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29화
“네? 합격이요?”
합격이란 소리를 들었는데도 김세형은 기뻐하지 못했다.
오히려 당황스러워하는 눈치!
“왜. 싫어?”
“아, 아니요. 좋은데요.”
“그래. 기쁘지?”
“네…….”
“기쁜데 왜 그렇게 시무룩한 표정이야? 웃어. 웃으라고.”
“하, 하하하?”
“그래. 그렇게 웃어야지.”
“하하하하…….”
김세형은 두들겨 맞은 충격으로 약간 넋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정신이 돌아오자 기쁨과 걱정이 동시에 몰려왔다.
어쨌든 시험을 통과했고 같이 다니면서 배울 수 있게 됐다는 건 기쁘긴 했다.
판온에서 태현은 최고였으니까!
그렇지만…….
‘아, 왜 이렇게 무섭지?’
오늘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소문이 도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
‘동환이 형 말을 믿을걸……!’
태현에게 덤볐다가 두들겨 맞은 것 때문에 원한을 품고 있는 김동환.
매번 술만 마시면 ‘김태현 그놈이 말이야! 어! 아주 나쁜 놈이야!’라며 추태를 부렸다.
처음에는 ‘아, 정말 그런가요?’ 했던 후배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저 인간 언제까지 저러냐?’로 바뀌었다.
그리고 태현이 방송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뒤집혔다.
-저거 그냥 자기가 시비 걸어놓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맞아. 그런 거 같아. 김태현 선배가 그럴 사람 같지는 않더라.
김세형도 김동환의 말을 믿지 않고 있었지만, 이제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두들겨 맞은 게 분명해!’
김세형이 두려움과 걱정에 떨고 있는 동안, 태현은 시원해진 얼굴로 정수혁에게 말을 걸었다.
“재밌었다. 그렇지 않냐?”
“…….”
“그런데 너 나한테 뭐 이야기할 거 있다고 하지 않았나? 저거 말한 거야?”
태현이 김세형을 저거라고 말한 게 신경이 쓰였지만 정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른 거 때문에…….”
“뭔데?”
“제가 제안을 받았습니다.”
정수혁은 간단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 대회에서 예선 탈락을 하긴 했지만, 정수혁이 보여준 ‘실력’ 때문에 제안을 해온 팀이 있다고.
정수혁의 말을 듣던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실력?”
“…….”
“아니. 왜 부끄러워하고 그래. 운도 실력이지!”
“아닙니다……!”
태현이 격려를 해주니 그게 더 마음이 아팠다.
“근데 제안이 들어온 거면 좋은 거 아닌가? 넌 어떤데. 해보고 싶냐?”
“……해보고 싶긴 합니다!”
정수혁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태현처럼 프로게이머로 뛰어보고 싶었다.
대회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태현이 먼저 앞서서 간 길은 그대로 정수혁의 목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해보면 되지 않나? 뭐가 문제인데?”
“그쪽에서는 일단 연습생으로 시작해보라고 하더군요. 실력을 보여주면 올려주겠다고.”
“음…… 그럴 수 있지.”
“그리고 합숙을 하면서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그것도 그럴 수는 있겠지.”
예전 게임과 달리, 가상현실게임은 캡슐에 들어가면 어디 있는지 상관없이 같이 플레이할 수 있었다.
굳이 합숙이 필요한가 싶었지만 태현은 뭐라고 하지 않았다.
팀이 그렇게 한다면 이유가 있는 거겠지!
“아, 역시 다 그런 건가요?”
“크게 이상한 건 없는데?”
“그렇군요! 저는 그 비용이나 그런 걸 일단 제가 내야 한다고 해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지.”
태현은 정색하며 말을 잘랐다.
“네?”
“뭐 하는 놈들인데 연습생 시켜준다면서 돈을 받아가? 미쳤냐? 뭐 이런 사짜 같은 놈들이…… 이름 내놔봐.”
돈에 관해서는 철두철미한 태현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조건에서 사기는 거의 확실!
“팀 XD? 여기 뭐 하는 곳이야?”
태현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런 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여보세요?
“어. 나야. 너 혹시 팀 XD란 곳 알아?”
-……다짜고짜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가…… 너 내가 바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이세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녀 주변 사람들 중에서 태현처럼 그녀를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바빠?”
-그건 아닌데…….
“그러면 물어봐도 되겠네.”
-…….
“그래서 뭐 하는 곳인지 아냐고.”
-프로게이머 팀이잖아…… 거기는 왜? 너 혹시 제안받았어? 받았구나?
말하던 이세연은 손뼉을 쳤다. 태현 정도 되는 선수가 제안을 안 받을 리 없었던 것이다.
“내가 받은 건 아니고 내가 아는 사람이 받았어.”
-그래? 너는?
“나는 못 받았지.”
-정말로? 말이 안 되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서 팀 XD란 곳이 어떠냐고.”
-음. 거기 소문 별로 좋은 편 아니야. 대우도 안 좋고 안에서 안 좋은 말들도 이것저것 들리고. 추천하지는 못하겠는데.
“그래. 알겠어. 고맙다. 이만 끊을게.”
-야, 잠깐만. 너 할 이야기만 하고 끊는 게 어디 있…….
뚝-
대답을 얻은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야. 소문 안 좋단다. 여기는 가지 마라.”
태현은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에 옆에서 뻗어 있던 김세형이 태현을 황당하게 쳐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기회도 아무 때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저렇게 쉽게 말하다니.
조금 더 설명을 하거나, 대신할 방법을 말해줘야 하지 않나?
그러나 정수혁의 반응은 더 단호했다.
“네. 그러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정수혁!
“…….”
그러는 사이 양성규가 다가왔다.
“아저씨.”
“너희 언제까지 있을 거냐? 아까 그 친구들은 다 나갔던데.”
“다 끝났습니다. 이제 갈 거예요.”
“그래. 빨리 가라.”
양성규가 시계를 확인하며 태현을 재촉하자 태현은 의아해했다.
“뭡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좀 있으면 방송국 사람들 오거든.”
“??”
양성규는 귀찮다는 듯이 설명했다.
그의 체육관이 잘나가는 체육관인 만큼, 꼭 선수들만 다니는 건 아니었다.
운동에 관심 있는 연예인들도 몇 명 다니는 것!
그중 한 명인 배우 김춘식도 여기를 다니는데, 출연하는 예능 프로를 찍느라 잠시 여기를 들리겠다는 것이었다.
“뭔 예능이 체육관에서 찍어요? 그거 되게 재미없겠다.”
태현의 말을 들은 양성규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물었다.
“너도 방송하면서 그런 소리를 해도 되냐?”
“뭐 듣는 사람도 없는데…….”
“나도 몰라. 그냥 하루 일상을 찍는다는데 우리 체육관 다니는 회원이 부탁하니까 그러라고 해줬지.”
양성규의 말에 태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그런 거였군.’
“헛둘! 헛둘!”
“훅훅! 훅훅훅!”
체육관 선수들이 아까부터 이상하게 주변을 의식하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곧 올 방송국 사람들 때문이 분명했다.
“그러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형님에게 인사 전해드리고…… 맞다. 너 그 메이크업 어디서 했냐?”
“…….”
* * *
“!”
체육관 계단을 올라가려던 PD는 위에서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을 발견했다.
‘어디서 봤더라?’
운동선수 같은 체격에, 매섭고 사나워 보이는 얼굴. 저기서 눈매를 좀 다듬으면 분명…….
“아, 김태현 선수!”
PD는 김태현을 바로 알아보았다.
“절 아세요?”
“당연히 알아보죠! 대회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저번에 그 쇠사슬! 으하하! 혹시 케인 선수는 없나요?”
“덕수는 여기 없는데…….”
“케인 선수 본명이 김덕수였어요?!”
처음 만나자마자 친근감을 표하는 PD의 모습! 방송계에서 십 년 넘게 굴러 잔뼈가 굵은 그였다.
처음 보는 사람과 친해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PD는 실제로 김태현을 좋아했다.
대회도 그렇고 방송도 그렇고 싫어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대회를 챙겨보실 줄은 몰랐는데요.”
“왜요? 판온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요. 저도 그렇고 김춘식 씨도 판온 좋아해요. 출연진들끼리 같이 파티 사냥도 하거든요. 아. 이건 비밀입니다. 알려지면 팬들이 찾아오거든요.”
PD는 눈을 찡긋거렸다.
바쁜 연예인들에게 판온은 좋은 취미였다.
언제 어디서든 잠깐 캡슐에 들어가 새로운 세계를 즐길 수 있는 것!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언제 한 번 같이 파티 플레이 하죠! 김태현 선수와 같이 하면 영광일 겁니다.”
“뭐 기회가 된다면야.”
“그리고 케인 선수도 꼭! 데리고 와주세요.”
PD의 진심 담긴 말에 태현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 사람…… 케인 팬이구나!
태현이 그를 신기하다는 듯이 보고 있다는 걸 눈치 못 채고, PD는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 인터뷰 참 재밌었습니다. 저희 방송국 프로에도 좀 나와 주셔야죠. 언젠가는 그래주실 거죠?”
“제가 나가서 뭐 할 게 있어야 나가죠.”
“에이. 태현 선수가 마음만 먹으면 나올 수 있는 게 얼마나 많겠습니까. 의지만 있으면 문제가 안 돼요. 그리고 당장 저희 프로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지나가는 인사 삼아서 말한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끌고 가서 출연시키려는 기세!
옆에서 듣고 있던 김세형은 입을 벌렸다.
‘뭔 능력이 저렇게 좋냐?’
점점 더 멀게 느껴지는 태현의 모습!
방금까지 신나게 두들겨 맞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오히려 영광처럼 느껴질 정도!
“저희 프로는 연예인 아닌 분들도 많이 나와요. 특성상 게스트들이 많이 나와서…….”
PD가 진행하는 프로는 SBC의 <혼자 사는 인간들>이라는 프로였다.
얼핏 보면 무슨 쓸쓸한 다큐 같은 제목이었지만, 실제로는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다루는 유쾌한 예능이었다.
일상을 통째로 다루는 만큼 다른 게스트들도 나오기 쉬웠고 꼭 연예인일 필요도 없었다.
“태현 선수는 혼자 사시나요?”
“아뇨. 부모님하고 같이 사는데요.”
“이런. 아쉽군요. 혼자 살게 되면 꼭 연락 주시죠!”
“어…… 음…… 네…….”
태현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보다 나이 훨씬 많은 사람이 저렇게 초롱초롱하게 눈빛을 빛내며 말을 해오자 은근히 거절하기 힘들었다.
역시 방송국 PD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던 것!
‘젊은 데다가 능력도 있으니 곧 독립해서 살겠지. 후후. 어떻게 살지 뻔히 보이는군!’
PD는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아직 젊은 태현이 혼자 자취를 시작하면 그 좌충우돌이 뻔히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방송의 재미가 되리라!
그러나 PD는 알지 못했다. 태현이 얼마나 금수저인지를.
“그런데 김태현 선수. 묻는 걸 까먹을 뻔했는데 여기는 무슨 일로?”
“아, 저도 여기 다니거든요. 잠깐 후배를 팰…… 아니, 후배랑 놀 일이 있어서…….”
“그래요?! 이것도 인연이네요!”
“아닌 거 같은데요.”
그러나 PD는 이미 태현의 팔을 붙잡은 뒤였다.
* * *
“춘식이랑 스파링 뛸 사람?”
선수 전원이 손을 들었다.
양성규가 그걸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방송이다. 춘식이랑 스파링 ‘적당하게’ 뛰어줄 사람?”
그러자 손을 든 선수 전원이 손을 내렸다.
“이 자식들이…….”
배우, 김춘식은 체육관에서 여러모로 인기가 좋았다.
촌스러운 이름과 달리 꽃미남 그 자체인 얼굴!
게다가 잘나가는 배우인데도 성격이 거만하거나 재수 없지 않으니 완벽 그 자체였다.
선수들도 그걸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들도 김춘식을 좋아하고 친하게 지냈다.
그렇지만…….
“관장님! 이번 기회가 아니라면 춘식이가 언제 망신을 당하겠습니까! 춘식이도 이런 경험을 해봐야죠!”
“맞아요! 춘식이 그 자식 너무 잘나가서 얄밉다고요! 이번에도 영화 대히트 쳤던데!”
“아이돌하고 열애설도 떴고!”
비뚤어진 애정!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지만 너도 한 번 망신 좀 당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