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17화
-불타는경운기:제가 지금 시도한 방법들이 다 실패했습니다. 이거 좀 위험한 거 같아요.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두덕리대공작:저도 지금 골치 아파 죽겠습니다. 이거 기껏 공들여놓은 상급 체력 회복 약초가 싹 털려서…….
-불타는경운기:일단 다른 직업 플레이어들한테도 상황을 퍼뜨려야겠습니다. 이거 뭔가 퀘스트 같은데…….
농부 플레이어들은 진지하고 심각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뭘 키워도 자라서 거두기 전에 토끼들이 와서 쓸어버리는 것이다.
직업 플레이 자체가 힘들어지는 최악의 상황!
그러나 다른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니, 뭘 이런 걸 가지고 그래. 농부들 너무 유난 떠는 거 아니냐?
-토끼 많이 나오면 다 잡으면 되잖아. 그거 못 잡는다고 이러는 거 아니지? 잡기 귀찮아서 이러는 거야?
-나도 농사 좀 해봤는데 그거 농작물 조금 잃는 건 기본이잖아. 그거 가지고 이렇게 난리 칠 필요 있나?
대회도 한창 뜨거워지고 있는 상황.
농부 플레이어들의 ‘토끼가 우리 농사를 다 망치고 있어요!’란 말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중앙 대륙의 토끼들은 점점 세력이 불어나고 있었다.
* * *
여유만만.
지금 딱 태현 팀의 태도가 그랬다.
저 멀리서 보이는 상대 팀은 4명!
이건 뭐 어떻게 해도 질 수가 없었다.
긴장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에 이세연이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할 정도!
“어흠. 어흠. 그래도 사람들 보는데 주의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연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서려 있었다.
모두가 싱글벙글!
태현도, 케인도, 이세연도, 김철수도, 심지어 도동수까지 얼굴에 미소를 달고 있었다.
날로 먹는 승리에 대한 예감 덕분이었다.
“그런데 너는 왜 웃고 있냐?”
태현은 의아해했다.
이다비가 너무 해맑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저번에 저 어르신하고 이야기를 했거든요.”
“?”
태현이 유 회장을 어르신이라고 부르고 다닌 것 때문에 이다비도 유 회장을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무슨 이야기?”
“어르신이 묻는 거예요. ‘판온에도 계절이 있냐’고. 그래서 있다고 했더니 ‘그러면 계절에 따라 농작물 자라는 것도 변하냐’고 물으셔서 그것도 그렇다고 했죠. 그랬더니 뭐라고 하셨게요?”
“뭐라고 했는데?”
“그러면 ‘농작물 다 자란 거를 잔뜩 사놓으면 나중에 잘 안 자랄 때 비싸게 팔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거 현실성 없잖아?”
이다비와 유 회장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태현도 금세 알아차렸다.
유구한 전통을 가진, 사재기!
어떤 아이템 하나를 닥치는 대로 사서 물량을 부족하게 만든 다음, 그 가격을 마음대로 올려 이득을 얻는 기술!
그렇지만 판온에서 사재기는 매우 쓰기 힘든 기술이었다. 거의 현실성이 없다고 봐도 좋았다.
먼저 판온 유저가 많다 보니 경매장에 올라오는 아이템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사재기를 하려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이 숫자 중 일부 정도는 구매해야 하는 것이다.
거기서부터가 장벽이었다.
게다가 아이템 종류도 중요했다.
누군가 잔뜩 사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손쉽게 만들어서 팔 수 있다면 가격 장난을 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점 때문에 농작물 사재기는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농부 플레이어 숫자를 생각해 보면,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다시 농사를 짓는 게 가능!
‘그나마 사재기를 하려면 경매장에 풀리는 숫자가 적고, 사람들이 많이 원하는 그런 아이템을 골라야 조금 가능성이 있지. 그렇게 골라도 힘든데.’
판온 1 때부터 사재기를 시도했다가 망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세상일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던 것!
아이템을 잘못 골라서 ‘어? 하급 붉은색 약초가 너무 비싼데?’ ‘그러면 다른 거 쓰자. 다른 것도 효과는 비슷한데.’ 같은 식으로 사람들이 나오는 바람에 망한 플레이어.
기껏 아이템은 잘 골랐지만, ‘어? 이거 주문서 시세가 좀 이상한데? 누가 잔뜩 사 모았어! 이거 사재기야!’ ‘그러면 사지 말자! 버티자!’ 같은 식으로 여론이 형성되어 쫄딱 망한 플레이어.
사재기의 그림자에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피와 눈물이 섞여 있었다.
“태현 님은 사재기 해보셨어요?”
“판온 1 때…… 아차.”
“저는 별로 신경 안 쓰는데요.”
“하하.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걸?”
케인과 달리, 이다비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태현이 누구인지를.
이세연과 뭔가 과거에 있었던 같은 대화를 나누고, PVP도 능숙하고, 과거의 적들이 계속 의심하면서 쫓아오고…….
솔직히 눈치 못 채는 케인이 멍청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 그녀였다.
이다비는 살짝 불만 섞인 표정을 지었다.
이세연과 대화하는 걸 보니, 이세연은 판온 1 때 일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한테는 숨기다니.
“어쨌든요!”
“그래. 어쨌든. 나는 한 적 없고 내가 아는 사람 이야기인데. 광산 하나 찾아서 거기 나오는 희귀한 금속으로 사재기한 적 있지. 근데도 엄청 아슬아슬했다고. 조금만 더 늦었으면 내가…… 아니, 그 사람이 위험했을 거야.”
다른 길드가 점령하고 있는 광산으로 들어가서 폭탄을 날려 버리고 전부 쓸어버린 후 광산을 뺏은 태현이었다.
물론 남은 길드원들이 분노해서 다시 찾아왔지만, 들어오는 족족 몇 번이고 전멸시켜주니 태도가 달라졌다.
-이 XXX XX 할 자식! 당장 나오지 않으면 영원히 쫓아다니면서 PK해주마!
-이놈! 당장 나오면 한 번만 죽이는 걸로 용서해 주마!
-저기, 그냥 나오기만 하면…… 저희가 안 건드릴 테니까…… 그 광산에서 나오시기만 하면…… 그쪽도 슬슬 나와야 하지 않나요? 광산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잖아요.
-제발 나와 주세요! 뭘 원하십니까! 골드?! 협상 좀 합시다! 제발!
상대 길드의 도움 덕분에 태현은 성공적으로 사재기를 끝냈고, 자금으로 쓸 골드를 벌 수 있었다.
훈훈한 추억이었다.
태현이 추억 돋는 얼굴로 코밑을 손가락으로 쓱 닦고 있자 이다비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저런 표정으로 할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흠흠. 어쨌든 그래서 사재기는 엄청나게 위험하다고. 저 어르신처럼 초보자는 더더욱 할 게 아니지. 판온 하신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사재기를 해?”
“그래서 저도 말렸거든요. 위험한 거 다 말씀드리고 했는데…… 괜찮다고, 자기는 잃어도 괜찮으니 해보고 싶다고 하시는 거예요.”
“돈 썩어난다고 아주…….”
“네?”
“아니야. 아무것도.”
돈 많고 시간 많고 의욕 넘치는 사람만큼 무서운 게 없었다.
김태산은 나름 게임을 오래 해서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절제를 할 줄 알았다.
물론 그게 돈을 아낀다는 건 아니고, 쓸 만한 아이템과 쓸모없는 아이템을 구분해서 사는 수준 정도?
그리고 불가능한 계획에 돈을 낭비하지 않았다.
김태산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게 사재기였다.
그러나 유 회장은 달랐다.
무서운 게 없는 초보자!
레벨만 높았지 아직 유 회장의 게임 경험은 한참 부족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다비가 말려도 듣지 않았다.
나는 해보고 싶다!
결국 이다비는 포기했다.
자기 돈으로 자기가 쓰겠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하도 하고 싶어 하셔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붙여 드렸어요. 사재기는 혼자 하기 힘드니까.”
“정말 잘 어울린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과 사재기.
이렇게 잘 어울리는 궁합도 드물 것이다.
* * *
여럿이 나눠서 구매한다면 들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는 확률이 확 올라갔다.
유 회장은 게임에서는 초보자였지만 현실에서는 아니었다.
-농작물을 사되 고급 농작물만 사자.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거나 레벨이 필요한 농작물들이 있을 거 아니냐. 그런 재료들이라면 플레이어들도 더 많이 찾을 거고, 만들기는 더 어렵겠지.
-그러면 필요한 골드가 몇 배로 뛰는데요?
-상관없다. 사라.
-……예.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설마 이게 사랑?
-일단 어느 정도 산 다음에는 일정 물량은 팔겠습니다. 골드 확보도 해야 하니까요.
많이 사서→가격이 올라가면→일부를 팔아서 손해를 메꾸고 다음 구매를 준비한다.
위험천만한 사재기를 좀 무난하게 넘기기 위한 테크닉 중 하나.
그러나 유 회장은 단호했다.
-필요 없다. 그냥 사라.
-……!!!
그래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골드를 받아 고급 농작물들을 샀다.
그리고 다시 받아서 더 많이 샀다.
밀, 보리, 쌀 등 각종 농작물들 중 품질 좋은 농작물들이 순식간에 창고에 쌓이기 시작했다.
* * *
“저도 진행되는 거 들으면서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분위기가 이상해요.”
“무슨 분위기?”
“갑자기 중앙 대륙에 토끼가 그렇게 난리를 치고 있거든요.”
“그래? 어떤 놈이 또 사고를 친 거지?”
순간 태현은 말하면서 뭔가 이상했지만 넘어갔다.
기분 탓이겠지?
“그러게 말이에요. 계절이 갑자기 겨울이 된 것만으로는 약할 줄 알았는데, 토끼 재앙까지 겹치니까…….”
이다비는 토끼 사태를 무시하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달리, 상황을 명확하게 보고 있었다.
이건 위기이지만 동시에 기회다!
계절이 겨울이 된 것만으로는 약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농부 플레이어 중에서는 저런 계절을 극복하는 스킬들과 장비를 갖고 있는 플레이어들도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겹치고 겹치면…….
정말 사재기가 가능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면 진짜 대박이 나올 수 있다는 거잖아……?”
“네!”
이다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대박의 꿈!
물론 대부분의 골드는 투자를 한 유 회장이 가져가겠지만, 이번 작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도 보상을 두둑하게 받을 것이다.
태현은 대단하다고 생각하다가 잠깐 멈칫했다.
“그런데 그걸 나한테 말 안 하고 둘이서만 한 거야?”
“네? 네…….”
“약간 서운한데. 그런 거 있으면 나한테도 물어봐 주지.”
“태현 님은 안 그래도 대회 때문에 바쁘신데 더 귀찮으실까 봐 말 안 한 거예요. 그리고 태현 님도…….”
“응?”
‘반지 만들어서 에반젤린한테 주려고 하잖아요’라고 말하려던 이다비는 멈칫했다.
지금 이 말이 뜬금없이 왜 나온단 말인가.
이 말은 거의 무슨…….
‘질투하는 거 같잖아!’
이다비는 고개를 흔들었다. 질투라니.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정신 차려. 정신! 지금 그럴 때가 아니잖아!’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런 재미있는 건 같이 해야지. 파트너잖아.”
“……그렇죠! 파트너죠!”
이다비의 목소리가 갑자기 확 올라갔다. 태현은 의아해했다. 갑자기 왜 이러지?
그러나 이다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뻐하는 얼굴로 태현의 어깨를 두들겼다.
“파트너! 파트너!”
“……내가 뭐 잘못 말했냐?”
“아니요. 잘 말했다는 뜻이거든요? 그리고 반…….”
“반?”
기세를 타고 반지를 물어보려던 이다비는 멈칫했다.
활발하고 친근한 태도로 물어보려고 했는데, 정작 여기서 입이 떨어지지 않다니.
이다비는 그녀가 이렇게 소심한 모습이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스스로도 처음 경험하는 모습!
“……드시 이기세요! 대회!”
“그거야 당연하지. 지는 게 더 힘들겠다.”
태현은 반대쪽 선수들을 가리켰다.
4명밖에 없는 팀이 태현 팀을, 정확히는 케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케인은 도피라도 하려는 것처럼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내가 한 거 아니라고……!”
그리고 캐스터와 해설자의 능숙한 진행과 함께, 8강 경기가 시작되었다.
시작하기 전에 중국대표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록 비겁한 수작에 휘말렸지만 우리는 아직 지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자!”
“저 비겁한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자만하고 방심한 태현 팀에 비해, 중국 팀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뜨거웠다.
모든 것을 불태울 분위기!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박진감에, 옆에서 보던 팬들은 살짝 기대를 할 정도였다.
설마 중국대표팀이 이 불리한 상황을 뒤집고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이 대회의 주인공은 그들이었다.
악당을 정정당당하게 쓰러뜨리는 주인공 그 자체!
* * *
그리고 대회는 순식간에 끝났다.
결과는 3:0.
태현 팀의 압승이었다.
“기합으로 5:4를 뒤집을 수 있을 거라면 왜 그 고생을 해서 장쓰안을 죽였겠어?”
“야, 야! 제발 목소리 좀 줄여!”
케인은 안절부절못해서 태현을 말렸다.
중국대표팀이 쳐다보는 눈빛이 이제는 거의 레이저 수준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