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16화
들어가자마자 메시지창들이 우르르 떴다.
[토끼의 신, 카르바노그의 안식처에 들어왔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던전의 토끼를 죽이지 않고 들어온 것으로 인해 카르바노그가 당신을 높게 평가합니다.]
‘토끼 학살자 칭호를 가졌는데 높게 평가를 해도 되나?’
태현은 기분이 묘했지만 상대방이 자기를 알아서 높게 평가해 준다니 내버려 뒀다.
일단 좋은 거니까!
‘근데 토끼의 신은 뭐지? 뭔가 되게 약해 보이는 신인데…….’
태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메시지창은 계속되었다.
[안식처에 깃든 저주가 밖으로 풀려 나갑니다.]
[안식처의 독기로 인해 HP가 지속적으로 감소합니다.]
“……!”
태현은 메시지창을 보고 깜짝 놀라 싸울 준비를 했다.
HP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태에서의 보스 몬스터와의 싸움이라니.
안 그래도 난이도 높은 던전의 보스 몬스터라 긴장하고 있었는데 더 난이도가 올라간 상황!
그러나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카르바노그가 날 높게 평가해서 보스 몬스터가 안 나오나?’
중앙 뒤쪽에 있는 거대한 토끼 석상이 좀 수상쩍긴 했다.
보통 저런 게 쪼개지거나, 저런 게 움직이거나, 저런 게 살아나면서 <짜잔! 보스 몬스터 XXX가 나왔습니다!> 이러기 마련인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안 나오면 나야 좋긴 하지.’
태현은 빠르게 둘러보았다.
시간이 별로 넉넉한 편이 아니었으니 중요한 것만 챙겨서 나올 생각이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구석에 있는 상자부터 시작해서 보이는 건 일단 다 챙겨 넣었다.
여기서 장쓰안과 그 난리를 쳤으니, 장쓰안의 친구들이 여기 오지 않더라도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 던전에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 이런 보스 몬스터 방에 있는 보상은 다 털리게 될 테니, 미리 다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안식처의 독기로 인해 HP가 지속적으로 감소합니다.]
‘아, 시간만 있으면 체력 노가다를 하겠는데…….’
이렇게 HP를 안전하고 지속적으로 깎을 수 있는 기회가 흔히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특히 태현이라면 더더욱.
다른 사람들이면 빨리 나가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태현은 이걸로 스탯 노가다를 할 생각부터 했다.
‘대회 끝나고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작업은 끝났다.
태현은 손을 툭툭 털고 토끼 석상을 쳐다보았다.
거대하고 수상쩍은 토끼 석상은 여전히 미동 없이 태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잘 먹고 갑니다.”
태현은 감사의 인사를 했다. 별생각 없는 인사였다.
이렇게 날로 먹고 나가니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
[카르바노그가 당신의 겸손함에 감동합니다.]
[카르바노그가 자신의 권능을 당신에게 선물합니다.]
“!!!”
이게 무슨 횡재란 말인가.
태현은 감동했다.
토끼의 신이라고 살짝 무시했는데, 이런 선물을 주다니!
‘역시 신은 다르긴 다르군!’
[스킬 <토끼 변신>을 얻었습니다.]
[신성이 오릅니다.]
“…….”
태현의 얼굴이 뭐라도 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 * *
“정말 30분 안에 왔네?!”
“밖은?”
“아무도 안 왔어. 이대로 빠져나가자. 입구에서 내가 투명 마법 한 번 걸어줄 테니까 그대로 움직이자고.”
이세연은 철저했다.
주변에 적이 없는 걸 확인했는데도 혹시 몰라서 한 번 더 대비했다.
“넌 왜 표정이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태현은 힘이 빠진 목소리였다.
던전을 빠르게 돌고 온 사람의 모습치고는 뭔가 많이 이상한 모습!
이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던전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가다가 돌아왔나?’
태현은 한숨을 쉬며 다시 스킬을 확인했다.
<토끼 변신>
토끼로 변신합니다. 귀엽습니다.
그러나 다시 봐도 스킬 설명은 변하지 않았다.
그냥 토끼로 변신하는 스킬!
태현이 본 권능 스킬 중에서 가장 어이없고 쓸모를 찾기 힘든 스킬이었다.
태현이 남들이 안 쓰는 안 좋은 스킬들의 활용 방법을 찾아 새로운 방식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긴 했지만, 이건 정말…….
‘어디다가 쓰냐?’
귀엽습니다 라는 설명이 더 얄밉게 느껴졌다.
태현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 스킬 창을 닫았다.
사실 신성 스탯이 오르고 아이템을 챙긴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가장 큰 목적인 장쓰안도 잡았으니…….
태현은 아이템창을 확인했다.
카르바노그의 징표:
카르바노그의 힘이 담긴 징표입니다. 성스러운 이 징표가 있는 땅에는 토끼가 감히 접근하지 않습니다.
‘아니, 이 던전 뭐야?!’
아무리 인내심 강한 태현이라도 2연타로 꽝을 뽑으니 슬슬 억울했다.
그나마 장쓰안과 길드원들을 잡으면서 좋은 장비들을 뜯어냈으니 망정이지…….
‘저 징표를 어디에다 쓴다? 토끼 접근 못 하게 하는 건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한데.’
게다가 토끼를 막아야 할 상황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농사할 때 정도?
그러나 태현의 직업은 농부가 아니었고, 농사 스킬을 키우는 것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영지도 농업 위주가 아니었다.
농부 플레이어들은 땅의 질이 좋고 물 흐르는 곳에 자리를 잡지, 굳이 저런 몬스터 나왔던 흉흉한 골짜기까지 찾아가서 농사를 짓지는 않았던 것이다.
‘농사나 지으라는 계시인가…… 영지에 농사짓겠다는 플레이어 있으면 이거 깔아서 도와주기나 해야겠다.’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고 아이템 확인을 마무리 지었다.
다른 아이템들은 무난하게 좋았다.
장쓰안과 길드원들이 드랍한 무기와 갑옷들, 그리고 던전 마지막 방에서 나온 펜던트 정도.
펜던트는 괜찮았지만, 태현은 이미 오스턴 왕국에서 뜯어낸…… 아니, 받은 <왕자의 목걸이>가 있었다.
워낙 좋은 목걸이였기에 펜던트는 쓰지 않을 것 같았다.
카르바노그의 펜던트:
내구력 35/35, 물리 방어력 25, 마법 방어력 25.
스킬 ‘토끼 조종’ 사용 가능, 스킬 ‘토끼의 행운’ 사용 가능.
카르바노그의 힘이 담긴 펜던트다. 착용하면 토끼와 친해질 수 있다.
‘게다가 스킬은 명백히 딸리고…….’
카르바노그를 보니 태현은 살짝 반성하게 되었다.
아, 아키서스는 그래도 나름 괜찮은 신이구나!
하도 사방팔방에 적을 만들어놔서 처음 보는 악마가 이를 가는 것만 제외한다면 아키서스도 나름 괜찮은 신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기다리는데 옆에 시커먼 게 밖으로 확 빠져나가던데, 너 뭐 건드렸냐?”
“?”
케인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까 안식처의 저주가 밖으로 나갔다는 게 저건가?’
“저주가 뭐 나갔다는 걸 본 거 같은데.”
“뭐!? 그러면 위험한 거 아니야?!”
“에이. 괜찮아. 괜찮아. 여기 그렇게 위험한 던전 아니야.”
카르바노그를 보니, 카르바노그의 저주라고 해봤자 별거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봤자 토끼 관련 저주겠지!
그러나 태현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토끼가 얼마나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지.
* * *
장쓰안이 습격당해서 대회 당일 날 접속할 수 없다는 소식이 인터넷에 퍼지자, 사이트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건 아니다. 대회를 기대하는 팬들을 배신하는 짓이다!
-정정당당하게 싸워야지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케인 좀 심하지 않냐?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피도 눈물도 없을 수가 있지?
장쓰안이 눈물을 흘리며 쓴 글을 본 사람들은 태현 팀을 비난했다. 특히 케인을.
그러나 태현 팀을 비난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세만어리워워파:저것도 실력 아니냐? 애초에 게임 내에서 허용이 되는 범위니까 자기가 알아서 관리를 했어야지. 다른 사람들은 바보라서 자기 캐릭터 관리를 잘 했나? 왜 대회 앞두고 저런 던전에 들어갔는데?
이런 의견도 꽤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 투기장에서 우승하기 위해 독을 풀었던 레스토랑 길드와 장쓰안이 친하다는 소문까지 퍼지자, 사람들은 ‘자기가 할 때는 가만히 있더니 자기가 당하니까 이러냐’ 하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여론이 안 좋게 돌아가자 태현 팀을 비난하던 사람들은 판온 회사에 직접 문의를 넣었다.
대회를 위해 사망 페널티를 좀 일찍 끝내게 해서 접속 가능하게 해줄 수는 없냐고!
많은 사람이 답변을 기다렸다.
그리고 답이 나왔다.
-이번 일은 게임 내에서 일어난 일이고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주였다. 대회 때문에 특혜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태현 팀의 손을 들어주는 답변!
-맞아! 대회에 안전하게 참석하려면 투기장 안에 계속 있었다면 되는 거라고!
-꼬우면 너희들도 PK를 해라!
-PK를 하려는 노오력이 부족했다!
태현 팀을 지지하는 팬들은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중국 팀 팬들은 이를 갈며 말했다.
-어디 밤길 조심해라.
-너희도 PK 당해 봐야 정신 차리지! 아직 대회 끝나려면 멀었다!
이렇게 팬들이 치열하게 감정싸움을 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야, 근데 장쓰안이 죽은 던전 괜찮아 보이던데. 거기 공략해 볼 사람 있냐?
-어. 나도 괜찮아 보이더라. 한번 모아볼까?
몬스터 수준을 보고 괜찮다고 생각한 고렙 플레이어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과감하게 던전 공략에 나섰다.
“컥! 뭔 토끼가……!”
“막아! 저것만 막으면 돼!”
미친 공격력에 경악했지만, 이미 한 번 동영상으로 봐서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어찌어찌 대처할 수 있었다.
결국 카르바노그의 안식처까지 들어간 그들!
[분노한 카르바노그가 당신에게 징벌을 내립니다.]
[카르바노그의 석상이 깨어납니다!]
[도망치십시오!]
태현이 들어갔을 때와 달리 험악하게 맞이해 주는 카르바노그!
토끼를 잡고 들어오면 이렇게 반응해주는 보스 몬스터였다.
“데미지가 안 들어가!”
“미친, 레벨이 대체 몇이야?!”
“저거 토끼 맞아?! 드래곤 아냐?!”
나름 유명한 던전을 클리어 한 고렙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무너져 나갔다.
한 번의 도전만으로 그들은 깨달았다.
이건 아직 플레이어들의 수준으로 깰 수 있는 던전이 아니라고!
“후퇴! 후퇴!”
충격이 크기는 했지만 플레이어들은 그렇게까지 놀라지 않았다.
깨지 못하는 던전이 여기가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그 상대가 토끼라는 게 굴욕적이었을 뿐!
던전을 공략하는 파티들은 금세 카르바노그에 대한 관심을 껐다.
지금 당장 깰 수 없는 던전이라면 굳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던전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사람들이 카르바노그 던전에 대한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대회에 집중할 때쯤, 게시판에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농부들 모여라! 농부 직업 게시판>
-김농부:농부로 농사짓는 초보인데요, 원래 이렇게 토끼가 많나요? 좀 이상하게 많은 거 같은데…….
-불타는경운기:토끼가 원래 초보 농부한테는 좀 성가신 몬스터예요. 상대하는 건 쉽지만 안 보는 사이 와서 농작물 망치니까, 울타리 깔고 토끼가 싫어하는 재료 주변에 뿌리세요. 요리사 NPC한테 가서 얻어도 되고, 직접 만들어도 돼요. 요리 스킬 별로 안 필요해요.
-김농부:그, 그 방법 다 써봤는데 안 먹히는 거 같은데…….
-불타는경운기:제대로 한 거 맞아요?
-두덕리대공작:그 방법 써서 안 통할 리가 없는데?
고렙 농부 플레이어들은 처음에는 초보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초보자일 때는 맞는 방법도 제대로 못 하기 마련.
그러나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 넘게 경험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졸지에 고렙 농부들의 밭에도 토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력한 울타리와 다양한 몬스터 방지 스킬로 무장한 고렙 농부의 밭은 주변의 늑대나 곰 같은 몬스터도 접근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토끼가 뚫고 들어오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