여기 모인 제작 직업 중 가장 레벨이 높은 조각사!
“광석이면 뭐든 좋습니다. 일단 다 녹인 다음 섞어서 입히면 되니까!”
“그렇지만 위에 입힐 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다른 대장장이분들도 있으니 그분들에게 도와달라고 합시다!”
“대장장이라면…….”
“그 대장장이들?”
플레이어들은 흠칫했다.
아키서스 영지에 있는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은 한 종류밖에 없었다.
악명 높은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아, 아니, 꼭 불러야 해요?”
“그냥 우리끼리 하지…… 우리도 대장장이 있으니까…….”
“재료를 빨리 모으고 처리하려면 그거로는 부족해요! 최대한 손을 빌려야 합니다!”
“알, 알겠어요. 부르면 되잖아.”
* * *
영지 안, <악마의 대장간>에서 망치를 뚝딱뚝딱 두드리던 가브리엘은 멈칫했다.
“동상 건설을 도와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