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18화
이겨놓고 이러는 것도 웃겼지만, 저지른 게 있어서 케인은 찔릴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태연하게 시선을 돌리고 딴청을 피우는 태현이나 이세연 같은 사람이 대단한 것!
케인이나 김철수 같은 일반인(?)들은 미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게다가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케인을 노려보는 눈빛은 특히 더 살벌했으니…….
-2연승! 대단합니다, 한국팀! 대회 시작 전에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대회의 우승 후보 중 하나라고!
-게다가 지금 유일하게 무패인 팀이에요. 두 경기 다 3:0, 3:0으로 올라온 거죠.
-물론 중국대표팀과의 경기 전에는 일이 조금 있기는 했었지만…….
해설자들은 말끝을 흐리며 살짝 어색하게 웃었다.
가재는 게 편.
거기에다가 방송국 관중석에 앉아있는 팬들은 대부분 한국팀의 팬이었다.
이 승리에 기뻐하는 사람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4강에 선착한 한국대표팀. 다음 경기 상대가 궁금해지네요.
-그렇습니다. 사실 이제 남은 팀들은 누구 하나 약한 팀이 없습니다. 다 쟁쟁한 강팀들을 깨고서 올라온 팀들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한국팀이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만큼 강팀이에요!
해설자들의 말을 듣던 태현이 말했다.
“5:4로 이긴 경기에서 저런 소리 하면 좀 민망하지 않나?”
“그게 해설자의 능력이야.”
한국팀의 압도적인 경기가 끝나고, 다음 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4강에 진출할 다음 팀이 결정되었다.
캐나다대표팀이었다.
* * *
SI 엔터 대표, 이동팔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인터넷 기사들을 내려 보고 있었다.
[한국대표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승리.]
[4개 팀에게 물었다.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선수는? ‘김태현’.]
[새로 만들어질 판온 팀 MQ의 감독, 가장 탐나는 플레이어를 밝히다.]
[유성기획 ‘판온 자선대회 의향 있어’.]
[중국대표팀 ‘이건 페어 플레이가 아니다’ 항의…….]
[김태현의 플레이에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
[한국대표팀은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내가 사람을 보는 능력이 있다니까. 역시. 고럼. 고럼.”
이동팔은 스스로에게 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매번 기사의 이스포츠란을 채우는 태현의 이름이 그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서둘러서 태현을 방송에 내보내지 않고, 대회를 기다렸던 선택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억지로 푸시하거나, 억지로 나가서 이름을 알릴 필요가 없다.
능력이 된다면 이렇게 올라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판온 대회에서의 성적?
대다수의 팬들이 태현만큼 압도적인 선수가 없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한국대표팀의 팬이 아닌, 팀 블루 같은 한국대표팀에게 진 팀의 팬들도 그건 인정하고 있을 정도였다.
방송에서의 모습?
다른 선수들이 실제 방송에 나왔다는 중압감에 얼어붙어 있는 동안, 태현은 이세연과 함께 대화를 주도해나갔다.
게다가 기대하지 않았던 외모까지 히트!
이동팔은 처음에 태현이 아닌 줄 알았었다.
간단한 메이크업을 해도 엄청나게 효과가 좋은 사람이 있고, 엄청나게 메이크업을 해도 효과가 거의 없는 사람이 있었다.
태현은 완벽하게 전자!
어쨌든 현재까지 태현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쐐기를 박을 때였다.
쇠도 뜨거울 때 두드리듯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화제의 중심일 때 방송에 나가 얼굴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벌써 아는 PD들에게서 은근슬쩍 연락이 오고 있었다.
다른 프로게이머들이 방송에 나가려면 소속사 쪽에서 직접 제안을 해야 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일!
그만큼 태현이 화제의 중심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뭐가 좋을까. 뭐가 좋을까…….’
이동팔은 신중하게 고민했다.
제안이 여러 개 왔을 때일수록 고민해야 했다.
‘생존의 법칙…… 이건 지금 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생존의 법칙’은 인기 있는 공중파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연예인들이 무인도에 가서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살아가는 프로그램!
SBC가 아닌 KBC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 MBS 국장 눈치도 좀 덜 보이고, 신인 연예인이 뜨기 좋은 프로그램이라 탐나기는 했다.
그러나 이동팔은 이건 미뤄두기로 했다.
‘대회가 한참인데 이렇게 힘 빠지는 건 위험하지. 이 사람도 당장 하자고 보낸 건 아닌 모양이군. 대회 끝나고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자니.’
어차피 급한 게 아니었으니까.
‘다음 건…… 켠김에 끝까지. 이것도 괜찮군.’
‘켠김에 끝까지’는 SBC 쪽 프로그램이었다.
게임을 끝까지 깨기 전까지는 절대 나가지 못하는 컨셉의 프로그램!
어려운 게임에 도전하는 출연자와 그 출연자가 좌절하는 모습이 인기의 이유였다.
MBS와 게임 관련 프로 싸움에서 밀린 SBC였지만, 켠김에 끝까지는 그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알짜배기 프로그램!
아직도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김태현이면 괜찮을 거 같아. 게임이란 컨셉도 잘 맞고. 세연이도 같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으니 둘이 같이 나가도 괜찮을 거 같은데.’
마지막으로 고민하고 있는 건 MBS 쪽의 ‘위클리 라이브’였다.
게임 방송의 전통 강자인 MBS의 주력 프로그램 중 하나.
화제의 인물들을 데리고 와서 여러 질문을 던지고 인터뷰를 하는 프로그램.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게이머들이 실제로 나오는 것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애청했다.
그렇다고 게이머들만 나오는 건 아니었다.
MBS 특성상 게이머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었지, 화제만 되면 누구든 나올 수 있었다.
이동팔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먼저 위클리 라이브에 나간 다음 켠김에 끝까지에 나가자. MBS 쪽에서 소개해 주기도 했고 대회도 MBS 쪽에서 진행 중인데 체면은 세워줘야겠지.’
생존의 법칙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이동팔은 지금 당장 나갈 수 있는 두 프로그램을 먼저 골랐다.
“후후. 내가 직접 연락을 해줘야겠군. 감동 받아서 눈물을 흘리려나?”
매니저한테 연락을 보내는 게 아닌, 대표인 그가 이렇게 직접 연락을 하다니.
분명 감동하면서 받을 것이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삐 소리 이후…….
“…….”
이동팔은 당황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이세연에게 연락했다.
김태현이 연락이 안 되는데 무슨 일인지 아니?
-아까 대회 끝나고 판온하러 먼저 갔는데요?
* * *
“좋아. 이쯤 할까.”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채, 태현은 작업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케인이나 김철수는 경기 승리를 축하하자며 회식을 하자고 했지만 태현은 단호했다.
-회식은 게임 안에서 하면 되잖아.
물론 케인은 태현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현실은 게임 밖에 있다!’, ‘너 안 오면 우리끼리 뭔 이야기를 하냐’, ‘나 다른 사람들이랑 좀 친해지게 자리에만 있어줘!’라고 발버둥 쳤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왔다.
아티팩트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첫 번째 시도인데 너무 시간을 오래 쓰는 것도 좀 그렇지. 다음 경기 전까지 완성시키려고 했으니…….’
-완성.
태현은 반지를 두드리던 망치를 멈췄다.
[아키서스의 아티팩트 제작 스킬을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아키서스의 힘이 담겨 있는 신성한 중급 가호 반지>가 완성되었습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신성 스탯이 오릅니다.]
[신성한 힘을 다루는 대장장이의 소문이 대륙으로 퍼져 나갑니다.]
아키서스의 힘이 담겨 있는 신성한 중급 가호 반지:
내구력 60/60, 회피력 30.
아키서스의 힘이 담겨 있는 아티팩트입니다. 상당히 강력한 아키서스의 힘이 반지에 담겨 있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신도들이 이 반지를 본다면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
스킬 <확률 조작> 사용 가능, 스킬 <행운 부여> 사용 가능.
착용 시 불운 페널티에 영향받지 않음.
“!”
태현의 눈빛이 빛났다.
아이템 자체의 성능은 상당히 애매한 성능이었다.
태현은 써봤자 의미가 없는 수준!
들인 시간과 재료를 생각한다면 거의 꽝에 가까웠다.
그러나 태현이 노리던 옵션이 붙어 나왔다.
-착용 시 불운 페널티에 영향받지 않음!
‘불운 페널티 감소나, 행운 버프 정도도 각오하고 있었는데.’
그보다 훨씬 더 괜찮은 옵션.
이거라면 에반젤린이 눈에 불을 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걸로 에반젤린이 가져간 반지를 뜯어내고 추가로 부려먹기까지 가능!
“크하하하! 에반젤린!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
태현의 외침을 들은 이다비와 유 회장,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깜짝 놀란 얼굴로 서로 바라보았다.
“만들던 게 완성된 모양인데요?”
“그 에반젤린이란 사람한테 진짜로 주려는 거 맞는 거 같은데…….”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이다비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걸 깨달은 이다비가 물었다.
“왜 내 눈치를 봐?”
“그, 그야…….”
“뭐? 뭔데? 응?”
“아무것도 아닙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재빨리 말하더니 돌아서서 도망쳤다.
평소에는 그렇게 친절하고 관대하던 이다비에게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느껴졌던 것이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도망!
길드원들이 도망치자 이다비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길드원들을 쫓아버리나? 사재기 관련으로 이야기 더 해야 하는데.”
“안 쫓았어요.”
이다비의 목소리에는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그걸 느낀 유 회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절대로 그런 게 아닌데…….”
유 회장이 보기에, 저건 아무리 생각해도 로맨틱한 고백용 반지가 아니었다.
세상 어떤 놈이 고백을 하는데 저렇게 사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단 말인가!
문제는 이다비처럼 한 번 저런 생각에 꽂힌 사람은 냉정하게 판단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언제나 아쉬운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게 세상이지. 저런 놈이 뭐가 좋다고…….’
속으로 한탄하던 유 회장은 입을 열었다.
“에잉. 됐다. 이런 건 언제나 늙은이의 몫이지. 내가 직접 물어봐 주마.”
“네?”
덜컥-
“넌 뭘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거냐?”
“아. 어르신 오셨습니까? 이다비도 왔네?”
태현은 둘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다비가 살짝 어색해 보였던 것이다.
“뭐 문제 있어? 사재기에 문제 생겼어?”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요…….”
이야기가 샐 것 같자 유 회장이 재빨리 끊었다.
“그래서 뭘 만들고 있는 거냐? 대회를 앞두고 그런 걸 만들어도 되냐? 연습은?”
“어르신이 자꾸 그러시니까 다른 사람들이 어르신이 감독 아닌가 하고 착각하잖습니까. 연습은 어차피 도동수 때문에 의미 없고요, 다른 곳 가면 이세연이 구박하니 여기 있는 겁니다. 제작 스킬도 올리고…….”
“그래서 이 반지를 만든 거구나. 괜찮으면 나한테 팔 생각 있느냐?”
“어르신한테는 안 맞을걸요. 낚시용 반지라면 차라리 다른 걸 끼는 게 나을 거고.”
“대신 이건 유니크한 아이템이지 않느냐.”
“유니크고 뭐고 안 맞으면 의미 없죠. 그리고 이거 쓸 곳 있어서요.”
“어디에 쓰려고?”
“에반젤린이라고 플레이어 하나 있어요. 걔한테 쓰려고요.”
“골드 받고 파는 거냐?”
“아뇨.”
순간 이다비는 긴장했다.
설마……!
“걔가 갖고 있는 반지 뜯어내고 앞으로 잡다한 일들도 좀 시키려고요. 걔는 이 반지가 꽤 필요할 거라서…….”
“…….”
유 회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럴 줄 알았지!
그러는 사이 이다비는 조용히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그걸 본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요즘 이다비가 좀 이상한 거 같지 않아요?”
“네가 좀 생각해 봐라, 이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