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14화
언제 태현이 따라 들어올지 몰랐다. 지금은 일단 회복부터 먼저 해야 했다.
장쓰안은 그러면서 동시에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던전 입구로 들어올 태현을 공격할 준비!
있는 스크롤은 다 꺼내고 쓸 수 있는 스킬은 모두 다 사용 준비, 거기에 버프까지 전부 걸었다.
-화려한 검객의 발걸음, 움직이는 두 눈, 서리 바람의 칼날, 영혼을 베는 검…….
랭커의 저력을 보여주는 장쓰안.
누구든 간에 던전 입구로 들어온다면 곧바로 폭딜을 맞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태현은 바로 쫓아오지 않았다.
* * *
“쯧. 일이 꼬이네.”
태현은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 수 있었다.
상대가 랭커라면 더더욱 그랬다.
아까도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장쓰안이 부활했다.
다른 숨겨진 수를 갖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안 쫓아가십니까?”
“지금 쫓아가면 손해가 더 크지. 쟤네들이 바보도 아니고 작정을 하고 있을 텐데.”
태현은 케인과 다른 일행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차피 지금 다른 길드원들은 다 쓰러뜨린 상황.
남은 건 장쓰안과 두 명밖에 없었다.
지금 유리한 건 태현 쪽이었다.
그렇지만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태현도 저 안쪽 던전이 무슨 던전인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저 던전 안쪽에 다른 출구가 있으면 일이 진짜 귀찮아진다. 최대한 빠르게 들어가서 승부를 봐야 해.’
이세연까지 있는데 정면 승부에서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 * *
태현이 쫓아오지 않자, 장쓰안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다 회복했냐?”
“예.”
다들 비상용으로 갖고 다니던 포션들이 있었다. 아무리 여러 독에 중독이 되도 시간만 주면 해독이 가능했다.
“좋아. 움직인다! 밖에 연락해서 도움도 요청해라. 비열한 놈들. 이길 자신이 없다고 이런 수작을 부리다니.”
장쓰안의 말에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장 밖에서 PK 해서 대회 참석 자체를 못하게 만든다!
농담처럼 돌아다니는 말을 진짜로 하려는 놈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불렀습니다.”
“버티면 된다. 버티면 우리에게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놈들도 압박이 될 테니까.”
장쓰안도 대회에 나가야 하지만, 태현도 대회에 나가야 했다.
밖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도우러 오면 태현도 상대하기 껄끄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대체 뭐 하는 던전입니까?”
길드원 중 한 명이 꺼낸 말.
장쓰안도 이 던전이 뭐 하는 던전인지 궁금했다.
토끼가 들어간 걸 보니 그렇게 레벨이 높은 던전 같지는 않고…….
‘<뜨거운 울음의 검>은 처음부터 조작된 건가, 아니면 그건 진짜였나?’
이렇게 됐는데도 장쓰안은 아직 실낱같은 희망을 놓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놈의 욕심이 뭔지!
“모르겠다. 어쨌든 가다 보면 알겠지. 우리는 버티기만 하면 돼. 출구를 찾으면 더 좋고. 던전 난이도가 낮으면 차라리 더 편하긴 하겠군.”
장쓰안의 말에 길드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타탁-
“?”
저 멀리 풀밭에서 검은색 토끼 하나가 쪼르르 달려왔다.
귀엽고 약해 보이는 토끼.
특이한 게 있다면 머리에 뿔 하나를 달고 있다는 점이었다.
“토끼잖아?”
“토끼 왕국이니까 토끼가 나오겠지. 거 정말 오랜만에 보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초보자 시절에나 토끼를 상대했다.
물론 태현처럼 토끼 관련 칭호를 얻을 때까지 토끼만 잡아대는 변태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레벨이 오르면 토끼를 상대하지 않았다.
길드원들은 새삼스럽게 추억이 떠오르는 걸 느꼈다.
“방심하지 마라.”
“방심 안 합니다.”
“에이, 뭘 이런 걸 가지고…….”
길드원이 무기를 들고 토끼에게 다가섰다.
그 순간 토끼가 사라졌다.
[치명타에 당했습니다!]
[지옥의 검은 뿔토끼의 뿔에 찔렸습니다. 검은 뿔토끼의 독에 중독됩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시야가 어두워집니다.]
[마법 내성, 화염 내성, 냉기 내성, 번개 내성이 내려갑니다.]
“컥!”
무슨 보스 몬스터한테 얻어맞은 것처럼 줄줄이 뜨는 메시지창!
길드원은 뒤로 나뒹굴었다.
“괜찮냐?!”
“조, 조심해! 이거 장난 아니다. 레벨이 대체 몇이야? 150은 넘기는 거 같은데?”
“뭐? 그딴 토끼 몬스터가 어디 있어!”
길드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동안에 장쓰안은 토끼를 예리하게 관찰했다.
판온에는 불가능이 없었다.
레벨이 깡패인 만큼, 저렇게 귀엽고 약해 보이는 토끼도 레벨만 높으면 어마어마하게 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켜라, 내가 상대하마!”
장쓰안은 말과 함께 쌍검을 휘둘러 공격에 들어갔다.
아까 태현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했던 버프 스킬들이 남아 있었다.
화려하게 빛나는 장쓰안의 전신!
무엇이라도 다 베어버릴 기세로 쌍검에서 오러와 이펙트가 뿜어져 나갔다.
카카캉!
“!”
그러나 놀랍게도 토끼는 뿔로 공격을 막아냈다. 장쓰안은 경악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캉! 카캉!
바로 다음 공격에 들어가는 장쓰안.
역시 랭커다운 숙련된 동작이었다.
뿔토끼는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갖고 있었지만, HP와 방어력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몇 번의 연속 공격을 퍼붓자 결국 뿔로 막아내는 것도 실패하고 비틀거렸다.
-켕! 케에엥!
구슬픈 비명을 지르며 약한 척을 하는 뿔토끼!
그러나 길드원들은 그걸 보고도 봐줄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길마님! 잡아버려요! 저거 저거!”
“뭐 저런 게 다 있냐!”
아까까지는 죽일 듯이 덤비던 놈이 저렇게 약한 척을 하니 기가 막혔다.
콱!
마무리 일격.
깔끔한 동작으로 장쓰안은 뿔토끼를 쓰러뜨렸다.
“길마님. 잡았습니까?”
“잡았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와, 뭐 저런 놈이 있냐.”
길드원들은 한숨 돌렸다는 듯이 떠들었지만 장쓰안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 토끼들…… 이용할 수 있지 않겠냐?”
“예?”
“김태현 놈들은 우리를 쫓아서 들어오기는 올 거다. 우리가 입구 주변에 안 보이면 어디 갔나 찾으러 오겠지. 그때 이 토끼들이 나타나면?”
“만만하게 보고 치우려고 하겠군요!”
“그래. 이 착해 보이는 겉모습을 보면 누구나 조금은 방심하게 되겠지. 방심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 위력일 거라고는 예상 못 할 거고.”
“역시 길마님이십니다!”
“하하. 내가 좀 대단하지. 하하하. 근거리 순간이동 스크롤, 순간이동 게이트 스크롤 다 꺼내라. 놈들이 오면 바로 공격해야겠다.”
상황도 잊고 장쓰안은 금세 스스로에게 취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비책을 생각해낸 스스로가 대단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수적으로 불리할 때 몬스터들을 불러와서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린다.
확실히 좋은 방법이긴 했다.
실제로 태현도 애용한 방법이기도 하고.
문제는 태현이 칭호 <토끼 학살자>를 갖고 있다는 점!
칭호:토끼 학살자
토끼 학살자:토끼의 고기와 피로 산과 강을 만든 당신! 토끼에게는 어떤 맹수보다 당신이 무서울 겁니다.
토끼가 선제공격을 하지 않습니다.
토끼 몬스터를 상대할 때 공격력 +10%, 방어력 +10%, 위압 +10%.
* * *
“빠르게 들어간다. 시간 너무 소모했어.”
상황 설명을 끝내고, 이세연이 죽은 길드원들 시체로 언데드들을 불러 일으키자, 태현은 바로 던전 입구로 향했다.
“토끼 왕국? 뭐 하는 던전이야?”
“이름 좀 이상하지 않아?”
“지금 그게 중요하냐? 집중해.”
뒤에서 의아해하는 일행의 입을 다물게 하고 태현은 신경을 집중했다.
장쓰안이 생각보다 머리를 굴릴 줄 알았던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그들이 당할 수 있었다.
“……뭐지?”
신의 예지 스킬을 사용하려던 태현은 찜찜함을 느꼈다.
던전 통로에 그냥 대놓고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나 여기로 지나갔어!’라고 광고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
이세연도 그걸 보고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확인에 들어갔다.
-망령의 기억 확인.
“여기로 지나간 거 맞는데?”
“뭐지? 이렇게 대놓고 자국 남기고 갈 이유가 있나?”
태현과 이세연은 서로 마주 보았다. 이유는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함정인가?”
“그 짧은 시간에 우리를 다 상대할 함정을 팠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참고로 걔네는 너나 케인이 있는 거 모르긴 해. 그래도 좀 이상하긴 하군. 던전에서 뭘 발견한 거 같은데…….”
태현은 계속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보통 이렇게 함정을 파는 건 태현의 역할이었던 것!
그게 반대가 되니 영 어색했다.
쾅!
굉음과 함께 태현 일행이 지나온 길 뒤쪽에서 장쓰안의 길드원이 나타났다.
근처에서 근거리 순간이동 스크롤을 사용해 태현 일행 뒤에 나타난 것이다.
“?!”
케인은 바로 상대를 공격하려 들었다.
‘뭐 하는 거야, 저놈?’
이해가 가지 않는 짓이었다.
저렇게 대놓고 뒤로 순간이동을 하면 죽여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데 쓰는 게 나았을 것!
그러나 장쓰안의 길드원은 혼자 있지 않았다.
뒤에는 작고 귀여운 토끼들도 같이 순간이동한 것이다.
“???”
“하하하하! 어디 한 번 당해봐라!”
길드원은 그렇게 외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뒤에 있던 토끼들도 눈이 붉어져서 길드원을 쫓아갔다.
적이 달려오자 케인은 긴장했다.
‘놈이 어떤 스킬을 쓸까? 어디부터 공격해 들어올까? 먼저 처음에는 놈의 발을 묶고 바로 반격에…….’
길드원만 신경 쓸 뿐,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토끼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는 케인이었다.
“케인, 토끼 주의해라! 진짜는 토끼다!”
“뭐?”
태현의 말에 케인은 당황했다.
지금 상대가 저렇게 달려오는데 적을 무시하고 토끼를 상대하라고?
그러나 태현의 말은 사실이었다.
팟!
달려오던 상대는 스킬을 썼는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남은 건 흉흉한 기세로 쫓아오는 토끼들!
-강철 같은 신앙심!
케인은 일단 스킬을 사용했다. 태현이 말해줘서 망정이었지, 안 그랬다면 그냥 맞이했을 것이다.
콰콰콰쾅!
“?!?!?!”
방어 위로도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에 케인은 경악했다.
이게 무슨 위력이란 말인가.
“이런 토끼가 어디 있어?!”
아까 장쓰안의 길드원들이 보여줬던 반응과 똑같은 반응을 보여주는 케인이었다.
“크…… 크윽!”
밀려나긴 했지만 대비한 덕분에 자세가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케인은 곧바로 반격에 들어갔다.
휙! 휙!
“덤벼! 이 자식들아!”
토끼를 상대로 최선을 다해 덤비는 모습은 약간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자리에 있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만큼 수준 높은 상대!
케인과 토끼들의 사투를 본 태현은 얼굴을 굳혔다.
저 토끼들의 습격이 예상 밖이기는 했지만 저걸로 태현 일행을 무너뜨리기에는 부족했다.
그렇다면 분명…….
“추가로 올 거라고 생각했지.”
신의 예지 스킬을 켜고 있던 태현은 허공을 향해 바로 망치를 휘둘렀다.
화악!
그 순간 허공에 순간이동 게이트가 생기더니 장쓰안이 튀어나왔다.
나오자마자 들어오는 공격에 장쓰안이 이를 악물며 쌍검으로 막아냈다.
콰직!
쌍검 중 하나가 금이 가며 그대로 박살이 났다. 장쓰안이 눈을 크게 부릅떴다.
“?!”
“저런. 비싼 장비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일부러 무기 파괴를 노리고 망치를 휘둘렀으면서 태현은 뻔뻔하게 모르는 척 굴었다.
장쓰안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다.
“이 버러지가 진짜……!”
“너 화날 때마다 계속 부르는 말이 짧아진다?”
“그렇게 건방 떠는 것도 지금뿐이다, 하찮은 놈! 곧 후회하게 될 테니까!”
장쓰안의 말과 함께 허공에 열린 임시 순간이동 게이트에서 토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던전의 다른 곳과 연결된 게이트!
장쓰안은 재빨리 태현 일행 쪽으로 덤벼들려고 했다.
토끼들을 유도하려는 동작이었다.
“어딜 가시나?”
물론 태현이 그걸 내버려 둘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