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25화
언데드들 사이에서 돌진하는 도동수의 뒷모습을 보며, 태현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잘 속아 넘어가 주는 사람은 참 보기 좋아.”
“…….”
케인은 복잡한 표정이었다.
왠지 모르게 찔리는 기분!
‘이 자식 나한테 하는 말 아니겠지?’
* * *
계획은 좋았지만 사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도동수한테 계획을 말하지 않고서 어떻게 지시를 내려야 할까?
-어떻게 할 거야?
-보고만 있으라고.
태현은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경기 시작 전, 태현은 도동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했다.
-야. 2경기 시작하자마자 언데드 러시 할 건데, 너는 그냥 보고만 있어라. 1경기 때처럼 또 단독행동하지 말고. 위험하니까.
-꺼져. 난 내 마음대로 할 거야!
그리고 도동수는 달려 나갔다.
-됐지?
-…….
* * *
기세 좋게 덤벼드는 언데드 군단.
물론 경기장 밖에서 이세연이 부리는 것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서버 제일의 네크로맨서라는 칭호는 어디 가지 않았다.
각종 강화 스킬과 조종 스킬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이세연!
물론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MP를 때려 박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산 자에게 죽음을!
-내 주인의 명령으로!
데스 나이트 셋이 덤벼들자 아무리 에반젤린이어도 쉽게 뚫고 나갈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뒤로 강화된 구울들과 비행 언데드들까지 따라 들어왔다.
“턴 언데드 좀 해줘!”
“하고 있어! 하고 있는데……! 이 언데드들, 잘 안 통해!”
이세연의 <칠흑의 저주 갑옷> 버프 마법을 받은 언데드들은 신성 마법에도 어느 정도 견디고 있었다.
‘뭐지? 뭘 노리는 거지?’
에반젤린은 언데드들을 상대하며 생각했다.
상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콰지직!
“어떻게 해? 억지로라도 뚫고 들어갈까?”
“천천히 가자! 어차피 이 언데드 러시만 막히면 상대는 끝이야!”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에반젤린은 동의하지 않았다.
상대가 바보도 아니고 이런 짓을 그냥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뭐야? 대체 뭘 노리는 거…….’
그 생각에 답을 내리기도 전에 변화가 먼저 일어났다.
타타탓!
도동수가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것이다.
-그림자 늘리기, 그림자 습격, 폭풍 연속 절개!
노리는 것은 사제.
사제 한 명만 빠져도 상대의 전력은 삐걱거리게 되어 있었다.
미쳐 날뛰는 에반젤린을 커버하고 뒤에서 지원하는 게 캐나다 대표팀의 사제였던 것이다.
그 중요성은 분명했다.
-상급 방패의 가호!
-흔들리는 뱀의 이빨!
사제가 방어에 들어가고 바로 창술사가 도와주러 뛰어들었다.
카카캉!
덕분에 공격이 막히고 바로 역습이 들어왔다. 도동수는 이를 악물고 물러섰다.
“이 자식이 어디서 감히!”
“진짜 오나 했는데 진짜 오냐?”
캐나다 플레이어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외치며 덤벼들었다.
1경기 끝나고 ‘도동수가 단독행동 할 거 같지?’ ‘도동수가 단독행동 하면 노리자’ 이렇게 말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에이, 아무리 그래도 도동수가 머리가 있으면 계속 단독행동을 하지는 않지 않을까? 우리를 호구로 본 게 아니라면……’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도동수는 정말로 덤벼든 것이다.
게다가 다른 플레이어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세연이 부른 언데드 소환수들만을 믿고 덤벼든 것!
덕분에 캐나다 플레이어들은 더 열이 받았다.
“잡아!”
“아까 그냥 넘어가 주니 뭐라도 된 거 같냐?!”
매서운 파상공격.
공중에서 오러가 터져 나가고 도동수가 도망칠 길이 막혀 나갔다.
1:5인 상황.
동급 레벨인 상황에서 이건 승리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도동수는 웃었다.
-인형 교환의 비술!
도동수가 있던 자리에 하급 언데드 하나가 나타나고, 하급 언데드가 있던 자리에 도동수가 대신 나타났다.
아군과 위치를 바꾸는 그림자 춤꾼의 스킬 중 하나였다.
도동수가 머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욕심도 있었지만, 1:5로 덤벼들 때에는 자신이 있어야 덤벼들 수 있는 것이다.
도동수가 믿는 건 언데드 군단들이었다.
치고 빠지면서 언데드 군단들을 방패로 사용한다면 도동수는 얼마든지 싸울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최적화된 직업!
쉭-
퍽!
언데드 하나의 뒤에 숨었다가 이번에는 궁수에게 일격을 먹이는 데 성공했다.
욕설이 튀어나왔지만 도동수는 다시 회피에 성공했다.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지고.
크게 데미지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상대 팀을 교란하고 열을 받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화려하게 움직이면서 도동수는 점점 희열을 느꼈다.
‘그래, 이거야! 바로 이거라고!’
그가 원했던 대회에서의 모습!
언제나 혼자 돌격했다가 ‘저거 뭐하는 놈이냐?’, ‘도동수는 왜 저렇게 내버려 두는 거죠? 설마 싸우면 지니까 저렇게 내버려 두는 건가요?’ ‘도동수 누가 뽑음? 도동수 뽑은 놈들 모두 대가리 박아라’ 같은 소리를 듣는 건 더 이상 사양이었다.
도동수의 생각지도 못한 모습에 캐나다 팀도 당황했고, 관중들도 당황했으며, 태현과 이세연도 당황했다.
“설치 다 했는데…… 쟤 뭐 하냐?”
“그러게……?”
언데드 군단을 방패로 삼아서 도동수는 아직도 잘 버티고 있었다.
1:5로 여기까지 버티다니!
이세연도 이건 놀랐다.
‘하긴, 맨날 김태현한테 구박받아서 그렇지 도동수도 실력은…….’
“뭐야. 왜 날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저대로 내버려 두면 계획이 꼬이잖아.”
“부르면 되지.”
“부른다고 와?”
이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서 도동수가 말을 듣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저렇게 좋은 상황이라면 도동수가 더더욱 오지 않을 것이다.
“언데드 전부 소환 취소해.”
“…….”
이세연의 입이 벌어졌다.
판온 1, 판온 2의 랭커로서 정말 어지간하면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는 그녀였지만…….
언제나 태현은 예상 밖!
* * *
“크하하! 자. 와라! 다음은 어떤 놈이냐!”
도동수는 신이 나서 검을 겨누며 외쳤다.
“아오, 저 모기 같은 놈이…….”
“잡히면 죽는다!”
캐나다 플레이어들은 이를 갈았고, 에반젤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오래 시간을 끌면 끌수록 느낌이 안 좋았던 것이다.
그 순간…….
파스스슥-
주변에 있던 언데드들이 전부 어둠으로 사라졌다.
“…….”
“…….”
갑자기 조용해지는 공기.
“……조져! 조져!”
“으허억! 뭐야?!”
아무리 냉정하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냉정할 수는 없었다.
갑자기 언데드가 전부 사라지다니!
‘시간 다 됐나?! 아니, 그런 거면 미리 말을 하거나 설명을 해줬을 텐데?!’
도동수의 당황은 진짜였다.
회피용 스킬을 실수할 정도로!
그 모습에 캐나다 팀은 확신했다.
지금 이 상황은 도동수가 노리고 만든 게 아니라고.
“상대 쪽에도 문제 생겼다! 분명 저렇게 언데드 러시 하는 바람에 스킬이 꼬인 게 분명해!”
“잡아! 지금 안 잡으면 귀찮아져!”
상대가 실수했을 때 밀어붙여야 하는 게 게임.
도동수가 정신을 차리고 도망치기 전에 잡기 위해 모두 덤벼들었다.
타타타타탁!
“미친, 미친, 미친……!”
도동수는 기겁을 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뒤에서 화살, 마법, 원거리 창 스킬, 하여간 원거리 스킬은 다 날아오는 것 같았다.
첫 번째는 피했다. 두 번째는 흘려보내려고 했지만 실패해서 조금 맞았다. 세 번째는 다리를 맞춰서 이동속도가 느려졌고, 네 번째는 직격했다.
“컥!”
“죽어라. 이 자식!”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창술사는 달려와서 창으로 등짝을 후려갈기려고 들었다.
그 순간.
콰콰콰콰쾅!
다리 안쪽에서 거대한 폭발이 울려 퍼졌다.
* * *
“속아줘서 다행이야. 안 속으면 어쩌나 했는데.”
이세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초반에 MP를 다 소모해서 언데드 군단을 부른 그녀였다. 만약 이게 안 먹히면 힘든 싸움을 하게 됐을 것이다.
“도동수 연기가 워낙 좋았지.”
“…….”
이세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고 나니까 약간 미안해지는 마음!
그러나 태현은 미안해하지 않았다.
마음에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당당함!
“$*#$%$@&@…….”
“이거 번역 안 되는데 어느 나라 말이냐?”
“잘 들어보면 너 욕하는 거야.”
2경기가 끝나고 대기실에서 만나자마자 도동수는 지옥에서 주워 온 것 같은 욕설 랩을 연속으로 퍼부었다.
이제까지 ‘흥 나는 너와 상대하지 않아’, ‘흥 네깟 놈의 도발에 흔들리지 않아’ 태도를 유지하려던 도동수였다.
그러나 이번 일은 정말…….
상상을 뛰어넘는 일!
더 분노가 치미는 건 경기 시작 전의 대화였다.
태현이 가지 말라고 했다고 냉큼 가버린 스스로가 부끄러울 지경!
‘다시는, 다시는 속지 않겠다!’
완전히 마음을 닫아버린 도동수를 보며 케인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야, 근데 3경기는 어떡하지?”
이긴 건 좋았지만 3경기가 걱정이었다.
도동수는 이제 정말 속지 않을 테니까.
‘솔직히 내가 저 상황이면 멘탈 깨져서 발광한다.’
“아. 3경기는 괜찮아.”
“응?”
“애초에 세 번째 경기는 이길 방법이 있었어. 두 번 못 쓰니까 먼저 두 경기 이기려고 한 거지.”
“???”
태현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케인은 놀랐다.
태현이 저런 걸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길 방법이 있단 말인가?
상대방도 이제 어떤 방심도 하지 않을 텐데?
탁-
태현은 케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상냥하게 웃었다.
‘아, 이 자식 나한테 이상한 걸 시키려고 하는구나…….’
그 웃음을 본 케인은 미래를 직감했다.
* * *
캐나다팀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아까 2경기 시작 때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이길 자신은 있었다.
전판 같은 방식은 다시 쓰지 못할 테니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불안함!
상대가 태현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또 무슨 방법을 쓰려는 거지?’
‘설마 아직 남은 게 있나?’
‘이번 경기는 절대 지면 안 되는데…….’
3번 지면 그대로 끝.
그 불안함은 쉽게 가시지 않고 사람을 괴롭혔다.
그 분위기를 깨달은 에반젤린이 외쳤다.
“모두 집중해!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자는 거야!”
에반젤린의 외침은 다른 팀원들이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해야 할 건 최선의 플레이를 하는 것!
태현 팀의 스킬들은 많이 파악했고, 거기에 대한 대책도 있었다.
당하지만 않고 제대로 대처한다면 이길 수 있었다.
‘그래. 가자!’
‘우리가 이제까지 해온 게 있어! 스스로를 믿자!’
“간다!”
에반젤린은 외침과 함께 돌진했다.
1경기와 비슷한, ‘치고 싶으면 어디 한 번 쳐봐라’의 돌진이었다.
치는 순간 바로 카운터가 들어오는 강력한 상태!
“후우, 후우, 후우…….”
그리고 케인은 긴장한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 멀리서 돌진하는 에반젤린이 마치 폭주하는 자동차 같았다.
‘붉은색이니까…… 스포츠카? 그러고 보니 김태현이 스포츠카 몰고 다녔었던 것 같…….’
현실도피하는 케인!
“앞! 정신 차려!”
“알, 알고 있다!”
케인은 마주 보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
그 모습에 캐나다팀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정면으로 돌격하다니.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타타탁-
케인은 달리더니, 왼쪽으로 점프했다.
다리 옆의 끝 난간에 올라간 것이다.
“어…….”
폴짝!
-노예의 쇠사슬!
촤르륵!
허공에 뜬 케인은 그대로 노예의 쇠사슬을 사용해 에반젤린을 맞췄다.
에반젤린은 그대로 케인 앞까지 끌려왔고…….
‘말도 안 돼!’
어떻게든 탈출하려는 에반젤린. 그러나 케인이 재빨리 에반젤린을 붙잡았다. 케인은 해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 하하. 하하하…… 같이 가는 거야……!”
“야, 이 미친 자식아!!”
에반젤린의 비명과 함께, 둘은 절벽 밑으로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