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408화 (408/1,826)

§ 나는 될놈이다 408화

살짝 민망해지기는 했지만 사실 전혀 민망해할 일은 아니었다.

3:0!

나름 강자라고 평가받는 상대방을 완벽하게 압도한 것이다.

경기가 끝나자 관중석에서는 우레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다섯 명이 한 팀이었지만 이름은 하나만 들렸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오늘 있었던 경기의 MVP가 누구인지를.

본선의 첫 경기였지만 사실 관중들은 많은 투기장 경기를 본 상태였다.

본선 전의 예선 경기들!

투기장 대회를 볼 정도의 관심이 있다면 예선 경기 몇 개 정도는 보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런 경기는 보통 치열한 예선 경기에서 고르고 골라 나온 하이라이트들!

그런 경기들을 봤으니 사람들의 눈이 높아진 건 당연했다.

거기에 본선 첫 경기라는 기대치까지.

어지간해서는 오늘 경기를 본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힘들었다.

그런데 오늘 태현이 보여준 건 그런 기대를 뛰어넘는 무언가였다.

재미는 재미대로, 결과는 결과대로 만들어냈으니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한 일이었다.

-팬들이 김태현 선수의 이름을 외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죠! 저도 나름 투기장 경기를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같은 경기는 처음 봤어요! 그런 식으로 경기를 풀어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보통 팀마다 주요 전략으로 쓰는 정석들이 있는데, 한국대표팀은 그런 게 전혀 안 보여요. 파격 그 자체예요!

-이런, 김태현 선수만 너무 칭찬한 거 같네요. 다른 선수들이 질투하겠는데요? 하하하!

농담처럼 말했지만, 케인은 도동수의 얼굴이 새빨개진 걸 볼 수 있었다.

‘쯔쯔. 그냥 하라는 대로 하지 왜 혼자 가서 그리 망신을…….’

태현에게 당할 만큼 당하고 이제 포기와 달관의 경지에 오른 케인이었다.

계속 당하면서 무덤을 파는 도동수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저렇게 하지?

그냥 포기하면 편한데!

“그냥 포기하면 편해.”

“닥쳐!”

케인의 진심 어린 조언을 도동수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아, 캡슐에서 나온 선수들이 서로 악수합니다!

-사투를 벌인 선수들이 악수하는 건 언제 봐도 훈훈하네요.

-그렇죠. 그렇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진 쪽은 속이 말이 아닐 겁니다. 저도 현역 때 지고 나서 악수할 때가 가장 마음이 아팠어요.

케인은 움찔했다.

저 멀리서 이주형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분함, 억울함, 슬픔이 가득한 표정!

‘저거 나 한 대 치는 거 아니겠지?’

케인은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태현 뒤로 피했다.

판온 내라면 모를까, 현실이라면 역시 태현만큼 든든한 놈이 없었다.

누구랑 싸워도 이길 것 같은 비주얼!

탁-

이주형이 손을 뻗자, 케인이 움찔했다. 그걸 본 태현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뭐 하냐?”

“아, 아니. 그게…….”

“너 설마 한 대 맞는 줄 알고 이러는 거 아니지?”

“아니야, 인마! 날 뭘로 보고!”

“악수나 받아. 쟤 쳐다보는 거 안 보이냐? 이러고 있으면 ‘이겼다고 악수도 안 받아주는 케인’으로 또 한 번 이미지 잡힌다.”

“헉!”

케인은 급하게 이주형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그러나 관중들의 눈에는 케인이 악수를 하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태현의 말에 악수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역시…… 케인…….

-패배자한테는 악수할 필요 없다 이거죠?

-와 너무한 거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이겼는데. 좀 관대해도 되지 않나?

-무슨 소리! 저게 케인이다!

점점 악당 이미지로 잡혀가는 케인!

사실 레드존 길마 때 일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 이미지가 케인의 본질에 좀 더 가깝긴 했다.

케인은 밖에서 일어나는 일도 모르고 이주형과 악수했다.

이주형이 말했다.

“……죄송했습니다.”

“?”

“제가 케인 씨 실력을 모르고 막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케인 씨는 팀에 들어갈 실력이 충분합니다.”

“……!!”

분하고 억울하지만 최대한 공손하게 말하는 이주형!

그 모습에 케인은 감동했다.

아, 이게 스포츠구나!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그 뒤에는 친구가 되는!

“아니, 그건 아닌 거 같…….”

“지금 좋은 순간이니까 방해하지 말자!”

이세연은 끼어들려는 태현의 입을 급히 막았다.

“왜 그래? 진실은 말해줘야지. 안 그러면 쟤가 오해하잖아. 불 지른 건 그냥 지른 건데…….”

“꼭 세상 모든 걸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아, 한국팀 선수들이 즐겁게 세레모니를 하네요.

해설자들은 저게 세레모니인가 싶었지만 일단 넘어갔다.

이세연은 관중석에서 계속 들리는 태현의 이름을 듣고 새삼스럽게 판온 1 생각이 났다.

그때도 비슷했다.

태현에게는 확실히 재능이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재능이.

그게 긍정적인 이유로 잡아끄는지 부정적인 이유로 잡아끄는지는 다른 문제긴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 본인도 끌린 사람 중 하나였다.

판온 1에서 날뛰던 모습에 그렇게 길드에 끌어들이려고 노력을 했었는데…….

‘그냥 포기하고 안 하는 게 속 편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세연은 빤히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미 충분히 속을 뒤집어놨지만 앞으로도 더 뒤집을 거 같은 불길한 예감!

“뭐야. 왜 그렇게 쳐다봐?”

“별거 아냐. 그보다 좀 웃긴 게…… 너 판온 1 때 일 숨긴다면서 이렇게 하면 아무 의미 없는 거 아냐?”

“……!”

태현은 이세연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좀 무난무난하게 이기면 모를까, 이렇게 파격적으로 이기면 사람들 사이에서 ‘판온 1 김태현이랑 너무 비슷한데?’ 하고 말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아니…… 어쩔 수 없었다고!”

“그래. 상대도 만만한 팀이 아니었으니까. 이기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했지.”

“아니, 그 뜻이 아니라 그냥 도동수 엿 먹이려면 어쩔 수 없었다는 거였지만.”

이세연은 못 들은 척했다.

“아마 괜찮을 거야. 오늘 우리만 경기하는 거 아니고 하나 더 있잖아. 걔네들이 있으니 적당히 주목을 받아주겠지.”

이번 대회에서는 하루에 네 팀이 경기해서 두 팀이 올라갔다.

태현과 팀 블루의 경기는 끝났으니 이제는 다른 두 팀의 경기가 있을 터.

-선수들의 인터뷰가 있겠습니다! 자, 올라와 주세요!

“인터뷰랑 경기 보고 갈 거야?”

“아니. 집 가서 아이템 만들 건데.”

* * *

“아, 심심해. 심심하다고!”

“심심하면 저기 가서 허수아비나 치고 있어.”

“그거 친다고 검술 스킬이 얼마나 오르는데!”

태현은 투기장 건물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명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재료와 노오오오오력!

사실 판온 1 때와 달리, 판온 2에서는 이렇게 제작에 몰두한 시간이 적은 편이었다.

아키서스 관련해서 퀘스트는 자꾸 터지지, 가만히 시간을 내려고 해도 적들이 찾아오지…….

태현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난 착하게 살았는데 세상이 자꾸 날 방해한다!

어쨌든 이렇게 남는 시간에 제작에 몰두하는 건 태현의 장기 중 하나였다.

물론 케인은 아니었지만.

전형적인 전투 직업인 케인은 이렇게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걸 매우 싫어했다.

“어르신. 저거 데리고 가서 좀 놀아주세요.”

“나 낚시하는 곳에?”

“뭐라도 나오겠죠. 데리고 가세요.”

옆에서 징징대는 게 듣기 싫었다. 태현은 케인을 유 회장에게 떠넘겨 버렸다.

“잠깐만! 멋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니까!”

“너도 같이 가면 되겠네! 자. 같이 가라!”

호위로 붙여 놓은 김현아까지 떠넘기는 데 성공!

태현은 억지로 그들을 밀어냈다. 그걸 본 이다비가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해요! 저렇게 묶어서 다 내보내다니.”

“내가 원래 방해되는 놈들 치우는 걸 잘 하지. 이거나 좀 잡아봐.”

“그런데 이거 뭐 만드는 거예요?”

“아티팩트. 반지가 낫겠지.”

“아. 끼시려고요?”

“아니. 내가 쓸 건 아니고.”

“……!”

“흠, 이 정도면 되려나? <신의 예지>, 여기가 낫겠군.”

태현은 할 수 있는 방법은 거진 다 써서 재료를 모은 상태였다.

맥크레니 상단에 쌓은 공적치 포인트를 사용하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시켜 재료를 모으고…….

일단 이 정도면 구색은 갖춘 편!

‘순은 기반으로 가능한 보석은 다 때려 박아야겠군.’

디자인적으로는 최악이었지만 태현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건 성능!

당장 케인만 봐도 성능 때문에 저 흉한 코와 귀를 달고 다니지 않는가.

이다비가 미묘한 눈빛으로 옆에서 쳐다보는 것도 모르는 채 태현은 제작에 집중했다.

* * *

“…….”

“…….”

어색한 침묵!

케인, 유 회장, 김현아가 자리 잡고 있는 연못은 고요했다.

셋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김태현이 없으니까 할 말이 없어……!’

셋은 사실 별로 친하지 않았던 것!

이렇게 모아 놓는다고 대화할 주제가 생길 리 없었다.

“……많, 많이 낚으셨습니까?”

“……그, 그렇지.”

이런 어색한 대화가 전부!

결국 어색함 속에서 낚시를 하던 유 회장이 말을 꺼냈다.

이럴 때 나서주는 게 어른 아니겠는가.

“크흠…… 자네들 있잖나. 혹시 이런 대회가 있으면 좋겠다 같은 거 있나?”

“예?”

“투기장 대회가 인기를 끌고 있지 않나. 덕분에 다른 종류의 대회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고 있고.”

“그렇죠?”

투기장 대회의 흥행 때문에 판온 관련해서 대회를 열어보려는 곳도 생기고 있었다.

물론 지금 진행되는 투기장 대회만큼의 주목을 받는 곳은 없었지만, 그래도 꽤나 주목을 많이 받는 편이었다.

판온의 이름값 덕분이었다.

“자네들은 둘 다 뛰어난 판온 플레이어들이니까 아이디어가 있나 싶어서.”

유 회장이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정지용 비서실장이 제출한 계획 때문!

판온 관련 자선 대회를 유성 그룹의 이름으로 여는 일련의 계획이었다.

그걸 본 유 회장은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이거다!

유성 그룹의 이미지도 좋게 만들고, 유 회장 본인도 대회에 나갈 수 있고(사실 이게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리고 결과가 좋으면 이걸 핑계로 유성 그룹의 이스포츠 진출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있었다.

유 회장 본인이 이스포츠 실패에 역정을 내며 접으라고 했기에, 유 회장은 스스로 ‘다시 하자!’라고 말하기 조심스러웠다.

어디까지나 ‘흠흠 나는 게임에 관심이 없지만 요즘 트렌드가 이거라면 어쩔 수 없지 나도 협조하겠네’ 태도를 고수하는 유 회장!

문제는 어떤 대회냐였다.

몇 번 이야기를 해봤지만 아직 뚜렷하게 정해진 게 없었다.

투기장 대회? 지금 열리는 대회 때문에 묻힐 게 뻔했다.

거기에 유 회장은 이미 인맥으로 전해 듣고 있었다.

이번 투기장 대회가 끝나면 판온 회사가 직접 전 세계가 참여하는 프로 리그를 주최할 것 같다고!

이 정도 반응이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덕분에 유 회장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기껏 대회를 여는데, 관심을 못 받는 그런 건 사양이었다.

기발하고 시선을 잡아끄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나는 낚시 대회를 생각해 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건 아니네요.”

“…….”

유 회장은 시무룩해졌다.

비서실장도 듣고서는 ‘아니…… 그건…… 좀……’ 이런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평소에는 충성 그 자체인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거절!

“김태현 그놈한테 묻는 게 낫지 않아요?”

“아냐! 그놈한테 묻고 싶지 않다! 만약에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그놈이 잘난 척하는 걸 생각해 봐!”

“……그렇군요!”

케인과 유 회장은 뜻이 맞았다.

보통 언제나 태현이 맞고 그들이 틀려왔던 것이다.

이번에까지 그럴 수는 없다!

“좋습니다. 한 번 아이디어를 짜내보죠!”

“좋네! 바로 그런 게 젊음이지!”

유 회장과 케인은 신이 나서 온갖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걸 본 김현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저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인데 저런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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