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40화
“그냥 솔직하게 말해라! 뭐든 할 테니까! 이제 와서 속일 이유가 있냐!”
“이 자식이 잘해 줘도 난리네. 그냥 반대 방향으로 튀어. 인마.”
태현은 케인을 구박했다.
지금 100명 가까이 모인 상황에서 케인을 방패로 삼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차라리 나눠져서 흩어진 다음 따돌리는 게 편했다.
“진짜지? 나 간다? 나 진짜로 간다? 나중에 뭐라고 하기 없…… 크헉!”
태현은 케인을 공격했다.
그제야 케인은 정신을 차리고 반대 방향으로 튀기 시작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할까…….’
태현의 약점이 저런 식으로 퍼붓는 저주 공격이긴 했지만, 태현도 당연히 대비책이 몇 개 있었다.
대륙 퀘스트를 깨고서 얻은 <저주 이동> 스킬.
오스턴 왕가에서 얻어온 비전 갑옷이나 왕자의 목걸이 같은 아이템에 달린 저주 저항, 저주 반사 스킬.
이런 것들을 쓰면 몇 번의 공격은 더 버틸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가면 소모전이 된다. 지금 상황에서는 절대 하면 안 되고.’
상대방 숫자가 몇 명인데 소모전을 하겠는가.
그랬다가는 금세 말려서 로그아웃 당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소환!
허공에서 나타난 오토바이.
태현이 거기에 올라타자 주변에 몰린 플레이어들이 고함을 질렀다.
“저거 튀려고 한다!”
“잡아!”
“스킬 걸어!”
한 번 퍼부은 저주 스킬들이 쓸려나갔기에 손발이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수십 개가 되는 스킬들이 다시 날아 들어왔다.
급한 나머지 저주가 아닌 이동 방해 스킬들도 많이 날아왔다.
-발목을 잡는 그림자!
-전사의 밀어내는 붉은 함성!
-뒤통수 후려치기!
“스턴 상태로 만들어! 발만 묶어도 우리가 이긴다!”
퍼퍼펑! 퍼펑!
요란한 스킬 이펙트들.
이렇게 많은 스킬들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쏟아지자 주변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고 스킬 이펙트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입을 벌렸다.
“뭐, 뭐 저런…….”
“멀쩡한데?”
<신의 예지>로 위험할 거 같은 저주는 피해내고, 나머지 기타 스킬들은 그냥 몸으로 막아냈다.
어차피 회피력으로 다 ‘회피했습니다’가 뜨는 공격들!
태현이 도망치려는 걸 보고 급하게 공격하는 바람에 실수한 것이다.
‘시간이 좀 더 걸렸어도 무조건 명중하는 저주 위주로 공격을 했어야 했다!’
자리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판온1과 달리 판온2의 태현은 정말 까다로운 방어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아오, 저 개XX, 그냥 대장장이나 다시 할 것이지…….”
“지금도 대장장이 기술 찍었잖아?”
“멍청한 자식아! 지금 그 소리 하는 게 아니잖아!”
그러는 사이 태현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플레이어들은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처음 계획은 태현이 무슨 수를 쓰기도 전에 압도적으로 짓밟아버리는 것이었지만, 그게 깨진 지금은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야 했다.
“막아. 어차피 저놈이 이 인원 다 뚫고는 못 갈 테니까!”
“탱커들 앞으로! 탱커들 앞으로!”
“사제들 버프 걸어라! 저 자식 폭딜 주의해라!”
“근데 우리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
“무슨 소리! 이것도 부족해!”
우르르 움직이며 벽을 만드는 플레이어들.
무슨 모습만 보면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레이드 파티 같았다.
한 명을 상대하면서 이렇게 하는 것도 웃기지만 모두 다 진지했다.
‘날아가면…… 격추당하려나.’
궁수에 마법사들까지 우글거리는데 위로 빠지는 순간 오토바이가 집중사격 당할 수 있었다.
스킬로 오토바이를 보호하며 도망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정면 돌파!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이 펼쳐집니다. 영역 안에서는 아키서스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판온의 스킬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광역기!
태현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오토바이에 있는 아이템 스킬들을 사용했다.
-폭발 가속, 미쳐 날뛰기!
부아아아앙!
“어, 어, 어?”
각오는 했지만 태현이 각종 스킬들을 쓰며 오토바이를 전력으로 몰아서 다가오자, 정면에 서 있던 플레이어들은 침을 삼켰다.
태현을 죽이고는 싶었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 중 가장 먼저 죽고 싶지는 않았던 것!
그때,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행운 저항에 실패해 저주를 받습니다.]
[지진이 일어납니다.]
“……응?”
메시지창을 본 태현은 눈을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이제까지 싸움으로 났던 소리와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소리가 땅 밑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너지기 시작하는 땅바닥!
“뭐야 XX?!”
“피해! 피해!”
각을 잡고 있던 플레이어들의 진형은 엉망이 되었다.
그리고 프리카 투기장 앞마당도!
“꺄아아아악!”
“으아악! 뭐야! 뭐야!”
멀리서 ‘와! 싸움 났나 보다!’, ‘김태현이 1:100으로 뜬다! 이건 봐야 해!’하면서 파워 워리어 길드 표 팝콘을 뜯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김태현! 이게 뭐 하는 거냐! 아무리 네가 위험해도 그렇지! 다른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말려들게 하다니!”
플레이어 중 한 명이 태현을 가리키며 비난했지만 태현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뭐라는 거야? 지들이 구경하다가 다쳐놓고. 난 잘못 없어.”
그러나 비난은 계속됐다.
“넌 판온1 때와 그대로다! 이 쓰레기 같은 놈! 너 같은 놈이 방송 좀 나가고 대회 좀 우승했다고 인기가 많아지다니!”
“우우! 판온을 접어라!”
“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는지 아느냐!”
“100명으로 한 명 잡으려는 놈들이 입은 살아가지고…….”
태현은 말과 함께 오토바이로 쓰러진 플레이어 한 명을 내려찍었다.
“크헉!”
죽여서 로그아웃시키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지금 도망칠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데미지를 넣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사디크의 화염 질주가 발동됩니다.]
“어?”
화르르륵!
“크아악!”
쓰러진 플레이어를 오토바이로 찍고, 그것도 모자라서 사디크의 화염으로 태워 버리는 확실함!
“아. 맞다. 이것도 옵션에 있었지. 확률 낮아서 잊고 있었네.”
오토바이 발동 스킬 중 하나였지만 확률이 낮아서 잊고 있던 스킬!
“저, 저, 저…….”
“저 천하의 사악한 새끼!”
“아, 예.”
말과 함께 태현은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욕을 퍼붓던 플레이어들도 재빨리 뒤를 쫓았다.
절대 놓치지 않는다!
지진이 터지고 각종 불행이 일어났어도 의외로 로그아웃 당한 플레이어들은 얼마 없었다.
사제들이 재빨리 회복 스킬을 걸어준 것이다.
‘쯧. 백 명이나 되니까 뭘 해도 수습이 되네. 분리를 안 시키면 위험하겠는데…….’
그 순간 뒤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뭐야?!”
“뱀파이어다!”
에반젤린이 이끄는 뱀파이어들이 나타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어떡하지?”
“나눠서 쫓는다. 5조, 6조가 막아! 나머지는 쫓고! 빌어먹을, 저거 에반젤린이잖아! 캐나다 쪽 랭커!”
대회 덕분에 참가한 선수들의 얼굴은 이미 대충 다 알려진 상황이었다.
“에반젤린! 김태현한테 원한이 있지 않냐! 너도 우리와 같은 과다! 우리와 손을 잡고 협력하자!”
자신만만한 제안!
습격대는 진심으로 제안했다. 그들도 대회를 봤고, 에반젤린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들도 그렇게 당했으니까!
그러나 에반젤린은 단호했다.
“시끄러워!”
“?!”
“니들처럼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는 놈들은 내 뭘 안다고 그래!”
한이 맺힌 외침!
에반젤린은 곧바로 광폭화를 한 후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데리고 온 뱀파이어 NPC들까지 합세하자 그 기세는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김태현! 치사하게 이러기냐!”
“정정당당하게 1 대 100으로 붙자!”
“너희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듣고 있던 에반젤린마저 어이없어할 정도!
그 모습에 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정도라면 확실히 상대를 견제해줄 것 같았다.
“여기도 있다!”
“?!?!”
갑자기 나타난 검사 플레이어.
최상윤이었다.
“사유는 여기 왜?!”
“김태현 도우러 온 거다! 저건 김태현 편이잖아!”
“김태현 이 자식 왜 이렇게 안 하던 짓을 해! 판온1에서는 혼자 살았잖아!”
“이 자식 돕는 사람들은 왜 다 여자야?”
최상윤은 멀리서 태현에게 눈빛을 보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인원 끌어낸 다음 튄다. 그거면 되지?
-충분하다. 고맙다.
에반젤린을 상대하기 위해서 인원이 떨어져 나가고, 최상윤을 상대하기 위해서 인원이 떨어져 나갔다.
이 정도만 해줘도 충분히 숨통이 트였다.
“고맙다, 모두! 그러면 나는…….”
그때 한 명이 더 나타났다.
이세연이었다.
“……너는 왜 왔냐?”
“…….”
시끄러운 와중에도 이상하게 선명하게 들리는 태현의 목소리!
이세연은 표정 관리를 하기 위해 최대한 애썼다.
‘도와주러 왔는데 저건 진짜…….’
“이세연?”
“이세연이 왜?!”
하필이면 이세연까지 여기 나타나다니.
습격을 위해 모인 플레이어들은 울분에 차서 외쳤다.
“이세연! 너도 우리가 왜 이러는지는 알 텐데!”
“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긴 해.”
“그렇지! 우리가 얼마나 당했는지 너도 잘 알잖아!”
“근데 난 당한 거 없는데?”
“?!”
“판온1에서 내가 당한 게 있어야지. 난 김태현 이겼어.”
어깨를 으쓱거리는 이세연.
그 모습에 태현은 상황도 잊고 울컥했다.
‘저게 진짜…….’
그러나 다른 플레이어들이 분노한 것에 비한다면 태현의 울컥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걸 말이라고!”
“저런 상도덕도 없는……! 밟아버려! 어차피 이 인원이면 이세연도 못 이겨!”
“저기 김태현 도망친다.”
“?!”
벌써 거리를 벌리는 김태현!
사방에서 나타난 지원군 때문에 흩어진 플레이어들.
이미 초반의 탄탄한 포위망은 절반 정도로 줄어 있었다.
“그러면 나도 슬슬 도망쳐 볼까?”
“어디를 가려고?!”
“붙게?”
“……두고 보자! 다음에는 용서하지 않겠다!”
이세연은 고개를 저었다.
‘저러니까 매번 당하지…….’
* * *
‘어디가 좋을까…….’
일 대 다수로 싸워본 경험은 넘쳐나도록 많았다.
오히려 일대일로 싸워본 적이 더 적을 정도!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건 던전인데.’
던전 하나 잡고 들어가서 다른 놈들 끌어들인 다음 하나하나 괴롭히는 방식.
아무리 숫자가 많아봤자 필드와 달리 던전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문제는 여기가 프리카 대륙이라는 점이었다.
중앙 대륙과 달리 미리 알아놓은 던전이 적다는 것!
‘쓸만한 던전을 지금 당장 검색이라도 해야 하나? 아, 생각해 보니 하나 있긴 하네.’
토끼의 신 카르바노그의 던전!
태현은 씩 웃었다.
괜찮은 계획이 떠오른 것이다.
-괜찮냐, 이놈아?
-?
갑자기 유 회장에게서 온 귓속말.
-뭡니까, 어르신? 어르신도 저 도와주러 오셨습니까?
-응? 아니. 이번에 유성그룹에서 여는 자선 대회에 상품으로 내놓을 오토바이는 언제 만들 건지 물어보려고…….
-……끊습니다.
-이, 이놈아! 그거 중요한 거다! 그리고 너 영지에 곡물 많이 쌓였던데 그거 팔 생각 없…….
뚝!
태현은 대답도 듣지 않고 끊어버렸다.
이세연이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는 바람에 순간 착각한 것이다.
‘근데 이세연은 왜 도와주러 온 거지?’
순수하게 대회에서 진 신세를 갚으러 온 이세연이 듣는다면 ‘너 그냥 여기서 죽어라!’ 하고 덤빌 생각을 하는 태현이었다.
생각을 하는 사이 저 멀리 던전의 입구가 보였다.
“저 자식 던전 들어간다!”
“들어가자!”
‘하필이면 던전이야?’
‘그냥 튈까?’
몇몇은 판온1의 악몽이 떠올라 주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