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39화
태현과 케인의 추측은 사실이었다.
우승팀에서 혼자 가장 낮은 등급의 상자를 받은 도동수!
김철수나 이세연은 개인 방송으로 이번 대회에서 뭘 받았는지 밝혔다.
덕분에 도동수도 다른 사람들이 뭘 받았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세연, 김철수도 은 상자.
사람들은 둘 다 은 상자를 받았다는 것에 의아해했다.
-황금 상자 받은 사람은 없나?
-케인이나 김태현이 받았을 수도 있어.
-김태현은 받았겠다.
-케인은 왜?
-야. 케인이 킬한 게 몇 명인데. 자폭도 킬이다!
모르는 곳에서 그런 대화가 오가는 줄은 상상도 못 한 채, 태현과 케인은 생각지도 못한 보상에 기뻐했다.
‘일단 나중에 까야겠군.’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상자를 집어넣었다.
‘지금 스탯이…….’
이름 : 김태현
레벨 : 83
직업 : 아키서스의 화신
HP : 25,540
MP : 24,890
힘 : 490
민첩 : 502
체력 : 570
지혜 : 533
행운 : 4,501
보너스 스탯 : 0
레벨 100도 안 된 플레이어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스탯들!
아키서스 관련 직업으로 인한 스탯 성장 버프에, 태현이 굵직굵직한 퀘스트들만을 깨온 덕분이었다.
게다가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스탯의 균형이었다.
행운을 제외하면 특이할 정도로 고르게 오른 행운들.
물론 이건 태현이 일부러 의도한 게 아니라, 패시브 스킬이 스탯을 랜덤으로 올린 탓이었지만…….
‘덕분에 방랑자 아이템 세트 효과도 상당히 좋아졌어.’
판온 초반에서부터 지금까지.
태현의 장비는 계속해서 바뀌어왔다.
더 좋은 액세서리 아이템이나 더 좋은 무기가 나올 때마다 바꿔 온 것이다.
그렇지만 방랑자의 벨트, 방랑자의 장갑, 방랑자의 외투, 방랑자의 신발 이 네 개의 세트 아이템은 그대로 착용하고 있었다.
착용자의 스탯에 따라 성능이 정해지는 특이한 아이템 성능 때문!
각자 필요한 스탯이 다른 만큼, 다른 직업들은 이런 아이템을 잘 쓸 수 없었다.
보통 주력으로 키우는 스탯이 달랐으니까.
그러나 태현처럼 이렇게 반강제로 균형 맞춘 스탯 성장을 하는 플레이어에게는 이 세트 아이템이 매우 잘 맞았다.
괜히 영웅 등급의 아이템이 아니었다.
‘음…… 또 한 번 작정하고 재료를 모은 다음 갑옷을 만들어볼까? 이번에는 아예 아티팩트로…….’
현재 주로 사용하고 있는 갑옷은 <오스턴 왕가의 비전 갑옷>.
오스턴 왕국에서 있었던 퀘스트가 끝나고 훔쳐 온…… 아니, 받아 온 갑옷이었다.
엄청나게 좋은 갑옷이었고, 지금 당장 경매장에 올려도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입찰해 올 물건.
그렇지만 태현은 꼭 저 갑옷만 착용할 필요는 없었다.
‘갑옷도 여러 개 있으면 싸울 때 선택지가 많아지니까 편하지.’
아키서스 아티팩트 제작이란 선택지도 있었고, 만들 능력만 있다면 만드는 게 좋았다.
‘갑옷이나 무기. 그 두 개로 좁혀야겠다. 무기는 뭐가 좋으려나.’
검을 만들어볼까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지금 갖고 있는 검들이 너무 좋았다.
재료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테고.
‘차라리 머스킷으로 가볼까?’
머스킷.
대부분 활이나 석궁을 쓰지, 머스킷은 잘 쓰지 않았다.
연사 속도 느리고 고장 확률 있고 기계공학 대장장이도 적고…… 하여튼 단점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렇지만 장점이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데미지!
어차피 자기 자신이 기계공학 스킬이 있고, 행운 덕분에 고장 확률은 신경 쓰지 않는 데다가, 가까운 거리에서 깜짝 폭딜을 넣는 전략을 자주 쓰는 태현에게는 참 편한 무기였다.
‘하긴, 지금 쓰고 있는 머스킷은 몬스터나 던전에서 뺏은 걸 개조해서 대충 쓰고 있는 거니까…….’
퉁-
태현이 그렇게 생각하며 걸어가던 도중, 갑자기 발걸음이 멈춰졌다.
앞에서 걷던 케인이 멈춰선 것이다.
“어…….”
“왜 그래?”
“저, 저기…… 저거 뭐냐?”
투기장 정문을 나서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원래 이 주변에는 플레이어들이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온갖 목적으로 온 플레이어들이 우글거리는 것이 일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
입구 주변에서 좌판을 깔고 있던 상인이나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이 아무도 없었다.
대신 중무장한 플레이어들만이 빙 둘러싸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중 몇 명을 알아본 케인이 깜짝 놀랐다.
“저놈들 랭커잖아……!”
그 말을 시작으로, 입구를 둘러싸고 기다리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입을 열었다.
“저거 케인이다!”
“저 못생긴 코와 귀 아이템을 끼고 있는 놈이 케인이다. 다른 놈일 수가 없지.”
“그러면 저 옆의 놈은…….”
“김태현이군!”
태현은 혀를 찼다.
태현 본인이야 얼굴 바꾸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됐다지만, 케인은 자세히 쳐다보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더 확실히 변장을 시켰어야 했는데!
‘대회 끝났다고 너무 무르게 대응했나…….’
대회의 보상 때문에 들떠서 실수를 저질렀다.
태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몇 명 정도의 플레이어가 적일까?
“김태현! 가면을 벗고 당당히 나와라!”
플레이어 중 한 명이 무기를 겨누고 외쳤다.
지금 이 장면은 방송으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런 만큼 모두 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태현에게 원한이 있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태현은 지금 판온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플레이어였다.
한국 단위가 아닌 전 세계적으로!
태현과 이렇게 맞붙는 건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그런 만큼 모두 각오가 남달랐다.
“저 김태현 아닌데요?”
“…….”
분위기 깨는 한마디!
자리에 있던 모두가 태현을 노려보았다.
판온1 때부터 그랬지만, 남들이 기대하는 건 무조건 꺾고 보는 게 태현이었다.
“저 XX가 진짜…….”
“야. 벌써부터 휘말리지 마라.”
플레이어들이 떠드는 사이, 태현에게 귓속말이 날아왔다.
-야! 지금 너 잡는다고 애들이 모여 있어! 방송까지 진행 중이야! 조심해!
-태현 님! 지금 입구에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났대요! 주의하셔야 해요!
‘…….’
한 박자 늦은 경고들.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보아하니 케인을 감시하고 있다가 나오는 순간 모두 다 우르르 몰려온 모양이었다.
꽤나 철저히 짠 계획!
태현이 결승전에서 정체를 밝힌 이후 모인 놈들인데도 이 정도라니.
정말 태현을 싫어하는 게 분명했다.
“김태현. 지금 여기 몇 명이나 모였는지 궁금한 거 같군.”
태현이 안 물어봤는데도 친절히 말해주는 상대방.
태현은 살짝 고마워져서 물었다.
“응. 근데 너 누구냐?”
“……이 개자식이 진짜!”
“진정하라니까! 김태현의 도발에 휘말리지 마!”
“후, 후욱. 알고 있어. 알고 있으니까…….”
진정하는 데 성공한 플레이어는 이를 갈며 말했다.
“몇 명이 모였는지 궁금하다고? 여기 전원이 네 적이다!”
“?!”
그 말을 들은 케인이 경악해서 중얼거렸다.
“백, 백 명 정도는 되는 거 같은데……? 정말로?”
“그만큼 널 싫어하는 놈이 많은 거지. 진작에 널 찾아가서 밟아주지 않은 게 한이다! 이 자식아!”
지금 모인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판온1 때부터 게임을 했던 플레이어들이었다.
판온1에서 태현한테 랭커 사냥을 당한 랭커.
판온1에서 태현에게 ‘크하하! 끼고 있는 장비를 내놔라! 내놓으면 PK는 넘어가 주마!’라고 말하며 덤볐다가 갈려 나간 약탈자 플레이어들.
판온1에서 태현에게 ‘여긴 우리 길드의 영역이다! 꺼져! 꼬우면 덤비던가!’라고 말했다가 길드째로 갈려 나간 플레이어들.
그런 플레이어들이 모두 다 모인 것이다.
태현이 결승전 때 말한 그 발언 하나로!
-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김태현 저 자식을 조집시다!
각자의 사정이나 이기심을 전부 멈추고 모이게 만든 태현!
“김태현…… 정말 반갑다. 네가 접었다는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아냐! 어!”
소리를 질러대는 상대 플레이어를 보며 태현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누군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야, 일단 프리카 투기장으로 도망쳐야 하지 않냐?
프리카 투기장 건물 안에서는 PK가 불가능했다.
그걸 알았기에 케인은 태현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그러나 태현은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최악이지.
이렇게 모인 놈들이 그거 하나를 예상 못 했을 리 없었다.
분명 공간이동 같은 걸 못하도록 막은 다음, 투기장 안에서 못 나오도록 계속 버틸 것이다.
태현의 적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리는 없는 상황.
안으로 들어가는 건 최악의 방법이었다.
-지금 뚫어야 한다.
-어떻게? 저 인원을 다 뚫고 가자고?
-뭐 어쩌겠냐. 해봐야지.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불평한다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시간에 어떻게 뚫어야 할지 머리를 굴려야 했다.
-에반젤린.
태현은 에반젤린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뭐야?
-나 지금 프리카 투기장 앞에서 포위당했는데 와서 도와라.
-뭐?! 내가 왜?!
-반지 받고 싶으면 알아서 와서 도와. 나 죽으면 국물도 없다.
-…….
-100명 정도 모인 거 같으니까 최대한 준비해서 와라. 그래도 부족할 거야.
태현은 그렇게 말하고 귓속말을 끊었다.
그러는 동안 상대방은 태현한테 당했던 걸 구구절절 늘어놓고 있었다.
주변에 몰린 플레이어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 일 같지 않은 이야기!
“크흑……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저건 인간이 아니야! 인간의 탈을 쓴 악마야!”
물론 태현은 듣지 않고 있었다.
“어떠냐, 김태현! 할 말이 있냐! 이제라도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 생각이 있다면 네 캐릭터를 끝까지 쫓아가서 PK하는 건 그만둬 주마.”
‘헉, 생각보다 관대하잖아?’
케인은 깜짝 놀랐다.
여기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면 캐릭터를 끝까지 쫓아다니면서 죽이는 건 그만둬 준다니.
생각보다 괜찮은데?
물론 그건 케인의 기준이었다.
“잘 들었고, 내 대답은…….”
태현은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국가와 상관없이, 통역을 하지 않아도 정확하게 의사 표현이 되는 대답!
“…….”
“…….”
순식간에 뜨겁던 분위기가 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케인은 그걸 보고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 자기 죽이려고 100명 가까이 모여 있는데!
“오냐! 죽여주마! 죽여버려!”
“전부 달려가서 밟아버리자! 저 자식이 아무리 잘나 봤자 여기 인원이 모두 달려가서 밟으면 끝장이야!”
그리고 공격이 시작되었다.
* * *
공격의 시작은 저주부터였다.
판온2의 태현은 상당히 많은 부분이 방송에 알려진 상태였다.
태현의 정확한 직업은 몰라도, 태현이 미친 회피력을 갖고 있다는 건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잘 먹히는 건 회피력과 상관없이 무조건 명중하는 저주들!
하나하나의 데미지는 없거나 매우 약한 수준이었지만 어차피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됐다.
저주가 쌓이다 보면 태현의 회피력도 내려가기 마련이었으니.
“미친…….”
케인은 눈을 감았다.
날아드는 저주들이 하늘을 새카맣게 물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자기 일만 아니라면 ‘와, 판온 그래픽 개쩐다!’하면서 보고 있었을 텐데!
“정신 차려. 이 자식아.”
말과 함께 태현은 아이템을 꺼냈다.
<아탈리 왕궁의 나팔>!
-아탈리 왕가의 저주 해제!
거대한 나팔 소리와 함께 날아들던 저주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
“튀자. 넌 반대 방향으로 튀어라.”
“뭐?! 진짜!? 괜찮겠냐?! 너 뭐 잘못 먹은 거 아니냐?!”
“…….”
이제는 배려해 줘도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케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