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94화
방송국에서 케인을 친근하게 덕수라고 부를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덕수, 아니, 케인은 발끈해서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태현을 닮은 잘생긴 놈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사이 성형을?!”
“뭔 소리야?”
“너 눈이 이상해! 원래라면 좀 더 날카롭게…… 양아치스럽고 포악한 눈이었잖아!”
“흠. 네가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건 잘 알겠다.”
“!”
케인은 아차 싶었다. 태현의 달라진 모습 때문에 속으로 했던 생각이 바로 튀어나온 것이다.
그만큼 태현의 달라진 모습이 놀라웠던 것!
원래 무섭게 생긴 놈이 눈매 하나 건드렸다고 저렇게 변하다니.
‘메이크업의 힘이 정말 대단하구나!’
케인은 감탄했다.
물론 이번에는 속으로만!
“다른 사람들은? 너 계속 혼자서 이러고 있었냐?”
“아니. 한 명 있었는데…….”
“누구?”
“도동수. 근데 너 오는 거 보고 저리 가더라.”
“왜?”
“몰라. 화장실이 급했거나 네가 싫었거나.”
“날 싫어할 리는 없을 테니 화장실이 급했나 보군. 긴장했나?”
* * *
태현이 도착하기 전에, 케인은 외롭고 쓸쓸하게 방송국 구석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MBS 판온 투기장 대회의 오프닝을 준비하던 직원들이 케인을 알아보고 친절하게 마실 것을 가져다주었지만, 그게 더 마음이 아팠다.
“혼자 계세요?”
“다른 팀원분들은 어디 계세요?”
별 악의는 없었지만 날카롭게 가슴을 찌르는 질문들!
기다리는 동안 다른 참가 팀원들이 사이좋게 손을 잡고 우르르 들어오는 걸 보자 더 가슴이 아팠다.
왠지 이렇게 뿔뿔이 나뉘어 오는 팀은 그들밖에 없는 것 같은 느낌!
“흥. 혼자서 그러고 있다니. 그 잘난 놈들이 널 따돌리나 보군.”
그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케인은 처음에 그한테 말을 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모르는 얼굴이었으니까!
“내 말 무시하냐?!”
“아, 뭐야. 나한테 말 건 거였어?”
“…….”
진심으로 몰랐다는 케인의 태도!
그 모습이 더 얄미웠다. 도동수는 속으로 케인을 욕했다.
태현하고 같이 다니더니 태현한테 안 좋은 것만 배우는 것 같았다.
“그러면 너한테 말을 걸었지 누구한테 걸었겠냐!”
“그냥 친구 없어서 혼자 말하는 줄 알았지. 미안.”
“이 개새…….”
도동수는 욕을 하려다 참고 케인을 노려보았다.
판온에서 케인은 묵직한 압박감을 주는 단단한 탱커 계열의 전사였다.
그러나 현실에서 케인은 작고 가냘픈 체구!
만만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흥. 혼자 있는 게 누군데.”
“근데 너 누구냐?”
“……도동수! 도동수! 시X놈아! 도동수라고!”
결국 터진 도동수!
케인은 도동수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도 모르고 당황해했다.
“알, 알겠어. 진정해.”
“아오. 진짜 김태현 패거리 놈들은 하나같이…….”
“난 거기서 빼줘!”
케인은 억울해서 외쳤다.
왜 그가 김태현 패거리로 같이 엮인단 말인가!
태현이 이상한 놈이지 그는 정상이었다.
물론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태현은 어디 있냐?”
“몰라. 메이크업 하고 온대.”
“뭐? 메이크업? 하. 나 참. 사내놈이 뭔 메이크업?”
그러게~라고 대답하려다가 케인은 멈칫했다.
왠지 다른 놈에게 태현을 욕하는 게 거부감이 든 것이다.
까도 내가 까지 다른 놈이 까는 건 못 보겠다!
“할 수도 있지 자식아.”
“보아하니 너처럼 재수 없고 약골 같은 놈이 분명하겠네. 흥. 판온에서는 그렇게 센 척을 하더니…….”
도동수는 그렇게 투덜거렸다.
실제로 태현이 오면 좀 위압을 해줄 생각이었다.
판온이면 불가능했지만 여긴 현실이었으니까!
벌써 도동수의 머릿속에서 태현은 ‘메이크업이나 하고 오는 약골’로 이미지가 잡혀 있었다.
“어, 저기 온다.”
“드디어……! 어? 누구?”
“저기 가운데에서 오는 덩치.”
“어??”
도동수는 멈칫했다.
지금 걸어오는 건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것 같은 근육질의 남자밖에 없었다.
옷 위로도 드러나는 근육질의 등판!
누가 봐도 ‘이 자식 운동 좀 하겠구나’ 싶은 겉모습이었다.
“쟤, 쟤가 김태현이야?”
“그런데?”
“…….”
도동수는 조용히 일어나서 물러났다. 케인은 화장실 가나보다 싶었다.
태현이 방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본 도동수는 슬쩍 문 옆에 다가섰다.
다시 들어가기는 좀 겁이 났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도동수. 근데 너 오는 거 보고 저리 가더라.
-왜?
-몰라. 화장실이 급했거나 네가 싫었거나.
-날 싫어할 리는 없을 테니 화장실이 급했나 보군. 긴장했나?
그가 없다고 화장실 이야기를 하는 태현과 케인!
도동수는 다시 한번 속으로 태현을 욕했다.
* * *
“안 오네? 큰 건가?”
“변비일 수도 있지.”
“그러고 보니 오래 앉아서 일하는 사람한테는 ‘치’로 시작하는 병이 잘 생길 수도 있다는데.”
까드득!
밖에서 뭔가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둘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케인. 너도 운동 꼭 해라.”
“나, 나도 운동은…….”
“부모님한테 ‘너도 좀 나가!’란 소리 듣지 말고.”
‘이, 이 자식이 어떻게!?’
케인은 전율해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케인의 정곡을 찌른 말이었다.
실제로 오늘 오프닝에 출연하기 위해 방송국에 간다고 말하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뻐하신 것이다.
-아이고, 덕수야. 난 네가 게임만 하다가 인생 말아먹을 줄 알았는데! 프로 뭐시기 한다는 것도 거짓말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새삼 억울한 가족들의 태도였다.
‘내가 그렇게 믿음직스럽지 못했나?’
“모두 안녕하세요!”
“철수 씨!”
김철수가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들어오자 모두 환호했다.
이 팀의 유일한 양심!
이 팀의 유일한 정상인!
물론 태현과 케인은 속으로 ‘나를 포함해서 유일하게 정상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생각지 못한 환호에 김철수는 쑥스러워하며 자리에 앉았다.
“모두들 다른 팀하고 인사는 하셨나요?”
“아니요.”
“안 했는데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둘의 모습. 김철수는 살짝 당황했다.
“그, 그래요? 지금 밖에서 도착한 다른 팀들은 서로 인사하고 그래서…….”
실제로 김철수도 아는 플레이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온 참이었다.
판온에서도 교우 관계가 나쁘지 않은 김철수!
그에 비해 태현과 케인은…….
둘은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인사할 만한 플레이어 있냐?”
“나, 나는 친한 랭커 별로 없어서…….”
“나도 마찬가지야.”
태현은 굳이 다른 참가 팀 플레이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태현이 판온 1에서 썰었던 랭커들이 저 팀 플레이어들에 섞여 있는 것!
괜히 이야기 나누다가 말실수라도 하면 대회 끝나기도 전에 암살자들이 찾아올 것이다.
케인의 이유는 더 간단했다.
그냥 아는 사람이 없었다!
PK 길드 길마->태현의 노예 과정에서 친해질 랭커가 별로 없었다.
“그나저나 태현 씨. 정말 잘생기셨네요!”
“굳이 착하다는 걸 그렇게 알려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김철수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지만, 태현은 살짝 감동을 받았다.
사람이 얼마나 착하면 저럴까!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쨌든 두 분 다 아시는 분 없으시면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괜찮은데…….”
“싫은데…….”
“자자! 그러지 마시고요! 앞으로 판온 프로게이머의 시대가 오면 계속 만나게 될 사람들이잖아요?”
“그냥 판온에서 봐도 되지 않을까요?”
“현실은 판온 밖에 있어요!”
김철수는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케인과 태현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참가하는 다른 팀의 플레이어들에게 소개시켜 주려고 데리고 나갔다.
그걸 본 도동수는 망설였다.
지금 나설까?
사실 도동수는 랭커 중에서 친구가 없는 편이었다.
-<그림자 춤꾼> 도동수!
-암살자 계열 영웅 직업!
-고독하게 솔플을 즐기는 랭커!
이런 소문들이 도동수에게 따라다녔고, 도동수도 이런 컨셉을 즐겼다.
폼이 나니까!
물론 그런 컨셉은 친구를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커, 커험…….”
도동수는 결심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이미 셋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
* * *
“지금 가고 있는 곳은 팀 블루의 대기실입니다. 다 아실 테죠?”
“모르는데요?”
“나, 나는 알아! 그…… 해외 초대 팀이지?”
태현은 당당하게 모른다고 말하고, 케인은 조사한 게 좀 있었기에 대답했다.
“……예선을 뚫은 국내 팀이에요.”
“…….”
케인은 얼굴이 붉어져서 시선을 피했다. 태현이 케인을 빤히 쳐다봤던 것이다.
“뭐? 해외 초대 팀?”
“영, 영어 써서 초대 팀인 줄 알았어……!”
“그러면 넌 외국인이냐? 잠깐, 그러고 보니 우리 팀 이름 뭐지?”
“……그러게?”
태현과 케인은 당황해서 김철수를 쳐다보았다.
“…….”
그 김철수도 자기 팀 이름을 모르는 둘의 모습에는 놀란 것 같았다.
“그야 당연히 한국 대표 팀이죠?”
“뭐야, 그 무성의한 이름은? 누가 지었어?”
“왜냐하면 저희는 초대 팀이잖아요. 주최 측이 각 나라마다 한 팀씩 초대했고 한국이…….”
“아, 그래서 한국 대표 팀.”
“이세연 씨가 묻지 않았나요? 다른 이름으로 하고 싶냐고.”
“글쎄…… 물었던 거 같기도 하고…….”
태현은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렸다.
-판온 대회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는데. 네가…….
-다 너 알아서 해.
-……좋아. 어디 한 번 두고 보자고!
‘헉!’
태현은 대화를 떠올리고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귀찮아서 넘겼는데 이건 명백히 협박!
‘아, 아니…… 이세연이 그렇게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았겠지. 이 대회에 그렇게 신경을 썼는데.’
“그러면 그냥 ‘한국 대표 팀’이군.”
“팀 코리아, 뭐 이런 식으로 들어가겠죠? 좀 평범하긴 해도 이런 게 좋지 않나요? 다른 팀 중에서는 질투하는 팀도 있어요. 약간 대표 느낌이어서.”
“꼬우면 깃발 꽂으라고 하죠, 뭐.”
“하하, 여긴 판온이 아니니까…….”
“현실에서 깃발 꽂으란 소리였는데…….”
김철수는 못 들은 척했다.
지금 소개하러 가는 건 어디까지나 평화와 행복을 위한 소개!
싸우러 가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 팀 블루…… 뭐 팀 레드 팀 옐로우 팀 그린도 있나요?”
“아뇨. 팀 블루 하나밖에 없는데요. 거기 팀의 리더가 저와 아는 사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김철수가 노크하고 문을 열자 팀 블루의 팀원들이 손을 흔들었다.
“이 분들은 김태현 씨, 케인 씨에요.”
“아…….”
“그…….”
태현과 케인의 이름을 말하자마자 ‘아’나 ‘그’ 같은 탄성을 내뱉는 팀 블루의 플레이어들!
케인은 속으로 궁금해했다.
‘대체 어떤 소문을 들은 거야?’
팀 블루의 플레이어들은 모두 태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어떻게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판온의 스타 플레이어였으니까!
“와, 판온에서보다 현실에서 더 잘생긴 사람은 처음 봐요. 일부러 판온은 그렇게 한 겁니까?”
‘응?’
태현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고개를 돌렸다.
“성함이?”
“아, 차원철입니다.”
“그래요, 차원철 씨. 보아하니 그쪽도 인상이 좋고 선한 기운이 가득한 게 뭘 해도 잘 되고 올해 대박이 날 상이시군요.”
“…….”
“…….”
“감, 감사합니다?”
차원철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대답할 수 있었다.
너무 예상치 못한 반응!
케인은 작게 속삭였다.
“방금 뭐 한 거냐?”
“응? 그냥 마음에 없는 칭찬 하는 시간 아니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