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04화
태현은 뭔소린가 싶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사실 별로 안 궁금했던 것이다.
그냥 사진 한 방 찍어달라는데 그게 뭐 어렵나 싶기도 했고.
그러나 한 명은 아니었다.
“내가 왜 이런 걸 찍어야 해? 쳇. 다른 팬들이 해달라고 해도 안 해주는 거라고. 왜 김태현만 특별 취급하는 거지? 이건 공정하지 않잖아.”
태현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싫은 도동수!
도동수는 유 회장이 누군지 몰랐다.
그저 태현이 데리고 온 아저씨일 뿐!
그리고 맞는 말이기도 했다.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맞는 말이네. 그럼 찍지 말자.”
안 찍으면 아쉬운 건 유 회장이지 태현이 아닌 것!
그리고 태현은 유 회장이 아쉬워하거나 말거나 정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을 사람이었다.
“?!”
도동수가 놀라고.
“?!?!”
유 회장도 놀랐다.
그리고 유 회장은 도동수를 노려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노려보는 눈빛과는 차원이 다른, 박력 넘치는 눈빛!
오랫동안 재계에서 군림한 거물만이 보낼 수 있는 위압감 넘치는 눈빛이었다.
‘이놈……! 네놈 때문에……!’
‘헉, 대체 무슨 눈빛이……!’
도동수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순간 뱀 앞의 개구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너의 이름을 기억했다! 너는 절대로 유성에서 만들 팀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쪼잔한 복수를 다짐하는 유 회장이었다.
“그런데 어르신.”
“흠흠. 역시 너밖에 없다. 그래. 내가 평소에 말은 안 했지만 네가 참 괜찮은 놈이라고 생각했…….”
“지금 사진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아, 아니야!”
‘사진 찍고 싶으셨군.’
미련이 철철 넘치는 유 회장의 얼굴.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요. 아니라면 뭐 아닌 거겠죠. 다름이 아니라 지수가 요즘에 안 보이는데, 지수 요즘 뭐 합니까?”
“네깟 놈이 왜 지수가 뭐 하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이냐!”
바로 튀어나오는 유 회장의 분노!
아까까지 태현을 칭찬하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방금 저보고 괜찮은 놈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네가 잘못 들은 거겠지. 흥.”
“아니, 지수가 안 보여서 뭐 하냐고 물은 건데 왜 화를 내세요?”
“모른다. 흥.”
“그러면 뭐 지수한테 연락해서 물어보죠.”
“잠, 잠깐!”
유 회장은 팔을 뻗어 태현을 말렸다.
“입시 준비 중이다.”
“네?”
“입시 준비 중이라고! 너하고 달리 내 손녀는 고등학생이다.”
“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유!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 어쩔 수 없죠.”
지금 여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으니, 몇 달 남지 않은 셈이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판온을 했던 게 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
“근데도 용케 판온을 했네요?”
“내 손녀야 똑똑해서 자기 할 거 다 알아서 잘하는 애니까. 자기 성적 다 유지하면서 하니까 나도, 애비도 가만히 있었지. 그렇지만 아무래도 이제는 슬슬 집중을 해야 할 때 같아서…….”
“지수가 잘 받아들이던가요?”
유 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현은 알겠다는 듯이 씩 웃었다.
“걔를 위해서야!”
“뭐 맞는 말이긴 해요. 집중할 때긴 하죠.”
“너는 어땠는데?”
“저는 놀 거 다 놀고 잘 갔죠.”
“…….”
유 회장은 복잡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분명 대단한 놈이긴 한데 왜 이렇게 얄미울까?
‘잠깐, 그러면 지수 본선 진출했으면 대회와 수능을 동시에 치르려고 했던 거였나? 대단한데?’
물론 지수의 가족들이 그걸 듣고 ‘우리 딸 장하구나! 한 번 그렇게 해보렴!’이라고 말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네 마음대로 살아라, 난 모르겠다~’ 하고 방치하는 김태산을 아버지로 둔 태현과 유성그룹의 회장을 할아버지로 둔 유지수는 입장부터가 달랐으니까.
“뭐, 걱정 마세요.”
“그렇지? 내 손녀는 알아서 잘…….”
“어르신 돈 많으니까 여차하면 유학 보내면 되죠.”
“…….”
유 회장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하하. 농담입니다.”
“다시는 그딴 농담 하지 말게! 그리고 그 애는 벌써 거절했네. 유학이 가기 싫은 것 같더군.”
“왜 그런 거 같습니까?”
“글쎄? 친구들이 다 한국에 있어서? 해외에서 적응하기 힘들 거 같아서? 아니, 자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다 한국에 있어서일지도 모르겠군.”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뭐라고 했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유지수와 관련될 때 유 회장은 정말로 무서웠다. 태현도 살짝 위축이 될 정도!
“어쨌든 성적은 충분해. 실수만 안 하면 충분히 원하던 곳에 갈 수 있을 거야. 역시 내 손녀답지. 스스로의 힘으로 미래를 개척…….”
“음, 회장님 집에서 먹고 사는데 딱히 스스로의 힘은 아닌 것 같지만…….”
“아까부터 이놈은 왜 자꾸 내 손녀의 미래에 초를 치는 거냐? 이놈. 내가 낚싯대를 들게 하지 마라!”
“진정하세요. 그래서 어디 가려고 합니까?”
“국내라면 당연히 한국대지.”
한국 최고의 대학교, 한국대.
유학을 가지 않는다면 국내에서 최고로 좋은 곳을 가야 했다.
그리고 유지수는 충분히 갈 능력이 됐다.
“아. 그래요? 무슨 과?”
“그건 아직 고민 중인 거 같더군. 내 생각에는 아마 경영학과를 가지 않을까 싶은데…….”
“위대한 사유의 철학과 어때요?”
“……아니면 법대도 나쁘지 않지.”
“역사와 전통의 국문학과는?”
“이놈이 정말 누구 인생을 망치려고!”
유 회장은 결국 울컥해서 태현의 멱살을 잡으려고 덤벼들었다.
“아니, 왜 그래요! 철학과나 국문학과가 뭐가 어때서!”
“이놈이 진짜!”
“지수가 뭘 좋아하는지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
“적어도 저 두 개는 아니야!”
“와, 어르신 지금 자기 욕심에 손녀를 맞추는 그런 겁니까? 자기가 원하는 과에 지수가 가야 한다 이거?”
“아, 아니. 내가 언제!”
태현한테 나쁜 놈으로 몰리자 유 회장은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다른 종류의 공격이었다면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지만, ‘나쁜 할아버지’ 공격에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손녀가 어디를 가든 응원하고 지원해 줄 생각이야.”
“예. 예. 물론 그러시겠죠.”
전혀 동의하지 않는 태현의 ‘그러시겠죠’에, 유 회장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정말이라고!”
“그래요. 믿는다니까요. 어르신은 신세대셔서 손녀가 뭘 하든 믿고 지원해 주시겠죠. 알아요.”
“…….”
유 회장은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속아 넘어간 거 같은 기분!
“그런데 지수가 국문학과 오면 제 후배가 되는 건가요?”
“……국문학과는 절대 못 가게 해야겠군.”
“네?”
“아무것도 아니다.”
* * *
“한국대표팀은 뭐 저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거지?”
“곧 경기잖아. 맵도 나왔고. 당연히 저렇게 상의를 해야지.”
“그 전까지는 모이지도 않아놓고?”
“맞아.”
태현 팀은 다른 팀들과 달리 대회를 코앞에 두고서도 경기장에 모이지 않는 훌륭한 팀워크를 보여주었다.
당연히 이 모습은 다른 팀들이나 팬들의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한국대표팀은 너무 자신감이 넘쳐서 사전 연습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해도 이길 자신이 있어서 연습 안 한다!
-케인이 말했는데, ‘내가 연습하면 너무 쉽게 이길 테니 밸런스를 위해 연습하지 않고 있는 거다’래!
소문과 헛소문이 퍼질 정도!
그런 한국대표팀이 저렇게 뜨겁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주변의 팬들은 신기해할 만했다.
“저 아저씨는 누구지?”
“글쎄. 감독인가?”
“벌써 팀에 감독이 있어?”
“한국대표팀이라면 감독 붙어도 이상할 거 없지. 벌써 프로게임단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왔다던데.”
“정말로? 대단하다.”
밖에서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태현은 대기실에서 묵묵히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티팩트 제작!
갖고 있던 재료 중 쓸만한 재료들을 대충 쓸어 넣어 반지를 만들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자! 이제 나가야 해.”
“뭐? 이거 좀만 더 만들면 안 되나?”
* * *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투기장 대회의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자. 여기까지 오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는 건 알아. 그렇지만 이제 다 잊어버리고 경기에 집중할 때야. 모두들 알지?”
“…….”
“…….”
‘아오, 이 진상들.’
태현과 도동수를 보며 이세연은 속으로 욕했다.
“예상대로라면 상대방은 분명…… 야! 안 듣고 가?!”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의 명령 따위는 듣지 않는다!”
탓-
도동수는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이 경기장의 문을 열고 앞으로 나가 버렸다.
그 뒤를 향해 태현이 외쳤다.
“그러면 우리 말 들어야지!”
-아! 처음 시작을 연 것은 도동수 선수군요.
-과감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실 이 투기장 경기에서 하나의 진지를 점령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리니, 처음에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거든요. 그런데 저렇게 먼저 움직인다는 건 자신감이 있다는 거예요. 한국 팀은 이미 어떻게 할지 다 생각이 끝나 있다는 겁니다.
-그렇죠. 그런 게…… 방금 도동수 선수가 욕했나요?
-네? 설마요. 팀원과 대화하는 걸 착각한 거겠죠.
-그렇죠?
그러는 동안 이세연은 이를 갈며 말했다. 첫 번째 경기의 시작을 이런 식으로 해야 하다니.
분노가 치솟았지만 지금 화를 터뜨릴 정도로 그녀는 어리석지 않았다.
“좋아. 첫 번째 경기니까 상대방이 어떤 걸 준비해왔나 보러 가보자. 저번처럼 움직여.”
“가운데로 갈까?”
“그래. 부탁해.”
이세연과 김철수는 위로, 태현과 케인은 가운데로, 도동수는 아래로.
그리고 그러는 동안 팀 블루는 기다렸다.
-팀 블루는 기다리는데요?
-아, 뭘 노리는 거죠?
-아마 팀 블루 플레이어 중 맵을 볼 수 있거나 상대방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플레이어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가만히 있을 이유가…… 아, 움직입니다!
한 박자 늦게 움직이기 시작한 팀 블루의 조합은 2, 2, 1.
도동수 쪽으로 향하는 팀 블루의 플레이어는 차원철.
거의 똑같은 전략이었다.
-아, 똑같습니다! 각 진지에서 똑같이 만나게 됐어요!
-이렇게 되면 정말 실력 승부겠는데요?!
케인은 긴장한 얼굴로 숲을 쳐다보았다.
약간 경사진 언덕을 올라가야 나오는 가운데 진지.
이제 여기를 올라가면 언제 적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한순간의 실수로 승패가 갈라지는 냉정한 프로의 세계!
이제까지 해왔던 걸 생각하니 갑자기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후욱. 후욱. 긴장하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나는 할 수 있다. 나를 믿자. 내가 이제까지 해온 걸 생각해 보자…….’
케인은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뒤에 태현이 있다는 게 이렇게 믿음직할 수 없었다.
온갖 욕은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게 태현!
그가 실수를 해도 어떻게든 해주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좋아. 가자!’
뜨겁게 다짐하는 케인.
거기에 호응하듯이 옆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뭐지? 내가 마음을 굳혀서 그런가? 이 열기는…… 김태현 이 녀석도 지금 각오를 해서 느껴지는 마음의 열기?’
케인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뭐야?!”
옆에서 태현이 숲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 * *
-뭐 하는 거야, 뭐 하는 거야, 뭐 하는 거냐고!
-시끄러워, 인마. 불 지르잖아.
태현은 가운데 진지 밑의 숲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아직 보고 있는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건 사디크의 화염이었다.
일반적인 화염과는 차원이 다른 화염!
그리고 태현은 마지막으로 도동수가 간 아래쪽 진지의 숲에도 겨냥해서 사디크의 화염을 발사했다.
화르륵!
-거기는 왜?!
-이렇게 해놓으면 도동수도 한 명은 잡겠지?
-……미친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