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02화
“네가 생각하기에는 어떠냐? 다른 스킬도 익혀놓는 게 좋을까?”
“마음대로 하세요. 뭘 그런 걸 물어요.”
“아니…… 더 강해지려면…….”
“낚시만 하시겠다고 하던 어르신은 어디로 가시고…….”
“…….”
유 회장은 부끄러운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태현은 유 회장을 그만 괴롭히기로 했다. 괜히 더 괴롭히면 화만 낼 테니까.
“더 강해지려면 스킬은 다양하게 익히는 게 좋죠.”
“그, 그래?”
“네. 스킬은 무조건 다다익선이거든요. 옛날부터 주요 스킬 몇 개만 파고드는 게 정석처럼 여겨지는데, 그건 틀렸습니다.”
“그런가?”
유 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주요 스킬 몇 개만 익히는 게 맞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그 몇 개 파고드는 것만큼 다른 것도 익히면 되잖습니까.”
“……그게 말이 쉽지!”
“회장님 어차피 시간도 많으실 텐데 뭘.”
이미 일선에서 물러나 중요한 사항만 보고 받는 유 회장이었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 이놈아. 내가 시간이 많은 게 아니라…….”
“어쨌든 출발하죠. 케인! 뭐 하냐! 빨리 와라!”
“지금 간다! 지금 가!”
오토바이를 꺼내던 케인은 멈칫했다.
“야, 잠깐만. 이거 저번에 순간이동했었잖아!”
“뭐 네 팔자지. 난 분명 다른 거 추천했었는데.”
“……!!”
생각해 보니 그랬다.
분명 태현은 다른 걸 추천했었던 것!
“이, 이 자식…… 설마 내가 바꿔 달라고 할 걸 예상하고 함정을 판 거였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태현은 어이없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지만 케인은 이미 자신의 논리를 믿고 있는 표정이었다.
“이 자식! 다음부터는 절대 속지 않을 거다!”
부아앙!
케인은 먼저 탈것에 올라타 출발해버렸다.
뒤늦게 온 이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인 씨는요?”
“먼저 갔어.”
* * *
판온에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많았다.
에랑스 왕국처럼 잘나가는 왕국의 경우, 마탑에 가면 왕국 내 다른 도시로 텔레포트도 시켜줬다.
물론 에랑스 왕국에 어느 정도 공적치 포인트가 있어야 하고, 현상금도 걸려 있지 않아야 하며, 내야 하는 골드도 비쌌지만.
그래도 바쁜 플레이어들은 그런 걸 사용했다.
그런 걸 사용할 처지가 안 되는 플레이어들은 마차를 사용하거나 탈 것을 태워주는 NPC들을 고용해서 움직였다.
그런 면에서 프리카 대륙은 중앙 대륙에 비해 이동수단이 적은 편이었다.
다행히 프리카 대륙에 갈 정도의 플레이어들은 각자 자기 탈것 하나 정도는 갖고 다니는 수준!
그래서인지 지금 하늘에는 날아다니는 플레이어들이 꽤 보였다.
“이야…… 저거 보셨어요? 저거? 저거 저번에 경매장에서 6천 골드 찍었던 말이에요!”
“그래. 그래. 보고 있어.”
태현은 이다비의 말에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십 분 전부터 이다비는 주변에 보이는 모든 탈것의 가격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거 가격은…….”
“그래. 그래. 그보다 지금 네가 타고 있는 탈 것이 더 비싸다는 건 알고 있지?”
태현은 별생각 없이 말했다.
그냥 지겨워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아차.’
“그, 그런……!”
“야, 팔지 마! 팔면 안 돼!”
“안, 안 팔아요!”
둘의 대화를 듣던 케인은 태현에게 물었다.
“야, 우리 쳐다보는 놈들이 좀 많은 거 같은데.”
“뭐 그럴 법하지.”
태현이 변장을 해도, 이런 날아다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면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나 김태현이다’ 하고 자랑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서 태현은 지금 변장도 푼 상태였다.
태현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말했다.
“앞으로 계속 저런 시선 받을 테니까 신경 끄고 운전에나 집중해.”
“버포드를 내버려 두고 온 게 잘한 짓이었을까?”
케인의 걱정에도 일리가 있었다.
영지에 돌아온 케인이 가장 놀란 건 바로 사디크 성기사가 돌아다니는 모습이었다.
-아키서스와 사디크를 위해! 아키서스와 사디크를 위해!
-아키서스를 위하여! 사디크는 좀 덜 위하여!
순간 케인은 자기가 다른 곳으로 온 줄 알았을 정도였다.
“사디크 교단이 거의 망한 상태라 뭘 하지도 못할걸. 널 내버려 둬도 아무 짓도 안 하는 것처럼.”
“과연 그렇…… 뭐?”
“이야. 저기 밑에 배 지나간다.”
“…….”
케인은 태현을 노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바다에서 배를 타고 넘어가는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프리카 대륙으로 갈 수준이 아닌 플레이어들도 구경을 위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눈이 안 내리는군?”
“중앙 대륙에만 내리는 거 같네요.”
“프로즈란드에도 내려! 프로즈란드에도 내린다고!”
유 회장과 태현의 대화를 듣던 케인이 외쳤다.
프로즈란드에서 겪었던 일들은 짧았지만 아직도 깊숙이 남아 있었다.
케인도 나름 판온 한 경험이 길었지만, 갈락파드 같은 미친 NPC는 정말 처음이었다.
‘잠깐, 갈락파드 그놈은 영지로 올 텐데, 영지에는 사디크 성기사들이 있고…….’
오싹!
케인은 등골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케인은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어차피 여기서 생각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내 책임 아니야! 김태현이 데리고 온 놈들이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펠마스였지만.
케인이 속으로 갈등하고 있는 동안 유 회장은 말을 이어갔다.
“이 판온 게임은 정말 신기하군. 여름에도 눈이 오고 말이야.”
“뭐 판온에선 별일이 다 일어나죠.”
“그러면 현실처럼 변화가 생기고 그러나?”
“그렇죠?”
“흠…….”
유 회장은 생각에 잠겼다. 여름에 눈이 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흐으음…… 저기, 이다비 양.”
“네?”
“양?” “양??”
태현과 케인은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유 회장이 저렇게 공손하게 부르다니?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 * *
탁-
탈 것에서 내린 태현 일행은 저 멀리 보이는 투기장 건물을 쳐다보았다.
벌써 사람들이 바글바글 서 있었다.
이다비는 흐뭇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인파를 바라보았다.
“흐뭇하네요.”
“왜 네가 흐뭇해해?”
“저기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안 보이세요?”
“…….”
정말 남들보다 몇 발자국은 앞서가는 이다비였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구경하러 온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신나게 장사를 하고 있었다.
예전과 차이점이 있다면, 당당하게 파워 워리어 길드 이름을 걸고 있다는 것!
태현이 방송에서 자랑(?)을 해준 덕분에, 파워 워리어의 이름값도 같이 올라간 것이다.
덕분에 파워 워리어 길드에 가입하겠다는 사람들도 확 늘어났다.
과거와 비교해 보면 눈물을 흘릴 정도의 차이였다.
-흑흑…… 파워 워리어에 들어오길 잘했어……!
-친구들이 길드에 초대해 달라고 하면 우리 길드 이름 숨기고 그랬는데……!
-애들아, 나 여기 있거든? 길마 앞에서 길드 욕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아?
-사실인 걸 어떡해요.
-맞아. 우리 길드 문구가 <꼬와도 접지 마 너 접으면 우리 길드 망해>였잖아요.
보통 대형 길드는 쿨했다.
불만 있어? 그러면 나가!
너 없어도 우리 길드는 잘 돌아가!
이게 보통 길드원들에게 대하는 태도!
그렇지만 파워 워리어는 정반대였다.
불만 있어도 나가지 마!
너 나가면 우리 길드 망해!
절박함과 구질구질함을 당당히 드러내는 길드가 파워 워리어!
“헉, 김태현이에요?”
“와! 김태현이다! 케인도 있어!”
“팬이에요!”
태현 일행을 알아본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예쁘장한 엘프 플레이어가 손을 잡고 웃자 케인의 얼굴이 헤벌쭉해졌다.
“이번 대회 기대하고 있어요!”
“감, 감사합니다……?”
태현에게도 여성 팬들이 몰려들어서 환호했다.
그걸 본 이다비가 살짝 볼을 부풀렸다. 그 순간 태현에게 귓속말이 들어왔다.
-뭔가 이상해.
-네?! 저 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
-뭔 소리야?
-……그러게요. 뭔 소리일까요? 아하하하!
-쟤네들이 수상하다고.
태현은 앞에 몰려온 팬들을 가리켰다.
-네? 뭐가 수상해요?
-곧 대회를 앞두고 저렇게 친절하게 다가오는 게 수상하잖아.
-……태현 님. 보통 세상에는 그런 걸 팬이라고 부르는데…….
-아냐. 수상해. 쟤네들 하는 거 잘 보고 방심하지 마.
이다비는 어이없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지만 태현은 진지했다.
“이거! 드셔주세요! 저희가 직접 만든 음료예요!”
“네? 대회에서는 음식 버프가 의미 없는데요?”
“아, 그렇군요. 죄송해요……! 기껏 만들었는데!”
“아닙니다! 마시겠습니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엘프 플레이어가 내밀었던 음료를 가져가려고 하자 케인이 기겁하며 말렸다.
당장에라도 원샷할 기세!
태현은 <중급 요리> 스킬에 <괴식 요리> 스킬까지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음료에서는 별다른 게 뜨지 않았다.
만약 함정이라면 정말 잘 만든 함정!
그러나 태현은 이런 함정을 바로 잡아낼 수 있는 사기 스킬을 갖고 있었다.
-신의 예지!
‘역시!’
신의 예지 스킬은 저 음료가 매우 불길하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먹지 마, 이 멍청한 놈아!
-어? 왜? 아. 설마……!
태현은 케인의 반응에 안도했다.
그래도 얘가 성장을 하는구나!
-너 지금 나한테만 준다고 질투하는구나!
-…….
태현은 그냥 내버려 둘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참았다.
미운 정이 뭔지!
‘나 참. 나만큼 착한 사람도 없다니까.’
-그 음료에 독 들었다.
-뭐?
-음료에 독 들었다고. 출전하기 싫으면 마시던가.
-???
케인은 당황한 눈으로 앞의 플레이어들을 쳐다보았다.
태현이 성격이 더럽고 야비하고 비열하고 치사한 놈이었지만 이런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건 정말로 함정?
‘이, 이 사람들이 모두?’
“자, 자! 케인 혼자 마시면 좀 그렇죠! 저희도 받았는데 보답을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현은 바로 가방에서 음료를 꺼내 팬들에게 건넸다.
“네? 저희는 괜찮…….”
“아뇨! 같이 마셔야죠! 혼자 마시면 케인이 너무 쑥스러워할 겁니다! 자자! 츄라이! 츄라이!”
“…….”
팬들은 당황했지만 태현이 내미는 음료를 받아들였다.
‘뭐 별일 없겠지?’
‘그냥 같이 마시면 될 거야.’
“자, 그러면 투기장 대회를 위해서!”
짠!
태현은 상대가 망설일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뒤에서 보던 이다비가 감탄할 정도!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게 정말 능숙해!’
꿀꺽-
[상대가 <즉석에서 만든 괴물 음료>를 마셨습니다.]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괴식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뭔 음료???”
상대방도 메시지창이 떴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괴물 음료가 뭐야?
“아무나 마실 수 없는 귀한 음료죠.”
신 잡아먹는 괴물의 점액질:
신 잡아먹는 괴물의 몸통에서 나온 점액질이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요리를 만들 때 쓸 수 있을 것이다.
복용 시 무조건적으로 마비 상태에 빠짐.
“으아악!”
“꺄아아악!”
비명과 함께 음료를 마신 플레이어들이 마비 상태에 빠졌다.
태현은 케인에게 준 음료를 들고 다가섰다.
“아이고, 제가 뭘 잘못 만들었나 봅니다. 미안하게 됐어요. 이 음료 마시고 회복하세요.”
“읍! 읍읍!”
“마비 상태는 내버려 둬도 곧 풀리지만, 여러분들이 이러고 있는 걸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자! 원샷!”
꿀꺽-
마비 상태에 있던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커헉!”
“커허어억!”
“와, 미친. 독을 뭐 얼마나 넣은 거야?”
얼굴색이 붉은색, 푸른색, 초록색으로 차례차례 변하다가 로그아웃 당하는 걸 보고 태현은 기겁했다.
저 정도 독이면 거의 장인이 만든 독 수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