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98화
“아, 같은 팀이면 안 되나요?”
‘당연히 안 되지!!!’
자리에 있던 모두와 관중석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속으로 외쳤다.
그러나 태현은 정말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안 되는구나. 저야 몰랐죠.”
“그런데 왜 이세연 선수를 경계하는 건가요? 실력 때문에?”
“아뇨, 실력보다는…….”
실력보다는 배배 꼬인 사악한 성격 때문에 경계한다고 말하려던 태현은 멈칫했다.
이세연이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판온 1 김태현인 거 알려지고 싶으면 그렇게 한번 해봐!’
“……실력밖에 생각할 수 없죠!”
“역시!”
“이세연 선수라면 그럴 법하죠. 판온 1때부터 1위를 유지한 선수니까요.”
해설가들은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이세연이란 이름은 확실했던 것이다.
* * *
그 뒤로 또 몇 개의 질문이 지나갔다.
대본에 있던 질문이었기에 김철수나 도동수도 쉽고 모범적으로 대답했다.
물론 재미는 없었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교과서적인 말보다 즉석에서 나온 것 같은 생생한 말을 좋아하는 법이었다.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관중석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김태현하고 케인에게 말을 걸어봐!
-아까처럼 또 재미있는 걸 좀 보여줘!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자 해설가들도 망설여졌다.
인터뷰인 이상 5명에게 모두 다 질문을 돌려서 대답을 끌어내는 게 당연했다.
그렇지만 그건 재미와는 별개!
솔직히 그들도 케인이나 태현에게 몇 개 질문을 집중적으로 던져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오늘 그들은 빵빵 터졌던 것이다.
‘슬슬 다음으로 넘어가죠?’
‘그럴까?’
“자, 그러면 지금부터 팬 여러분들이 참여하는 시간입니다. 추첨에 뽑히신 분들은 원하는 질문을 하시면 됩니다!”
“……!”
다들 살짝 놀란 얼굴이었다.
이건 듣지 못했던 것이다.
찾아온 팬들을 위한 이벤트!
이건 미리 준비할 수 없는 곤란한 질문이 나올 수도 있었다.
‘아. 불안해…….’
이세연은 초조해지는 기분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누가 사고를 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게 대비하는 이 기분. 마치…….
‘무슨 조별과제도 아니고!’
생각하다 보니 억울해지는 이세연이었다.
그녀가 무슨 안 좋은 걸 시키는 것도 아니고, 남들은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는 대회에 같이 나가자고 말한 거였는데, 태현은 그걸 싫다고 저렇게 깽판을 치고 있었으니…….
까놓고 말해서 우승하면 태현에게도 좋은 일 아닌가!
“17번, 17번을 뽑은 분은 손을 들어주세요!”
번쩍!
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수줍어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오, 누구에게 묻고 싶나요?”
“김, 김태현 선수요!”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물으려고?
“어떤 질문을 하실 건가요? 김태현 선수는 어떤 질문이든 대답할 겁니다!”
“그, 그…… 그…….”
여학생의 얼굴이 수줍음으로 붉어졌다.
그걸 본 이세연이나 이다비는 대충 눈치를 챘다. 어떤 종류의 질문을 할 건지!
‘하긴, 김태현은 팬이 없으면 이상하지. 게임에서 저 정도인데 실제 얼굴도 잘생겼으니…… 그보다 저 메이크업은 진짜 누가 해준 거야?’
‘앗, 설마?’
그러나 케인이나 태현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왜 얼굴이 붉어졌지?’
‘좌석이 더운 거 아닐까?’
“김, 김태현 선수가 어떤 타입의 사람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요!”
-휘익!
-우우~
휘파람 소리와 태현을 놀리는 야유 소리가 주변에서 나왔다.
수줍은 여학생 팬의 사심 가득한 질문!
당연히 저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스튜디오 안의 모두가 태현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오늘 오프닝 방송을 주도하듯이 끌고 간 태현이었다. 과연 어떤 재치 있는 대답을 해줄까?
“케인 같은 타입?”
“…….”
주변의 분위기가 얼음을 끼얹은 것처럼 싸늘해졌다.
“네, 네?”
“케인 같은 타입이 좋죠. 써먹기 좋잖아요.”
태현은 써먹기 좋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지만!
“와하하하! 김태현 선수! 상상을 뛰어넘는 대답이 나왔어요!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었는데!”
그걸 보고 있던 직원들의 평가는 더욱 올라갔다.
“이야, 재치있게 대답 잘하네요.”
“괜히 어설프게 말하는 것보단 저렇게 넘기는 게 좋죠. 진짜 잘하는데요?”
태현이 흘려 넘기기 위해서 저런 대답을 했다고 오해하는 직원들!
“다음은…… 109번! 109번을 뽑으신 분 손 들어주세요!”
번쩍!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 손을 들었다.
이다비였다.
“…….”
“…….”
잠깐 동안의 침묵!
“묻고 싶으신 걸 물어봐 주세요! 설마 묻고 싶은 게 없지는 않겠죠? 하하하!”
이다비의 침묵을 당황해서라고 오해했는지 해설가들이 웃었다.
-왜 네가 그런 걸 뽑고 그래?
-어, 어쩌죠?
-그냥 아무거나 물어.
-그냥 돈 받고 질문권을 팔면 안 될까요?
-미쳤니?
이다비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딱히 질문을 생각해 놓은 게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두근거리며 뭘 질문할까 기대했다지만, 이다비는 그냥 물어보면 됐으니까!
결국 떠오르는 게 없어서 이다비는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어, 어, 어…… 판온에서 가장 좋아하는 길드는요?!”
“…….”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이다비의 얼굴을 알아본 이세연도 황당하다는 듯이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어떻게 된 건지 모르는 해설가들은 흥미진진해했다.
“좋아하는 길드라니. 이거 예상치 못한 질문인데요?”
“그만큼 판온에는 길드들이 많죠. 사실 오늘 출전한 팀의 선수들은 거의 다 소속된 길드들이 있어요. 길드 소속이 아닌 플레이어가 희귀한 거죠. 김태현 선수는 드물게 솔로 플레이어죠?”
“그렇죠. 그러니 좋아하는 길드를 물어볼 수도 있겠어요.”
“지금 다른 선수들은 자기네 길드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 나오면 스카우트도 할 수 있겠어요!”
태현은 잠시 생각했다.
이다비가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다가 질문을 받아서 당황한 건 뻔히 보였다.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까?
‘쑤닝 길드라고 해버릴까?’
쑤닝도 이 방송을 볼 테니, 태현이 ‘쑤닝 길드가 가장 좋아요!’라고 하는 걸 보면 뒷목 좀 잡을 것이다.
‘아니다. 굳이 그래줄 필요 없지.’
“파워 워리어 길드를 가장 좋아합니다.”
“파워…….”
“워리어……?”
“파워 워리어?”
웅성웅성!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파워 워리어 길드의 이름을 듣고 의아해하고 있었다.
“파워 워리어요? 그 길드 맞죠? 광고로 유명한…….”
해설가 형제들도 판온은 플레이하고 있었다.
전성기 때처럼 열심히 하지는 않지만 파워 워리어가 어떤 길드인지는 알고 있었다.
유명한 걸로 유명한 길드!
“그러고 보니 김태현 선수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하고 같이 다닌다는 말이 있었죠. 김태현 선수, 파워 워리어를 왜 좋아하나요?”
태현은 딱히 고를 길드가 없어서 파워 워리어 길드를 골라서 말했다.
그렇지만 ‘딱히 고를 길드가 없어서 골랐어요~’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니까!
태현은 머리를 짜냈다.
파워 워리어의 장점은 뭐가 있을까?
“파워 워리어가 정말 좋은 길드니까 좋아하죠.”
“……!”
“???”
주변에 있던 다른 팀 선수들도 놀랐고, 관중석에 있던 사람들도 놀랐고, 이다비도 놀랐다.
길마도 처음 듣는 파워 워리어 좋은 길드 설!
모두가 놀라는 걸 봤지만 태현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말한 이상 어떻게든 생각해내보자!
‘에라, 나도 모르겠다.’
“우선 파워 워리어는 자유롭습니다. 다른 길드처럼 들어올 때 자격 테스트하거나 그런 거 없어요. 오면 받아줍니다.”
“오, 그건 정말 대단한데요? 보통 길드들은 인원 좀 까다롭게 해서 받을 텐데요?”
파워 워리어는 들어오는 데 아무런 조건이 필요 없었다.
들어오고 싶다면 바로 가입!
이유는 간단했다.
가입 조건이 있다면 아무도 파워 워리어 같은 길드에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태현은 이런 걸 멋지게 포장했다.
“게다가 길드원들에게 뭘 받거나 하는 것도 없어요.”
대형 길드에서는 길드원들에게 매달 일정량의 골드를 받기도 했다.
‘길드의 사냥터를 이용하거나 특혜를 받는 당연한 대가’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파워 워리어 길드는 그런 게 없었다.
줄 게 없었으니까!
“거기에 숨겨진 실력자들도 있고…….”
숨겨진 실력자들.
정확히 말하자면 레벨이 높은 게 아니라, 이상한 방식으로 사람을 괴롭힐 줄 아는 실력자들이었다.
저번에 쑤닝 길드 상대로 사기를 쳤던 것처럼!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파워 워리어 길드에는 숨겨진 고렙 랭커들이 있다’로 들렸다.
“정말인가요, 그게?!”
“물론이죠.”
-정말인가?
-허세 아냐?
-아니, 김태현이 저런 걸로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지 않아? 김태현이잖아.
“이야, 파워 워리어가 그렇게 좋은 길드인 줄은 몰랐네요. 소문은 믿을 게 안 되는데요?”
해설가가 말하는 걸 들으며 태현은 이다비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정도면 충분히 포장해서 말해준 셈이겠지?
‘자, 이다비! 고마워해라!’
태현은 이다비가 웃으면서 몰래 엄지손가락을 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다비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 * *
그다음 질문은 이세연, 다음 다음 질문도 이세연, 다음 다음 다음 질문은 케인이었다.
태현은 도동수에게 몰래 속삭였다.
“괜찮아. 네가 인기 없는 건 네 잘못이 아니잖아.”
“닥쳐……!”
둘이 떠드는 사이 다음 번호를 뽑은 팬이 손을 들었다.
“김태현 선수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
“이런저런 말이 많아서 궁금했는데, 판온 1의 김태현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
태현은 눈을 빛냈다.
이런 질문이 오다니.
좋은 기회였다.
이번 기회에 판온 1의 원한을 돌려버리는 거다!
“판온 1의 김태현 팬이었죠. 이름도 같잖아요? 그래서 여러모로 벤치마킹을 했습니다. 전투 방식이나 캐릭터 스타일 같은 거요.”
“아, 그러니까 판온 1의 김태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네요?”
“그렇죠!”
태현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팬의 모습에 신이 나서 대답했다.
“과연 그럴까?”
“?”
거기에 초를 친 건 도동수였다.
“내가 보기엔 김태현은 판온 1 김태현하고 엄청 비슷한데. 그냥 팬이 따라 한 거라고 보기에는 너무 비슷하지 않나…….”
중얼거리듯이 말했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태현보다 이세연이 당황했다.
도동수가 뭘 하려는지 깨달은 것이다.
그나마 유일한 태현의 약점!
‘어떻게 하지?’
그러나 태현은 도동수에게 밀릴 정도로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하. 동수의 말도 이해는 가요. 얘는 판온 1의 김태현한테 진 거 가지고 아직도 꽁해 있거든요.”
“뭔 개소…… 윽!”
태현은 도동수에게 다가가서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남들이 보면 친한 사이여서 저러는 것 같았지만 도동수는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치사하게 힘으로 말을 못 하게 하다니!
“판온 1의 김태현한테 졌는데 김태현이 사라지니 아무나 붙잡고 너 김태현이지! 너 김태현이지! 이러고 다니더라고요.”
태현의 말에 관중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도동수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어깨의 통증이 장난이 아니었다.
식은땀이 나올 정도!
“어휴, 진짜 곤란한 게…… 도동수뿐만 아니라 판온 1 때 랭커들이 이름 같고 스타일 비슷하다고 닥치는 대로 찾아와서 시비를 걸어대니…… 괜히 이렇게 지었나 후회가 될 정도예요.”
이세연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 공격을 저렇게 받다니.
도동수뿐만 아니라 제카스 같은 다른 플레이어들의 공격도 무효화시켜버리는 강력한 반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