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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423화 (423/1,826)

§ 나는 될놈이다 423화

프리카 투기장에는 평소 장비를 들고 들어갈 수 없었다.

들어가는 순간 강제로 착용 해제되었다가 나오는 순간 돌아오는 것이다.

쓸 수 있는 건 투기장에서 제공하는 기본 장비들뿐!

그러나 태현은 그 기본 장비들을 전부 챙겼다.

쓸 곳이 있어서였다.

‘기계공학+대장장이 스킬로 즉석 폭탄과 함정을 만든다.’

위력이야 평소보다 줄어들겠지만 어차피 프리카 투기장의 플레이어들은 다 레벨 100으로 내려온 상황.

위력이 줄어든 폭탄으로도 충분히 유효한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후욱, 후욱…….”

옆에서 케인이 긴장한 태도로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케인이 긴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 * *

“캐나다 대표팀은 강한 팀이야. 상대 팀에 맞춰서 움직이는 팀이 아니라 자기들이 가장 잘하는 전술을 선택하는 팀이고.”

언제나 궂은 일을 맡아서 하는 건 이세연이었다.

도동수는 ‘흥 너희들이랑 안 놀아’고, 김철수는 성격은 착했지만 리더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고, 케인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태현은 ‘하하, 조별과제는 조장님이 하셔야죠’라고 떠넘겼던 것이다.

“경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캐나다 대표팀의 시작과 끝은 이 에반젤린이라는 플레이어야. 거의 핵심이라고 봐도 좋아.”

영상에서 날뛰는 에반젤린은 압도적이었다.

-에반젤린 선수! 두 명이 발을 묶으려고 하는데도 멈추지 않습니다! 광화 스킬을 사용합니다! 뱀파이어의 광화! 밀립니다! 두 명이 오히려 밀려요! 당황하는 게 바로 느껴집니다!

다 같이 장비를 벗고 레벨 100으로 내려왔는데도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괴력!

단순히 컨트롤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태현은 바로 알아보았다.

‘직업 특성 덕분에 이익을 보는 모양인데.’

<고대 뱀파이어의 후예>라는 영웅 직업은 엄청난 불운 페널티를 주는 대신, 각종 스탯 버프와 강력한 스킬을 주는 직업이었다.

그런 직업인만큼 이런 투기장에서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

“탱커 역할의 에반젤린, 근접 딜러…… 창술사 직업이지. 그리고 사제, 마법사, 궁수. 다 실력 괜찮지만 이 에반젤린이 밀고 들어오는 게 위험해. 말이 탱커지 딜링 넣는 거 보면 딜러랑 맞먹거든.”

MBS는 각 경기마다 자세한 수치를 분석해서 공개 사이트에 올려놓았다.

물론 태현은 보지 않았지만.

거기에는 각자 플레이어들이 데미지를 넣은 순위도 있었다.

“응? 내가 1위네?”

“불 지른 것도 포함되어서 그런 거 아니냐?”

“킬 순위도 1위잖아?”

“도동수 킬도 포함되어서 그런 거 같은데.”

태현과 케인의 대화를 듣던 도동수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이세연이 손가락으로 둘을 가리키며 주의를 줬다.

“둘 다 조용히 해. 어쨌든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시합은 정면 승부야. 이것저것 인원 나누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긴 하지만, 저 화력을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거지. 일단 각자 자기 포지션의 플레이어를 맡는다고 치면, 에반젤린을 상대해야 하는 건…….”

자리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돌려 케인을 쳐다보았다.

“……어?”

“힘내라.”

“어, 어?”

탱커 역할을 맡은 케인이 에반젤린을 상대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걸 깨달은 케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 *

“내가 막을 수 있을까?”

“흠. 솔직히 말해서 힘들겠지.”

“……지금 꼭 그런 솔직한 말을 해야 하냐?”

경기 직전인데 마음에 없는 말이라도 해주면 어디가 덧난단 말인가!

그러나 태현은 냉정했다.

“아닌 걸 어떡하냐. 너, 나만큼 컨트롤 잘해?”

“아니…….”

“너 에반젤린 같은 직업 갖고 있냐?”

“나, 나도 직업 등급은 똑같다고!”

<고대 뱀파이어의 후예>와 <아키서스의 노예>.

둘 다 등급은 같았지만 느낌은 전혀 달랐다.

“뭐 아키서스의 노예도 좋은 직업이긴 한데…… 투기장에서 유리한 건 <고대 뱀파이어의 후예>일 테니까.”

케인도 투기장에서 상당히 좋은 직업이긴 했다.

게다가 <아키서스의 화신>인 태현과 같이 싸운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랬다.

추가 버프를 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케인은 어디까지나 도중에 전직했고, 에반젤린은 처음부터 계속 한 직업으로 싸운 플레이어였다.

스킬 레벨이나 개수로 따지면 에반젤린이 이길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직업마다 특성이 달라서 등급 같다고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다고. 에반젤린 직업은 프리카 투기장이랑 너무 잘 맞아.”

“그, 그러면 어떡해야 하냐?”

“그냥 버티기만 해. 그 정도는 너도 할 수 있겠지.”

“뭐?”

케인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태현이니까 뭔가 비상한 계책을 알려주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뭐긴 뭐야. 내가 뭐 대단한 방법이라도 알려줄 줄 알았냐? 그런 거 없어. 그런 걸 알려줄 거면 예전에 알려줬지. 뭐 하러 지금 알려줘. 손발 안 맞게.”

“크윽…….”

들어보니 맞는 말!

“어차피 비책도 실력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거야. 어설프게 알려줬다가는 괜히 꼬인다.”

“하지만 버티라는 건 별 의미가 없잖아!”

“의미가 있는데. 내가 말한 ‘그냥 버티기만 해’라는 건 진짜 버티기만 하라는 거야. 괜히 같은 탱커끼리 맞붙었으니까 자존심 때문에 치고받지 말고.”

케인은 속마음을 들킨 얼굴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 자식이 어떻게 알았지?’

이 경기는 어디까지나 대회.

수많은 시청자들이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도동수처럼 되고 싶지는 않아!’

경기는 이겼지만 경기 내용에서 활약을 하지 못해 비웃음을 사고 있는 도동수!

‘저거 업혀 가는 거 아니냐’, ‘내가 해도 저것보단 잘하겠다’ 같은 반응이 흔했다.

남의 일일 때는 웃으면서 볼 수 있었지만, 그게 자기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싹했다.

케인이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계속해서 말했다.

“에반젤린이 아무리 미쳐 날뛰더라도 네가 치고받을 생각하지 않고 버티기만 하면 바로 무너뜨리지는 못할 거야.”

“그렇게 버티기만 하라고? 버티기만 하면 의미 없지 않냐?”

“그사이 우리가 이기면 되지.”

“…….”

케인은 할 말을 잃었다.

저 당당한 자신감!

그렇지만 생각해 보니 태현은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실제로 태현이 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도 않았고.

‘으. 도동수가 나 대신 망신 좀 당했으면 좋겠는데.’

케인은 그저 도동수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어주길 바랄 뿐이었다.

* * *

“시작부터 전력으로 가자. 틈을 주지 않고 밀어붙이는 거야.”

“괜찮겠어? 너무 과감한 거 아니야?”

“이게 더 안전해. 저 김태현은 시간을 주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에반젤린의 말에 캐나다 대표팀 플레이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태현 팀의 경기 영상은 다 챙겨보고 있었다.

숲에 불을 지르는 건 지금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는 경기였다.

“에반젤린이 그렇게 말하면 맞겠지!”

“상대 대책은 다 세워놨으니까. 가자!”

웅장한 시작 소리와 함께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에반젤린과 팀원들은 기세 좋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저 멀리 보이는 건 돌로 된 거대한 다리.

밑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거의 대로 수준으로 드넓은 다리 위에서 정면 승부를 가려야 하는 게 바로 이 <필멸의 다리> 맵이었다.

“쯧. 망치 있었으면 그냥 다리 부수는데 말이야.”

멀리서 달려오는 캐나다 대표팀을 발견한 태현이 중얼거렸다.

투기장에서는 제약이 있어 태현이 쓸 수 있는 전략 대부분을 묶고 싸워야 했다.

그런데도 이기는 게 대단한 점이었지만…….

캉캉캉캉-

에반젤린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정면에서 덤벼 들어왔다.

그걸 본 태현팀 전원이 혀를 내둘렀다.

여기에 폭딜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인데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정면돌격을 하다니.

어떤 공격을 쳐도 받아낼 자신감이 있다는 것!

“안 쏜다?”

“그래. 안 쏘는 게 낫겠다.”

이심전심.

태현과 이세연은 뜻이 일치했다.

보아하니 상대 쪽 사제가 에반젤린에게 가호를 걸고, 에반젤린도 버프를 건 게 분명했다.

상대가 저렇게 단단히 각오했는데 굳이 공격을 해서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사이 케인이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쇠사슬? 쇠사슬 쓸까?”

“아니. 쓰지 마라.”

다른 건 몰라도 <노예의 쇠사슬>은 쓸 수 있었지만, 태현은 말렸다.

직감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쓰는 건 좋지 않다고!

‘뭔가를 노리고 있군.’

에반젤린이 그냥 생각 없이 돌격하는 것 같았지만, 다른 팀원들을 케인에게서 교묘하게 가리며 돌격하고 있었다.

즉 <노예의 쇠사슬>을 자기한테 쓰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

무슨 속셈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원하는 대로 해줄 수는 없지.’

‘칫. 눈치 빠르기는!’

에반젤린은 속으로 혀를 찼다.

첫 번째 노림수는 빗나갔다.

케인이 만약 그녀를 쇠사슬로 끌어간다면 준비했던 카운터 스킬들을 대폭발시켜 제대로 한 방 먹여주려고 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세연과 태현까지 돌진을 견제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저주 반사를 써먹지도 못하다니.’

그렇지만 에반젤린은 실망하지 않았다. 일단 가까이 붙는다는 첫 목적은 달성했다.

그다음은 전투!

“캬아앗!”

“으헉!”

케인이 한심한 소리를 내며 방어에 들어갔다.

광화 스킬을 사용하며 전투력을 올리는 에반젤린!

겉모습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위압감이 철철 흘러넘쳤다.

쾅! 쾅! 콰콰쾅!

붉은색 스킬 이펙트가 주변에 터져나가고, 케인은 쭉쭉 밀려 나갔다.

그사이 뒤에서 캐나다 쪽 창술사가 튀어나왔다.

노리는 건 당연히 케인!

카캉!

“?!?!”

그러나 태현이 끼어들었다.

창술사의 공격을 <반격의 원>으로 정확하게 에반젤린에게 돌려보낸 태현.

그러나 에반젤린도 맞받아쳤다.

-붉은 피의 장벽!

‘이런 미친.’

튕겨 나온 공격이 다시 튕겨 나오는 걸 보며 태현은 급격히 몸을 피했다.

“아깝네!”

“스킬을 대체 몇 개나 쓰고 있는 거야? MP 한계가 있을 텐데?”

에반젤린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케인을 노리기 시작했다.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지금 상대해야 하는 건 창술사였다.

어차피 에반젤린은 케인이 붙잡을 수 있었다. 아니, 붙잡아야 했다.

그 정도도 못 하면 싸움 자체가 불가능!

타타탓!

“으헉!”

에반젤린을 무시하고 자기를 노리는 태현의 모습에 창술사는 기겁했다.

탱커가 앞에 있는데도 그냥 무시하고 덤비다니.

생각지도 못한 배짱이었다.

“장난해?!”

울컥한 에반젤린이 바로 검을 틀어 태현을 후려쳤지만 이미 태현이 읽은 상태였다.

-반격의 원!

바로 창술사한테 돌려보내는 일격!

카카카칵!

창술사도, 에반젤린도 기겁했다.

태현에게 완전히 읽히고 있었던 것이다.

“쯧. 끝낼 수 있었는데.”

“침착해! 넌 김태현을 무시하고 케인을 공격해! 이놈은 내가 상대한다!”

창술사가 다급하게 말했다.

태현의 속셈에 넘어가서 에반젤린까지 무너지면 안 됐다.

태현은 어떻게든 그가 묶어야 했다.

‘무슨 놈의 움직임이…… 같이 레벨 100으로 내려왔을 텐데…….’

창술사는 속으로 침을 삼켰다.

방금 에반젤린을 무시하고 옆으로 움직인 것부터 시작해서 그 뒤에 이어진 동작까지.

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소름이 돋았다.

어디까지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란 말인가.

쉬익-

팟!

태현이 재빨리 뒤로 굴렀다. 방금까지 태현이 있었던 자리에 화살이 박혔다.

“지원해 줄게! 달려들어!”

“고맙다!”

태현은 그걸 보고 중얼거렸다.

“우리는 지원 없나?”

이세연과 김철수는 상대 마법사-사제 콤비를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아직 무너뜨리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리고 남은 도동수는…….

혼자 상대방 궁수를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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