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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420화 (420/1,826)

§ 나는 될놈이다 420화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태현은 외모에 대해 별로 불만이 없었다. 남들이 무섭다고 해도 ‘알 게 뭐냐’ 하고 넘겼던 것이다.

그래서 저번에 메이크업을 하고 나갔을 때 방송의 반응은 좀 많이…… 어색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묘해지는 칭찬들!

-아, 아니…… 꼭 그러고 나가야 하나?

-방송 나가는데 메이크업 안 하고 나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당연히 하고 나가야지. 너는 간단하게만 해도 효과가 엄청 좋더라. 꼭 해!

-…….

태현은 망설였지만 딱히 하지 않겠다고 핑계를 댈 만한 게 없었다.

결국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오랜만이에요, 태현 씨! 대회는 잘 보고 있어요. 저번 경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김 매니저는 쾌활하게 인사했다.

이동팔처럼 김 매니저도 태현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태현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니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그걸 보셨어요?”

“네. 저도 판온은 하거든요. 물론 태현 씨처럼 자주는 못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더군요.”

일반인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는 게 판온의 매력이었다.

꼭 태현처럼 목숨 걸고 PVP를 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닌 것!

‘그보다 내가 상대방 한 명 사전에 PK해서 이긴 건 아시는 건가?’

해맑게 좋아하는 김 매니저의 모습에 태현은 살짝 의문을 품었다.

“제가 보내드린 자료는 이미 보셨겠지만 별로 어려운 프로는 아닙니다.”

물론 안 봤지만 태현은 입을 다물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김 매니저의 눈빛이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그냥 평소처럼, 편하게 인터뷰만 하시면 될 겁니다. 태현 씨가 대회 방송에서 보여주신 것처럼요.”

태현이 대회에서 워낙 자연스럽게 잘 처리했기에 김 매니저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다른 프로와 달리 위클리 인터뷰는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진행자도 편안하게 대화를 이끄는 사람이었고, 태현이라면 충분했다.

“어, 이런. 스타일리스트분이 안 계시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다른 분 불러오겠습니다.”

메이크업룸 안을 확인한 김 매니저는 일정표를 보고 아차 싶었다.

저번에 태현을 맡은 스타일리스트가 아직 올 시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부를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있으니…….’

“아뇨.”

“……?”

“그분한테 받겠습니다. 오래 걸리나요?”

“아뇨, 30분이면 오시긴 합니다만…… 꼭 그분한테 받으실 필요는 없는데요? 다른 분들도 그분만큼 솜씨 좋으십니다.”

“아뇨. 그분한테 받겠습니다!”

태현도 사람이었다.

* * *

태현은 시간을 알차게 쓰는 사람이었다.

보통 판온의 랭커라고 하면 하루 종일 판온만 한다고 생각하기 쉬웠다.

그러나 태현은 아니었다.

‘계속 캡슐에만 있으면 몸이 썩는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쪼개서 운동을 하고, 그걸로 가장 효율적으로 몸과 근육을 유지시킨다.

-강한 몸에 강한 정신이 깃든다!

기계처럼 정확한 시간표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판온에 미쳐 있는 모습 때문에 놓치기 쉬웠지만, 주변 사람 중에서 가장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는 게 태현이었다.

덕분에 이렇게 남는 시간이 있으면 주체를 할 수 없이 심심해졌다.

‘아. 뭐라도 갖고 올걸.’

학교를 다닐 때에는 이렇게 남는 시간에 공부를 했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태현은 멍하니 있다가 핸드폰을 꺼내 판온 아이템을 훑어보았다.

이다비의 말대로, 농작물의 가격이 확실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눈치 빠른 플레이어들은 벌써 이 이상 현상을 눈치챈 것 같았다.

‘이거 진짜 사고 한 번 치겠는데.’

이렇게 대규모로 사재기를 성공시키는 건 태현도 본 적이 없었다.

돈 많고 겁 없는 유 회장이니까 시도할 수 있었던 것!

‘이렇게 농작물이 모이면…… 먼저 요리사들이 곤란해지려나?’

이렇게 재료가 끊기면 요리사 직업들은 바로 타격이 왔다.

그러면 공략 전에 요리사의 요리를 먹고 공략에 들어가는 전투 직업에게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일종의 연쇄 반응!

탁-

태현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옆의 의자에 누군가가 앉았다.

화려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였다. 태현과 동갑이거나, 한두 살 정도 어려 보이는 정도?

물론 태현은 신경 쓰지 않고 아이템 시세만 계속 훑어보았다.

그게 오히려 상대를 자극한 것 같았다.

“야.”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 태현은 무시했다.

“야. 야.”

“……?”

태현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에 상대가 날카롭게 말했다.

“너 부른 거야!”

“아. 날 불렀다고? 미안. 야야 거리길래 다른 친한 사람 근처에 있는 줄 알았네.”

상대가 착각한 게 있다면, 태현은 절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초면이든 뭐든 굽히지 않는다!

하연은 살짝 당황했지만 마찬가지로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갔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러면 내가 선배라는 거잖아. 그러면 반말해도 되지!”

“무슨 소리야. 내가 너보다 3년이나 먼저 들어왔는데.”

“뭐? 진짜?! 아니, 진짜요?!”

태현은 상대방이 누군지 몰랐다.

SI 엔터 회사 건물에 있고, 어리고 예쁘니 대충 아이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태현의 추측은 정확했다.

상대는 요즘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파이브 걸스>의 하연이었다.

도도한 콘셉트로 인기 있는 아이돌!

물론 태현은 아이돌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자기가 나오는 프로도 잘 안 보는데 아이돌을 알 리 만무!

그렇지만 태현은 주눅 들지 않았다.

원래 이런 대화는 뻔뻔하고 아쉬운 거 없는 놈이 유리하기 마련.

상대방이 선배든 뭐든 간에 두려워할 거 없다! 당당하게 나가자!

“정, 정말요?”

“물론이지. 좀 실망인데. 이렇게 예의 없는 사람일 줄은 몰랐어.”

“죄송…… 합니다…….”

태현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하연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하연이 이렇게 잘 속아 넘어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하연도 태현이 누군지 잘 모르는 것!

만약 태현이 누군지 알았다면 ‘네가 무슨 선배야!’라며 나왔을 테지만, 상대를 모르니 ‘헉, 저렇게 당당한 거 보니까 정말 선배인가 보다’ 싶었던 것이다.

덕분에 하연은 기가 팍 죽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연예계에 먼저 들어온 선배를 못 알아보고 이렇게 실수를 하다니.

그냥 새로 온 것 같은 신입한테 말이나 걸어보려고 한 것인데!

덜컥-

“많이 기다리셨죠?”

저번에 태현의 메이크업을 맡아준 스타일리스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어색한 분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샥샥샥-

스타일리스트가 저번처럼 능숙하게 태현의 얼굴을 가다듬고 머리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점차 완성되는 얼굴.

“자. 다 됐습니다. 깔끔하죠?”

“감사합니다. 정말 솜씨가 대단하시군요.”

“너, 너, 너, 너……!”

메이크업이 끝난 태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하연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너 그, 그…… 그 뭐지? 판온! 맞아! 판온 프로게이머! 판온 프로게이머잖아!!”

투기장 대회가 대흥행한 것 때문에 관련 기사가 많이 나왔다.

게다가 이세연이 소속된 팀 아닌가. 덕분에 하연도 기사를 몇 번 정도는 눌러봤다.

거기에는 분명 저런 얼굴이 있었다!

하연은 깨달았다.

최근에 회사에 새로 들어온 프로게이머가 있다고 들었는데, 저게 저거구나!

“아니. 알아볼 거면 메이크업 하기 전에 알아보든가. 메이크업 하고 나서 알아보니까 내 기분이 좀…….”

“네가 무슨 선배야! 너 선배 아니잖아!! 새로 들어온 사람이잖아!!!”

하연은 태현을 노려보며 외쳤다.

아무리 뻔뻔한 놈이라도 이렇게 거짓말이 들통 난 이상 아까처럼 태연하게 있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하연은 여전히 태현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나이 이야기였는데?”

“…….”

하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너 이름이 뭐야?”

“케인이다.”

“케인…… 그래. 기사에서 본 거 같아. 막 트러블메이커에 호전적이라고…… 역시 기사대로네! 어쨌든 내가 너 이름 기억했어! 어디 한 번 잘나가나 두고 보자! 흥!”

말을 마치고 하연은 나가 버렸다.

그걸 본 스타일리스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연이가 말은 저렇게 해도 성격은 착한 애니 별로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해코지 같은 건 안 해요.”

“해도 별 상관없어요. 쟤는 제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있으니까.”

“네? 아. 잠깐…….”

“그보다 쟤가 누구죠?”

“…….”

스타일리스트는 당황한 눈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 * *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너는 정말 메이크업을 잘 받는 거 같아.”

“그래. 고맙다. 근데 네가 왜 여기 있냐?”

“그야 너랑 나랑 같이 나가니까.”

이세연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내가 너랑…… 근데 왜?”

“……대회에 같은 팀이라서?”

“케인이나 김철수도 되잖아? 근데 왜?”

“그 둘보다 인기가 더 많아서? 그보다 내가 고른 거 아닌데 왜 내가 이유를 설명해 줘야 하는 거야? 걸어가기나 해.”

이세연은 투덜거리는 태현의 등을 밀었다.

“그보다 아까 이상한 소리를 들었어.”

“……?”

“아는 애가 막 ‘판온에 케인이라는 플레이어 있지? 성격 진짜 나쁘더라고! 새로 회사에 들어와서 말 건 건데 막 거짓말이나 하고!’ 이러던데…… 내 기억이 맞으면 케인은 우리 회사에 들어온 적이 없단 말이야?”

“그러게. 신기하네. 그 아는 애가 혹시 술 마셨냐?”

태현의 말에 이세연은 싱긋 웃었다.

“아니. 그보다는 네가 수상한데?”

“무슨 소리야? 내 이름은 한 글자도 안 나왔는데.”

“나중에 어디 삼자대면하고서 그 소리 하나 보자구.”

“잠깐. 그보다 그 ‘아는 애’하고 네가 동갑인가?”

“동갑인데.”

“그러면…… 음…….”

3살 먼저 태어났다고 우긴 것도 거짓말이 되는 셈!

“너 뭐 했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케인이 사고를 쳤겠지. 내가 나중에 따끔하게 말할 테니 걱정하지 마.”

“…….”

MBS의 분위기는 훈훈 그 자체였다.

대회는 대성공.

거기에 두 주축인 태현과 이세연이 나왔으니 모든 스태프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자, 긴장하실 필요 없이 질문에만 대답하시면 됩니다.”

“저번에 보시니까 잘하시던데, 저번처럼만 해주세요!”

태현에게 쏟아지는 기대 어린 시선에 이세연은 속으로 놀랐다.

대회가 시작되고 태현이 놀라운 활약을 하기는 했지만, 정작 방송에는 많이 나오지 않은 편이었다.

대회 관련 방송이 전부!

그런데도 이 정도로 기대를 받다니.

그녀가 태현을 고평가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잘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쿡쿡-

태현이 이세연을 살짝 찔렀다.

“왜?”

“저게 뭐지?”

스튜디오 가운데 위에 거대한 물풍선 같은 게 매달려 있었다.

이세연은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대답했다.

“벌칙이잖아.”

“……뭔 벌칙? 이거 인터뷰 아니었어?”

“……너 이거 사전에 준 거 안 보고 왔지?”

“아, 아닌데? 보고 왔는데?”

이세연 앞에서는 이상하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이거 인터뷰 다 하고 나오는 퀴즈들 풀어서 맞추면 자기 이름으로 프로그램에서 기부하고 못 맞추면 저 물 맞는 거야…… 아니, 이건 대본 안 보고 그냥 프로그램만 봤어도 아는 거잖아?”

“한 번도 안 봤거든.”

“아주 자랑이에요. 저 물 따뜻하니까 맞아도 별로 상관없을 거야.”

“별로 물 맞고 싶지 않은데.”

“퀴즈 맞히면 되겠네. 맞히기는 힘들겠지만.”

“왜?”

“못 맞추라고 내는 문제거든.”

위클리 인터뷰는 인터뷰를 끝내고 나서 마지막으로 퀴즈를 냈다.

좋은 의도로 푸는 퀴즈였지만 이 퀴즈 난이도는 장난이 아니었다.

하나도 아니고, 고난이도의 퀴즈들이 연속으로 나왔으니 애초에 맞추지 말라고 내는 퀴즈였다.

벌칙을 받기 싫어서 고민하는 게스트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 만든 코너였던 것이다.

그런 모습을 또 시청자들이 좋아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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