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421화 (421/1,826)

§ 나는 될놈이다 421화

“너는 왜 이렇게 태연해?”

“그야 저거 찬물도 아니라서 맞아봤자 별로 상관도 안 할뿐더러…… 나는 여기 한 번 나온 적 있었거든? 그래서 아마 이번에 퀴즈는 너만 혼자 풀게 될 걸?”

이세연의 말에 태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잠깐. 우리는 팀이잖아?”

“경기장 안에서나 팀이지. 밖에서는 남이야.”

* * *

말했던 대로, 인터뷰는 정말 무난했다.

이번 대회의 4강까지 왔는데 기분이 어떤지, 누가 위협적으로 느껴지는지, 프로게이머로 사는 건 어떤지…….

태현의 솔직하면서도 능청스러운 화법은 주변의 분위기를 장악했다.

거기에다가 같은 팀의 이세연과 주고받는 대화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뒤에서 보고 있던 PD의 입가에도 미소가 올라왔다.

‘복덩이야. 복덩이.’

판온 대회부터 시작해서, 나온 프로그램에서 전부 활약을 해대니 안 예쁠 수가 없었다.

“자, 그러면 위클리 인터뷰의 꽃! 퀴즈 시간입니다!”

“맞춰서 멋지게 기부하거나, 아니면 망신을 당하고 기부하거나. 뭐 어쨌든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자자! 태현 씨. 여기에 서세요!”

아까까지 화기애애하게 떠들던 진행자들이었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가차 없었다.

신이 나서 태현을 물풍선 밑에 앉히는 그들!

그들에게는 재밌는 장면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태현은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

“저번 주에는 무슨 문제 나왔어요?”

“음. 뭐였더라? 아. 지구과학 시리즈였죠. 첫 문제가 지구에서 바다 면적이 차지하는 넓이였을걸요.”

“맞췄어요?”

“아뇨. 첫 문제에서 탈락했죠.”

“…….”

그런 걸 외우고 다니는 놈이 어디 있어!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세요. 우리도 좋아서 하는 게 아니에요.”

누가 봐도 거짓말!

진행자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준비를 마쳤다.

“아. 이번에는 두 분 다 판온 프로게이머시다 보니, 특별히 판온 관련된 질문을 내주셨네요. 이거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진행자는 태현이 맞출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자, 첫 번째 문제 나갑니다! 판온 2가 나오기 전에 같은 회사의 게임, 판온 1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아이템 <초급 나뭇가지 검>이 있었는데요, 이 아이템의 공격력과 내구도를 합하면 얼마일까요? 1번 1…….”

질문이 나오는 순간 이세연은 고개를 저었다.

나름 제작진들이 머리를 쓴 모양이었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판온 프로게이머가 판온 관련된 질문을 받고 못 맞춰서 괴로워한다!

이런 장면은 분명 재미있는 장면이기는 했다.

문제는…….

상대가 태현이라는 것!

“23.”

“네?”

“23. 정답이죠?”

벌떡 일어서는 태현. 진행자는 바로 상황을 깨닫지 못하다가 그제야 알아차렸다.

“정, 정답이네요?”

“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아직 퀴즈 안 끝났어요!”

태현을 붙잡는 진행자들! 태현은 혀를 찼다.

“쳇.”

‘김태현이 판온 2부터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이세연은 속으로 혀를 찼다.

판온 1에서 대장장이 랭커로 유명했던 태현이었다.

별 변태같이 세세한 정보도 기억하고 있을 게 분명!

“다음 문제 나갑니다!”

“판온 1에서 유명한 길드가 있었죠. <검은 태양> 길드라고. 사람 많은 길드였는데요. 여기 길드의 시작 인원은 몇 명이었을까요?”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진짜 틀리라고 내는 수준!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안 풀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태현도 이 스튜디오 내의 분위기를 읽고 있었다.

-틀려라! 틀려라! 틀려라!

그러나 틀려줄 수가 없었다. 알고 있는 걸 물어보는데 어떻게 틀리란 말인가!

“34명.”

“?!?!?!”

첫 번째 문제도 아니고 두 번째도 맞추자, 스태프들 사이에서 술렁거림이 번져 나왔다.

“야. 뭐야. 판온 1은 아는 사람 없을 거라며?”

“어, 어라? 이상한데요. 김태현은 판온 2부터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니, 판온 1 한 사람도 보통 저런 건 모르죠! 저기 이세연 표정 보세요! 이세연도 놀라고 있잖아요!”

“다른 준비한 문제 없어?”

“판온 문제면 될 줄 알고 그것만 갖고 왔는데…….”

“계속 내봐. 하나는 틀리겠지! 인간인 이상 이걸 어떻게 다 아냐!”

PD의 희망찬 기대와 달리, 태현은 게임에 관해서는 인간의 경지를 벗어나 있었다.

-유명한 전설 세트 <아르티나의 영웅 세트>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건…….

-총 8개.

-유명한 랭커 사냥꾼, 대장장이 플레이어 김태현이 싸운 23위 랭커의 직업은…….

-……쌍검사.

태현은 맞추면서도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뭘 이런 걸 물어봐?

질문은 계속해서 나왔고, 태현은 1초도 걸리지 않고 딱딱 맞춰나갔다.

그때마다 스태프들과 진행자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서렸다. 그들의 기분이 느껴질 정도였다.

-뭘 그런 거까지 알고 있냐! 좀 틀려줘!

“흑…… 흑흑. 마지막, 열 번째 문제입니다!”

“방금 우신 거 아니죠?”

“안, 안 울었거든요?”

그러나 진행자의 목소리에서는 안타까움이 진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걸 본 태현은 마지막 문제는 틀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에이. 방송인데 한 대 맞아주고 가지 뭐.’

저렇게 절박한 사람한테는 약한 태현이었다.

어떻게든 방송을 더 재미있게 만들려고 하는데 물 한 번 못 맞아주겠는가.

이제까지 문제를 다 맞춘 것만으로도 자존심은 충분히 챙겼다. 이세연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세연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게 아쉬웠지만…….

“크흠, 크흠. 그러면 마지막 문제 나갑니다!”

“이번에 맞추면 그냥 보내주는 거죠?”

태현의 질문에 진행자는 각오를 다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지막 질문은 판온 1 질문이지만 게임 데이터 질문이 아니었다.

아무리 김태현이라도 이건 모르겠지!

“물론이죠. 자. 문제 나갑니다. 현재 가상현실게임 캡슐은…….”

태현은 친절하게 나섰다. 듣지도 않고 찍어버린 것이다.

“7번.”

“네?”

“7번!”

문제도 듣기 전에 답을 찍어버리는 태현!

자리에 있던 모두가 태현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러나 문제 카드를 들고 있던 진행자는 당황했다.

정답이었던 것이다.

‘보기가 8개인데 어떻게!?’

“왜 대답이 없어요? 틀렸죠?”

“그, 정, 정답…… 입니다……!”

“어?”

태현도 여기에는 당황했다. 정말 맞췄다고?

“?!?!?!”

이세연은 깜짝 놀라서 태현을 쳐다보았다.

아까 거야 태현이라면 맞출 수 있었다지만, 이번 건 대체 어떻게?!

‘설마 매수한 거야?! 그사이에?!’

그냥 찍어서 맞춘 거였지만, 평소 태현이 하던 짓 때문에 오해를 하는 이세연이었다.

* * *

태현이 생각지도 못한 퀴즈 실력을 방송에서 보여주고 있을 무렵, 판온에서도 슬슬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오늘은 요리 안 팔아요?”

“왜 요리사들 요리 안 파냐? 다들 어디 감?”

“뭐야. 왜 검은 빵밖에 없어? 이런 거 누가 먹는다고.”

사냥 나가기 전에 요리를 먹어서 능력치를 올리는 건 기본이었다.

그렇기에 광장이나 성문 쪽에는 요리사 플레이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요리사 플레이어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 간 거야?!”

“재료 구하러 갔다는데? 지금 재료 찾기 힘들어서 요리사들이 직접 뛴다나 봐.”

“뭐?”

플레이어들은 황당해했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바뀌지는 않았다.

“나 지하의 중앙 무덤 깨야 하는데? 요리 파는 곳 없어? 버프 받아야 하는데…….”

“없어. 지금 주변에 싹 말랐다니까. 있는 건 거의 쓰레기들이야.”

“아니, 재료가 없어질 때까지 다들 뭐했대?”

전투 직업 플레이어들이 투덜거리자, 농부 플레이어들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응했다.

“그러게 토끼 많이 나온다고 했을 때 다 같이 잡았으면 좋았잖아!”

“경험치 안 나온다고 우리 말 무시한 게 누군데!”

물론 모든 플레이어들이 저런 말을 듣고 ‘아, 우리가 잘못했구나. 판온은 서로 돕고 사는 게임인데!’라고 반성하지는 않았다.

“아, 그럴 줄 누가 알았냐!”

“빨리 농사나 지어! 농사 너희 좋으라고 짓는 거지 우리 좋으라고 짓는 거냐? 너희가 빨리 지어야 물량이 풀리지!”

오히려 적반하장!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나온다고 해도, 농사짓기 힘든 상황이라는 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결국 농부 플레이어들은 이동하기 시작했다.

원래 잘 가꾼 땅 하나에 머무르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일이 없는 농부 플레이어들에게는 정말 드문 일!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농부 플레이어들 모임에서는 어디가 좋고, 어디가 그나마 토끼 난리가 적은지 정보를 공유했다.

그리고 그중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도 있었다.

-거기 골짜기에 토끼 별로 없다는데요.

-근데 거기는 애초에 논밭이 없어요. 농사가 거의 안 되는 곳이라…….

-땅 처음부터 다 다시 다듬어야 하잖아.

-그렇죠. 그리고 토끼 없는 게 먹을 게 없어서 같거든요. 거기서 농사 지으면 토끼 오지 않을까요?

-거기 영주가 NPC가 아니라 플레이어지? 김태현? 김태현이 뭐 토끼 잡는 정책을 펼쳐준다거나 한대?

-그건 잘 모르겠는데…….

결국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로 향하는 농부 플레이어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다들 좀 큰 도시 근처로 가거나, 기존에 농사를 짓던 곳으로 가는 것이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로 향한 농부 플레이어들은 처음부터 시작할 각오가 된 플레이어들뿐!

“그래도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는 농부가 거의 없으니까 경쟁은 없겠다.”

“맞아. 경쟁 붙어가면서 하는 것보다는 그냥 혼자 마음 편하게 하는 게 낫지.”

골짜기로 향하는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말하며 걸어갔다.

저 멀리 골짜기 앞의 영지가 보였다.

“정지. 여기는 무슨 일로 왔느냐?”

그러나 그들을 가로막는 NPC가 나타났다.

보아하니 아키서스 교단의 사제 NPC 같았다.

“예? 어, 농사지으려고 왔는데요.”

“너는 어떤 신을 믿느냐?”

“데메르 여신이요……?”

농부 직업과 땅의 여신인 데메르 여신은 궁합이 좋았다.

새로 온 농부 플레이어들도 데메르 여신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아키서스 사제는 역정을 냈다.

“여기는 위대한 아키서스 님을 믿는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이놈!”

“어? 아키서스 교단은 그런 면에서 되게 관대한 교단 아니었나?”

“뭐지? 언제 바뀐 거지?”

플레이어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아키서스 교단은 분명, 다른 교단을 믿든 안 믿든 신경 쓰지 않는 교단으로 알고 있었다.

태현이 교단을 부활시킬 때 선택한 전략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른바 1+1 전략!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완고하게 나오다니.

“어쩌지?”

“이제 와서 다른 곳 가기에는 너무 늦었는데. 땅에 뿌린 것도 다 철수했고. 그냥 아키서스 믿을까?”

“어차피 데메르 교단에서 크게 공적치 포인트 쌓은 것도 없으니까 전환해도 상관없긴 한데…….”

농부 플레이어들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아키서스 교단으로 갈아타기로!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기에는 너무 억울했던 것이다.

아키서스 교단에 들어가겠다고 말하자 사제가 활짝 웃었다.

“너희들은 옳은 선택을 한 것이다. 가자! 영지 안으로 안내해 주겠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최근에 올라왔던 영상과 다름이 없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골짜기에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키서스 사제와 성기사들의 눈치를 보는 플레이어들!

만약 눈이라도 마주치면 ‘아키서스 만세! 아키서스 충성충성충성!’ 하고 외치는 플레이어들이었다.

그것 빼고는 다 그대로였다.

영지 한쪽에서는 기계공학 플레이어들이 괴상한 걸 만들고 있었고, 영지 다른 한쪽에서는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있었다.

농부 플레이어들은 안심했다.

이 정도라면 그들의 경쟁자는 없을 것 같았다.

“좋아. 밭 만들자!”

“혹시 여기 우리 일 도와줄 사람은 없으려나?”

밭을 처음부터 만들고, 울타리를 치고, 이것저것 설치하는 데에는 손이 많이 들었다.

제작 스킬이 있는 플레이어들이 도와준다면 훨씬 편해졌다.

물론 그런 플레이어들을 갑자기 구하는 건 힘들었다.

특히 이런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는 더더욱!

“이런 영지에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이 있을 리가 없잖아. 다들 자기 할 일 하느라 바쁜데.”

우르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하품을 하며 지나갔다.

사재기 작업을 하느라 할 일 없이 지루하게 대기를 타고 있는 그들이었다.

“……물어나 보자!”

농부들은 후다닥 달려가서 그들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소식은 금세 태현의 귀에도 들어갔다.

-골짜기에 농부 플레이어들이 찾아왔다고?

-네.

-거 참. 상황이 진짜 안 좋나 보네. 그런 곳까지 와서 농사를 짓겠다니.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주변에 땅이야 넘치도록 남으니까 알아서 농사하라고 해.

-저희도 심심한데 도와도 되나요?

-돕든가. 영지에는 별일 없지?

-갈락파드란 NPC가 새로 온 거 말고는 별일 없는데요.

태현은 안심했다.

갈락파드가 왔다고 달라진 건 없었다.

역시 케인이 엄살을 떤 거였구나!

-농지 있어서 손해 볼 거 없으니까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고. 그래. 다들 토끼 때문에 고생이…… 잠깐.

-왜 그러시죠?

태현은 그제야 깨달았다.

저번 토끼의 신이 있던 안식처로 들어갔을 때 풀린 저주.

토끼=하찮은 몬스터라는 인식 때문에 놓치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거…….

‘설마 그 저주가 이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들어맞는 설명!

‘나 때문에 대륙에 이렇게 난리가 나다니…….’

태현은 1초 정도 반성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뭐, 나는 아쉬운 거 없으니까 상관없나. 아쉬운 놈들이 저주 풀러 다니겠지.’

반성을 끝낸 태현은 발전적으로 살기로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영지에 토끼 막는 아이템 설치할 수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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