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38화
“에이, 그래 봤자 안 올 놈들이야. 걱정할 필요 없어.”
태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저런 식의 연합이 맺어진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전에 쑤닝과 성기사이즈킹 길드를 탈탈 털고 나서도 저런 연합이 생기지 않았던가.
실제로 대형 길드 연합에서도 ‘저 김태현 자식을 조져 버리자!’ 하는 여론이 몇 번 나왔었고.
그런데도 실제 결과로 나온 게 거의 없는 이유는 하나였다.
-김태현을 조지자고? 난 당한 거 없는데?
-김태현 조지려면 잃을 게 너무 많지 않냐?
-조지자고? 나야 좋지. 대신 다른 놈들이 앞에 섰으면 좋겠네. 난 뒤에 설게.
-이런 개X끼가?
다들 이기적이었기 때문!
태현을 상대하려면 분명 재수 없는 사람 한둘 정도는 로그아웃 당할 텐데, 다들 아쉬운 게 많았던 것이다.
덕분에 태현은 아직까지 잘 먹고 잘살 수 있었다.
그러나 최상윤은 심각했다.
-이번에는 좀 다르다니까.
“응?”
-내가 아는 랭커 중 한 명은 네 방송 보고 아예 작정하고 사람 모으던데.
“…….”
태현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넌 네가 했던 짓들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당한 놈들은 아직도 이를 갈고 있다고.
“에이, 언제 때 일인데…….”
-야, 도동수를 봐라.
“그렇게 말하니까 납득이 되네.”
이런 원한은 평생 간다!
실제로 도동수는 자기 대회와 커리어를 말아먹을 각오를 하고 태현에게 덤벼들지 않았는가.
물론 태현이 더럽게 괴롭히긴 했지만…….
-일단 진짜 조심해라. 나도 슬슬 퀘스트 다 깨가니까 너 도와주러 갈게.
-그래주면 고맙고.
태현은 최상윤의 말을 들으면서 상황을 계산했다.
일단 영지는 괜찮았다.
귀족 기사단도 아직 써먹을 수 있었고 필요하면 공적치 포인트를 써서 주변 왕국에서 힘을 빌려올 수도 있었으니까.
‘확장을 안 해서 망정이지…….’
그나마 영지가 하나여서 막기도 쉬웠다.
‘언제쯤 오려나? 암살자 플레이어들을 보내려나? 투기장 나서서 그냥 바로 사라져야겠군. 한동안 권능 퀘스트나 깨야겠어. 아, 맞다. 갈락파드도 만나야 하는데…….’
“안녕하세요!”
앳된 목소리.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이다비를 닮은 어린아이 둘이 태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동생?”
“네. 동생이에요.”
둘은 태현을 보고 흠칫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명백하게 겁먹은 그 모습에 태현은 살짝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다른 건 몰라도 어린애들은 정직하지 않은가!
“아하하…… 얘들이 좀…….”
이다비는 태현이 상처 입은 걸 눈치채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동생들을 노려보았다.
-예의 지켜!
“……!”
이다비의 모습에 동생들은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았다.
“죄, 죄송합니다!”
“방송에서 봤던 것과 모습이 달라서 순간 겁을 먹었어요!”
“…….”
지나치게 솔직한 말에 태현의 얼굴이 구겨졌다.
* * *
태현은 이다비의 동생들과 같이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사이 이다솔이 슬슬 눈치를 보며 말을 걸었다.
태현이 이다비와 어떤 사이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다비한테 물어봐도 ‘파트너야’, ‘아무 사이 아니라니까’, ‘아, 너희들 자꾸 캐물으면 방송국에 안 데려간다! 조용히 하고 있어!’라고 대답할 뿐.
물어보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마침 이다비는 다른 동생인 이다샘과 이야기하고 있는 중!
“저기…….”
“?”
“언니랑 무슨 사이세요?”
“친구인데.”
“친구요?!”
깜짝 놀라는 이다솔!
“왜 놀라는 거지?”
“언니한테 친구가 있을 줄이야……!”
“…….”
태현은 복잡한 눈빛으로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동생들한테 어떤 이미지길래?
“아, 아니요. 언니가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언니는 정말 착해요! 저희 때문에 일만 하고! 그, 언니한테 친구가 없는 건 아니에요! 언니 친구 많아요!”
“그, 그래.”
“진짜예요!”
“그래…… 알겠으니까 그만해……!”
듣는 태현이 민망해지는 변명!
이다솔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어쩌다 보니 이다비를 욕하게 된 셈이 되었다.
이것 때문에 태현이 이다비를 오해하기라도 한다면……!
“무슨 이야기 하고 있어요?”
“아. 어. 음.”
태현은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네, 네 칭찬?”
“네? 아, 아하하…… 너는 왜 그런 소리를 하고 그래?”
이다비는 얼굴을 붉히며 이다솔을 잡아끌었다. 이다솔은 감사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우리 어디 가요?”
“고기 먹으러 가자. 축하에는 역시 고기지.”
김태산에게서 배운 것!
슬플 때도 고기를 먹고 기쁠 때도 고기를 먹어라!
“앗. 오늘 동네에서 할인 행사하는 정육점 알아요. 거기 가죠.”
“아니…… 밖에서 먹을 건데.”
“밖에서?!”
“고기를 먹는다고요?!”
이다솔과 이다샘이 동시에 놀란 듯이 외쳤다. 이다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괜찮은 건가요?!”
“같이 방송 봐놓고 대회에서 상금 받은 건 까먹었니?”
물론 상금을 제외하더라도 태현은 돈이 많았지만, 그걸 지금 일일이 설명하는 건 귀찮았다.
두 동생은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구나……!”
“그러면 대패삼겹살 먹으러 가나요?”
“……한우 먹으러 가자.”
태현은 최대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그렇게 말했다.
* * *
태현이 이다비 동생들과 신나게 고기를 먹고 있는 동안, 케인은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고 있었다.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야……!’
대회 우승! 막대한 상금 획득!
가족들의 시선 변화! 더 이상 밥 축내는 백수가 아니다!
김태현의 정체가 너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케인은 일단 이건 제쳐두고 생각하기로 했다.
너무 행복했으니까!
“야! 네가 케인 선수 맞…… 어? 케인 선수 맞죠?”
“?!”
케인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TV에서나 봤던 파이브 걸즈의 하연이 눈앞에 서 있던 것이다.
케인의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헉, 혹, 혹시 파이브 걸즈의 하연…….”
“맞는데요…… 이상하다?”
하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회사에서 봤던, 자기가 케인이라고 했던(실제로는 태현인) 사람과 너무 다르게 생겼던 것이다.
“팬, 팬입니다!”
“어…… 고마워요. 저도 그쪽 팬이에요.”
“감, 감사합니다?”
서로 혼란에 빠진 사이 훈훈한 대화가 오갔다.
케인은 하연의 그냥 팬이었고, 하연은 판온 대회를 챙겨보다가 케인의 팬이 되었다.
문제는…….
“어, 저기, 지금 뭔가 이상한데요.”
“네?”
“그 어떤 사람이…… 그쪽을 사칭하는 것 같은데…….”
하연은 침착을 되찾고 설명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어떤 놈이 당신을 사칭하고 있다!
설명을 듣던 케인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이, 이 자식……!’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케인도 이제 이런 일을 겪으면 바로 눈치를 챘다.
‘김태현 이 자식……!!!’
“김태현 그놈입니다!”
“네?”
“김태현 그놈이 사기를 친 거예요! 아주 나쁜 놈이라니까요!”
“헉! 김태현이요? 세연 언니가 그 사람 욕한 적 있었는데!”
“…….”
숨겨진 일을 들었지만 그건 그거고, 케인은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 태현을 욕하자!
사람은 원래 같은 사람을 싫어할 때 빠르게 친해지는 법.
제카스와 쑤닝이 그랬듯이, 하연과 케인도 그랬다.
같은 사기 피해자인 둘은 태현의 욕을 하며 빠르게 친해졌다.
“그 자식이 그랬다니까요?! 그게 말이 됩니까?!”
“정말 그랬어요!? 진짜 나쁜 사람이네! 잠깐만요. 그러면 제가 판온에 들어가서 찾아갔을 때 막 이상한 소리 하면서 도망친 것도 그 김태현이란 사람인 거죠?”
“아, 아니요. 그건 전데요…….”
갑자기 싸늘해지는 분위기!
하연의 눈빛이 차가워지자 케인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 그게 아니라! 어떻게 된 거냐면요! 암살자인 줄 알았어요!”
“네?”
“그게 설명하면 긴 이야기인데……!”
진땀을 흘리며 케인은 구구절절 설명했다.
태현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를 기분이었다.
* * *
“투기장 우승을 축하합니다. 이 명예로운 메달을 받으십시오.”
프리카 투기장의 정령 NPC가 나와서 태현에게 메달을 건넸다.
이세연이나 도동수, 김철수는 각자 알아서 보상을 받았고, 태현과 케인은 지금 들어와서 보상을 받고 있었다.
대회의 상금은 상금이고, 게임 내로도 보상이 있었다.
그만큼 큰 규모의 대회였던 것이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명성이 올랐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
태현은 깜짝 놀랐다.
보상이 클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레벨이 한 번에 3번이나 오른다고?
옆의 케인을 보니 태현보다 더 놀란 것 같았다.
태현처럼 레벨 업 제한이 걸린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레벨이 한 번에 거의 10 넘게 올랐을 거란 뜻!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좋긴 한데 이세연이나 도동수가 이만큼 올랐을 거라고 생각하니 좋아할 수가 없었다.
[행운이 4500에 도달했습니다.]
[칭호:억세게 운 좋은 사람을 얻었습니다.]
칭호:억세게 운 좋은 사람
당신은 대륙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따라올 수 없을 겁니다.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행운 관련 스킬 잠금.
[스킬 <행운 전환>을 얻었습니다.]
<행운 전환>
랜덤으로 스탯 하나를 고릅니다. 일시적으로 행운 스탯을 그 스탯으로 전환시킵니다. 행운 관련 스킬 페널티는 유지됩니다.
행운 스탯이 4500에 도달함으로써 얻은 새로운 스킬.
태현은 주먹을 불끈 쥐려다…… 말았다.
‘응?’
뭔가 좀 미묘했던 것이다.
일단 <행운 전환>에서 행운 관련 스킬 페널티는 유지된다는 건 납득할 수 있었다.
<신의 품격>은 행운 스탯에 따라 회피율과 치명타율에 버프를 주는 대신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를 올려 버리는 강력한 페널티 스킬.
이런 게 풀린다면 그냥 행운 전환으로 행운을 내린 다음 레벨 업을 하면 됐다.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문제는 랜덤으로 스탯 하나를 고른다는 것!
‘필요할 때 못 쓰지 않나?’
필요할 때 원하는 스킬을 고르지 못한다면 답이 없었다.
게다가 이 스킬이 쿨타임이 만만한 스킬도 아니었고…….
‘으, 그나저나 행운이 슬슬 진짜 위험한데.’
태현은 고민에 잠겼다.
행운이 4500. 스탯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았지만 태현은 마음 놓고 올릴 수 없었다.
올리면 올릴수록 레벨업이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적당한 수준에서 내리면서 유지하는 컨트롤이 필요했다.
‘행운을 내리려면…… 신수 소환은 용용이 있어서 안 되고, 아티팩트 제작인가?’
아티팩트를 제작할 때 허접한 하급 아이템을 제작하지 않고, 대작을 노리면 되긴 했다.
그런 대작 아티팩트에는 태현의 행운 스탯 소모도 옵션으로 들어갔으니까.
문제는 그런 대작을 만드는 데에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재료도 많이 필요하다는 것!
‘아, 진짜 할 건 많은데 적도 많고…… 뭐부터 해야 하나…….’
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그래도 태현은 망설이지 않았다. 빠르게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다.
“저기요.”
“?”
“이 상자도 받으셔야죠.”
“아. 예.”
생각에 잠겨 있느라 투기장의 정령이 말하는 걸 못 듣고 있었다.
투기장의 정령이 왠지 화난 얼굴로 태현에게 상자를 건넸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프리카 투기장 우승자의 황금 상자: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한 우승자에게만 주어지는 상자입니다.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케인. 너 뭐 받았냐?”
“나는 은 상자.”
“활약도에 따라 다르게 주는 건가?”
“넌 다른 거 받았냐?”
“황금 상자 받았지.”
“치, 치사하게 혼자……!”
“도동수보다 좋은 거 받았으면 만족해라.”
“…….”
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동수는 은 상자보다 낮은 등급을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