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34화
제카스가 와서 도동수를 꼬드겼다면 말이 됐다.
둘 다 태현에게 당한 놈들이니 서로 뜻이 통했으리라.
‘성가시게…….’
아까 대기실에서 태현은 눈을 감고 다른 걸 고민하고 있었다.
이세연은 ‘패배의 충격 때문인가?’ 하고 넘어갔지만, 사실 아니었다.
태현은 이걸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동수의 수상쩍은 태도. 도동수가 갑자기 혼자 미쳐서 안 하던 결심을 할 리는 없을 테니…….
‘방법은 있지만 그 뒤가 문제군.’
결승전에서 우승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개 생각해 놓고 있었다.
문제는 그 뒤였다.
뒷감당을 어떻게 하느냐?
도동수 같은 놈하고 진흙탕 싸움을 하느라 같이 밑으로 추락하는 건 태현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미지가 망가지는 건 괜찮았지만 도동수의 속셈대로 같이 망가지는 건 절대 안 됐다.
‘어차피 제카스나 도동수 같은 놈들이 손을 잡았다면 판온 1때 랭커 놈들도 계속 나올 거다. 그놈들이 계속 입을 털어대면 내가 아무리 때우고 때워봤자 한계가 있을 거고. 아무래도…… 각오를 해야겠군.’
태현은 각오를 다졌다.
원래 영원히 갈 거라고 생각한 비밀은 아니었다.
적당히 판온 2의 캐릭을 성장시키면 공개하려고 했던 비밀!
* * *
2경기도 패배.
이세연은 태현을 따로 불러내서 물었다.
“아까 말했었지. 생각이 있다고. 말해줄래?”
“말하는 건 좋은데 네가 화를 낼 거 같아서.”
“……대체 뭔 방법을 쓰려고…….”
“나하고 도동수가 사이가 더 안 좋아질 방법이지.”
“뭐라고 하지는 않겠어. 나도 지금 상당히 화가 났으니까. 좋아. 내가 뭘 해야 해?”
“평소대로 해. 다만 좀 더 공격적으로 해도 될 거야. 김철수와 같이 움직여서 진지로 간 다음, 아무도 없으면 김철수를 두고 너는 다음 진지로 이동해. 상대도 어차피 한 명일 테니까.”
2명, 3명을 상대하는 팀 에이트의 조합은 1명, 4명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세연이라면 충분히 일대일이 가능할 테니 놀려둘 필요가 없었다.
‘아마 우리 인원의 위치를 파악하는 건 사제들이겠지. 경기가 시작되고 흩어지면 파악하기 힘들 거고.’
-한국 대표팀이 1, 2경기를 속수무책으로 패배하다니, 누가 알았겠습니까! 무패 전승으로 무적으로 보이던 한국 대표팀이 이렇게 수세에 몰립니다!
-이렇게 되면 첫 대회의 영광스러운 우승컵을 가져가게 될 팀은 팀 에이트일까요?
-그렇다고 봐야겠죠. 지금 전혀 대처할 방법을 세우지 못하고 있어요.
전 프로게이머 해설가인 배중환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전 실망했습니다. 한국 대표팀에게요. 저 정도도 뚫지 못하고 무너지다니요.
-아하하. 배중환 해설자님 말씀이 좀 독하시네요.
-지금 침착하게 상대하면 팀 에이트의 전략도 분명히 허점이 있거든요. 그런데 도동수 선수는 계속 덤벼들고 있어요. 저게 나 잡아달라는 거지 뭡니까! 저렇게 먼저 당해 버리면 다른 팀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잖습니까. 최악입니다, 최악!
배중환 해설자가 침을 튀겨가며 비판을 해댔다.
김수아 캐스터와 동생 배중열이 말리려고 했지만 배중환은 날 선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대회 시작 전에 MBS 쪽에서 한국 대표팀 선발 기준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돈 적 있었잖습니까. 팀원들끼리의 제대로 된 대화 없이 너무 멋대로 뽑은 거 아니냐고.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밖에 더 되겠습니까?
‘형, 미쳤어?!’
배중열은 기겁해서 배중환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카메라 화면에 안 보이는 절묘한 공격!
MBS 대회에서 해설자가 이런 소리를 했다가는 크게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아무리 맞는 소리라고 해도 그렇지!
‘미안하다, 동생아!’
정강이를 얻어맞은 배중환이 정신을 차렸다.
당황하던 김수아가 재빨리 수습에 들어갔다.
-아직은 모릅니다! 한국 대표팀도 저력이 강한 팀이니까요.
-그렇습니다. 강팀의 저력은 언제나 이럴 때 나오는 법이죠. 이제까지 기상천외한 전략을 보여줬던 것처럼, 김태현 선수가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이미 게시판에서는 벌써 ‘방송사고 났다ㅋㅋㅋㅋㅋ’, ‘배중환이 MBS 깜 ㅋㅋㅋㅋㅋㅋㅋ’ 같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 * *
3경기가 시작되고 나서 태현이 가장 먼저 한 건 요리였다.
“????”
“가능한 버프는 모두 받고 가야지. 1, 2경기 동안 요리 재료 모아놨으니까 먹고 들어가자.”
“……그, 그래.”
이세연은 황당했지만 아까 태현이 말한 게 있어서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철수도, 케인도 순순히 요리를 기다렸다.
급조한 돌냄비에 간단한 스튜를 끓였지만, 원래 태현의 요리 스킬들은 이런 상황에서 빛이 났다.
적고 한정된 재료만으로도 기적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
물론 도동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려고 했다.
그 모습에 케인이 울컥해서 외쳤다.
“야. 넌 안 먹냐?”
“…….”
대답도 하지 않고 가려는 도동수.
“이 자식이 진짜 기껏 만들어서 버프 주려고 하니까…… 야! 너 적팀 스파이지?!”
무심코 정답을 짚은 케인!
태현은 속으로 뿜을 뻔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케인이었지만 상황은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먹고 가 새끼야! 또 정신 지배 당해가지고 방해하지 말…… 잠깐, 정신 지배당할 거면 안 먹는 게 낫겠다. 먹지 마라.”
“……내놔라.”
태현은 어떻게 도동수에게 요리를 먹일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케인 덕분에 일이 쉬워졌다.
도동수도 대놓고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케인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요리도 안 먹고 가면 너무 수상할 테니까.’
1, 2경기는 혼자 공을 독차지하고 싶어서 돌격을 했다고 변명을 해도, 지금 요리를 안 먹고 가는 건 좀 변명하기가 뭐했다.
도동수는 나중에 대회가 끝나면 제카스와 손을 잡고 언론플레이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최대한 할 수 있는 건 할 생각!
덥석-
우물우물!
‘맛있긴 맛있군.’
도동수는 이 스튜가 상황에 안 맞게 쓸데없이 맛있다는 생각을 했다.
[즉석에서 만든 분노의 스튜를 맛봤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오릅니다.]
[몸이 마비됩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
도동수는 눈을 깜박였다.
방금 뭐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도동수에게 다가가 친근한 태도로 어깨에 팔을 올렸다.
“내가 마비 재료 찾느라 1, 2경기 동안 좀 뺑뺑이 돌았다. 네가 안 먹으면 어쩌나 싶었지.”
“이런 미친놈……!”
“하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그러면 안 되는데.”
“?!”
-살아 움직이는 폭탄!
태현은 바로 도동수의 몸에 손을 대고 스킬을 사용했다.
케인은 그걸 보고 경악했다.
저 요리에 저런 함정이 있었구나!
“도동수를 폭탄으로 쓰려고 요리를 한 거였냐?!”
“버프도 받고 도동수도 폭탄으로 쓰고…… 너 연기 잘하더라.”
태현의 말을 들은 도동수가 핏발 선 눈으로 케인을 노려보았다.
케인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난 몰랐어!”
“자식. 연기 그만해. 가끔 보면 네가 나보다 더 사악하단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진짜 몰랐다니까?!”
그러나 도동수의 눈에는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가증스러운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업어라. 케인. 움직일 거니까. 시간 없다!”
“……에라 모르겠다!”
케인은 도동수를 냉큼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자기가 폭탄이 된 게 아닌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
이세연과 김철수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셋을 보며 서로 마주 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 * *
“도동수, 김태현, 케인이 같이 움직입니다.”
“이것들 전 판에 져놓고 또 똑같이 움직여? 바보들인가? 학습 능력이 없네.”
“시끄럽다. 집중해라. 태수한테 한 소리 듣고 싶냐?”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 좀 심한데? 우리가 너무 강한 건가?”
두 사제는 시시덕거리며 웃었다.
그럴 법도 했다.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무패전승으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한국 대표팀이 처참하게 2연패를 한 것이다.
당연히 긴장이 풀릴 수밖에 없었다.
“내 생각에 상대 팀 선수들이 사이가 안 좋다는 게 진짜인 거 같아.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돼. 도동수 봤지? 아무리 욕심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뇌가 있는 이상 그렇게 개돌을 할 수가 없다니까.”
“온다!”
넷은 긴장한 얼굴로 자세를 잡았다.
이제까지는 쉽게 이겼지만 상대는 만만히 볼 수 없는 상대였다.
바라는 게 있다면 도동수가 아까처럼 먼저 돌진해서 쉽게 스킬에 걸려주는 것!
“위에! 위다!”
“허튼수작을……!”
위에서 무언가 빠르게 날아오는 걸 발견한 팀 에이트 플레이어들은 재빨리 움직였다.
“……도동수다! 잡아!”
탱커 한 명이 방패를 들더니 위에서 떨어지는 도동수를 후려쳤다.
퍽!
-상급 방패 밀쳐내기!
가까이 붙은 상대를 후려쳐 스턴 상태로 만드는 스킬.
도동수를 제압해서 정신 지배를 걸려는 상황에 딱 맞는 스킬이었다.
“잡았다! 하하!”
“빨리 묶어! 정신 지배 걸어!”
팀 에이트 플레이어들은 신이 나서 외쳤다.
2경기처럼 3경기도 쉽게 풀리려나 보다!
도동수를 정신 지배만 하면 지려고 해도 질 것 같지 않았다.
“읍읍! 읍읍읍!”
“?”
그런데 도동수의 입에 급조한 것 같은 조잡한 재갈이 물려 있었다.
‘이런 기본 장비가 있었나?’
의문을 품기도 전에, 도동수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어…….”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일단 한 경기는 간신히 이겼군.”
앞쪽에서 거대한 폭발이 터져 나오는 걸 보며 태현은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하필 네 명이 모여서 도동수를 제압하려고 덤벼든 덕분에 인간 폭탄의 효과를 제대로 맛보게 되었다.
케인은 복잡한 표정으로 폭발을 지켜보았다.
원래라면 저게 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니 웃으며 볼 수가 없었던 것!
“야. 근데 저렇게 죽으면 도동수가 킬한 걸로 뜨냐, 내가 킬한 거로 뜨냐?”
“지금 그게 중요하냐?!”
* * *
-이거죠! 역시 이거죠! 김태현 선수에게는 이게 있어요!
-저기, 음, 일단 도동수 선수가 한 거니까요…….
김수아는 흥분한 해설자를 달래고 최대한 중립적으로 말하기 위해 애썼다.
물론 그녀가 봐도 태현이 도동수한테 폭탄을 주렁주렁 달아서 자폭 공격을 한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진행자가 태현만 칭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말 대단합니다. 상대의 허점을 정확하게 찔렀어요. 더 대단한 건 상대방이 앞으로 정신 지배 스킬을 쓰기 힘들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또 저렇게 폭탄을 들고 있다면 오히려 피해를 볼 수 있거든요. 팀 에이트는 많이 까다로워졌겠는데요.
-이걸로 한국 대표팀도 기세를 회복하고 다시 팽팽한 접전으로 흘러갈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류태수는 흔들리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라. 저건 요행이니까. 두 번 쓰지는 못할 거다.”
“예?”
“한국 대표팀은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게 분명해. 이건 절대 틀릴 리 없다. 그런 팀이 저런 전략을 썼다고? 퍽이나 잘 썼겠다. 분명 억지로 썼을 거고, 그거 때문에 사이는 더 삐걱거릴 거다.”
“그렇지만 만약에 다음 경기에도 도동수로 함정을 파면요?”
“그러면 거리를 두고 제압하면 되겠지. 어차피 시간이 좀 더 걸릴 뿐 거리를 두고 제압하는 건 가능할 텐데?”
믿음직한 주장의 말에 팀원들은 충격에서 벗어났다.
다 이긴 경기가 갑자기 네 명이 탈락하면서 뒤집힌 충격!
이런 충격은 오래가는 충격이었다. 류태수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무너졌을지도 몰랐다.
“다음 경기는 같잖은 수작 부릴 틈도 없이 끝내 버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