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28화
게다가 주현영이 제자로 등록되어 있는 덕분에 지금도 요리 스킬 경험치는 알뜰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처음에 제대로 골랐던 것이다.
‘솔직히 다른 쟁쟁한 요리 길드들 제치고 주현영이 콘테스트 우승한 게 많이 예외긴 했지.’
태현이 억지로 우승시킨 느낌이긴 했지만 어쨌든 우승.
그걸로 태현도 덕을 많이 본 셈이었다.
“어떻게 하려고?”
태현은 주현영을 도와줄 생각이었다.
-네가 이기면 나도 좋다!
“일단 재료를 최대한 모아보려고요. 안 되는 대로 해봐야죠. 다행히 논밭에서 자라는 재료들만 동난 상태고 동물이나 생선 같은 건 구할 수 있으니 최대한 그런 식으로 어레인지를…….”
“물러!”
“?!”
“다른 놈들은 분명 돈으로 밀어붙여 올 거야! 재료가 동나기는 했지만 비싸게 내면 경매장에서 살 수는 있거든!”
유회장이 고급 이상의 농산물들을 싹 쓸어 모으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개개인이 팔려는 물건들을 모두 다 통제할 수는 없는 법.
따로 연락하거나 하는 식으로 거래하는 방법은 있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비싸고 화려하게 요리를 해서 다른 경쟁자 놈들의 콧대를 짓밟아줘야지!”
“어…… 저는 진심을 담아서 요리하면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정반대 성향인 둘이었다.
“아니야! 내가 도와줄 테니까 다른 놈들을 짓밟아버리자고!”
“……사양할게요.”
“?!”
주현영이 거절하자 태현은 깜짝 놀랐다.
그녀가 거절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어째서?”
“저번에 독 타셨잖아요.”
“……독은 아니었는데.”
“위장잠입도 하셨고…….”
“……그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하하.”
태현도 할 말이 없었다.
저번 콘테스트 때, 귀족으로 위장 잠입해서 다른 플레이어의 요리에 독 비슷한 걸 넣었던 것이다.
자기를 위해서 해준 것이니 주현영도 감사하기는 했지만, 이런 걸 두 번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알겠어. 그런 짓은 안 할게.”
“정말요?”
“나는 거짓말을 안 해.”
“정말요?”
방금과 다른 의미의 ‘정말요’였다.
“……웃으면서 사람을 공격하는 게 이세연보다 더 심한데…….”
“네?”
“아무것도 아니야. 어쨌든 지원만 해줄 테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하면 돼. 지원만 충분하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할 수 있을 테니까.”
태현은 주현영의 요리 실력을 믿었다.
다른 시꺼먼 속셈을 가진 요리사 플레이어들과 비교한다면 못 미치는 점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걸 뛰어넘는 장점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저런 우직함!
태현은 정수혁이나 주현영처럼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자기 길을 묵묵히 파는 사람을 좋아했다.
물론 주현영이 대회에 우승하면 요리 스킬 경험치를 또 추가로 받는 것도 있었지만.
사실 그게 주목적이긴 했다.
“좋아. 전략을 짜보자.”
말하면서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주현영에게 안 들키고 수작을 부릴 방법은 없을까?
* * *
“선배님!”
“어. 수혁아.”
정수혁을 본 태현은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나 정수혁 뒤로 처음 보는 놈들이 우르르 같이 들어오자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배님!!”
“너희는 누구냐?”
떨떠름한 목소리.
“안녕하십니까! 저는 국어국문…….”
“아. 됐고. 여긴 왜 왔는데. 국밥 먹으러 왔나? 수혁이가 국밥 맛있다고 자랑했어?”
“아뇨, 그게 아니라…….”
대답도 듣기 전에 태현이 손짓했다.
“국밥집에 왔으면 국밥 시켜야지.”
“아, 예!”
태현은 그사이에 정수혁에게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냈다.
정수혁이 죄지은 얼굴로 다가오자 태현은 작게 말했다.
“뭐냐?”
“그, 저 선배님들이…….”
“흠. 흠흠.”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 설명을 들었다.
이해 완료!
“나랑 만나고 싶은데 그냥 연락하기에는 좀 뭐하니까 널 괴롭혀서 연락처를 뺏어냈다?”
“아, 아뇨. 괴롭히지는 않았는데요.”
“아. 그러면 널 구타하고 폭행해서 연락처를 뺏어냈냐?”
“네?! 아니…….”
“방금 ‘네’라고 했군.”
“그게 아니라요!”
“더 심하게 했다는 거군.”
이미 심기가 꼬인 태현은 알아서 좋은 대로 듣고 있었다.
그사이 후배들은 신나서 시시덕거리며 국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현과 정수혁 사이 불길한 대화가 오가고 있다는 건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자. 나왔습니다!”
-이 눈치 없는 놈들이 한참 분위기 좋을 때 와가지고…….
왠지 모르게 아주머니들의 눈빛이 이상했지만 후배들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헉! 맛있다?!”
“정말 맛있는데?!”
“자. 일어나자.”
“?!?!”
후배들이 한 숟갈 뜨자마자 일어서버리는 태현.
“선배님?!”
“난 다 먹었다. 늦게 먹은 너희들 잘못이지.”
이때 후배들은 눈치를 챘어야 했다.
소문은 언제나 이유가 있다는 것을!
그렇지만 욕심에 눈이 먼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그래. 나한테 가르침을 받고 싶다…….”
“네! 수혁이처럼요!”
“수혁이처럼이란 게 정확하게 뭔 소리지?”
“수혁이가 게임 엄청 못하잖습니까. 그런데도 수혁이가 저 정도 된 거 보면 선배님이 잘 가르쳐주셔서겠죠. 하하!”
“그래. 하하. 너 직업이 뭐지?”
“마법사입니다.”
“마법 스킬 몇 찍었냐?”
“중급 2 찍었습니다!”
“그래. 그래. 그랬구나.”
태현의 웃음이 점점 더 인자하게 변해갔다.
그걸 본 정수혁은 공포로 덜덜 떨었다.
저건 태현이 함정을 파고 사람을 묻을 때 보여주던 미소!
“너 정도면 조금만 배워도 수혁이보다 더 잘할 거 같다. 그치?”
“그, 그런가요?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 수혁이보다는 제가 낫죠!”
태현이 내미는 미끼를 덥석덥석 받아먹는 그들!
태현이 띄워준다고 생각했는지 신이 난 그들은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저번 방송 재미있게 봤습니다! 별 이상한 퀴즈들도 다 맞추시던데요! 그거 사전에 각본 준 건가요? 저도 나중에 나가볼 수 있을까요? 한 번 불러주시면…….”
“다 왔다.”
“?”
태현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자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에 있는 건물은 체육관 건물이었다.
“수혁이가 나한테 배우고 많이 늘었지. 근데 수혁이가 어떻게 배울 수 있었는지는 말 안 해줬냐?”
“……?”
“나하고 PK를 해서 버티는 데 성공했거든.”
“오…… 오오! 그런 거군요!”
“자. 들어와라.”
“네? 여긴 체육관이잖아요?”
PK를 하려면 캡슐방이나 캡슐로 가서 판온에 접속을 해야지, 왜 체육관?
“PK 안 할 거야?”
“어…… 안에 캡슐이 있나요?”
“캡슐은 없고 글러브는 있지.”
“…….”
후배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태현은 정수혁에게 눈빛으로 말했다.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자. 자. 들어가. 들어가. 이것들아.”
후배들을 안으로 밀어 넣고 태현은 문을 잠가 버렸다.
“아저씨, 오랜만입니다.”
“태현이냐? 네가 무슨 일로?”
아버지 김태산의 오랜 친구이자, 리X지 혈맹에서는 NO2, 그리고 판온에서는 <아다만티움 이빨을 가진 오크 투사>, 현실에서는 체육관 관장인 양성규였다.
“스파링 좀 하러 왔는데요.”
“……저 친구들이랑?”
양성규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리 봐도 초짜들!
그러나 태현은 해맑게 대답했다.
“네!”
“저 친구들이랑 다 같이 동시에?”
“아뇨. 일대일로요.”
“넌 양심이 없냐?”
* * *
이것저것 안전 강의를 하고 태현한테는 ‘자제해라’, ‘구급차 부르게 하지 마라’, ‘너 메이크업 어디서 했냐 진짜 대단하더라’ 같은 소리를 한 다음, 양성규는 자기 할 일을 하러 갔다.
체육관에는 진지하게 훈련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저, 선배님…….”
“왜?”
“PK가 설마 현실에서 싸우는 거였나요?”
“그런데?”
“아,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여기 있지. 싫으면 가도 된다. 수혁이는 계속 두들겨 맞으면서 버텼거든. 내가 그 근성에 감동했지.”
정수혁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숙였다.
여자친구 사귀고 싶어요! 라고 말했던 기억이 생생!
“……저는 하겠습니다!”
“오. 좋아. 아주 좋아.”
태현은 흡족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좋다는 건 상대의 태도가 좋다는 게 아니었다.
패주고 싶었는데 올라와서 좋다는 것!
“자자. 헤드기어 쓰고 글러브 쓰고 이거 물고 아파도 좀 참아라.”
“선배님 제가 사실 권투를 몇 년 배운 적이…….”
“그래. 그래. 몇 년이고 지X이고…….”
“방금 욕하셨어요?”
“네가 잘못 들은 거겠지. 체육관이 시끄럽잖아?”
태현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후배는 넘어가 버렸다.
‘수혁이가 버틸 정도면 나도 버틸 수 있겠지.’
정수혁은 과에서 순둥이로 알려진 놈이었다.
겉모습만 험악할 뿐 여러모로 둔한 후배!
그런 수혁이 저렇게 인정을 받고 활약한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질투를 사게 만들었다.
여기 온 이들은 정수혁을 질투하고 얕보고 있었다.
그리고 태현은 그들의 속마음을 완전히 꿰뚫어 보고 있었고.
‘어떻게 패줄까…….’
‘선배님 공격해도 되나? 화 안 내시겠지? 오히려 패기 넘친다고 좋아하지 않으려나?’
말한 대로 지금 후배는 권투를 몇 년간 배운 적이 있었다.
‘좋아, 가보자!’
“응?”
쉭!
퍽!
“아차.”
달려드는 후배를 일격에 카운터로 넘어뜨리고 나서, 태현은 혀를 찼다.
좀 두들겨 패려고 했는데 일격에 끝내버리다니.
“어…… 방금 무슨 일이 있었죠?”
“아무 일도 없었어. 자자. 일어서, 일어서. 좀 더 놀자고.”
“예!”
아직도 태현의 속셈을 눈치 못 챈 후배는 냉큼 일어섰다.
쉭!
퍽!
“자자. 일어서! 일어서!”
“어…… 저…… 선배님…… 뭔가 이상한데…….”
* * *
처음에는 기다리는 눈빛으로.
-내 차례는 언제 오냐?
-나도 올라가서 버텨볼래!
-내 근성을 보여주겠어!
그다음에는 뭔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언, 언제 합격시켜 주는 건데?
-왜 안 끝나?
마지막에는 깨달은 눈빛으로.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동환이 형이 말한 게 사실이었어!
-도망가자!
방송과 대회에서 보여주던 모습 때문에 갖고 있던 착각이 드디어 깨졌다.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깐만.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요!”
“다음 강의가 있어서요!”
“국밥을 먹고 체했나 봅니다!”
우르르!
“저, 저, 저, 비겁한 새X들……!”
혼자만 두들겨 맞은 후배는 울상이 되어 친구들을 욕했다.
정수혁이 짠한 표정으로 태현에게 속삭였다.
“선배님. 김세형 선배님이 그래도 나쁘신 분은 아닙니다.”
“넌 둔한 거냐, 아니면 멍청한 거냐? 쟤가 너 무시하던 거 안 보이냐?”
“그건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절 무시하는 건 마찬가지고…….”
“…….”
“방금 그건 제가 생각해도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알면 됐다.”
“어쨌든 그거 말고는 저한테 친절하게 대해주십니다! 성격이 좀 그래서 그렇지 나쁜 분은 아닙니다! 다른 분들과는 좀 달라요!”
“단점 다 빼놓고 보면 안 착한 놈이 어디 있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현의 기세는 한풀 꺾여 있었다.
정수혁이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다른 때에는 나름 잘 챙겨준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재수 없는 게 어디 가지는 않았지만!
혼자 남은 김세형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헉, 헉헉…… 저, 저도 포기해도 될까요?”
“뭐야. 좀 더 하지?”
“저, 저는 무리일 거 같아서…….”
“수혁이도 할 수 있는데 너도 할 수 있지! 파이팅! 일어나! 힘내!”
“아니, 저는 안 될 것 같은…….”
“수혁이보다 못하다는 거냐?”
“끄으응…… 일어납니다! 일어나요!”
그리고 30분 후.
“저는 수혁이보다 못납니다! 집에 보내주세요!”
“좋아. 드디어 정신을 차렸군. 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