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00화
“아. 스팸일 거예요. 그런 전화 한두 번 받으세요?”
태현은 귀를 후비며 태연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김태산은 다시 한 번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흔들리지 말자, 흔들리지 말자…….’
“뭐라고 했는데?”
“뭐라고 했더라…… 자기네들이 ST 파이브인데 혹시 김태현 씨 맞냐고 하던데…….”
ST 파이브. ST 사에서 운영하는 프로게임단 이름이 ST 파이브였다.
“야, 인마! 세상에 어떤 놈이 그런 이름으로 광고를 해?! 핸드폰 바꾸라는 거면 다른 회사 이름을 댔겠지!!”
“아, 그런가요? ST만 듣고 그냥 스팸이라고 생각해서…….”
“이놈 자식이 아버지 혈압을 올리네. KG는? KG 쪽에서 온 전화는?”
김태산은 의자에 털썩 앉으며 물었다.
KG에서 온 전화는 정말 스팸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걔네도 자기네들이 KG 위자드라고 했던 거 같은데.”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김태산은 태현의 멱살을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KG 위자드. ST 파이브처럼 KG에서 운영하는 프로게임단.
누가 들어도 프로게임단에서 온 제안!
태현이 멍청한 아들이었다면 김태산도 ‘아 그랬구나’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가는 놈이 이런 부분에서만 이러니 더 속이 탔다.
마치 그를 놀리려고 일부러 저러는 것 같은 모습!
“아니, 그러면 둘 다 스팸이 아니란 말입니까?”
“그래 인마!! 다시 전화해봐!”
“음…… 근데 꼭 그래야 하나요?”
“……뭐라고?”
“지금 꼭 프로게임단에 들어갈 필요가 없잖아요.”
김태산은 멈칫했다.
듣고 보니 그 말도 맞았다.
열이 올라서 연락하라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지금 그의 아들은 아쉬운 게 없었다.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과 후원?
그런 게 없어도 태현은 잘 먹고 잘살 수 있었다.
느긋하게 있다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그게 더 좋은 조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몰랐다.
“그렇죠?”
“그렇죠……는 무슨! 뭘 당당한 얼굴로 말하는 거냐! 차단이나 풀어라!”
* * *
ST 파이브와 KG 위저드는 E-스포츠계에서도 오래된 라이벌이었다.
판온 이전 게임부터 계속 맞부딪혀온 두 팀!
그만큼 안의 라이벌 의식도 팽팽했다.
-다른 팀한테는 져도 KG 위저드한테는 지지 마라!
-ST 파이브한테 지면 모두 각오해라!
보통 이런 경쟁의식은 선수단이나 감독에게만 있는데, 이 두 회사는 프런트나 일반 직원들에게까지 이런 라이벌 의식이 퍼져 있었다.
물론 스카우터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판온 붐은 온다. 이번 대회는 시작일 뿐. 분명 프로 리그가 열리게 되어 있어.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먼저 선수를 모아야 한다.”
“경기 결과를 봐야 알 수 있는 건 멍청한 놈이다. 똑똑한 놈은 경기 전에 먼저 움직이지. 게임 캐릭터를 보지 말고 사람을 봐라. 그러면 답이 나온다!”
두 회사의 스카우터들은 뜨겁게 타올랐다.
곧 프로 리그가 열리면 그들뿐만이 아닌 전 세계의 큰손들이 움직일 것이다.
그들도 대기업이었지만 중국 같은 해외의 큰손들의 머니 파워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먼저 인재를 찾아보고 잡아오는 능력이 필수!
“그렇다면 지금 가장 우선적으로 잡아야 할 선수는 바로…….”
“……이세연, 김태현이다!”
두 회사의 생각은 일치했다.
그러나 이세연은 냉정했다.
-이번 대회 끝나기 전에는 딱히 생각이 없네요. 끝나고 나서 고민해보겠습니다.
아쉬운 게 없는 이세연이었기에 서둘러서 프로게임단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스카우터들은 아쉬움에 가슴을 쳤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면 김태현이다!
김태현은 반드시!
“안녕하십니까! 저는 ST 파이브의…….”
-아, 핸드폰 안 바꿔요.
뚝-
끊어지는 전화!
스카우터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전화를 걸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방금 전화를 받았던 놈이 이러는 건, 차단했다는 것!
“핸드폰 아니라고……!”
스카우터들은 억울하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 * *
“깼다! 깼다고!!! 으흑흑! 내가 깼다고!!”
접속한 태현은 앞에 케인이 울부짖으며 뛰어다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프로즈란드로 간 놈이 벌써 영지로 돌아오다니!
“너 어떻게 왔냐?”
“스킬 써서!”
대가를 지불해야 했지만 케인은 망설이지 않고 스킬을 사용했다.
그만큼 갈락파드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태현보다 더 꼬장꼬장한 NPC라니. 다시 생각해도 끔찍했다.
“그렇다는 건 던전을 깼다는 거냐?”
“당연하지. 거기에다가 권능까지 갖고 왔다!”
케인은 뿌듯하게 아이템을 꺼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힘들었던 던전 공략이었다.
갈락파드와 정체불명의 동료들의 구박을 받으며 앞으로 앞으로!
온갖 함정들이 쏟아지는 걸 몸으로 막고, 온갖 몬스터들의 공격도 몸으로 막았다.
갖고 있던 아이템들의 내구도가 거의 최하로 떨어졌을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죽지 않은 건 케인의 방어력과 체력, 그리고 뒤에서 걸어주는 버프 덕분이었다.
[<아키서스의 노예>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추가 효과를 받습니다.]
직업 덕분에 뒤에서 걸어주는 아키서스 관련 신성 마법의 추가 버프를 받았다.
물론 고마운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보통 파티 플레이를 하면 힐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정말 심하게 징글징글했던 것!
“그럼 투기장 가도 되는 거지? 투기장 가자! 투기장 가서 연습 좀 하자고!”
팀 블루와의 첫 대결이 며칠 남지 않았기에 케인은 필사적이었다.
오프닝이 나가고 나서 케인은 방송에 달린 리플, 기사에 달린 리플을 다 찾아서 읽어보았다.
그리고 좌절했다.
-케인 너무 깝치는 거 아니냐?
-저런 선수도 있어야 재밌지. 그리고 실력이 되잖아.
-흥. 저러다 지면 개망신이지.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하는 거겠지. 니들은 케인하고 붙으면 1초 컷임.
-팀 블루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난 솔직히 팀 블루가 이길 거 같다.
-개소리도 작작 좀.
-네 다음 팀 블루.
케인에게 호의적인 의견, 케인에게 부정적인 의견으로 갈렸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지면 X된다……!’
이겨야 해!
필사적인 케인과 달리 태현은 여유로웠다.
“잠깐만. 권능 스킬 좀 확인하고.”
“투기장 가서 해도 되잖아……!”
“안 돼. 영지가 안전해.”
태현은 옆에서 방방 뛰는 케인을 무시하고 스킬 두루마리를 확인했다.
낡고 헤진 두루마리에서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키서스의 아티팩트 제작>
아키서스의 힘이 담긴 아티팩트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제작하는데 걸린 시간과 사용한 재료에 따라 아티팩트의 힘이 달라집니다.
결과물은 랜덤입니다.
결과물은 랜덤입니다.
결과물은 랜덤입니다……?
“?!?!?”
아티팩트 제작이라는 원하던 권능을 찾은 건 기뻤지만, 마지막 줄이 이상했다.
누가 행운의 신 아니랄까봐 이런 부분에서 엿을 먹이다니!
“아니, 뭔…… 아니다. 됐다.”
태현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배우려고 했다.
아키서스와 관련된 일이 황당한 게 이게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사용!
[권능을 얻었습니다.]
……
……
[화신으로서의 힘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힘을 숨기기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케인, 갈락파드는 어떻게 한대?”
“영지로 온다던데?”
“어떻게? 언제?”
“몰라. 대답 안 듣고 튀었거든…….”
“…….”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식이었다.
-갈락파드 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영지로 가서 태현 님을 뵐 생각이다. 노예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충언을 올려야겠지. 암.
-그렇군요그러면전먼저가보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스킬 사용!
숨 돌아갈 정도로 급하게 말하고 도망친 케인이었다.
“아쉽게 됐네. 투기장 가야 해서 못 만날 거 같은데.”
“잘된 거지! 네가 겪어봐야 그 미친놈이…….”
말하던 케인은 멈칫했다.
왠지 모르게 갈락파드와 태현이 잘 어울릴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둘이 손을 잡고 그를 갈군다면?
“……빨, 빨리 투기장이나 가자!”
“음. 권능 스킬 좀 확인해 보고 싶은데. 그보다 케인. 묻는 걸 잊었는데…… 너 연락 온 거 있냐?”
“뭔 연락? 아. 방송 보고? 친구들한테 연락 온 거 있다.”
케인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방송 잘 봤다고 하더라고. 별로 안 친하던 놈들한테도 연락이 왔다니까.”
“뭐라디?”
“너랑 행복하게 살라던데?”
“뭐지? 우승하란 뜻인가?”
둘의 대화를 듣던 이다비는 작게 뿜었다.
“근데 내가 말한 연락은 그 연락이 아니고…….”
“?”
“혹시 ST나 KG에서 연락 온 거 없냐?”
“어…… 아. 핸드폰 바꾸라고 광고 전화를 받았던 거 같은데. 끊었지. 그건 왜?”
태현은 웃으며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
* * *
다른 권능 스킬과 달리, 아티팩트 제작 스킬은 직접 사용을 해봐야 어떤 아이템이 나올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이게 들어가는 시간과 재료도 상관이 있는 데다가, 결과물이 랜덤이라는 것이었다.
좀처럼 파악하기 힘든 스킬!
그래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대박 노렸다가는 피 볼 스킬이다.’
강력한 아티팩트 만들겠다고 재산을 탕진했다가는 뒤통수를 세게 맞을 기운이 풀풀 풍겼다.
태현은 일단 한 번 써보기로 했다.
지금 만들 수 있는 아이템 중 가장 간단하고 손쉽게 만들 수 있고, 효과를 빠르게 볼 수 있는 건?
‘역시 포션인가?’
아티팩트 포션.
신성 관련 직업을 가진 사람이 듣는다면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하며 기겁할 소리였다.
귀하고 귀한 아티팩트를 일회용으로 만드는 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아키서스 교단은 언제나 저렴하고 괴상한 교단.
이런 시도도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다는 게 커다란 장점이었다.
태현은 분수대로 가서 물을 좀 뜬 다음 냄비에 부어서 끓이기 시작했다.
재료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시간만 한 몇 시간 투자할 생각이었다.
-아키서스의 아티팩트 제작!
[아티서스의 아티팩트를 제작합니다.]
[아키서스의 신성한 맹물 물약이 만들어집니다.]
[제작하는데 걸린 시간과 사용한 재료가 결과물에 영향을 미칩니다.]
[제작을 실수할 경우 결과물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냄비 젓는 걸 실수할 일은 없고.’
다른 어려운 아이템이면 모를까, 맹물 부어다가 끓인 다음 병에 담는 동작을 태현이 실수할 리는 없었다.
휘적휘적-
몇 시간이 지났을까. 태현은 슬슬 그만두고 결과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완료!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아키서스의 신성한 맹물 물약을 얻었습니다.]
아키서스의 신성한 맹물 물약:
아키서스의 힘이 담겨 있는 아티팩트입니다. 겉으로는 그냥 맹물 같지만 여기에는 분명히 아키서스의 힘이 담겨 있습니다.
복용 시 일정 시간 동안 <신의 예지> 스킬을 사용합니다.
복용 시 일정 시간 동안 행운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흠…… 쓰레기군.”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결론을 내렸다.
현재 태현은 복용해도 별 이득을 볼 게 없었던 것이다.
‘쿨타임만 날렸네. 다음에는 좀 투자를 해야겠군. 경기 사이에 시간을 낼 수 있으려나…….’
제작을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별로 실망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큰 기대 없이 어떤 식으로 나오나 싶어서 만든 것이었으니까.
태현은 다음에는 좀 더 제대로 된 걸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불운 없애주는 아티팩트 같은 거 하나 나오면 에반젤린한테 반지 뜯어낼 수 있을 텐데…….’
사악한 속마음!
태현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옆의 플레이어 한 명이 말을 걸었다.
“저, 저기. 그 냄비 제가 좀 써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