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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427화 (427/1,826)

§ 나는 될놈이다 427화

케인의 목소리에는 짙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취직에 실패한 백수만이 담을 수 있는 절절한 감정!

그 감정이 느껴졌는지, 하연도 당황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상대가 당황해서 멈칫하자 케인도 정신을 차릴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진정하자. 상대는 대체 누구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었다.

현실에서 아는 사람도 아니었다. 저런 선배는 본 적도 없었다.

‘으음…… 역시 이럴 때는…….’

분하지만 이럴 때 가장 든든한 건 태현이었다.

-야. 야.

-?

-지금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난 네 회사 선배야!’ 이러면서 화를 내는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아냐?

케인의 말을 들은 태현이 1초 정도 생각한 다음 대답했다.

-함정이다.

-뭐? 함정?

-그래. 혹시 상대가 여자냐?

-어…… 그렇긴 한데.

-예쁘냐?

-어…… 그렇지?

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 100% 함정이다.

-……내 팬일 수도 있잖아.

-아냐. 함정이야.

-아니, 내 팬일 수도…….

-함정이라고. 이 멍청한 놈아.

-…….

케인은 왠지 모르게 분하고 억울했다. 그러나 태현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저번에 너한테 음식 먹이려던 애들 기억 안 나? 내가 다시 기억시켜줘야 하냐? 넌 언제 철들래? 너 장쓰안 꼴 나고 싶어?

속사포로 쏟아지는 태현의 구박!

-지금 결승 남았는데 너 노리려는 애들이 한둘이겠냐?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놈이 아직도 이러면 어떡하냐! 정신 차려!

-그, 그래. 알겠어. 알겠으니까 그만……!

케인은 울 거 같은 마음을 간신히 가다듬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 공격할까?

-공격도 좋지만 상대방이 그걸 노리고 있을 수도 있어. 널 PK 플레이어 상태로 만들려는 걸 수도 있지. 상대는 어때 보여?

-예뻐 보이는데…….

-……이런 멍청한 샊…… 강해 보이냐고!

-아, 별로 안 강해 보여. 초보자 장비고…… 위장 같지는 않은데.

-그러면 PK 플레이어 상태로 만들려는 걸 수도 있어. 이럴 때 좋은 방법은 도망이다.

-뭐? 도망?

-그래. 도망. 상대방 한 번 비웃어주고 도망쳐라.

-도망은 이해하겠는데 비웃어주는 건 왜?

-그래야 상대방이 실패한 걸 알고 분해할 테니까.

-그렇군!

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역시 사악한 놈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태현만 한 놈이 없었다.

사악 그 자체!

케인은 앞을 쳐다보았다. 하연이 다시 말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탁-

“잠깐!”

“??”

“난 네 사악한 속셈에 속지 않는다!”

“뭐…… 뭐?”

“네 계획은 실패했으니 얌전히 꺼져라!”

‘미친놈인가?’

하연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저번에 대화 이후로 하연은 나름 판온에 대해 다시 찾아보았다.

그러다 보니 알게 된 건, 한국 팀이 생각보다 괜찮은 팀이라는 것이었다.

대회 영상은 판온에 대해 잘 모르는 그녀가 봐도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

거기서 ‘케인’이라는 플레이어는 생각보다 호쾌하고 멋있었다.

중갑옷을 입고 미친 듯이 날뛰는 탱커!

전신에서 박력이 흘러넘쳤다.

거기서 더 나아가 실제 플레이어만 찾아봤어도 이런 오해는 없었을 테지만, 하연이 본 것은 판온 내 영상뿐.

덕분에 이런 오해가 생기게 되었다.

물론 하연의 속마음과 상관없이 케인은 신나서 웃어댔다.

“하하하! 속셈을 들켜서 분해하는 게 보이는군. 잘 있어라! 난 간다! 널 시킨 놈한테 전해라! 그런 수작으로는 절대 날 속일 수 없을 거라고!”

케인은 그렇게 외치다니 뒤로 돌아서서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다다-

계정 만들고 레벨 업을 거의 안 한 하연이 따라갈 속도가 아니었다.

케인이 사라지고 나서, 하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뭐, 뭐, 뭐 진짜 저런 놈이 다 있어?!”

* * *

케인이 현실에서 달라진 대우를 느끼는 동안, 태현도 비슷한 걸 겪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저번에 대회 봤어. 아들이 ‘이거 그 형 아니에요?’ 말해줘서 봤는데 진짜더라고. 하하. 대단하던데?”

운동하다가 약수터에서 얼굴을 익힌 동네 아저씨들이 알아보는 수준!

한 바퀴 동네를 도는 동안 ‘허허 손자가 자네 이야기를 하던데’ ‘아들이 너 만나면 사인 좀 해달라고 하더라’ 같은 소리를 계속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판온 1 때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판온 1 때는 완전히 신분을 숨기고 살았으니 이런 일이 없었다.

판온 1도 인기가 있긴 했지만, 2와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수준이기도 했고.

사실 태현이 지나치게 조용히 살고 있는 편이기는 했다.

이 주변 건물과 땅들은 전부 김태산의 소유.

그런 건물주의 아들인데도 주변 사람들은 태현을 거의 못 알아보았다.

약수터의 아저씨들도 ‘저 젊은이는 맨날 운동 오네. 일 안 하나?’ 싶은 눈으로 쳐다볼 정도였으니!

탁-

“총각. 오랜만이야.”

“안녕하세요.”

강씨 순댓국밥집 주인, 강현숙이 태현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요즘은 얼굴이 뜸하네? 우리 집이 맛이 없어졌나?”

“아니요. 일이 좀 바빠서요.”

대회에 방송에…… 운동도 집에 설치된 장비로 하고 넘겼으니……

“호호. 대회는 잘 봤어.”

“네?! 대회를 보셨다고요?”

태현도 좀 놀랐다.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던 것이다.

강씨 아주머니와 판온이라니!

‘아니, 생각해 보니 판온 안 할 거 같은 사람들도 다 하긴 하네.’

“왜, 우리 딸이 유일하게 하는 게 그거잖아.”

일도 취미도 요리인 주현영이라, 어머니인 강현숙은 걱정이 많았다.

여러 취미를 추천해 봤지만 그나마 하고 있는 게 판온!

“아. 그래서…….”

“그러고 보니 우리 딸은 판온에서 뭐 하는지 궁금하네. 친구들 많이 사귀고 그러지?”

“어…….”

‘판온에서도 요리만 하던데요’라고 말하려던 태현은 멈칫했다.

기대 가득한 아주머니의 눈동자!

차마 진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럼요!”

“다행이네!”

거짓말은 아니었다. 일단 주현영도 요리사 플레이어들 친구는 꽤 있을 테니까.

부우웅- 부우웅-

그 순간 태현의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 후배 정수혁이었다.

“이런! 대회 예선 탈락한 수혁이잖아! 무슨 일이니?”

“……선배님…….”

“농담이야.”

대회에 탈락하고 나서 정수혁은 한동안 연락 두절이었다.

태현에게 ‘저희 팀의 경기를 지켜봐 주십시오!’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나서 탈락한 것이다.

망신 중의 개망신!

태현을 존경하고 있는 정수혁에게 이 패배는 정말 부끄러웠다.

물론 태현은 끝나자마자 잊어서 별로 상관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무슨 일이지?”

“아. 상담할 게 있어서…… 그리고 또 그…… 으으…….”

“?”

태현은 의아해했다.

상담이야 정수혁은 원래 별 쓸데없는 것까지 다 상담하려고 하는 후배였으니 별로 놀랍지 않았다.

근데 다른 용건이 뭐길래 저렇게 망설이지?

“뭐 일단 와라.”

“네? 어디로요?”

“저번에 갔던 순댓국밥집 기억나지? 거기로 와.”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지금 국밥 먹으러 가도 되죠?”

“물론이지. 총각. 총각은 언제 와도 환영이야.”

아주머니는 태현의 등을 두드리며 환하게 웃었다.

* * *

“뭐래? 된대?”

“어, 그게, 오라고는 하셨는데…….”

“좋아! 잘했어!”

“어…… 선배님들 오라고 하신 건 아닌 거 같은데요…….”

정수혁은 우물쭈물거렸다.

주변에는 정수혁의 선배들이 있었다. 그들은 정수혁의 말은 듣고 있지 않았다.

정수혁의 과 선배이자, 태현의 과 후배들!

‘으으…… 이러면 선배님이 화내실 거 같은데…….’

정수혁은 초조해져서 안절부절못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정수혁이 받은 연락 하나 때문이었다.

그 연락은 다름 아닌 프로게이머 팀 입단 제안!

비록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정수혁이 보여준 실력(착각이었지만)과 화려한 마법은 다른 사람들이 탐내기 충분했다.

그것 때문에 제안이 온 것이다.

-네게는 미래가 있어 보인다. 우리 팀에 입단해서 훈련받지 않겠냐?

제안을 받은 정수혁은 같이 뛴 친구들에게 말했고, 친구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리고 덕분에 소문이 퍼진 것이다.

‘정수혁이 프로게이머 팀 입단 제안받았다는데?’→‘뭐? 어떻게?’→‘그 김태현 선배랑 친하게 지내면서 특훈 받았다는데?’→‘나도 한 번 들어보자! 정수혁 그 곰 같은 녀석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식으로 퍼진 소문들!

도중에 ‘그 선배 막 성격 더럽다고 하지 않았냐?’, ‘동환이 형이 얻어맞았다고 했던 거 같은데’ 같은 말들이 나오긴 했다.

예전에도 한 번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차이점이 있었다.

태현이 대회에 나가서 결승까지 진출하고, 다른 방송에도 나왔다는 점이었다.

‘에이, 그거 헛소문 같아. 동환이 형이 성격이 좀 그렇잖아. 자기가 져서 그런 거 아닐까?’, ‘성격 나쁜 사람이면 수혁이를 훈련시켜 주지 않았겠지’, ‘맞아. 방송 봤는데 사람 진짜 좋더라. 오히려 성격 더러운 건 그 옆에 있는 케인이지.’, ‘팀 내에서 케인이랑 도동수가 성격 더러운 편이고, 김태현 선배가 중재하는 역할이래.’

케인이 듣는다면 목덜미를 잡고 쓰러질 소리들!

어쨌든 그래서 그들은 정수혁에게 우르르 몰려갔다.

-그래서 이렇게 됐으니 만나게 해줘라!

-…….

친구들이라면 거절을 했겠지만 치사하게 나이로 밀고 들어오는 선배들이었다.

결국 정수혁은 그들을 데리고 국밥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 * *

“현영아. 저 국밥 좀 갖다 주렴.”

“네? 아주머니는 어디 가셨는데요?”

이 주변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순댓국밥집이었기에, 서빙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렇지만 강현숙은 단호했다.

“잠시 배가 아프셔서 화장실에 가셨나 보다.”

“……두 분이 다요?”

“그래! 갖다 주렴! 손님 기다리시잖아! 빨리!”

강현숙은 주현영의 등을 떠밀고 흐뭇하게 웃었다.

이게 바로 자식을 배려하는 어머니의 마음!

태현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총각이었다.

건물주 아들에 성격 서글서글한 건 기본이고, 거기에 요즘 대회에 방송까지 나오지 않는가.

저 정도면 요즘 보기 드문 총각!

‘앗! 현영이가 자리에 앉았어!’

국밥을 들고 나갔던 주현영이 태현을 발견하더니 인사하고 앞에 앉았다.

그리고 진지하고 심각한 태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 어머, 어머…….”

“쟤가 걔예요?”

“그렇다니까!”

화장실 갔던 두 아주머니도 순식간에 나타나서 강현숙과 같이 호들갑을 떨었다.

“현영이가 일하는 도중에 저렇게 딴청을 피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지! 안 그래?”

“무슨 얘기를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거래?”

아주머니들인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과 달리, 태현과 주현영은 매우 현실적인 대화를 하고 있었다.

“지금 에랑스 왕국 요리사들도 비상이에요. 곧 국왕의 생신이라 특별한 요리를 준비해야 하는데 지금 기본 재료들이 다 동난 상태라…….”

“그렇군. 에랑스 왕국 요리사들은 전부 다 내야 하나?”

“저처럼 왕국에 소속되어서 일하는 요리사들은 필수고, 소속 안 되어서 일하는 요리사들은 필수까지는 아니지만 엄청난 기회죠. 이런 퀘스트가 흔한 게 아니거든요.”

명성+공적치 포인트+경험치+골드+스킬 경험치 보상 등등…….

국왕이 들어간 요리 퀘스트다 보니 요리사들에게는 거의 천금 같은 기회였다.

저번 콘테스트를 뛰어넘는 기회!

태현은 진지한 얼굴로 주현영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도 일단 요리 스킬이 주력 스킬이기는 했다.

이제까지 수많은 위기를 요리로 해결해 오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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