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396화 (396/1,826)

§ 나는 될놈이다 396화

“아, 아닐 거야. 그냥 우연의 일치일 거라고. 그 몬스터, 별로 강하게 생기지도 않았거든? 몬스터들 보면 흔히들 그러잖아. 죽을 때마다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라고.”

케인은 필사적으로 속삭였다.

별생각 없이 쓰러뜨린 던전의 몬스터.

그 몬스터 때문에 대륙 전체에 영향이 왔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목소리 낮춰.”

“아, 아니겠지?”

“뭐, 아닐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고. 중요한 건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거지. 그냥 입 다물고 있자.”

이미 적이 많은 태현이었다.

거기에 추가로 적을 늘릴 필요는 없었다.

케인은 태현의 오른팔로 취급받고 있었으니(케인이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다른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았다), 케인이 저지른 건 태현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잠깐…… 그러고 보니 이거 다른 놈한테 떠넘길 수는 없나?”

“…….”

한술 더 뜨는 태현을 보고 케인은 생각했다.

그는 평생 노력해도 태현의 저 사악함은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고!

* * *

“나 왔…… 누구세요?!”

“누군지 모르면 나 그냥 가도 되겠지. 간다.”

“농담이야! 농담이었어! 그보다 그렇게 하니까 정말 괜찮은데?”

이세연은 태현의 눈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날카로움이 사라지자 인상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오늘 보는 사람마다 왜 다 이 소리야?”

태현은 아직 스스로의 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냥 스타일리스트부터 시작해서 다들 억지로 칭찬하나 보다 생각하고 있을 뿐!

“그보다 삼십 분 후면 오프닝 시작할 텐데 왜 네 명이야?”

“아. 도동수는 화장실 갔어.”

“화장실?”

“응. 아직까지 안 오는 걸 보니 아마 ㅊ…….”

쾅!

“…….”

문이 열리고 들어온 도동수는 살벌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물론 그렇게 쳐다본다고 해서 태현이 겁을 먹을 사람은 아니었다.

태현이 빤히 마주 쳐다보자 오히려 겁을 먹은 건 도동수였다.

슬쩍 시선을 돌리는 도동수!

태현은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화장실은 잘 갔다 왔어?”

물론 도동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

이세연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늦게 왔지만 지금 무슨 상황인지는 짐작이 갔다.

짝짝!

이세연은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자자. 이제 곧 오프닝 시작이니까 모두 집중해요.”

이세연의 말이 끝나자 모두 긴장한 얼굴이었다. 물론 태현은 빼고.

이세연을 제외하고서 실제로 이렇게 방송에 나선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도동수나 김철수, 케인은 개인 인방은 해봤어도 이런 경험은 없는 것이다.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오프닝이 시작되고 복잡한 말은 캐스터와 해설자분들이 다 할 테니까요.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돼요.”

말과 함께 이세연은 태현에게 시선을 보냈다.

-제발 사고 치지 마!

태현은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뭘?

“각 팀 소개하고 예정대로 일정 진행될 거고…… 예정은 다 봤을 거고, 맞다. 인터뷰 질문 대답은 미리 생각해 놨죠?”

“네.”

“……물론이지.”

“응?”

김철수, 도동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케인은 당황했다.

뭔 인터뷰 질문?

케인은 당황해서 태현을 쳐다보았다.

-넌 저거 알고 있었냐?

-아니. 나도 몰랐는데.

둘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이세연이 태현을 보고 물었다.

“잠깐, 잠깐. 어떻게 된 거야? 왜 케인 씨는 모르는 건데?”

“받은 적이 없으니까 모르는 거겠지.”

“내가 보내줬잖아! 읽어보라고!”

“아, 그게 그거였구나…….”

이세연이 대회 오프닝 대비용으로 이것저것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물론 태현은 열어보지 않았다.

이세연이 안다면 분노로 뒷목을 잡았을 것이다.

“케인 씨한테 따로 보낼까 물었는데 네가 괜찮다며!”

“내가 안 읽으면 케인도 안 읽어도 괜찮으니까. 그치?”

태현은 케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물론 케인이 그걸 바로 받아들일 리 없었다.

“그치는 뭔 그치야 이 자식아……!”

“어차피 별거 없는 메일이었을 거야. 안에 뭐 들어 있었는데?”

“오늘 인터뷰에서 나올 질문 같은 거.”

“별거 아니었네. 그냥 듣고 편하게 대답하면 되잖아.”

“…….”

이세연은 살짝 불안해졌다.

물론 태현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방송국에서도 여기 온 플레이어들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플레이어들은 그런 곤란한 질문에 대처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분명 쉽고 무난한 질문만 나올 테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불안함!

이세연이 불안해하는 동안 케인은 어떻게든 예습을 하려고 들었다.

“지, 지금이라도 읽을래……! 저도 그거 좀 주세요!”

“준비 다 되셨나요?”

그러나 그 시도는 깔끔하게 막혔다.

바로 들어온 방송국 직원 때문이었다.

* * *

어두웠던 스튜디오에 조명이 들어오자,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회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넓은 무대가 한 자리도 비어 있지 않고 꽉 차 있었다.

오늘 첫 경기가 열리는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만큼이나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현존하는 게임 중에서 판온의 압도적인 위치를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김수아입니다. 전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판타지 온라인 2의 첫 투기장 대회. 오늘 모든 좌석이 꽉 찰 정도로 열기가 대단하네요.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자, 그러면 MBS 프리카 투기장 대회,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터져 나오는 함성과 박수 소리.

그리고 통로에서 각 팀의 플레이어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팀 블루! 팀 블루 파이팅!”

“원철아! 너만 믿는다!”

“초대받고서 쉽게 들어온 놈들한테 지지 마라! 팀 에이트!”

“이세연! 이세연!”

“생각보다 잘생겼다, 김태현!”

“케인은 어디 있어? 안 보이는데?”

“갓티븐! 다 밟아버려라!”

각자 자기가 응원하는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보이자 반응은 더 격렬해졌다.

그걸 부추기듯이 김수아는 이어서 말했다.

“치열했던 예선을 뚫고 올라온 팀들이 지금 앞에 섰습니다. 모두들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위에서 김수아가 진행하는 동안 앞에 선 플레이어들은 모두 뻣뻣하게 굳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관중석에서 환호하고 있는 사람들이 멀게 느껴졌던 것이다.

물론 태현은 아니었다. 태현은 하품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을 설쳤나? 왜 이렇게 졸리지?’

탁-

“?”

케인이 태현의 팔을 붙잡았다. 태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뭐 하냐?”

“다, 다리에 힘이…….”

“…….”

태현은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카메라가 돌고 있으니 굳이 뭐라고 하지 말아야지!

덕분에 사이좋게 케인을 부축하는 태현의 모습이 관중석의 사람들에게 생생히 잡혔다.

“태현 님! 보기 좋아요!”

“……?!”

어디서 익숙한 목소리가 관중석에서 들리자 태현은 화들짝 놀랐다.

이다비가 동생들을 데리고 관중석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너 뭐하냐?!

-팀이잖아요! 응원해야죠!

-그냥 그 시간에 판온을 해!

-와, 기껏 와줬는데! 너무해! 그보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메이크업한 거예요?

짧은 사이에 오가는 문자들!

그러는 사이 김수아는 판온과 투기장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마치고 있었다.

“이번 대회가 화제가 된 이유 중 하나는 그 상금이죠?”

“맞습니다! 판온도 판온이지만 상금만큼 참가하는 게이머들을 불타게 하는 것도 드물거든요.”

김수아의 진행을 옆에 앉아 있던 두 남자가 맛깔나게 받았다.

배중환, 배중열.

MBS의 간판 게임 해설가로, 둘 다 예전에는 프로게이머였었다.

형제 프로게이머로 유명했던 이들인 만큼 호흡이 착착 맞았다.

“우승 상금이 무려 백오십만 달러! 아직 제대로 된 프로 리그가 열리지 않은 단일 대회가 이 정도로 시작하는 건 정말 드문 경우거든요. 예전에 제가 프로게이머로 뛸 때는 우승 상금이 십만 달러였습니다. 그것도 많다고 떠들썩했었는데 말이죠.”

“15배, 단순히 따지면 15배입니다. 그만큼 판온 대회가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거겠죠?”

“네. 사실 저희도 처음에는 이렇게 반응이 좋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대회를 시작하고 나니 정말 뜨거울 정도더군요.”

우승 상금이 커진 이유는 간단했다.

판온 대회의 가능성을 본 이들이 우르르 몰려든 것이다.

-150만 달러?! 16억 2750만 원?! 1억 6,296만 엔?! 950만 위안…….

-그만 보내. 정신 사나워.

이다비의 눈빛이 번쩍일 수준으로 빛나고 있었다.

-꼭 우승해야 해요! 꼭!!

-네 돈 아니잖아……

-제 돈은 아니지만 태현 님이 그런 돈을 잃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요!

-잃는다니. 뭐 맡겨놨냐?

둘은 문자로 떠들고 있었지만 무대의 다른 플레이어들은 각 잡힌 자세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대전 일정, 방식과 완전히 무작위로 결정되는 맵의 소개.

어느새 방송은 다음 차례로 넘어가고 있었다.

“자, 그러면…… 각 팀의 대표들은 나와서 공을 뽑아주세요! 대진표가 결정됩니다!”

꿀꺽-

케인이 삼키는 침 소리가 옆에까지 들렸다.

“아, 긴장 좀 그만해. 슬슬 쪽팔리려고 하네.”

“긴, 긴, 긴장 안 했거든? 제발 쉬운 상대, 쉬운 상대…….”

“쉬운 상대가 누군데?”

“그야 팀…… 잠깐만. 이거 말하면 너 또 가서 전달할 거지?!”

“눈치가 좀 늘었군.”

둘의 대화를 듣던 김철수가 작게 말했다.

“여, 여러분. 이거 지금 다 녹화되고 있는 거 아시죠?”

“에이, 이런 잡담은 편집하겠지.”

태현은 손을 흔들며 자신 있게 장담했다.

“이런 잡담을 다 하나하나 방송할 정도로 방송 시간이 널널하지는 않을 거 아냐. 그치?”

태현의 예측은 빗나갔다.

이런 팀원들의 자연스러운 대화야말로 MBS 측이 오프닝에서 뽑아내고 싶었던 장면!

-아니, 말 좀 해라! 말 좀! 누가 잡아먹냐!

-차원철은 내가 개인 방송 봐서 아는데 저렇게 조용히 있는 애가 아니거든? 왜 가만히 있는 거야? 개인 방송 때처럼 즐겁게 떠들면 되는데!

-어쩔 수 없죠. 전문 방송인이 아니라 플레이어잖아요.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그렇지 좀 심하잖아. 이따가 인터뷰할 때도 저러진 않겠지?

지금 다른 팀들은 다 뻣뻣하게 굳어서 대화 하나 나누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직원들이 안타까워할 정도!

덕분에 더 대비가 되었다.

‘좋아. 이 둘 위주로 분량 좀 만들 수 있겠군.’

‘김태현하고 케인은 이미 화제가 된 적 있으니 캐릭터도 잡혀 있고…… 좋아. 다행이야.’

직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는 채 태현은 케인과 계속 떠들어댔다.

좌석의 관중들도 ‘어? 저기만 태연하게 이야기하고 있네?’ 하며 시선을 집중할 정도!

“자, 이세연 플레이어가 공을 뽑습니다, 결과는…… 아, 첫 번째 경기! 영광스러운 첫 번째 경기를 장식할 팀은 한국 팀입니다!”

“정말 굉장한 팀이죠! 탑 플레이어들만 모은 팀입니다. 이세연, 김태현은 말하면 입만 아프죠. 판온 플레이어 중에서 이 두 사람 모르는 플레이어는 간첩이에요! 다른 사람들도 만만치 않고요!”

“그렇다고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투기장은 언제나 변수가 가득하거든요! 게다가 프리카 투기장은 모두 다 평등한 레벨에서 붙습니다.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어요!”

“과연 어떤 팀이 이 한국 대표 팀과 붙게 될지 정말 궁금합니다. 분명 어렵지만 이길 수 있다면 그 팀은 확실히 우승 후보죠! 독이 든 성배 같은 거예요!”

‘아, 시끄러.’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 팀 블루! 첫 번째 경기를 뽑았습니다!! 한국 대표 팀과 붙게 되는 건 팀 블루입니다!”

홱-

팀 블루의 플레이어들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물론 케인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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