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09화
김현아가 그러는 동안에도 아이디어는 계속해서 나왔다.
“패션 콘테스트 어떻습니까!”
“그건 아닌 거 같네! 낚시는…….”
“그렇다면 펫 배틀 대회!”
“그것도 좀…… 낚시는 어떤…….”
“경주 대회 어떻습니까!”
“경주 대회?”
유 회장은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태현 일행이 타고 다니는 탈것이 탐이 나기는 했던 것이다.
겉으로만 봐도 멋이 철철 흘러넘치는, 크고 강력한 오토바이!
사실 유 회장도 그걸 보고 몇 번 경매장에서 탈것을 구매하려고 했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오지 않았다.
태현만큼 대장장이 기술과 기계공학 스킬을 찍은 플레이어가 없는 것이다.
보통 멀쩡한 대장장이 플레이어는 기계공학을 배우지 않았다.
기계공학 플레이어 가브리엘이 그 사건을 일으킨 이후로는 그런 이미지는 더더욱 심해졌다.
-굳이 기계공학 스킬을 배우는 놈은 변태다!
태현보다 대장장이 기술이 높은 플레이어는 거의 기계공학을 다루지 않았고, 탈 것 만드는 것 말고도 할 일이 많았으니…….
거기에 태현을 제외하고서 그나마 기계공학을 파고드는 플레이어들은 그 가브리엘 패거리였다.
태현의 영지에 있는 악마의 대장간에서 ‘히히 폭탄이다 폭탄 발싸!’이러고 다니는 플레이어들!
경매장에 기계공학 탈 것이 나오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놈한테 그냥 부탁을 할 걸 그랬나…….’
유 회장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그렇지만 태현에게 ‘나, 나도 그거 하나 만들어주면 안 되냐?’라고 물었다가는 뒷일이 뻔히 보였다.
-아이고, 어르신. 갖고 싶으시면 말을 하셨어야죠! 하하하! 낚시만 하신다면서!
굴욕 그 자체!
순간 유 회장의 머릿속에 번개 같은 아이디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경주 대회 괜찮군. 1등에게 포상으로 자네가 타고 있는 오토바이 같은 걸 주는 거야.”
“어…… 상금은 돈으로 줘야 하지 않을까요?”
케인은 당황해서 외쳤다.
물론 케인이 타고 있는 오토바이가 경매장에 풀면 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희귀한 아이템이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대회 보상을 저런 아이템으로 준다니.
판온 폐인들이야 ‘와! 좋다!’ 이러겠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엌ㅋㅋㅋㅋ 대회 상금으로 게임 아이템을 ㅋㅋㅋㅋㅋ’이라고 비웃기 딱 좋았다.
유 회장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면 상금도 주고 부상으로 오토바이도 주면 되겠군.”
자선대회 상금은 유 회장의 재산에 비교한다면 푼돈에 불과했다.
중요한 건 합법적으로 오토바이를 뜯어내는 것!
“그러면야 되겠지만…… 잠깐, 오토바이는 누가 만들어요?”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김태현밖에 없으니 김태현이 만들어야겠지.”
“그걸 누가 걔한테 말하죠?”
“자네가 말한 의견이니 자네가 말하면 되겠군.”
“…….”
재계에서 오랫동안 구른 유 회장에 비교한다면 케인은 풋내 나는 애송이일 뿐이었다.
* * *
투기장 근처의 호수에서 자선대회가 점점 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우승을 한 선수에게 상금을 주고, 동일 액수의 상금을 기부하고…….”
“오토바이는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휴. 한 대만 만들라고 해도 되겠네요.”
옆에 있던 김현아는 끼어들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렸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끼어들기에는 민망했다.
케인과 저 정체불명의 아저씨는 일단 태현 파티였으니까!
‘좀! 물어봐라! 왜 저런 계획을 세우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그래서 김현아는 케인에게 속으로 외쳤다.
케인이 보기에는 저 아저씨가 이상하지도 않단 말인가?
무슨 자기가 책임자처럼 대회 계획을 물어보고 있는데!
“그런데 어르신. 이런 계획은 왜 짜시는 겁니까? 혹시…….”
“……!”
유 회장은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너무 나갔다 싶은 것이다.
‘이런, 내가 너무 대놓고 행동했나?’
사실 지금도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유 회장이 판온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지만 이렇게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회사에서 일하시는데 이런 계획을 짜보라고 위에서 말이 나온 건가요?”
“……어, 그, 그렇지.”
알아서 오해해 주는 케인!
케인은 유 회장의 겉모습을 보고 ‘부장님쯤 되나?’ 싶었다.
요즘 판온 투기장 대회가 워낙 압도적으로 화제를 끌어모으고 있었으니 회사에서도 관심을 가진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어휴, 힘드시겠어요. 위의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화제만 되면 막 억지로 시키잖아요. 참 심하지 않아요?”
“…….”
유 회장은 찔리는 표정을 숨겼다.
별생각 없이 말해오는 케인의 말에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케인이 취직한 적 없는 백수라는 걸 모르는 유 회장이었다.
“아니…… 윗사람도 다 생각이 있어서 시키는 거 아니겠나? 크흠. 크흠.”
유 회장은 민망한 듯이 헛기침을 하며 윗사람을 두둔하려고 했다.
물론 그 윗사람은 본인!
“아니죠! 윗사람이 무슨 생각이 있겠어요. 판온을 해보지도 않았을걸요. 그냥 요즘 화제가 되고, 이스포츠 중에서도 압도적이니까 ‘그래? 그러면 한 번 해봐!’ 이러는 거겠죠!”
“…….”
취직 못 한 원한을 여기에 쏟아붓는 케인!
그런 케인의 모습에 울컥한 유 회장이었다.
* * *
“다른 사람들은?”
접속한 이세연은 태현이 대장장이 작업 세트 앞에 혼자 앉아 있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낚시하러 나갔는데.”
“그래? 그냥 같이 있는 게 나을 텐데. 뭐 만드는 거야?”
“반지.”
“네가 쓸려고?”
“아니.”
“응? 누구 주려고 만드는 거야?”
“아마. 잘 만들어지면?”
이세연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저 게임밖에 모르는 놈이 누구한테 반지를 준다고?
‘아니, 잠깐만. 내 착각이겠지. 케인이나 이다비 같은, 일행한테 주려는 거겠지.’
이세연은 깔끔하게 결론을 내렸다.
태현의 행동을 미리 예상했다가 뒤통수 맞았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
“누군지 물어봐도 돼?”
“말해도 네가 알지 모르겠는데. 아. 아니다. 알겠군. 걔도 본선 진출했으니. 에반젤린이라고 뱀파이어 플레이어 있어.”
태현의 계획은 간단했다.
불운을 막는 효과를 가진 아이템을 만들어서 에반젤린과 교섭에 나서는 것이다.
그녀가 갖고 있는 반지는 물론이고 뱀파이어 관련 병력도 빌릴 수 있으면 빌린다!
에반젤린이 불운 때문에 얼마나 쩔쩔매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니 충분히 먹힐 만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세연에게는 다르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
이세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그, 그렇구나……!”
“너 왜 그런 표정을 짓냐?”
“아무것도 아니거든?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대박……!’
이세연은 놀란 마음을 다스리며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마침 반대편에서 재료를 갖고 걸어오는 이다비가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이다비가 해맑게 인사하자 이세연은 다급히 물었다.
“그쪽도 알고 있었어요?!”
“네? 뭘요?”
“쟤가 에반젤린이란 플레이어한테 줄려고 반지 만드는 거요!”
“네?!?!”
이다비는 이세연보다 더 놀랐다.
누군지 궁금하기는 했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나온 것이다.
“그, 그, 그 사람한테 왜 주는 건데요?”
“그건 못 물어봤는데…….”
생각해 보니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미 두 사람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낚시 갔던 케인과 유 회장, 김현아가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언니! 저 왔어요!”
그들은 이다비와 이세연이 화들짝 놀란 걸 보고 의아해했다.
왜 저러지?
“무슨 일이에요, 언니?”
“그게 그러니까…….”
김현아는 ‘내가 그딴 걸 왜 알아야 하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케인은 기겁해서 외쳤다.
“그 자식이 프로포즈를 한다고?!”
“그, 그렇게까지는 아무도 말 안 했는데요!”
“잠깐, 게임에서 프로포즈를 하나?”
“판온 1에서도 몇 번 있었던 일이긴 해요. 둘 다 게임 폐인이면…….”
“김태현 그놈이면 충분히 그러겠는데.”
다들 웅성거렸다.
모두가 생각하기에 태현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사실 각자 혼자서 생각해 본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겠지만, 모두가 모여 웅성웅성 떠드니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유 회장만 의아해했다.
“그놈이 언제 그렇게 연애를 한 거지? 그럴 시간이 없지 않았나?”
“분명 귓속말로 한 겁니다! 이 치사한 자식 같으니! 자기 혼자 게임도 하고 연애도 하고!”
케인은 울분에 차서 외쳤다.
자기는 계속 게임만 하느라 솔로인데 김태현 그놈은 게임도 하고 연애도 하고 할 거 다 하고 있었다니!
대체 이 차이는 어디에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아니…… 게임 내에서도 거의 안 만나고 사는 곳도 해외인데……?”
유 회장의 합리적인 지적은 먹히지 않았다.
“좋아! 가서 물어보자!”
“누가요?”
모두가 케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알겠어! 내가 물어본다!”
“아, 물어볼 때 오토바이도 물어보는 거 잊지 말도록!”
“오토바이는 무슨 소리예요?”
그러나 방 안으로 다시 들어갔을 때 태현은 자리에 없었다.
잠시 로그아웃을 한 상태!
“……!!”
* * *
규칙적인 폐인 생활을 하는 태현에게 있어서 게임 도중에 나가는 건 원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면 나가지 않는 태현!
그러나 이번에는 안 나갈 수가 없었다.
태현이 다니는 대학교의 교수님이 불렀던 것이다.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
간단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문자 내용!
지금이야 휴학하고 게임에 전념하고 있었지만, 대학을 다닐 때 태현은 일단 우등생이었다.
보통 과 수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태현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다들 잊기 쉬웠지만 태현도 일단 한국대학교 학생이었다.
최고들이 모이는 곳에서 최고를 차지했던 것이다.
당연히 전공 교수님과도 꽤나 친하게 지냈었다.
‘뭐지? 날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인데.’
교수님 사무실로 걸어가는 도중 태현은 이상하게 시선을 느꼈다.
마치 예전에 과 동기에게 주먹을 날리고 나서 주목을 받을 때와 비슷한 기분!
‘기분 탓인가?’
똑똑-
문을 두드린 다음 태현은 안으로 들어갔다.
“왔냐?”
-김태현 선수, 여기서 상대를 완전히 압도합니다! 마지막 경기를 한국 팀으로 기울게 만드네요!
들어가자마자 들리는 익숙한 소리!
경기 재방송이 화면에 켜져 있었던 것이다.
스륵-
태현은 그대로 뒷걸음질 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 전에 재빨리 교수님이 나서서 문을 닫았다.
“어딜 도망가려고. 경기는 잘 봤다. 이 녀석. 휴학하고 뭐하나 했더니!”
“교수님이 이걸 어떻게 보신 겁니까? 판온 하세요?”
“내가 게임 같은 걸 할 거 같냐? 응? 이 나이에?”
김 교수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교수님보다 더 나이 많으신 분도 판온 재밌게 하던데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런 사람 있으면 데리고 와봐라. 아. 그리고 저건 우리 과 애들이 갖고 와서 알려주더라. 저거 너 아니냐고. 난 처음에 너 아닌 줄 알았다.”
“제가 게임 좋아하는 거 아시지 않으셨어요?”
“아니. 너무 잘생겨서 네가 아닌 줄 알았다고.”
“…….”
태현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래! 바로 그게 네 얼굴이지! 사람 하나 잡아먹을 것 같은…….”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에헤이, 앉아. 앉아. 아직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어.”
태현은 못마땅한 얼굴로 교수와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잠깐, 우리 과 애들이 알려줬다고요?”
“그래. 유명하던데? 어떻게 알아봤는지 좀 신기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