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24화
‘이번에야말로!’
도동수를 노리고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 공격.
도동수의 움직임을 깨달은 상대 궁수가 노리고 공격한 것이었다.
그러나 도동수는 멋지게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 짜릿한 달성감이 느껴졌다.
쉭-
계속해서 들어오는 공격들.
화살이 몇 개로 나눠지고, 곡선을 그리며 궤도가 변화하고, 동시에 화르륵 타오르기까지 했다.
실력 있는 궁수 플레이어만이 할 수 있는 묘기!
거기에 정확한 조준까지 겹쳐지면 숨쉬기 힘들 정도의 압박이 됐다.
그러나 도동수는 피해냈다.
‘피했다!’
도동수는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해낸 것이다.
이제 스킬로 거리를 좁히면 저 궁수 플레이어 정도는 능숙하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근접전에서 궁수 플레이어는 손쉬운 먹잇감일 뿐!
게다가 적팀 사제와 마법사는 이세연과 김철수가 완전히 발을 묶고 있었다.
그들은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
‘간다! 이걸로 뒤집는다!’
이제까지 쌓아왔던 안 좋은 이미지들을 벗어던질 시간!
상대 궁수 플레이어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그러나 그 순간, 뒤에서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썅.’
도동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았다.
또 한 번 김태현이 화려하게 날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상대 궁수의 공격은 멈췄지만, 에반젤린과 창술사의 조합은 멈추지 않았다.
정신없이 두들겨 맞는 케인을 보며 태현은 깨달았다.
에반젤린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케인으로 묶어두고 버티려고 했는데…….’
태현은 케인이 그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놓치고 있던 게 있었다.
에반젤린의 종족 특성이었다.
뱀파이어는 흡혈로 회복하고 더 강해진다는 것!
시간을 끌며 버틴다고 무너지는 게 아닌 것이다.
‘눈치챘구나! 그렇지만 이미 늦었어!’
태현이 케인을 엄호하기 위해 달려드는 것을 보며 에반젤린은 웃었다.
그녀를 상대하면서 버티는 전략을 취한 팀들은 많았다.
그리고 그 팀들은 전부 패배!
‘자, 어떻게 할 건데? 방법이 있을까?’
에반젤린은 스스로의 캐릭터를 믿었다.
아무리 태현이라도 이 상황에서 그녀의 방어를 뚫고 폭딜을 넣을 수는 없으리라!
“크윽!”
버티던 케인의 방어가 뚫리고 자세가 무너졌다. 에반젤린은 쐐기를 박기 위해 스킬을 추가로 사용했다.
-고대 피의 저주!
김철수와 케인 사이에 붉은 장막이 생겨났다. 일시적으로 버프를 주지 못하도록 끊은 것이다.
“죽어!”
-아키서스의 축복.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행운 부여.
그 순간 터져 나오는 스킬들.
“!”
동시에 태현은 에반젤린에게 덤벼들었다. 허를 찔렸음에도 불구하고 에반젤린은 바로 방어에 들어갔다.
‘어디 한 번 쳐봐!’
캉!
태현의 매서운 공격이 들어갔음에도 에반젤린은 방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막았다!’
그러나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태현은 장비 해체로 만들었던 폭탄들을 집어 던졌다.
“어디서 났……?!”
콰콰콰콰쾅!
폭발이 그 자리에 있던 넷을 덮쳤다.
에반젤린은 경악했지만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데미지는…… 견딜 수 있어! 흡혈 키고 피의 욕망 켜고 쌓아놨던 스택들 돌리면 지금 당장 회복을…….’
[피의 욕망 스킬을 실패합니다. 부작용으로 데미지를 입습니다.]
[혈액 저장소 스킬을 실패합니다. 부작용으로 데미지를 입습니다.]
그러나 실패하는 스킬들.
폭발로 인한 마비 효과에 스킬들까지 실패!
이걸로 에반젤린은 완벽하게 행동 불가능 상태에 빠졌다.
‘뭘 한 거야?!’
에반젤린에게는 <고대 뱀파이어의 권능-의지> 스킬이 있었다.
스킬을 실패하지 않는 강력한 패시브 스킬!
어마어마한 불운을 달고 있는 그녀에게는 필수적인 스킬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스킬을 무시하고 실패가 뜬 것이다.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의 힘이었지만 그거까지는 에반젤린이 알 수 없었다.
에반젤린은 태현이 그녀의 약점인 불운을 노렸다고 생각했다.
‘당했……!’
그리고 태현이 덤벼들었다.
끝내겠다는 눈빛으로!
-치명타 폭발!
아까의 공격은 전력이 아니었다.
에반젤린이 대놓고 ‘막아주겠어!’ 하는데 거기다가 공격하는 바보는 없었다.
보통 저런 건 막을 자신이 있는 게 분명하니까.
어떻게든 상대의 허점을 만들어서 쳐야 한다!
숨겨놨던 폭탄을 첫 라운드부터 써야 했던 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케인이 무너졌을 테니까.
[고대 뱀파이어의 가호 스킬이 사라집니다. 부작용으로 데미지를 입습니다.]
[HP가 0으로 내려가 핏빛 폭주가 시작됩니다. 5초 후 사망합니다.]
‘아. 이건 좀…….’
에반젤린의 눈빛이 갑자기 확 붉어지고 주변에서 핏빛 오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마지막 발악 느낌이 물씬!
그리고 에반젤린이 노린 건…….
태현이 아니라 케인이었다.
“왜 나를?!?!”
케인의 비명은 주변이 시끄러워서 들리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들렸다면 케인의 이미지가 깨졌을 테니까!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미 케인은 많은 데미지를 입었고, 태현보다 노리기 쉬웠으니까.
콰직! 콰지직!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HP가 10% 미만입니다.]
에반젤린에게 붙잡힌 케인의 HP가 10% 미만으로 내려가고, 케인이 필사적으로 저항하려고 할 때…….
-데메르의 시간 되돌리기!
“어? 태현 님이 그걸 어떻게?”
태현의 스킬이 사용되고 케인이 간신히 살아났다.
에반젤린은 사망!
태현은 바로 창술사에게 덤벼들었다. 이미 에반젤린이 죽었을 때 포기했는지 상대는 쉽게 쓰러졌다.
* * *
“와 미친. 와 미친. 와 미친…….”
케인은 혼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렸다.
기존 게임과 판온이 다른 점이 있다면, 판온은 플레이어가 실제로 경험을 한다는 점이었다.
1경기 동안 미쳐 날뛰는 에반젤린을 정면에서 막아내야 했던 케인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큰일인데.”
“어? 왜?”
혼이 나가 있던 케인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이겼는데 큰일이라니?
“1경기부터 이렇게 다 밑천을 까버리면…… 생각보다 에반젤린이 강해.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 팀 구멍이 많…… 읍읍.”
이세연이 태현의 입을 막았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깨달은 것이다.
케인도 밀리지만 도동수도 위험했다.
아까 단독행동이 성공해서 망정이지 원래라면 저렇게 달려가다가 죽었을 게 분명!
상대도 바보가 아니니 당연히 대비를 할 것이다.
문제는 한 번 성공한 도동수가 과연 다음 경기에 가만히 있을지였다.
‘지금 말하면 더 지X을 하겠지. 아. 그냥 깃발 꽂자고 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었지만, 이세연도 성격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이 팀을 모은 입장이니까 참고 참을 뿐!
경기만 끝나면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하고 외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태현 님. 그 스킬은 어떻게?”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라…….”
태현은 은근슬쩍 말을 돌렸다. 김철수는 당황했지만 더 이상 캐묻지 못했다.
착한 사람의 한계!
* * *
“욕심을 부렸는데 성과가 있었다. 그지?”
캐나다 대표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1경기를 졌지만 많은 것을 얻어낸 것이다.
“도동수는 또 단독행동 할 거 같지? 그거 노리고 함정 파고 시작하자.”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순간 사제 지원 못 받게 바로 끊은 다음 잡아버리자.”
“김태현은?”
“숨겨놓은 스킬 진짜 많더라. 게다가 나 못지않게 사기야. 그리고 폭탄은 진짜 어디서 꺼낸 거래?”
“즉석에서 만든 거 같은데. 대장장이나 기계공학 스킬 중에 그런 게 있을지도 몰라.”
“만나본 적이 있어야 알지…… 진짜 특이하다니까.”
졌지만 패배의 기운은 전혀 돌지 않았다.
다음 경기에는 이길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도동수에게는 함정을 걸고, 케인은 정면으로 압박을 해서 무너뜨리고, 김태현 스킬들은 나왔으니까 최대한 묶자. 도동수, 케인만 무너지면 숫자로 압박하면 충분히 이겨. 아무리 김태현이라도 둘 무너지면 끝이겠지.”
에반젤린의 말에 창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김태현을 막을게.”
한국팀 모든 변수의 시작이 태현이었다.
태현의 스킬들을 막으면 변수가 사라진다!
* * *
“어디 기막힌 전략이 없을까…….”
2경기가 시작되기 전, 태현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걸 본 이세연은 ‘경기 전에 좀 그렇게 고민을 하지 그랬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아무리 편하게 말을 하는 사이기는 했지만 경기 시작 전에 기를 죽이는 건 좀 아니었으니까!
‘불은 못 지르고. 다리는 못 무너뜨리…… 음? 잠깐만.’
다리를 무너뜨리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무너뜨린다면 어떻게?
‘신의 예지로 약한 부분 찾고, 대검으로 미친 듯이 때린 다음…… 마지막은 폭탄으로 하면 된다 치고, 시간을 어떻게 벌고, 적은 또 어떻게 끌어들인다…….’
생각을 마친 태현이 이세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거야?”
“내가 뭘?”
“필요한 게 있어서 날 이용해 먹으려는 눈빛이었는데.”
“아니. 같은 팀이잖아. 하하. 뭘 그런 소리를 하고 그래.”
태현은 그렇게 말하며 이세연에게만 들리도록 목소리를 낮췄다.
“언데드들 소환해서 시간 좀 끌 수 있지?”
“뭐? 시체 없는데 그런 짓 하면 효율이 안 좋아. MP 아껴야 한다고.”
레벨 100으로 떨어진 것 때문에 이세연은 전술을 바꾼 상태였다.
강력한 언데드들로 밀어붙이는 화력 위주 플레이가 아닌, 효율적인 저주 스킬들로 상대를 견제하는 플레이로!
“들어봐. 그거 초반에 소환해서 앞으로 쫙 밀어붙이고, 그동안 나는 다리에 폭탄을 깔 거야.”
“……벌써부터 그만 듣고 싶어지는데…….”
“그런 다음에 도동수를 보내자.”
“…….”
“첫 번째 경기 때 보니까 도동수는 단독행동이 너무 잘 어울려. 언데드들이랑 같이 가면 적팀은 의심도 안 할 거야.”
“너 정말 그러다가 현실 PK 당한다.”
태현과 도동수는 실제로 방송국에서 계속 얼굴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런 계획이라니.
현실 인간관계의 불편함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태현만이 가능한 일!
“도동수가 가서 날뛰다가 슬슬 튀면 적팀은 신이 나서 쫓아오겠지. 그때 다리를 무너뜨리자고.”
“이 계획 도동수한테 설명 안 해줄 거지?”
“당연하지.”
마치 악마의 속삭임 같은 태현의 말!
이세연은 이마를 짚었다.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어났다.
-그냥 저질러버려. 이 계획이 좋다는 건 알잖아. 괜히 상대방 전력 끌어내서 진흙탕 싸움으로 가는 것보다는 훨씬 더 승률이 높아.
-안 돼. 도동수도 일단은 팀원이잖아. 태현이 자꾸 괴롭히니 도동수가 겉도는 거야. 김태현이 판온 1때 도동수에게 했던 걸 떠올려봐. 이를 갈 법하잖아. 물론 그래서 지금 계속 말 안 듣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하지 말란 짓은 다 해서 너를 짜증 나게 만들지만…….
양심의 소리를 듣던 이세연은 바로 결정을 내렸다.
“좋아. 하자!”
“역시 그래야 이세연이지!”
“그거 기분 나쁘니까 하지 마.”
* * *
두 번째 경기의 시작은 언데드 러시였다.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이세연의 적극적 공세!
다리를 메우고 덤벼드는 언데드 군단의 모습에 캐나다 대표팀은 당황했다.
“뭐지?”
“이세연이 경기를 던졌나? 이렇게 해놓고 MP가 남을 리가 없는데?”
“일단 처리해! 함정이 있을 수도…….”
그 순간 데스 나이트 옆에서 그림자가 하나 튀어나왔다.
바로 도동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