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03화
“이런 식으로 날 엿 먹일 놈들이 대체 누구…….”
“너무 많지 않나요?”
“그렇긴 해.”
보통 대회 전에 이런 일을 겪으면 ‘설마 다른 팀이 대회 출전을 방해하려고 이러는 건가?’ 의심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태현의 경우는 달랐다.
그보다는 태현에게 원한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먼저 의심을 해봐야 하는 수준!
‘원한을 너무 많이 샀어.’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독을 만들어서 함정을 파려면 용의자가 좁혀졌다.
‘일단 요리 스킬이 뛰어나야 할 거고, 독 구해서 대회 전에 케인한테 먹이려고 할 정도 능력이면…… 설마 레스토랑 길드인가?’
레스토랑 길드.
쑤닝 길드와 친한 길드 중 하나였다.
요리사들로 만들어진 길드였고, 예전에도 한 번 요리에 독을 타서 날로 먹으려다가 태현한테 꼬리를 잡힌 적이 있었으니 이런 일을 벌여도 놀랍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아신 거예요?”
이다비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무리 봐도 상대방은 그냥 팬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케인은 거기에 넘어가서 해롱해롱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태현은 눈치를 챘다.
대체 뭘 본 것일까?
“아. 그냥 케인을 좋아하는 거 같길래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
“…….”
이다비도, 케인도, 바닥에 쓰러져서 곧 로그아웃 당할 플레이어들도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고작 저런 이유로 사람을 의심하다니!
“아니었으면요?”
“뭐, 내 팬이니까 용서해 주겠지. 케인이 의심 가서 시켰다고 하면 될 거야. 어차피 이번 대회에서는 쟤가 좀 싸가지 없는 이미지잖아.”
“야!!”
“조용히 해. 인마. 넌 내 덕에 목숨 구한 줄 알아. 안 그랬으면 대회 출전도 못 했어.”
케인은 태현의 말에 흠칫했다.
생각해보니 등에 땀이 흘렀다.
여기서 로그아웃 당하면 대회 참가 전에는 다시 접속이 불가능했다.
설마 설마 했지만 정말로 이런 식으로 대회 참가를 방해하려는 놈들이 있다니!
“진짜 이런 짓을 하는 놈이 있단 말이야?”
“왜 없겠어. 나 같아도 하겠는데.”
“…….”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태현이었다.
* * *
“습격을 당했어?!”
이세연은 깜짝 놀라 외쳤다.
그녀가 놀랄 만했다.
이 MBS팀에서 가장 책임감을 크게 갖고 있는 게 그녀였으니까!
태현이야 ‘아 망하면 망하는 거지~ 난 신경 안 써~’이러고 있었고, 도동수는 ‘김태현 죽인다 김태현 죽인다’ 이러고 있었다.
그나마 케인이나 김철수가 협조적이기는 했지만, 두 명 모두 태현이나 도동수를 관리할 능력은 없었다.
즉 모두를 관리할 힘이 있는 건 이세연뿐!
“괜찮아. 안 죽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이세연은 태현의 양팔을 붙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상대가 누구였는데?”
“음…… 짚이는 게 너무 많아서 확정하기가…….”
“……그래. 넌 그랬지. 안 되겠다. 내 길드원 몇 명 붙여줄 테니까 너하고 케인 씨는 같이 다니는 게 좋겠어.”
“나로도 충분한데?”
“너 걱정하는 게 아니라 케인 씨가 걱정이야. 넌 내버려 둬도 혼자 잘 살 테니까 걱정 안 해.”
둘의 대화를 듣던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저게 걱정을 하는 걸까, 아닌 걸까?
“하긴…… 케인은 약해서 금세 죽을 수 있겠군.”
“약하긴 누가 약해!? 여기서 생존력만 따지면…….”
케인은 말하다가 멈칫했다.
그가 분명 생존력이 강한 탱커 계열의 직업이기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미친 회피력의 태현, 강력하고 다양한 회복 스킬을 갖고 있는 김철수, 비록 마법사지만 전설 직업의 강력한 특별 스킬들을 갖고 있는 이세연까지.
어느 한 명 만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내가 꼴등은 아니다!”
케인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깨달은 도동수가 케인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 성장한 케인은 도동수의 시선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쨌든 너희가 적 많은 건 알겠어.”
“저는 아니에요! 이 자식이 많은 거지!”
케인이 방방 뛰면서 태현을 가리켰지만 아무도 수긍하지 않았다.
이미 두 사람은 1+1 세트나 마찬가지!
보통 태현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케인도 같이 싫어했다.
“대회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는 투기장 근처에 있어. 그보다 이건 당연한 거 아니야!? 다른 팀들은 다 그러는데!”
“진정해. 그럴 테니까.”
“누구 때문에 이러는데! 그리고 길드원 붙여줄 테니까 같이 다니고! 실수해서 네 명으로 출전하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해. 알겠어?”
“알겠어. 알겠어.”
태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일행과 같이 나가자, 이세연은 도동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쪽도 들었겠지?”
“흥. 나는 알아서 잘할 수 있다.”
“그럴 거라고 믿고 있어. 최소한의 지시에는 따라줬으면 좋겠는데.”
“흥. 난 네 지시를 받으려고 들어온 게 아니거든.”
“대회에서 망신을 당하고 싶지는 않을 텐데?”
도동수는 대답하지 않고 나가 버렸다. 이세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김철수가 그걸 보고 안쓰럽다는 듯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별로 도움이 안 되어서…….”
“아뇨. 어차피 김철수 씨가 말하신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까…… 어떻게 이렇게 협조하기 힘든 사람들만 모였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정도는 자업자득이긴 한데…….”
태현과 같이 팀으로 대회에 나가보고 싶어서 욕심을 부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사실 도동수나 태현 중 한 명만 없어도 분위기는 훨씬 더 화목해질 것 같긴 했다.
‘그래도 일단 제대로 돌아가기는 할 거 같네.’
태현은 일단은 이세연의 말을 들어줄 것이고, 도동수도 대회에서 활약하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 대놓고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수습은 될 거 같았다.
* * *
“아, 진짜. 짜증나.”
“…….”
“진짜 진짜 짜증나! 내가 왜!”
이세연이 태현과 케인의 호위를 위해 부른 길드원은 김현아와 그 친구였다.
당연히 김현아가 태현을 고운 눈길로 볼 리 없었다.
다른 길드원들이 ‘이래도 괜찮나?’ 싶을 정도로 짜증을 부리는 김현아!
물론 태현이 그런 김현아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니었다.
“야! 세연아! 네가 믿고 맡긴 동생이 나 너무 싫어서 네가 맡긴 일 제대로 안 한단다! 우리는 그냥 따로 다닐 읍!”
바로 고자질을 하러 움직이는 태현!
“미친 거 아냐?!”
김현아는 새파랗게 질려서 태현의 입을 막으려 들었다.
세상에 저렇게 치사한 짓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네가 하기 싫대서 배려해 주는 거잖아.”
“그게 어디가 배려야!!”
“알겠어. 다른 식으로 배려해 주지. 난 괜찮으니까 얘만 지켜라. 얘가 제일 약하거든.”
태현은 케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케인은 매우 굴욕적인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이 제일 약한 거야?”
“그렇지.”
“확실히 좀 약해 보이긴 했어.”
“겉으로도 그렇지만 실제로도 약하지.”
“아니야! 아니라고! 이것들아!”
결국 폭발한 케인이었다.
“여러분, 대기실로 와주시죠. 이제 곧 경기가 발표됩니다.”
MBS 직원이 와서 말했다.
곧 있을 팀 블루와의 대결.
그 대결에 사용될 투기장 맵이 이제 곧 결정되었다.
“원하는 맵이라도 있냐?”
“글쎄. 다 상관없긴 한데…….”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이세연이 몇 번이고 메일을 보내서(확인할 때까지 전화를 걸어댔다) 팀 블루의 동영상을 보긴 봤다.
치열한 예선을 뚫고 올라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잘 균형이 잡힌 팀이었다.
정석적인 직업 구성에, 어떤 변수에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단단한 팀!
그에 비해 태현의 팀은 각자 능력은 좋았지만 모래알 같은 팀워크 능력을 갖고 있었다.
‘좀 흔들지 않으면 귀찮아질 수 있겠군. 투기장 맵은…… 장애물이 좀 많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는 동안 팀 블루도 작전 회의에 들어가 있었다.
태현의 팀과 달리 화기애애한 팀 분위기!
“모두 준비됐지?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
“맡겨만 둬. 특히 그 케인 자식은 내가 발라버릴 테니까. 아주 개망신을 당하게 해주겠어.”
이주형은 이를 갈며 케인을 욕했다.
일은 태현이 저질렀는데 아무도 태현을 욕하는 사람이 없는 이 불합리함!
다른 팀원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
‘주형이는 원래 저래야 실력이 좀 나오니까.’
‘열심히 하는 건 좋지.’
“케인하고 김태현은 분명 같이 움직일 거야. 2명, 2명, 1명.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싶은데.”
“연습 경기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확실히 무난하긴 해. 도동수는 피하면 잡기 힘들고, 태현-케인, 이세연-김철수는 둘 다 강력한 조합이니…….”
“도동수는 연습대로만 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어. 원철아. 할 수 있지?”
“물론이지. 타깃만 잘 설정해.”
팀 블루의 플레이어 중 한 명은 <목표 추적> 스킬을 갖고 있었다.
한 명을 지정해서 잠깐의 시간 동안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스킬.
이 스킬을 잘 사용하면 도동수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었다.
“도동수는 어차피 도적 직업이야. 나하고는 상성이 최악일걸.”
“좋아. 믿는다. 그러면 나머지는 그동안 버티는 건데…… 태현-케인 이 두 명이 좀 위험해. 이세연-김철수는 시간 끌면서 버틸 수 있는데 김태현은 진짜 장난 아니야. 연습 경기 보니까 눈 깜박할 사이에 폭딜을 넣더라고.”
“케인이 끌어오고 김태현이 딜을 넣고. 심플하지만 진짜 상대하기 어려워.”
전부 레벨이 100으로 맞춰진 상황에서 이세연-김철수 조합은 그렇게 파괴적인 딜링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김태현과 케인은 저 상황에서도 무시무시한 딜링 능력을 보여주었다.
“역시 장애물이 많은 맵이어야 해. 그래야 조준을 피하지.”
“제발 장애물 많은 맵. 장애물 많은 맵…….”
팀 블루의 플레이어들은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결과가 나왔다.
-이번 경기의 맵은 <마법 폭주의 숲>입니다!
-마법 폭주의 숲은 어떤 맵이죠?
-기본적으로 장애물이 많은 숲에, 마법 폭주 속성이 붙은 맵입니다. 마법의 위력이 늘어나지만 폭주해서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는 거죠. 약간의 변수가 되겠어요.
-장애물이 많으니 이것도 꽤 변수겠군요.
-네. 평소에 싸우던 것과 좀 다르게 접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적, 궁수 직업 같은 경우에는 은신하기 쉽고. 또 근접전을 벌일 때도 신경을 써야 하죠.
“됐다! 됐다!”
팀 블루는 환호성을 질렀다.
조마조마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원하던 맵에 걸린 것이다.
그러는 동안 태현의 팀도 상의를 하고 있었다.
“이번 경기에서 케인이 망신을 당할 거 같냐, 안 당할 거 같냐?”
“전 당할 거 같아요.”
“그래? 난 그러면 안 당한다에 걸까…… 아니, 난 당한다에 걸고 싶은데. 당할 거 같아.”
“둘 다 당한다에 걸면 내기가 성립이 안 되잖아요.”
부들부들!
케인의 꽉 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그 김현아도 불쌍하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볼 정도!
“흠흠. 맵이 정해졌군.”
“?”
유 회장이 와서 기침을 하며 말을 걸자 모두 고개를 돌렸다.
이세연은 이다비에게 속삭였다.
“그런데 저분은 누구시길래 김태현하고 같이 다니는 거야? 집안 어르신인가?”
“친한 거 같기는 해요.”
“그래?”
관계없는 사람은 내보내려던 이세연은 멈칫했다.
태현의 친인척이면 내보내기가 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왜 오신 거지? 김태현 응원하러 오셨나?’
“모두들 같이 사진이나 한 방 찍는 건 어떤가?”
“……어르신…….”
“아, 아니. 꼭 내가 찍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방송국에서 같이 찍으시죠? 어차피 본 경기 때 방송국에서 모일 텐데.”
“……그게 사정이 있어서…… 내가 방송국에는 못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