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410화 (410/1,826)

§ 나는 될놈이다 410화

“제 외모 이야기는 그만하죠.”

태현은 손을 뻗어 이야기를 막았다. 안 그러면 한동안 또 외모 이야기를 할 테니까.

“그보다 왜 부르신 겁니까?”

“네 소식 들은 김에 오랜만에 네 얼굴이나 보고 그러려고 불렀지. 그리고 졸업은 언제 할지 물어보려고.”

“어…… 음…….”

“할 생각이 전혀 없구나. 그렇지?”

“아뇨! 졸업은 해야죠! 언젠가!”

“안 할 생각이군.”

졸업을 하긴 할 생각이었다.

대회에서 우승하고 랭커들도 다 때려잡고, 하여튼 판온 2를 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다음에 할 생각!

김 교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한테 문학의 재능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거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오해할 소리거든요?”

김 교수가 태현에게 문학의 재능이 있다고 말하기는 했다.

약간 다른 의미여서 그렇지!

-집에 돈이 많다고? 이 녀석. 문학의 재능을 타고 났구나! 너 같은 녀석이 문학을 해야 하는 거다!

-…….

“지금 대회다 뭐다 정신없이 바쁜 건 알겠는데 여유 나면 복학할 생각은 해라. 네 능력 정도면 충분히 둘 다 병행해서 할 수 있을 텐데.”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동환이가 술 먹고 날뛰더라.”

“걔가 누구죠?”

“……네 친구.”

“전 친구들 이름은 다 기억하고 다니는데. 워낙 친구가 없어서.”

“네 동기. 그 있잖냐, 너하고 멱살 잡고 다툰…….”

태현이 쓰레기 같은 캐릭터로 연속 활약을 보여주자 멱살 잡고 싸움 걸었던 친구!

“아, 걔…… 이름이 그거였군요. 잊고 있었네요.”

동네 똥개도 저것보다는 더 관심을 갖고 대할 것이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태현의 모습에 김 교수는 한숨을 쉬었다.

“근데 걔가 술 먹고 날뛰는 건 왜 저한테 말해주세요?”

“그야 네가 대회에서 활약하는 영상 보고 술 마신 거니까…….”

“난 또 뭐라고.”

“걔도 이번에 친구들하고 같이 대회 준비했다고 하더라.”

“오, 그래요? 본선에 진출했나요?”

“그랬으면 술을 안 마셨겠지.”

안 그래도 태현한테 먼저 덤볐다가 두들겨 맞고 망신을 당했는데, 그런 태현은 본선에 나가서 맹활약을 하다니.

들어보니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걔는 예전에 하는 거 봤는데 그냥 게임에 재능이 없는 것 같…….”

“그 소리는 걔 있을 때 하지 마라.”

“걔 있을 때 할 일이 있나요, 뭐. 어차피 앞으로 볼 일도 없을 텐데.”

김 교수는 태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눈치챈 태현이 급히 말했다.

“아니, 복학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강의는 많고 걔도 졸업을 할 테니 볼 일이 없다는 거죠.”

“그래.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태현아. 나중에 대회 끝나면 나한테 연락해라.”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더 귀찮아질 테니까!

* * *

접속했을 때 태현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주변의 분위기가 뭔가 달랐던 것이다.

‘뭐지?’

“뭐야? 뭔 일 있었나?”

“무, 무슨 일? 아, 아무 일도 없었는데?”

“……?”

일행이 모두 태현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김철수까지!

한결같은 건 도동수밖에 없었다. 도동수는 태현이 와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자식. 너밖에 없다.”

“뭐라는 거야?!”

친하게 대해주니 오히려 더 기분 나빴다. 도동수는 날카롭게 손을 쳐냈다.

그 날 경기가 끝나고 도동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당연히 사람들 반응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호응!

무슨 기자들이 김태현 팬클럽이라도 된 줄 알았다.

‘압도적인 경기력…… 김태현의 큰 그림’, ‘기존 전략을 거부하다. 판온의 이슈메이커’ 같은 제목들을 보며 도동수는 목덜미를 잡았다.

하필이면 개막 첫 경기 날에 있었던 다른 팀들의 경기가 형편없는 진흙탕 경기였던 것도 컸다.

서로 심심하고 평범한 전략들만 쓰다가 5경기까지 간 졸전!

관중들이 야유를 보낼 정도였다.

도동수는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김태현을 뛰어넘고 싶다, 그렇지만 김태현과 협조하고 싶지 않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려고 하니 잘 풀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이세연, 김철수, 이다비, 심지어 유 회장까지 케인에게 시선으로 압박을 보냈다.

-물어봐!

“……커, 커헉.”

“넌 뭐 중병 걸린 소리를 내냐. 저주라도 걸렸냐? 오지 마라. 옮을까 겁나네.”

태현은 케인을 향해 저리 가라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그게…… 궁금한 게 있는데…….”

“?”

“……어제 어디 갔다 온 거냐?”

꽝!

“?!”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케인을 노려보았다.

그거 하나 제대로 못 물어보냐!

‘무, 무섭다고! 만약 저 자식 성질 건드리면 피는 나만 보잖아!’

“교수님 보고 왔는데.”

“뭐? 왜?”

“복학 언제 할 거냐 같은 소리 했지. 아. 우리 과에 대회 나간 놈 있는데 내가 본선 나간 거 보고 술에 취해서 난리 피웠다는 소리도 했지.”

정말 아무 의미 없는 말들!

이세연은 한숨을 쉬며 포기했다. 기다려 봤자 케인이 물어볼 것 같지 않았다.

“좋아. 이제 회의 시작하자.”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지금 중요한 건 대회였다.

태현이 누구한테 반지를 주든 프로포즈를 하든 결혼식을 올리든 그건 지금 중요한 게…… 맞긴 했지만 어쨌든 더 이상 그걸로 골치를 앓기는 싫었다.

“우리 다음 상대가 정해진 거 알지?”

아직 남은 경기들이 있었지만 태현 팀의 상대는 정해진 상태였다.

상대는 중국대표팀!

태현 팀처럼 상대도 예선을 뚫고 올라온 팀을 하나 이기고 8강에 도착한 상태였다.

초대팀들의 대결!

상대 팀의 경기 영상도 이미 풀린 상태였다.

덜컥-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나가 버리는 도동수!

“쟤 패면 안 되냐? 한 대만.”

“안 돼.”

이세연은 태현의 간절한 말을 무시했다. 케인이 중얼거렸다.

“분명 한 대가 그냥 한 대가 아니겠지…….”

“지금 또 싸움 만들어가면서 이야기할 시간 없으니까 남은 사람들끼리 이야기하자. 중국대표팀은 강한 팀이야. 초대팀이지만 호흡도 잘 맞고 무엇보다 카운터 전략에 능해. 실제로 보면 본선에 올라온 상대 팀의 손발을 완전히 묶어서 이겼어.”

“우리랑 상성이 최악인데?”

“최악이지. 특히 도동수 쪽이 찔릴 가능성이 커.”

자기들의 고유 전략으로 맞부딪히는 팀이 있고, 상대방에 맞춰 유연하게 전략을 짜오는 팀이 있었다.

중국대표팀은 전형적인 후자였다.

인기는 없고 팬들에게 재미없다고 욕은 먹지만 착실하게 승리를 얻어내는 전략!

“이런 팀을 이기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어. 우리 전략을 갈고닦아서 밀고 나가던가.”

“우리 전략이란 게 있어? 2, 2, 1밖에 없잖아.”

“……아니면 상대방이 예측을 하지 못하게 우리 전략을 바꾸던가.”

“흠…….”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첫 번째 경기의 대승에 묻혀서 놓치기 쉬웠지만, 한국대표팀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팀워크 같은 약점들은 그대로!

“먼저 공격하는 건?”

“무슨 소리야?”

이세연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투기장 안에서 먼저 공격한다는 게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다섯 명이 팀이고, 도중에 멤버가 빠져도 보충 불가능하니까 상대 팀 한 명만 빠지게 해도 되잖아.”

“……!!!”

그제야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태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차렸다.

먼저 공격하자는 게 투기장 안 이야기가 아니라, 투기장 밖 이야기였구나!

“그, 그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팀의 유일한 양심이자 상식인인 김철수가 손을 들고 주저하며 말했다.

“아니, 이건 딱히 우리만 하는 짓이 아닌데. 실제로 케인은 오다가 공격을 받았고.”

“맞아! 그랬었지!”

케인은 기억을 떠올리고는 분개해서 외쳤다.

“물론 내가 케인한테 ‘널 좋아한다는 여자가 있으면 그건 함정이 분명해’라고 잘 말해뒀으니 앞으로 그런 함정에 속지는 않을 테지만…….”

“굳이 그걸 꼭 말해야 하냐? 응?”

“……이런 식으로 방해하는 게 없지는 않다는 거지. 물론 이제까지 성공한 놈들은 못 봤지만 그거야 놈들이 어설퍼서 그렇고.”

다른 사람들은 태현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함정을 파는 플레이어들이 어설프다고 하다니.

그러나 태현의 대단한 점은, 저런 말을 해도 절대 자만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태현의 수준에서는 정말 어설퍼 보일 것 같은 것!

김철수와 달리 이세연은 진지하게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잊기 쉬웠지만 그녀도 판온 1에서 1위를 찍었던 플레이어였다. 꼭 정정당당한 수법만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지금 이대로 가면 그들에게 너무 불리한 상황.

확실히 비책이 필요하긴 했다.

그렇지만 역시 너무 과감한 전략!

이세연은 걱정되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무 리스크가 크지 않아?”

“전부 다 갈 필요 없이 나하고 케인 정도면 충분해. 나머지는 팀 외부에서 사람 부르고.”

“나는 왜?!”

가만히 있다가 같이 덤으로 묶인 케인!

“난 지금 한 번 죽어도 페널티 없이 바로 접속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위험하진 않아. 도망치는 것도 쉽고.”

“팬분들이 화를 낼 수도 있어.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명심해. 괜히 잘못했다가는 이기고서도 이미지 안 좋아질 수도 있어.”

“안 들키면 그만이지. 그리고 난 이미지 신경 안 쓰는데.”

옆에서 케인이 중얼거렸다.

“난 신경 쓰는데.”

케인은 무시하고 태현은 단호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잘 들어봐. 물론 리스크가 크기는 하지만 이건 해볼 만한 전략이야. 도동수 데리고 안 맞는 손발 억지로 맞추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방법이라니까. 이것보다 나은 투기장 전략 있어?”

평소에는 안 그런 태현이 진지하게 대회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세연은 순간 흔들렸다.

‘잠깐, 이상한데?’

“너 지금 그냥 깽판 치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무, 무슨. 사람을 뭘로 보고?”

“…….”

“너한테 피해 안 가게 한다니까? 나하고 케인만 가서 잘 슥삭 하고 올게.”

옆에서 케인이 다시 중얼거렸다.

“나도…… 그냥…… 빼주면…….”

이세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에이. 알겠어. 안 하면 되잖아.”

태현이 저렇게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

말로는 안 한다고 하지만 할 게 뻔히 보이는 저 얼굴!

이세연은 뭐라 하려다 말았다. 지금 하려는 건 그 소리가 아니었으니까.

“안 된다는 게 아니라, 할 거면 같이 하자. 같이 하는 게 더 승률이 높겠지.”

“!”

* * *

“8강에 진출한 거 축하해.”

“어. 그래.”

“…….”

장쓰안의 거만한 태도에 쑤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실 둘의 사이는 그렇게 친한 게 아니었다.

정확히 따지면 라이벌에 가까운 관계!

그런데 쑤닝 길드가 뽑은 길드원들은 예선에서 탈락하고, 장쓰안의 팀은 본선에 바로 초대받아 손쉽게 16강을 뚫었으니…….

쑤닝의 마음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렇게 온 건 김태현에 대해 이야기해 주려고 온 거야.”

“이미 충분히 조사했어. 네 도움은 별로 필요 없을 거 같은데.”

꿈틀-

쑤닝의 얼굴이 한 번 더 구겨졌다.

‘참자, 참아.’

쑤닝은 생각했다.

저놈과 태현 놈 중 더 얄미운 놈이 누구인가?

그건 바로 태현이었다.

즉 태현을 괴롭히기 위해서라면 장쓰안 정도는 참아줄 수 있는 것!

쑤닝은 스스로가 정말 성장한 것 같았다.

“네가 조사를…… 했다지만…… 그래도…… 놓친 게 있을 수 있잖아……? 안 그래? 응?”

사이에 빠득빠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장쓰안은 무시했다.

“내가 놓친 건 없어. 그리고 만약 내가 놓쳤어도 그걸 네가 알아왔을 리는 없고. 쑤닝. 더 할 말 없으면 가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너와 달리 대회 준비도 해야 하고 할 게 많아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