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41화
그러나 결국 도망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원도 인원이고, 이렇게 모였는데 서로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이 정도 인원이 모이면 특유의 분위기가 생겼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판온1에서는 개처럼 깨졌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 인원에, 김태현이 예상하지 못하도록 밀어 넣었으니 함정도 제대로 못 깔 거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는 기대!
그 기대에 걸고 플레이어들은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플레이어들은 재빨리 던전의 정보를 검색했다.
“이 던전 자체는 난이도가 낮은데 이어지는 던전이 좀 센가 보다. 몇 번 깨려다가 실패한 던전이라는데?”
“야. 근데 김태현은 왜 안 보이지? 뭔가 이상한데…….”
“너 은신 탐지 스크롤 쓴 거 맞지? 설마 돈 아깝다고 안 쓰고 넘어간 거 아니지?”
“누구를 뭘로 보고…… 썼어, 이 자식아!”
던전 안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 방금 들어온 태현은 그렇게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데도 모습 하나 보이지 않다니.
“도저히 안 되겠군.”
“슬슬 나설까?”
“그래. 그래야겠다. 그냥 내버려 뒀더니 끝이 없어.”
뒤에서 수군거리던 플레이어 중 한 명이 나섰다.
“자. 지금부터 내가 명령한다!”
“뭐야?”
“네가 뭔데…… 어? 장쓰안이잖아?”
“장쓰안? 김태현한테 당한 그 장쓰안?”
“야, 눈치 없게 그런 걸 말하면 어떡하냐? 들으면 화날 거 아냐.”
장쓰안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가 사라졌다.
“시끄럽다. 너희가 그러니까 김태현한테 지는 거지. 모여서 뭐 이것저것 명령을 하길래 봤더니 제대로 하는 건 없고…….”
아까 처음에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랭커들은 뒤에서 상황을 보고 있었다.
태현의 공격력을 아는 이상 먼저 나가봤자 위험할 뿐.
다른 플레이어들이 덤벼들어서 최대한 김태현에게 데미지를 입히면 그때 가는 게 최선!
“뭐라는 거야, 이게? 같이 김태현한테 깨져 놓고서…….”
꿈틀-
쉬이익!
장쓰안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검을 뽑아 덤볐다.
“?!”
설마하니 이렇게 모인 인원들끼리 싸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상대방은 그대로 첫 공격을 당했다.
“컥!”
쉭, 쉬쉭, 쉬쉬식-!
이어지는 연속 공격!
상대 플레이어도 나름 고렙에 해당되는 플레이어였지만 반격 한 번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로그아웃 당했다.
“…….”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장쓰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잘 들어라. 너희들은 어차피 판온1때부터 약탈이나 하면서 놀았겠지. 김태현하고는 급이 다르다 이거야. 괜히 단독 행동으로 귀찮게 만들지 말고 내 명령을 들어라. 김태현은 잡게 해 줄 테니까.”
“너무 날뛰는 거 같은데, 장쓰안. 여기 저런 놈들만 있는 거 아니거든?”
“카와하라. 너도 와있었나?”
전투 주술사 카와하라. 랭커 중 하나였다.
저번에 태현과는 길드 연합이 랭커들을 끌고 왔을 때 만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에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판온1에서 만나 깨졌던 것!
‘그때 밟았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왜 눈치 못 챘나 싶을 정도였다.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이 자식들로는 힘들다니까. 안 그래도 절반 정도가 갈라져 나갔는데.”
“알고 있어. 좋아. 나도 나설 테니까 손을 잡지.”
유명한 랭커들이 나서자 다른 플레이어들은 움츠러들었다.
“다 들었겠지? 우리 말을 들어라. 안 그러면 또 김태현한테 당할 뿐이니까.”
‘너희도 김태현한테 졌었잖아…….’
누군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했다.
“김태현은 던전 안으로 들어가서 좀 포위를 덜 당해보려는 생각 같은데 실수한 거다. 우리는 물러설 생각이 없으니까. 여기 인원을 다 집어넣는 한이 있더라도 놈을 잡는다! 여기는 놈의 무덤이 될 거다!”
“좋은 생각이야.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건 김태현이야. 여기로 계속 플레이어들이 올 테니까.”
흩어진 플레이어들도 시간이 지나면 여기로 모일 것이다.
태현이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점점 더 불리해지기 마련.
“김태현이 도망만 못 치게 해.”
“걱정 마라. 이 주변에 인원이 몇인데. 가자!”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던전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토끼들이 우글거리는 던전이 아닌, 바깥의 던전은 레벨 낮은 프렐이어도 깰 수 있을 정도의 수준.
최소 고렙에 이 정도 숫자로 몰려온 습격대의 상대는 아니었다.
“김태현은 아직도 안 나오나?”
“다음 던전으로 들어갔군.”
슬슬 함정이나 뭐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김태현도 급하긴 했나 보군. 설치도 못 하고 바로 안으로 도망쳤나?’
‘재료를 챙길 시간을 안 주길 다행이야.’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토끼들의 던전으로 들어갔다.
“윽! 토끼들이다!”
“공격력이 장난 아니야! 조심해!”
장쓰안은 그걸 보고 쓰라린 기억이 생각나서 얼굴을 찌푸렸다.
“장쓰안. 넌 여기 와본 적 있잖아.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게 뭐가 있지?”
“……토끼들이지. 그리고 김태현도 여기 잘 알 테니 조심해야 할 거고.”
“그건 다 아는 거잖아.”
“그게 다인데 어떡하나?”
장쓰안은 공격해 오는 토끼를 피하며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걸 눈치챈 카와하라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굳이 여기서 서로 싸워서 힘을 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전부 치워버려! 안으로 들어가는 데 방해된다.”
“김태현은 어디로 숨은 거야?!”
“탐색 스킬 사용해라. 절대 못 도망치게 해!”
여기 모인 인원들은 수시로 탐색 계열 스킬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비싼 스크롤까지 아낌없이 퍼부을 정도로!
태현이 은신 스킬이나 변장 스킬에 능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 당연한 대처였다.
그런데도 태현은 나오지 않았다.
‘함정도 없고 습격도 없고, 김태현답지 않은데? 대체 뭐지?’
“이 자식 보스 방까지 간 거 아니야?”
“아직까지 깨진 적 없으니 그걸 이용하려는 건가?”
“하. 그런 얕은 수작으로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마지막 보스 몬스터가 있는 방으로 도망쳤다면 같이 짓밟아버리면 그만이었다.
“김태현! 나와라! 한 판 붙자!”
“우리가 무서워서 숨었냐!”
* * *
그사이 태현은 재빨리 달려가고 있었다.
토끼 모습으로!
카르바노그에게 받은 <토끼 변신> 스킬을 이런 데에 쓸 줄은 태현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토끼 던전에 많은 게 토끼였고, 그중 하나로 변해서 달려 나가자 플레이어들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안 그래도 공격력 강한 뿔 토끼 때문에 위험한 상황인데 굳이 귀찮은 일을 늘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태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빠져나가서 던전의 입구로 나갈 수 있었다.
수없이 많이 쏟아지는 탐색 스킬들도 <토끼 변신>을 뚫지 못했다.
[카르바노그의 권능이 탐색을 막아냅니다. 토끼 변신이 유지됩니다.]
신이 괜히 신인 게 아닌 것!
덕분에 태현은 던전을 나와 풀밭을 달려 근처 도시로 접근할 수 있었다.
“어? 토끼다.”
“뭔 소리야. 여기가 중앙 대륙이야? 이 근처에는 토끼 없어.”
“저기 토끼 있었는데?”
“누구 펫 아닌가?”
“토끼를 펫으로 데리고 다니는 사람도 있어? 정말 할 일 없는 사람도 다 있나 보네.”
아무리 펫이라도 토끼처럼 약한 몬스터를 펫으로 데리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었다.
-변신 해제!
태현은 사람 형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즉시 가면을 사용해 얼굴을 바꾸었다.
‘장비도 좀 바꿔야겠군.’
평소에 다른 사람들이 봐도 안 들키고 쓸 수 있는 그런 일반적인 장비가 필요했다.
‘적당한 대장장이한테 가서 살까…….’
-중급 대장장이 기술 찍은 대장장이가 잘 제련된 강철 검 20개 팝니다! 다 팔리기 전에 오세요!
-마법 각인 스킬 가진 대장장이가 마법 검 팝니다! 제시받아요!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서 직접 기계공학 배운 대장장이가 기계공학 검 팝니다! 남들과 차원이 다른 폭딜 보장!
태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영지에 있는 지긋지긋한 대장장이들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어? 혹시 이 물건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태현이 멈춰 서서 웃자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기계공학 대장장이가 재빨리 말을 걸어왔다.
“이 장비가 얼마나 좋은 장비냐면은…….”
“안 사요.”
“……네…….”
물론 인연은 인연이고 구매는 구매!
태현은 냉정하게 거절하고 걸어갔다. 그리고 케인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나 탈출했다.
-뭐?! 진짜?! 어디냐!? 지금 간다!
-아니. 너 지금 올 필요 없어.
태현 혼자 있으면 적들도 태현을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사기적인 아이템에, 탐색 스킬들을 회피할 방법들도 많았으니까.
그에 비해 케인은…….
-나 먼저 따돌리고 영지로 돌아갈 테니까 너도 알아서 와라.
-어, 어! 나도 알아서 갈게!
-뭐지? 방금 말이 어색했는데.
-응, 응? 내가 왜?
-뭐 하고 있는지 말해라.
-내, 내가 뭘 했다고?
케인은 잡아떼려고 했지만 이미 감을 잡은 태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뭔데? 너 설마 협박당하고 있냐?
-아니거든!? 그냥 아는 사람 한 명 키워줄까 싶어서. 흠흠. 알겠어. 나도 알아서 영지로 가볼게.
-아는 사람이 누군데?
-있어. 그런 사람.
-너 그거 함정이다.
-야 이 자식아!! 네가 그래가지고 저번에 개망신당했잖아! 내가 얼마나 곤란했는지 알아?! 함정 아니라고! 하연 씨는 착한 사람이야!
-아. 지금 그 사람하고 같이 있군.
-…….
케인은 입을 다물었다.
-와, 나 쫓기고 있는데 넌 혼자 그러고 있었다 이거지? 심지어 이세연도 날 도우러 왔는데. 양심이 없냐?
-아, 아니. 너 도우러 갈까 했는데 네가 던전 들어갔다 해서 괜히 들어가 봤자 도움도 안 될 거 같아서…… 그리고 하연 씨한테는 지금 연락 온 거라고…….
쏟아지는 구박에 케인은 의기소침해졌다.
-야, 화난 거 아니지? 나 너 도우려고 했다? 진짜다?
뚝-
태현은 다시 귓속말을 끊었다.
‘이제 어디로 갈까…….’
슈슈슉-
“?!”
순간 태현 주변으로 순간이동해 오는 플레이어들!
태현은 놀라기보다 먼저 손이 나갔다.
-그림자 도약, 완벽에 가까운 연격!
“으아아악!”
태현에게 가장 가까이 순간이동했다가 재수 없게 걸린 플레이어 하나가 로그아웃 당했다.
그러나 다른 플레이어들은 모두 무사히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숫자는 이십 명 정도.
문제는 그들 중 절반이 랭커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장쓰안은 매우 화난 상태로 말했다.
“김…… 태…… 현……! 감히 날 또 우롱해?!”
“네가 누구였더라…… 에이, 뭐가 중요하겠냐.”
“…….”
“그보다 내가 여기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지?”
“너만 스킬 있는 건 아니거든.”
랭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 * *
태현이 빠져나가고, 던전에 남은 플레이어들은 보스 방까지 돌격했다.
그런데도 태현은 보이지 않았다.
토끼를 잡고 온 대가로 보스 몬스터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플레이어들은 그제야 이상함을 깨달았다.
-김태현 우리 지나쳐서 튄 거 같은데?!
-야! 장쓰안! 김태현 여기 없잖아!
-으악! 이 토끼 좀 막아봐!
그러던 도중, 아까 에반젤린의 습격을 막아내느라 뒤처졌던 궁수 랭커 한 명이 와서 스킬을 사용했다.
-숲의 눈동자!
일정 범위에 태현이 있다면 추적할 수 있는 강력한 권능 스킬!
그런데도 태현은 잡히지 않았다.
-김태현이…… 없다!?
-도망쳤다고?! 말도 안 돼!
-아니야, 다시 나타났다! 북쪽 도시로 튀었어! 가서 잡자! 스크롤 꺼내!
태현이 토끼 상태였을 때는 잡아내지 못하다가, 풀리고 나서야 잡아낼 수 있었다.
설명을 들은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설마 의외로 좋은 스킬인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