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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389화 (389/1,826)

§ 나는 될놈이다 389화

필사꾼 갈락파드.

마법사는 아니고, 마법사들의 마탑에서 마도서들을 베껴 쓰다가 나온 NPC!

마법 스킬에 관심이 많아 만나고 싶었지만, 아직 만나보지 못한 아키서스의 신도 NPC 중 하나였다.

펠마스나 넥돈, 에드안과 달리 갈락파드는 언제나 먼 곳에 있었던 것이다.

펠마스의 말에 따르면, ‘갈락파드는 아키서스의 권능을 찾기 위해 먼 곳에 있어서 이 영지에는 못 오고 있습니다! 아이고 아쉬워라!’였다.

그런데 그런 갈락파드와 케인이 만났다니.

신기한 우연도 우연이지만, 그보다…….

‘이 자식 어디까지 날아간 거야?’

태현은 슬슬 불길해지기 시작했다.

날아가더라도 가까운 곳에 날아갔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지금 느낌은 뭔가 싸늘했다.

-어디인데? 좀 설명을 해봐.

-으, 잠깐만! 좀 안전한 곳으로 들어가고! 여기 더럽게 추워! 으으으!

-뭐? 춥다고?

태현은 더 불안해졌다.

춥다니.

특별한 던전이나 지형이 아니라면, 이 근처에 지금 추운 곳은 없었다.

북쪽으로 한참 올라가야 추운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설마…….’

-으악! 아이스 드래곤이다! 아. 아니구나. 그냥 얼음 덩어리였어. 아니다! 으아악! 몬스터였어!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간 다음 다시 연락 줄게!

“…….”

그리고 케인의 귓속말은 끊겼다.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딱히 방금과 달라진 게 없었던 것이다.

‘이 자식은 설명을 왜 이렇게 못 하는 거야?’

지금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일단 영지로 가자.”

“가서 뭐 하시려고요?”

“펠마스를 족ㅊ…… 아니, 펠마스한테 물어봐야지.”

* * *

“어서 오십시오! 그 사악한 사디크 교단을 무찌르고 대륙의 정의를 바로 세우시다니!”

“내가 좀 대단하지.”

“그 강하고 위험한 사디크 놈들을 쓰러뜨리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태현 님만 한 영웅이 없습니다!”

“어. 권능 좋더라. 나도 잘 써먹어야지.”

아키서스의 화신이 다른 신의 권능을 쓴다는 말을 태연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펠마스는 못 들은 척하고 넘겼다.

다른 교단의 NPC라면 순식간에 관계가 하락하고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느냐’ 하며 온갖 페널티가 붙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키서스 교단은 아니다!

이 유연함이 아키서스 교단의 장점!

태현은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절벽에 올라가 영지를 둘러보았다.

평지 쪽의 영지는 나름 개발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절벽 쪽의 산맥은 사디크 교단이 쓰던 채로 그대로 내버려 둬져 있었다.

맥크레니 상단이나 아키서스 교단 쪽에서 몰래 숨겨 놓을 때나 쓰는 정도!

‘저거 개발을 하긴 해야 하는데…… 골드가 애매하군.’

지금 영지를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골드가 줄줄 흘러나갔다.

사실, 개인 혼자의 힘으로 영지를 이렇게 개발시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다른 영지들은 다 길드 단위로 뛰어들어서 개발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태현은 세금도 거의 걷지 않았다.

얼핏 보면 불가능해 보였지만, 비결은 간단했다.

삥 뜯기!

이제까지 해온 수많은 PK로 뜯어낸 골드들이 이 영지를 개발시킨 것이었다.

그 사정을 모르는 일반 플레이어들은 ‘와! 김태현 만세! 대형 길드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러고 있었지만, 태현에게 탈탈 털린 플레이어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치이익-

푸슉-

영지 한쪽 구석에서 온갖 다양한 색의 연기가 펑펑 피어오르고 있었다.

딱 봐도 저기가 뭐 하는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악마의 대장간!

영지에 있는 기계공학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는 곳이 분명했다.

‘저것들 좀 다른데 안 가나?’

마음 같아서는 다른 곳,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오스턴 왕국의 쑤닝 길드의 영지 같은 곳으로 가서 사고나 좀 쳐줬으면 했다.

그런데 한사코 여기가 좋다며, 태현이 좋다며 붙어 있는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태현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였다.

실제로 한 번 꿈을 꾼 적도 있었다. ‘김태현 백작님! 악마의 대장간이 폭발해서 영지가 날아갔습니다!’하고 펠마스가 외치는 꿈이었다.

영지의 가운데에는 아키서스 관련 건물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다.

신전부터 동상, 분수대까지.

그리고 그 주변을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

특이한 점은, 플레이어들의 모습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보통 한 영지에 자주 보이는 플레이어들은 공통점이 있기 마련이었다.

전사가 있기 좋은 영지에는 전사 직업의 플레이어들이.

마법사가 있기 좋은 영지에는 마법사 직업의 플레이어들이.

대장장이가 있기 좋은 영지에는 대장장이 직업의 플레이어들이.

그런데 이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는 온갖 부류의 플레이어들이 돌아다녔다.

즉…….

행운이 필요한 플레이어들은 전부 다 여기 들렀다 가는 것!

“가즈아! 가즈아아아! 이번에는 뜬다!!”

“오색으로 빛나는 황금 떴냐?! 떴냐?!”

“화려한 일곱 발의 화염 화살 스킬……! 아직 레벨이 부족하지만……! 운만 좋으면 배울 수 있어! 배울 수 있다고!”

강화, 아이템 제작, 심지어 자격이 안 되는 스킬을 억지로 배우는 것까지.

소문은 무서웠다.

한 번 행운으로 효과를 본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리자 그 소문이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크기는 작은 영지였지만, 다른 영지에 비하면 오히려 플레이어 숫자는 더 많은 것 같았다.

“……음. 깊게 생각하지 말자.”

태현은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영지 반대쪽 구석에서 태현의 꿈인 투기장이 건설되고 있었다.

과연 어떤 투기장이 완성될까?

태현은 오랜만에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을 느꼈다.

“태현 님. 태현 님.”

펠마스가 태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오냐.”

“그런데 무슨 일로 여기 오셨습니까?”

“아, 물어볼 게 있어서 왔지.”

갈락파드에 대해 물어보려고 온 태현이었다.

지금 갈락파드가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케인이 저러고 있는가!

그러나 펠마스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 저도 말씀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말하기 전에 펠마스. 여기가 절벽인 건 알고 있지?”

“예?”

“네가 이상한 소리를 하거나 날 속이려고 하면 네가 발이 미끄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협박이 완벽하게 성공합니다.]

[펠마스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못합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그런……!”

“입만 열면 거짓말이면서 뭔…… 그래서 뭔데?”

“저번에 사디크 교단을 토벌하러 가시면서 태현 님께서 하신 말씀 있잖습니까.”

“내가 뭔 말을 했더라?”

“사디크의 힘을 뺏고 세상 모든 신들의 힘을 뺏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는데.”

누가 들으면 태현의 직업을 <아키서스의 화신>이 아니라 <살신자>로 착각할 소리!

“어쨌든 저도 그 말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오. 뭘 깨달았지?”

“적의 힘이라도 받아들여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지금 말하는 게 좀 무서운데.”

“자! 나오십시오!”

“??”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누구를 소개하길래 이렇게 요란한 소리를?

뒤에서 나온 건…….

버포드였다.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얼굴로 시선을 피하는 버포드!

“…….”

“…….”

탁-

“으아아악! 으아아아악!”

태현은 진짜로 펠마스를 발로 차버렸다. 잽싸게 바위를 붙잡은 펠마스는 비명을 질러댔다.

“네가 드디어 나를 배신하는구나, 펠마스. 예전부터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인마. 그리고 이 높이에서 떨어져도 안 죽는 거 안다. 알아서 회피해 봐.”

“죽습니다! 죽는다고요!”

버포드는 둘이 떠드는 동안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

“그래. 넌 뭔 생각으로 여기 왔냐? 아. 내 반지를 돌려주려는 생각으로 왔나?”

원래 쥐 죽은 듯이 얌전하게 굴려고 했던 버포드였다.

그렇지만 사람인 이상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뭔, 뭔 반지……? 그보다 성물 반지를 가져간 건 너잖아!”

태현이 가져간 사디크의 성물 반지가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진 아이템인데!

“이런 못된 놈이 자기가 한 짓은 잊고 당한 것만 기억하네. 네가 아탈리 국왕 암살하러 갔을 때 반지 하나 집어왔어, 안 집어왔어?”

“집…… 집어왔지.”

말을 들어보니 기억이 났다.

별생각 없이 집어 들었던 반지!

그때는 ‘와, 이런 반지를 그냥 얻다니 개꿀인데?’ 생각하며 넘겼다.

“그 반지가 원래 내가 가졌어야 할 반지다. 이 자식아.”

“설, 설마 그거 때문에 이제까지 날 쫓아온…….”

“뭐, 꼭 그 반지 때문은 아니고 다른 이유도 있었지.”

태현이 저렇게 말했지만 버포드는 믿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100% 반지 때문!

설마 이제까지의 그 고생이 다 반지 때문이었다니.

사디크 교단의 본거지가 불타고, 마수가 죽고, 화염이 꺼지고, 성물 반지를 뺏기고, 프리카 대륙의 요새마저 타버리고, 주요 인물까지 죽어버린 이유가 반지 하나 때문이었다니!

버포드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라도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난 건 내 반지를 가져간 것 때문에 너무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겠지. 이해한다. 널 죽여서 조금이라도 보상을 얻으라는 거겠지. 그 마음 받아주마.”

“아,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고!”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태현의 모습에 버포드는 기겁해서 손을 흔들었다.

“아니라니? 뭐 반지라도 찾아왔냐?”

“그건 아닌데…….”

“그러면 죽어.”

“아키서스! 아키서스 교단에 들어가려고 왔다고!”

“??”

태현은 고개를 돌려 펠마스를 쳐다보았다.

씩-

매달린 펠마스는 필사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펠마스, 저게 뭔 소리냐?”

“적, 적의 힘을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게 교단의…… 죄송합니다! 버포드가 갖고 온 게 많아서 받아들였습니다! 죄송합니다!”

펠마스는 바로 진실을 털어놓았다.

사디크 교단이 완전히 개박살이 난 다음, 버포드는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돌아다니다가 차라리 아키서스 교단에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미 망할 대로 망한 사디크 교단에 계속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뜨는 태양인 아키서스 교단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건 머지않아 알게 되었지만, 그때의 버포드는 아직 몰랐다.

그래서 아키서스 교단에 들어갈 방법을 고민했다.

사디크 교단에 있었으니 평범한 방법으로는 들어가기 힘들 게 분명!

버포드는 챙길 수 있는 사디크 교단의 장비들과 그가 부릴 수 있는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이끌고 아키서스 교단의 영지로 향했다.

바칠 수 있는 걸 바쳐서 환심을 살 생각!

그리고 그 계산에는 태현도 있었다.

김태현처럼 큰 그릇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예전의 적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사디크 교단이 적이기는 했지만 태현은 이미 털어갈 수 있을 만큼 털어갔으니 별로 감정이 남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틀렸다.

“이야…… 요즘은 때린 놈이 발 뻗고 잔다더니 완전 그 꼴이네. 내가 널 용서해줄 거라고 생각했다고?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용서를 바라면 반지를 갖고 오라고. 반지를!”

‘반지 때문 아니라며……!’

말과 행동이 다른 태현의 모습에 버포드는 울분을 삼켰다.

“펠마스, 얘가 갖고 온 게 그렇게 대단해?”

“사디크 교단의 사제나 성기사들은 쓸 만하죠. 아시다시피 저희 교단은…… 크흠.”

“크흠. 그렇지.”

“????”

근본 없는 교단, 아키서스 교단!

NPC를 고용하고는 있었지만 그 숫자가 적고 힘이 약했다.

둘은 그걸 알고 있었지만, 버포드는 몰랐기에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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