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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430화 (430/1,826)

§ 나는 될놈이다 430화

질투의 눈빛으로 활활 타오르는 선수들을 보며 양성규는 한숨을 쉬었다.

나이 먹을 대로 먹은 놈들이 이러고 있다니.

이제 철들 때도 되지 않았는가!

물론 이러는 양성규도 판온에 들어가면 나이도 잊고 ‘형님! 저놈들을 모두 다 쓸어버립시다!’ 이러고 다니긴 했지만…….

“너희들이 춘식이를 질투하는 건 알겠는데…….”

“질투하는 거 아닙니다!”

“우리가 왜 춘식이를 질투해요! 물론 잘나가고 잘생겼고 여자친구도 있지만!”

“……방송에 나오는데 춘식이를 죽어라 두들겨 팰 수는 없잖냐. 적당히 맞춰줘야지.”

일상을 다루는 예능인데, 체육관에서 개처럼 두들겨 맞는 배우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출연진들이 원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소소하게 운동을 즐기는 김춘식의 모습일 게 분명했다.

“관장님! 요새 시청자들은 진실을 원합니다! 방송용으로 가식적으로 촬영하다니! 그러면 안 되죠!”

“시끄럽다.”

“우우! 우우우!”

선수들의 항의에도 양성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상철아, 네가 맡아서 해라. 너 정도면 괜찮겠지. 적당히 하는 거 잊지 말고.”

“네!”

김상철은 반색하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양성규는 생각했다.

‘젊은 놈들 중 가장 뛰어나니까…… 나름 스타성도 되고.’

김상철은 체육관에서 기대하고 있는 선수 중 하나였다.

이미 몇몇 대회에서 메달을 확보한 전적이 있을 정도!

젊고 실력 있고 싸울 줄 알고, 거기에 양성규와 같이 김태산의 길드에 들어가 열심히 한다는 점이 플러스였다.

‘방송에 얼굴 한 번 내밀면 상철이에게도 좋겠지.’

격투기 쪽에서 나름 잘나간다고 해도 결국 보는 사람들만 보는 리그였다.

오래 활동하려면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이름을 인식시켜야 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대회에서 메달을 따든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든 간에.

잘나가는 배우인 춘식이와 같이 스파링을 하게 되면 이름 한 번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거기서 더 관심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군요! 혹시 다음에 파티 플레이하실 때 저도 불러주시겠습니까? 꼭 같이하고 싶습니다!”

“?”

뒤에서 익숙한 김춘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양성규는 고개를 돌렸다.

김춘식과 PD가 태현을 사이에 두고 신나서 떠들고 있었다.

‘……쟤는 왜 아직도 저기 있냐?!’

* * *

“아. 그렇군요. 그러면 저 같은 경우에는 중갑보다는 경갑으로 가는 게 더 낫겠군요.”

김춘식은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나서 태현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마치 몇 년은 어울린 것처럼 친근한 태도!

옆에 있는 PD는 말릴 생각을 안 하고 같이 부추기고 있었다.

“다음에 같이 파티 플레이 하기로 했는데 같이 하면 좋겠지?”

“꼭 같이 하고 싶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잡혀가지고…….’

태현은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정수혁과 김세형은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방송국 사람들과 배우들이 저렇게 친근하게 대하다니!

물론 그건 둘의 생각이었고, 태현은 귀찮을 뿐이었다.

귀찮아진 태현은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아. 이세연 선수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초보자들 데리고 다니는 건 저보다 이세연 선수가 잘하죠.”

바로 이세연한테 떠넘기기!

실제로 네크로맨서인 이세연은 초보자들 데리고 몰이 사냥하기에도 더 편할 것이다.

소환수로 지켜주는 것도 가능하고!

“네? 이세연 선수한테 여쭤봤을 때에는 김태현 선수를 추천하시던데요.”

“?!?!”

태현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가 먼저 당하다니!

‘이세연, 두고 보자!’

물론 이세연은 ‘방송국 사람들하고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이건 김태현한테 양보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추천한 것이었다.

“야, 태현아. 너는 왜 안 가고 거기 있냐?”

“아. 관장님. 죄송합니다. 지금 김태현 선수하고 판온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PD는 양성규를 보며 웃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양성규는 입맛을 다셨다.

없었으면 태현을 쪼았을 텐데!

“언제 시작합니까? 빨리빨리 하고 끝냅시다.”

“그러죠! 준비 다 됐으니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요?”

카메라가 준비되고 시작 신호가 들어가자 스태프들도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놀고 있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숙련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김춘식 혼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태현에게도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건 거의 둘이 같이 나온 거라고 봐도 되는 수준!

우연히 태현을 만난 PD가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기회를 그냥 날릴 수야 있나.’

판온 대회의 성과로 젊은 층 사람들에게 인기가 폭발하고 있는 태현이었다.

* * *

“야! 태현아! 장난하냐!”

“넌 다른 방송 나가도 되잖아! 왜 우리들 노는 데 와서 이러는 거야!”

“맞아! 빨리 가라고!”

잠깐 쉬는 시간.

체육관 선수들은 태현에게 달려들어 항의했다.

체육관에 오래 다닌 선수들은 당연히 태현을 알고 있었다.

“아니, 제가 나가고 싶어서 나간 것도 아닌데…….”

“나가고 싶어서 나간 게 아니라니. 뭐냐! 자기과시?!”

“우리도 TV에 얼굴 한 번 내밀어보자! 넌 쉽게 나갈 수 있잖아!”

“나도 인기 좀 얻고 싶다고! 넌 내가 소개팅 나가면 무슨 소리 듣는 줄 알아?”

진심이 담긴 항의!

처절한 항의에 태현은 살짝 미안해졌다.

원래 이런 걸로 절대로 미안해하지 않는 태현의 마음을 흔들릴 정도의 호소였던 것이다.

“에이. 알겠어요. 좀 띄워드리면 되죠?”

“!”

태현의 말에 선수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지금 저 소리는…….

“이 다음에 스파링 좀 나올 거 같은데 올라오세요.”

잡담하는 내용은 촬영이 끝났고, 이제는 김춘식과 태현이 잠깐 스파링하는 모습을 촬영할 차례였다.

그 스파링 상대로 나온다면 방송에 충분히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거기서 멋진 모습을 보인다면?

제대로 폼을 잡을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정수혁은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선배님이셔. 마음 씀씀이가 다른 사람들과 달라!’

그러나 정수혁과 달리, 태현을 오래 봐서 잘 아는 선수들은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어…….”

“음…….”

“그게…….”

갑자기 각자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선수들!

“???”

정수혁도 의아해했고, 스파링이 준비되는 동안 기다리고 있던 PD도 의아해했다.

상황을 아는 양성규만 이해한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여기 있는 선수들은 다 한 번 정도 태현과 맞붙어 본 적이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태현에게 두들겨 맞은 적이 있었다. 그것도 그냥 두들겨 맞은 게 아니라 개처럼!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선수들은 서로 떠밀기 시작했다.

“야, 네가 해라. 네가 저번에 태현이랑 맞붙고 싶다면서.”

“내가 언제!? 너 저번에 태현이도 이제 이길 수 있다면서. 네가 해라.”

“태현아! 얘가 저번에 네 욕했다! 얘랑 해라!”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PD가 혼란스럽다는 듯이 양성규에게 물었다.

“지금 왜 저러는 거죠?”

“태현이랑 스파링했다가는 카메라 앞에서 망신당할 테니까 저러는 거요. 쯧쯧. 저놈들 아직 멀었네.”

“김태현 선수가 아니라 저분들이 망신을 당한다고요?!”

PD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한쪽은 프로게이머, 다른 한쪽은 전문 격투기 선수들.

그런데 전원이 다 겁을 낼 정도로 태현이 강하단 말인가?

물론 태현의 얼굴이 사람 한 명 정도는 묻은 것처럼 살벌하게 생기고 덩치도 조폭처럼 크긴 했지만…….

“?”

“힉!”

PD의 시선을 느낀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그걸 본 PD는 지레 찔려서 움찔했다.

‘앞으로 대할 때 조심해야겠다.’

선수들이 서로 떠밀면서 아무도 나서지 않자 태현은 최대한 인자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에이, 진짜 봐주면서 할게요. 띄워드린다니까요.”

‘오, 저러면 되겠군.’

PD는 태현의 말에 선수들을 둘러보았다. 저렇게까지 해주는데 설마 선수들이 피하겠어?

“안 믿어, 새끼야!”

“네 말을 믿느니 밥 사준다는 관장님 말을 믿겠다!”

“봐준다고 해놓고 나중에 ‘싸우다 보니 잊었어요~’ 이러는 게 몇 번인데! 꺼져!”

격렬한 거부 반응!

“…….”

PD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사실 김태현이란 선수를 잘못 판단한 게 아니었을까?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분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상철은 추한 모습을 보이는 선배 선수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선배님들. 아무리 저 김태현이가 관장님 친구분 아들이셔도 그렇지 저렇게 띄워줄 필요는 없잖습니까! 우리도 자존심이 있는데!”

“얘 지금 뭐라는 거냐?”

“뭔 개소리야 미친놈아. 띄워주기는 누가 띄워줘. 맞기 싫어서 이러는 건데.”

선배들의 진심 어린 말에도 김상철은 고개를 흔들었다.

못 믿겠다는 태도!

여기서 태현과 직접 맞붙어 본 적이 없는 건 김상철뿐이었다.

덕분에 겁 없이 패기 넘치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듣고 싶지 않습니다! 다들 하기 싫으면 제가 하겠습니다. 대신 진심으로 할 겁니다!”

“어…….”

“진짜?”

김상철의 말에 선수들은 서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빛을 교환했다.

-야. 쟤가 한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후배한테 이런 걸 시키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최후의 양심!

선배가 된 입장에서 결과가 뻔한 싸움을 붙여야 한다니.

-그러면 네가 나갈래?

-하하하. 그냥 상철이 시키자. 상철이가 이길 수도 있잖아.

-…….

‘넌 뭔 개소리를 하냐’는 눈빛이 동시에 쏟아졌다.

-미안. 어쨌든 상철이도 몇 대 맞으면 정신 차리겠지.

-맞아. 우리는 상철이한테 교훈을 주려고 이러는 거야. 결코 우리가 겁나서 이러는 게 아니야.

“그래! 힘내라!”

“상철아! 우리는 너를 믿는다!”

“?”

갑자기 쏟아지는 뜨거운 응원.

김상철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일단 허락은 떨어졌으니 양성규에게 갔다.

“관장님, 제가 하겠습니다!”

“뭘?”

“김태현하고 스파링이요!”

“……저놈들이 시켰냐?”

양성규는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선배라는 놈들이 치사하게 후배한테!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조종당한 거야, 인마! 너 스파링하면…….”

양성규는 말끝을 흐렸다.

김상철이 태현과 싸운다면 결말이 뻔히 보였던 것이다.

김상철이 뛰어난 선수인 건 사실이었지만, 태현은 격이 달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재능덩어리 그 자체!

그런 태현과 부딪힌다면 김상철이 좌절할 게 뻔했다.

‘아. 어떻게 말해야 이놈이 상처를 안 받지?’

양성규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걸 오해했는지 김상철이 진지하게 말했다.

“조심해서, 배려해 주면서 하겠습니다. 다치게 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어…… 그래…….”

결국 할 말을 찾지 못한 양성규였다.

‘그래. 상철이가 적당히 하면 태현이도 적당히 하겠지.’

그러나 김상철은 적당히 할 생각이 없었다.

‘아주 제대로 망신을 시켜주마.’

김상철에게 태현은 김태산의 아들이란 것만 믿고 날뛰는 재수 없는 놈이었다.

한 번 콧대를 꺾어놓으면 좀 고분고분해지겠지!

의욕에 가득 차서 주먹을 부딪히는 김상철.

그걸 본 선수들이 양성규에게 우르르 몰려왔다.

“왜, 이제 걱정되냐? 응?”

“아뇨. 상철이가 태현이랑 붙으면 춘식이랑은 스파링 못 할 테니까 저희 중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헤헤.”

“……이 자식들이 진짜!”

폭발한 양성규가 글러브를 집어 던지며 선수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악! 관장님! 왜 이러세요! 카메라! 카메라 있어요!”

“전국에 폭력 체육관으로 나오고 싶으신 겁니까!”

그걸 본 스태프가 물었다.

“이건 찍지 말까요?”

“무슨 소리야! 찍어! 재밌잖아!”

PD는 신이 나서 외쳤다.

오늘은 행운의 날이었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가득!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PD는 후회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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