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95화
케인은 뭐라고 하려다가 참았다.
지금 팀 블루의 사람들이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둘을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여기서 말다툼을 해봤자 괜한 오해만 살 것 같았다.
“저,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물어보시죠.”
“예전에 카테란드 섬에서 골드 드래곤 불렀을 때 말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모두 판온 폐인이나 마찬가지.
평소에 궁금했던 걸 물어보자 태현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해 줬다.
물론 모든 질문에 다 대답해 준 건 아니었다.
곤란한 질문에는 은근슬쩍 말을 흘렸다.
-골드 드래곤 부른 건 무슨 퀘스트?
-직업이 뭐예요?
-스킬을 특화시킬 때 뭐가 중요하다고 생각?
“자, 자, 여러분. 어차피 나중에 각 팀마다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할 텐데 여기서 이러실 필요 없잖아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자 김철수가 끼어들어서 중재에 나섰다.
그냥 간단하게 소개만 해주려고 온 거지 여기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하러 온 게 아니었던 것이다.
“저도 물어볼 거 있습니다.”
“?”
어딘가 까칠하게 생긴 남자가 손을 들었다.
이제까지 다들 화기애애하게 질문하는 동안 혼자 뚱하니 가만히 있던 남자!
“김태현 씨나 이세연 씨는 한국 대표 팀에 들어갈 만합니다. 김철수 씨도 그렇죠. 도동수 씨도 투표에서 1위를 했고. 그렇지만 저기 케인 씨는 한국 대표 팀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까? 좀 아니지 않나요?”
‘이 자식이…….’
말이 질문이지 케인을 공격하는 말이었다.
실제로 몇 번 나왔던 말이었고!
케인이 나서려고 하자 태현이 살짝 팔을 잡아당겼다.
넌 가만히 있어라!
“뭘 아니야. 도동수 같은 놈보다는 훨씬 들어갈 만하지.”
“케인 씨가 도동수 씨보다 더 강하다고요?”
“더 강…… 더 잘 싸운…… 아니, 그냥 더 써먹기 좋다.”
어떻게든 좋게 말해주려던 태현은 포기했다.
“야!!”
“그리고 애초에 한국 대표 팀이란 게 방송국 쪽에서 대충 지은 이름이잖아. 이게 뭐 공식도 아니고. MBS 쪽에서 ‘제발 좀 한 번만 나와주십시오’ 해서 나가주는 건데 내가 팀 인원도 못 고르나?”
오만한 태현의 말.
그러나 태현이 말하자 전혀 오만하게 들리지 않았다.
태현은 존재만으로 말 자체에 힘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케인을 고른 건 나하고 상성이 잘 맞아서야. 얘한테 한국 대표에 자격이 있나 없나는 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이름을 고른 MBS한테 가서 따지라고. 너 이름 뭐야?”
“이, 이주형입니다.”
“너 조심해라. 만약 우리하고 만나면 케인이 너부터 박살 내주겠대.”
‘내가 언제?!?!’
태현 뒤에서 가만히 있던 케인이 화들짝 놀라서 태현을 쿡쿡 찔렀다.
그리고 필사적인 기세로 최대한 작게 말했다.
“내가 언제 그랬어, 미친놈아!”
“뭐? 이주형 같은 놈은 한 방에 끝내주겠다고? 야, 그건 좀 심하지 않냐?”
“야!!”
“역시 두 방? 원래는 한 방에 끝낼 수 있는데 예의 없으니까 두 방에 끝내겠다고? 자식. 알겠어. 그만 말해도 돼.”
케인은 환장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나서서 ‘나 그런 말 안 했어!’해봤자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망신일 뿐이었다.
그걸 이용해서 마음껏 선전포고를 하는 태현!
덕분에 팀 블루의 플레이어들은 ‘어디 한 번 해보시지’ 같은 도전적인 눈빛으로 케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희 주형이가 실례되는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아, 별로…….”
“전 여기서 주형이가 가장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군요. 따로 있었어요.”
“…….”
케인은 속으로 푹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를 쳐다보는 눈빛들.
“그렇게 쉽게 지지는 않을 겁니다.”
“……후, 최선을 다해보시지!”
에라 모르겠다!
케인은 그냥 될 대로 되라 싶은 마음으로 말을 하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 * *
-김태현과 케인이 팀 블루하고 만났다고?
-케인이 팀 블루한테 패기 넘치게 말했다더라.
-생각보다 김태현이 잘생겼다는 말이 있던데 그게 사실이야?
-아냐. 케인이 팀 블루한테 패기 넘치게 말한 게 아니라 아예 선전포고를 했대.
-너희들은 1:3으로도 이길 수 있다고 했다더라.
빠르게 도는 소문!
대기실에서 심심하게 기다리던 각 팀의 플레이어들에게 이런 소문만큼 흥미진진한 것도 없었다.
순식간에 소문은 살이 붙었다.
이제는 ‘케인이 나를 이길 수 있는 놈은 아무도 없다! 다 덤벼 봐라!’라고 말했다는 수준으로 소문이 변해 있었다.
방송국 직원들은 그 소문을 듣고 매우 아쉬워했다.
저걸 방송에 담았어야 했는데!
케인이 들으면 기겁할 소리였다.
“아오…… 아오…… 아오오…….”
“이상한 소리 좀 내지 마라.”
“너 때문이잖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케인은 푹푹 한숨을 내쉬었다.
“저쪽에서 널 무시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었어야지. 기운 내라.”
“고맙…… 잠깐,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고마운 게 아니야! 다른 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케인.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무르게 해결을 했냐? 누군가가 너를 이유 없이 싫어하면 이유를 만들어줘야지.”
“그딴 말이 어디 있어!”
“우리 아버지가 한 말인데.”
“…….”
어렸을 때부터 비범했던 가정교육!
케인은 따지는 걸 포기하고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태현에게 따져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기도 했고.
이제 남은 건 최선을 다해서 싸우는 것뿐!
‘이랬는데 지면 어떡하지?’
벌써부터 드는 걱정!
케인의 분위기가 마치 죽은 사람 같자, 김철수가 수습에 나섰다.
“자, 자. 괜찮아요. 잘될 겁니다.”
“이미 다 퍼졌는데 무슨…….”
“앞으로는 말조심하시면 되죠!”
“김태현 저놈이 그럴 거 같아요?!”
이 말에는 김철수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뻔뻔하게 물었다.
“그래서 다음 팀은 누구?”
“아, 팀 에이트하고 만나려고 했는데…….”
“그러면 가죠!”
“그, 그게…… 그냥 우리 대기실에서 기다릴까요?”
김철수는 머뭇거렸다. 팀 에이트와 태현이 만나면 뭔가 불길한 일이 생길 것 같았던 것이다.
“왜죠?”
“어…… 그…… 갑, 갑자기 제가 배가 아파서…….”
“…….”
케인은 안쓰러운 듯이 김철수를 쳐다보았다.
얼마나 거짓말을 못 하면 저런 거짓말을…….
“그래요? 그러면 돌아가죠, 뭐.”
‘통했어?!’
케인은 더 놀랐다.
저런 한심한 거짓말이 통하다니!
타타탁-
“?”
복도 맞은편에서 외국인으로 구성된 팀이 걸어오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외국인 팀이 분명했다.
그들도 태현 일행을 봤는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오, 반가워요! 이번에 출전하는 팀 맞죠?”
빠르게 흘러나오는 영어!
케인과 김철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상대는 비정했다. 바로 케인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해온 것이다.
멈추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시도!
케인은 부들부들 떨며 대답했다.
“어…… 어…… 쏘, 쏘리, 아이 캔 스피크 잉글리시…….”
“그건 가능하다는 건데?”
케인은 울상이 되어서 옆에서 지적하는 태현을 노려보았다.
“쯔쯔. 평소에 영어 공부 안 하고 뭐 했냐. 글로벌 시대잖아.”
“그러면 네가 해봐라!”
“못 할 거 없지.”
태현은 바로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 치도 막힘없이 영어로 떠드는 태현을 보며 케인은 깨달았다.
‘아 맞다. 이 자식은 한국대 수석 입학이었지……!’
같이 놀다 보면 잊기 쉬웠지만 태현은 원래 엘리트!
“그런데 초대 팀이세요, 예선 통과 팀이세요?”
“초대 팀이에요.”
“오, 그러면 어느 나라? 미국?”
“아뇨. 캐나다요.”
“……캐나다? 잠깐, 캐나다면…….”
“네! 캐나다! 혹시 그쪽은 김태현 맞나요?”
“맞긴 한데…….”
태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에 있던 여자가 크게 외쳤다.
“맞구나! 혹시나 했는데. 판온이랑 생김새가 좀 달라서 헷갈렸어!”
에반젤린이었다.
에반젤린은 앞으로 나서서 태현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넌 실제가 더 낫네.”
“만나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그거냐?”
태현처럼 에반젤린도 캐릭터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주근깨 정도?
캐나다 대표 팀원들은 태현에게 계속 말을 걸어댔다.
팀 블루와 했던 대화와 비슷한 대화!
직업이 뭐냐, 어떻게 키운 거냐, 저번에 퀘스트에서 이 부분은 어떻게 된 거냐…….
“야, 나도 말 좀…….”
“넌 나중에 해도 되잖아.”
“맞아. 둘이 친하다며.”
친하다고?
태현은 이게 뭔 소리냐는 눈빛으로 에반젤린을 쳐다보았다.
그에 대답하듯이 에반젤린은 필사적인 눈빛을 보냈다.
-차마 친구 없다고 말할 수가 없었어!
“…….”
태현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본 에반젤린은 속으로 생각했다.
‘굴, 굴욕이야……!’
캐나다 대표 팀 플레이어들과 이야기할 때 친구 화제가 나온 게 탓이었다.
“불운 페널티는 해결했어?”
“아니…… 그래도 싸우는 데에는 지장 없으니까.”
“참 힘들겠구나. 잘 해결되길 바란다.”
태현은 국어책 읽듯이 에반젤린에게 말했다. 물론 에반젤린도 당연히 눈치를 챘다.
“너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찾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찾고는 있는데 좀 느려서. 그냥 알아서 찾아보는 게 어때?”
“그걸 말이라고 해!?”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태현은 재능이 있었다.
사람을 빡치게 만드는 재능!
“안 그래도 지금 갑자기 눈 내리기 시작해서 일이 꼬이게 생겼는데…… 으으. 불운 페널티 정말 너무 불편해. 싸울 때 빼고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고.”
“싸울 때 도움이 되니 다행이네.”
“……꼭 너하고 붙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에반젤린은 으름장을 놓고 팀원들과 함께 사라졌다.
케인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뭔 이야기 했냐?”
“자기 친구 없대.”
“!?”
“그러고 보니 너 권능 언제 갖고 나오냐?”
“나한테 맡겨놨냐? 응?”
태현이 무슨 ‘빌린 물건 언제 갖고 와?’ 하듯이 묻자 케인은 울컥했다.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고생 중인데!
“빨리 갖고 와야 시간에 맞추지.”
“이게 말이라고…… 아오…….”
“그래서 지금 어느 정도인데?”
“한 절반 정도 깬 거 같아. 거기 던전 진짜 빡세다고. 게다가 갈락파드란 놈은 완전 또라이야!”
“그, 그래?”
태현은 멈칫했다.
케인한테 직접 들으니 뭔가 기분이 묘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이상한 사람인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불경하다고 때리고 괴롭히는데…… 후, 말을 말자. 게다가 저번에는 진짜 이상한 함정 건드려 가지고…….”
“뭔 함정인데?”
“던전 내에 있는 이상한 방에 들어갔거든. 워낙 크고 나오는 몬스터들도 강해서 처음에는 거기가 끝인 줄 알았다. 근데 아니더라고. 기껏 쓰러뜨렸더니 ‘대륙에 영원한 추위를 불러오겠다!’ 하고 사라지질 않나…… 진짜.”
“……?”
태현은 멈칫했다.
방금 뭐라고?
“케인. 다시 말해봐.”
“뭘?”
“방에 나온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렸더니 ‘대륙에 영원한 추위를 불러오겠다!’ 하고 사라졌다고?”
“그랬는데.”
“그다음에는? 뭐 별다른 현상 없었어?”
“없었어. 그냥 협박인가 보지.”
“너 지금 판온에 눈 오는 건 알고 있냐?”
“눈? 야. 네가 내가 있는 곳에 와봐야 제대로 눈이 오는 걸 볼 수 있을 텐데. 진짜 펑펑 온다.”
“아니, 중앙 대륙에도 눈이 온다고.”
“……어? 진짜?”
보아하니 케인은 자기가 있는 던전 공략에만 정신이 팔려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던전 공략에 방송까지 있었으니 정신이 팔릴 법도 했다.
케인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설, 설마…… 내가 건드린 게…….”
둘이 발걸음을 멈추자 앞에서 걸어가던 김철수가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두 분 무슨 이야기 하세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둘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