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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435화 (435/1,826)

§ 나는 될놈이다 435화

그러나 4경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 * *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도동수는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시작하기 전에 그렇게 다짐했는데!

태현이 어떤 개수작을 부리든 속지 않기로!

그런데 말 몇 마디에 홀랑 넘어가 요리를 먹고 함정에 빠지다니.

스스로 부끄러웠다.

‘됐어. 어차피 한 경기다. 한 경기만 더 지면 끝이야. 이제는 절대 속지 않는다!’

“동수야.”

“…….”

도동수는 무시했다.

태현과 대화해 봤자 이길 수 없다는 걸 이제 잘 알고 있었다.

괜히 같이 말 섞었다가 허점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나았다.

도동수는 무시했지만 태현은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무시하는 척하지만 듣고 있는 거 다 알고 있다.”

“…….”

“이제까지 가만히 있던 놈이 왜 이렇게 노골적으로 날뛰는지 좀 궁금해서 말이야. 너 제카스 만났냐?”

“……!!”

“맞나 보군.”

순간적으로 놀란 도동수의 얼굴을 보고 태현은 바로 확신했다.

‘이 자식이 어떻게?’

도동수는 경악했다. 방금 태현이 보여준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제카스와 만난 건 아무도 못 봤는데 대체 어떻게?

“제카스가 뭐라디? ‘손에 손잡고 김태현을 괴롭히자!’라고 했냐?”

“어떻게 알았지?”

“너야 뭐 누가 등 안 떠밀면 이렇게 못 나오는 놈이니까…….”

태현의 말에 넘어가지 않기로 했는데도 도동수는 발끈했다.

정말 말 하나는 타고난 놈!

“흥. 그렇다면 어쩔 거냐? 이제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 같잖은 요리 먹어줄 생각은 없고, 난 시작하면 바로 적들에게 덤벼들 거다. 내가 정신 지배 당하면 넌 할 수 있는 게 없지. 그리고 대회가 끝나면 제카스가 모은 놈들이 다 같이 입을 털기 시작할 거다.”

이대로 대회가 끝나면 ‘도동수 저 새끼 대체 뭐 하는 새끼냐’, ‘도동수 저거 뒷돈 받은 거 아니냐’ 같은 말이 나올 게 분명했다.

그래서 제카스는 판온1 때 랭커들 중 몇 명을 섭외해 대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언론 플레이를 시작할 생각이었다.

-김태현이 판온1 때 김태현이고 이걸로 인해 도동수와 둘이 팀 내에서 계속 싸웠다.

-도동수가 저렇게 행동한 것도 팀 내 불화 때문이다!

물론 크게 효과는 없을 것이다.

태현의 이미지는 도동수와 비교해서 압도적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한 번 시작하면 서로 진흙탕 속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대회에서 이야기가 나온다면…….

한 번 의심이 생기면 계속해서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동수의 말을 들은 태현은 웃었다.

“동수야, 네가 왜 맨날 나한테 졌는지 아냐?”

“……!!!!”

지는지가 아니라 졌는지.

도동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태현은 판온 2가 아니라 판온1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너, 너 이 샊…….”

“내가 원래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닌데, 네가 너무 열심히 하니까 말해주는 거야. 잘 듣고 교훈으로 삼아. 네가 맨날 지는 이유는 어설퍼서야.”

“이 개…… 아, 됐다.”

도동수는 안 듣는 척 고개를 돌렸다. 물론 그런다고 태현이 입을 다물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도 이렇잖아. 날 엿 먹일 거면 더 본격적으로 했어야지.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여서 소심하게 그게 뭐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도동수는 무시했다.

태현이 지금 하는 소리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지금 그가 태현을 엿 먹이기 위해 얼마나 막 나가고 있는가.

-4경기 시작! 4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오늘 사람을 어떻게 엿 먹이는지 본격적으로 알려주마.”

섬뜩한 말에 도동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뒤에는 태현의 무표정한 얼굴이 있었다.

타탓-

도동수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다. 판온1 때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젠장, 젠장, 젠장……! 아직도!’

“어디 한 번 열심히 해봐라. 네가 아무리 입을 털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오냐. 열심히 해주마.”

태현은 말과 함께 손을 들었다. 옆에 있던 케인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다가 결심한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으, 으, 으…… 진짜…… <노예의 쇠사슬>!”

적도 없는데 노예의 쇠사슬 스킬을 쓰다니. 누구한테?

답은 금방 나왔다.

촤르륵!

케인이 노예의 쇠사슬을 사용한 상대는 도동수였다.

“?!”

케인 앞으로 끌려온 도동수. 깜짝 놀란 도동수였지만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아까처럼 요리라도 먹일 거냐?! 그딴 건 안 통해!”

“말했잖아. 동수야. 넌 너무…….”

태현은 도동수에게 돌진했다. 도동수는 긴장했다. 요리? 마비 스킬? 대체 뭘 하려고?

콰아아앙!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경악했다.

태현이 선택한 건 팀킬이었다.

“……소심하다니까. 이 정도는 되어야지.”

* * *

케인에게는 미리 말해 놨다.

신호하는 순간 도동수에게 쇠사슬을 쓰라고.

아무리 도동수라도 쇠사슬을 맞고서 바로 팀킬을 당할 거란 예상은 하지 못할 것이다.

고작해야 요리나 그런 걸 추가로 당하지 않을까 경계하겠지.

태현은 각종 스킬들을 전부 사용해 폭딜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바로 도동수를 일격에 투기장 밖으로 내보내 버렸다.

“…….”

“…….”

이세연과 김철수는 경악해서 태현을 쳐다보았다.

투기장 내 관중석도, 방송국 관중석도 동시에 조용해졌다.

해설자들도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이세연이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야, 야…… 뭘 한 거야?! 너 미쳤어?! 뒷수습을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하려고.”

태현은 고개를 돌려 공중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외쳤다.

“내가 판온1의 김태현이다!!!”

1차 충격에 이어서 2차 충격.

그러나 그 충격이 끝나기도 전에 태현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밖의 관중석에도 제대로 들릴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로.

“내가 판온1때부터 했다는 걸 숨긴 건 자존심 때문이었어. 판온1은 판온1이고, 판온 2는 2니까. 괜히 판온1 때 키운 캐릭터로 판온 2에서 잘난 척하고 싶지 않았거든!”

‘거짓말하네…….’

이세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판온1 때 하도 적들을 많이 만들어서 아닌 척했겠지!

말했다면 판온 2 초반부터 고렙 암살자들을 달고 살았을 테니까!

“그런데 도동수 이 자식은 어떻게 알았는지 계속 귀찮게 굴더군. 판온1 때 일은 판온1에 묻고 와야지 판온 2에서 ‘복수를 하겠다’, ‘내가 망하더라도 널 엿 먹이겠다’ ……무슨 이런 지겨운 놈이 있냐? 어떻게든 참아줬지만 이제는 필요 없다. 의도적으로 적의 편을 드는 스파이는 필요 없어!”

맞불 작전!

옆에서 태현을 보고 있던 이세연도, 투기장 밖으로 쫓겨난 도동수도, 생방송으로 보고 있던 제카스도 상황을 깨달았다.

태현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이렇게 먼저 나서서 ‘흑흑 눈물을 머금고 도동수의 목을 땄습니다’라고 이유를 설명한다면, 나중에 제카스나 도동수가 ‘아니, 그런 게 아니라’하며 언론플레이를 하려고 해도 거의 먹히지 않았다.

태현이 꺼낸 이유들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저런 숨겨진 사실들을 대놓고 공개한 순간 어지간한 공격은 통하지도 않을 것!

“판온1에서의 일 때문에 불만 있는 놈들은 나한테 와서 깃발 꽂아라!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대회에서 이게 무슨 추잡한 짓이냐!”

태현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이제까지 도동수가 보여줬던 자폭을 설명해 주는 말!

웅성웅성-

“그런 거였어?”

“와, 너무 찌질하지 않냐? 판온1 일로 지금 대회에서 이런 거야?”

“다른 팀들은 예선 힘들게 뚫고 올라왔는데 자기는 그냥 초대받고 올라왔다고 저러는 거야.”

밖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태현이 알 리 없었다.

그러나 태현은 확신했다.

이걸로 먼저 선점했다!

태현은 이세연을 쳐다보았다.

“이세연.”

“왜?”

“시체 생겼으니까 이걸로 언데드나 소환하자. 정예지?”

“…….”

* * *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 이 상황에서, 팀 에이트만이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팀 에이트 잘못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상대 팀이 게임 시작하자마자 한 명을 팀킬하고 ‘내가 판온1 김태현이다!’라고 외쳤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할 테니까.

“도동수가 없는데요?! 안 잡혀요!”

“……말도 안 돼! 이 권능 스킬은 회피할 수 없는데?!”

도동수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사제 플레이어는 혼란스러워했다.

이걸 피할 방법이 있었다면 2경기에서 왜 쓰지 않았지?

“침착해라. 상대방도 머리가 있다면 우리 방법을 깨뜨릴 수 있겠지. 도동수의 위치가 안 보인다는 건…….”

류태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도동수의 위치가 안 보이는 건 꽤 커다란 문제였다.

지금 그들의 전략이 잘 먹혀들어 가는 건 상대 팀의 불화와 그걸로 인해 도동수가 약점이 된 덕분이었다.

그런데 도동수의 위치가 갑자기 안 보인다니.

도동수가 스킬을 썼다기보다는 다른 팀원이 써줬을 가능성이 높고, 그런 거라면…….

화해했을 수도 있었다.

‘가능성 있다. 아무리 팀워크가 개판이라도 지금은 벼랑 끝까지 몰린 상황이니까.’

물론 도동수는 벼랑 끝까지 몰려도 태현과 같이 죽겠다는 사람이었지만 류태수는 그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어떻게 하죠? 2, 2, 1이나 1, 1, 3으로 움직일까요?”

도동수의 움직임이 안 잡힌다면 무난한 건 그런 조합이었다.

류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상대방이 예측하고 있을 거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노리고 있을 거 같군. 그렇다면 전 판처럼 4:1로 움직인다. 4명이서 상대를 무조건 제압해라. 꼭 도동수에게 정신 지배를 쓸 필요는 없다. 어렵지만 4명이라면 제압해서 쓸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상대방이 가장 싫어하는 짓을 해라.

류태수가 판온1의 김태현 플레이에서 배운 것이었다.

도동수를 잡을 수 없다면 다른 아무나 잡아도 됐다. 케인만 해도 충분했다.

‘나는 시간을 끌어야겠군.’

타타탓-

중앙 진영으로 달려간 류태수는 흠칫했다.

정면 맞은 편에서 태현 혼자서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케인은?’

대회 내내 케인과 같이 다녔던 태현이었기에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쇠사슬 콤보에 잘못 맞으면 훅 간다!

“케인 찾나 보네. 케인 없다.”

“…….”

류태수는 대답 대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의심도 많네. 없다니까.”

“적을 믿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지. 김태현. 여기 혼자 왔나?”

“혼자 왔는데.”

“이유야 모르겠지만 잘 됐군. 한 번 이렇게 싸워보고 싶었다.”

스르릉-

류태수는 무기를 뽑아 들었다. 태현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한 번 싸워보고 싶었다니, 뭐 주장끼리 승부를 하는 그런 걸 말하는 건가? 아니면 누가 최고 딜러인가, 이런 거? 생긴 건 되게 무뚝뚝하게 생겼는데 의외로 감성 넘치네.”

“……그런 게 아니다. 너를 한 번 쓰러뜨리고 싶었을 뿐이다.”

“나를? 왜? 너 설마 판온1 했었냐?”

알아서 찔리는 태현이었다. 그러나 류태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판온1은 구경만 했지, 하지는 않았다.”

“뭐야, 그러면? 원한이 있을 놈도 아닌데.”

“나는 김태현의 팬이었다.”

“그, 그러냐?”

“너 같은 놈이 경박하게 이름 같다고 김태현을 따라 하는 게 날 불쾌하게 만들었다.”

“어, 음…… 그게…….”

방금 일어난 일은 상대가 못 봤을 테니 저런 반응도 어쩔 수 없었다.

태현은 미묘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김태현을 따라 할 거라면 최대한의 경의를 보이면서 진지하게 따라 해도 모자라는데 감히…… 덤벼라. 김태현. 누가 더 김태현에게 진지하게 배웠는지 보여주마!”

“……너 끝나고 우리 쪽 영상은 제발 보지 마라.”

태현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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