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87화
“와, 진짜 다들 태현 님만 쫓아오네요.”
멀리서 탈것 하나씩 타고 요란하게 쫓아오는 랭커들을 보며 이다비는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 어떻게 한 명도 빠지지 않고 태현만 쫓아온단 말인가!
이다비는 슬쩍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걸 눈치챈 태현이 말했다.
“이다비,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보이거든?”
“저, 저는 아무 생각도…… 태현 님을 두고 도망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조금도…….”
둘의 대화와 달리 케인은 묵묵히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 대화에 괜히 끼어들었다가는 분명 그에게 불똥이 튄다!
케인은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손해를 보는 건 언제나 그였다는 것을!
원래대로라면 상황은 이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왜 이렇게 김태현만 쫓아오는 놈들이 많냐? 너 원수가 너무 많은 거 아니냐?
-뭐? 너 지금 나 욕한 거냐? 이 자식. 네가 가장 뒤에서 따라와! 벌이다!
괜히 말 한마디 했다가 된통 태현한테 구박을 받고 손해 보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
케인은 이제 그걸 알았다.
그래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예 말을 하지 않으면 트집 잡힐 일도 없다!
‘이번에는 절대로 당하지 않을 테다!’
쿡쿡-
“?”
얼떨결에 뒤에 태운 김 전무가 케인의 등을 찔렀다.
“뭐야?”
“흠흠. 자네는 회장님과 무슨 사이지?”
“뭐? 뭔 회장? 누가 회장이야?”
“?!”
보아하니 케인은 유 회장이 누군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김 전무는 깜짝 놀랐다.
“저분이 누군지도 모른다?”
“저 사람은 김태현이 데려온 사람이잖아. 난 누군지 몰라. 그냥 같이 하니까 하는 거지.”
‘역시 김태현이란 청년하고 친한 거였군.’
김 전무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 회장이 어떻게 이 파티에 어울리게 되었는지 짐작이 갔다.
“그런데 회장이라니. 설마…….”
“!”
김 전무는 긴장했다.
유 회장이 자기 정체를 말하지 않았다면, 그건 유 회장에게 생각이 있어서 말 안 한 것이 분명했다.
그걸 자기가 말하게 되다니.
유 회장이 안다면 호통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김 전무는 몰랐다. 그가 상대하고 있는 게 케인이라는 것을.
“뭐 조기축구회 회장 같은 건가?”
“……그, 그래. 그런 거지.”
알아서 오해해 주는 케인 덕분에 김 전무는 무사히 상황을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케인은 아니었다.
“케인 씨가 딴소리해요!”
“그러면 미끼 역할은 케인이 하도록 하자.”
“야!!!”
* * *
“모두 도망칠 준비해! 지금 출발하면 도망칠 수 있어!”
“무, 무리 같은데…….”
한시가 바쁜데,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당황해서 탈것을 꺼냈다가 집어넣는 길드원도 있을 정도!
그러는 사이 랭커들 파티는 요새 근처로 접근했다.
“도망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싸워야 해요!”
“여기서 어떻게 저놈들하고 싸우라고!”
원래 상태의 요새면 모를까, 지금 요새는 악마를 잡느라 폐허가 된 상황이었다.
조금만 들이쳐도 그대로 무너질 게 분명!
“온다! 옵니다!”
“김태현! 이 망할 자식아!”
두두두두-
멀리서 랭커들 파티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그냥 지나가 버렸다.
“???”
“김태현 쫓아가는데요?”
“우리를 안 건드린다고?”
“살, 살았다!”
정말 우드스탁 길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가 버리는 랭커들 파티!
원래라면 ‘우리를 무시하다니!’라고 굴욕을 느꼈을 테지만, 지금은 살아난 게 너무 기뻐서 그런 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빠져나가자!”
“생각해 보니까 김태현이 먼저 간 건 이거 때문인 거 같아! 우리를 위해 희생한 거지!”
어쨌든 살아남자 우드스탁 길마는 행복회로를 최대로 돌리기 시작했다.
마치 사기꾼에게 당한 피해자가 ‘그 사기꾼은 잘못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모습!
“그,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우리 말도 무시하고 그냥 가지 않았나?”
이번 악마화 때문에 새로 들어온 길드원들은 그나마 이성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태현의 도망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그들을 위한 게 아니었다.
그냥 말도 무시하고 쌩 가버리지 않았는가!
그러나 기존 길드원들은 이미 우드스탁 길마와 비슷해진 지 오래였다.
태현의 욕을 하자 쏟아지는 비난!
“아냐, 이 자식아! 네가 뭘 몰라서 그래!”
“맞아! 김태현은 원래 저렇게 챙겨준다고!”
“김태현이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지 나쁜 놈이 아냐!”
순식간에 비난이 쏟아지자 새로 들어온 길드원들은 주눅 들어서 입을 다물었다.
‘그런 거냐?’
‘아니, 아무리 봐도 그런 게 아니었는데…….’
* * *
-폭발 가속!
[스킬 <폭발 가속>을 사용했습니다. 순간적으로 탈것의 속도가 빠르게 증가합니다.]
랭커들이 쫓아온다고 해서 바로 따라잡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만큼 태현이 만든 오토바이의 성능은 뛰어났던 것이다.
현재 플레이어 중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기계공학 대장장이가 바로 태현!
물론 제작보다는 파괴에 특화되기는 했지만…….
“뭐 저렇게 빨라?”
“김태현이 직접 만들었다는 오토바이인 거 같군.”
“저런 거 경매장에 안 풀리나? 판온 1 때에도 오토바이 좋아했었는데…….”
랭커들이 하라는 추적은 안 하고 잡담만 해대자 쑤닝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지금 잡담할 때냐! 속력을 올려!”
“알겠어, 알겠어.”
“쑤닝 저거는 왜 저래?”
“내버려 둬. 돈 주는데 너무 뭐라고 하지 말자.”
수군거리는 랭커들의 말이 쑤닝을 더 열 받게 만들었다.
그러나 랭커들은 저런 태도를 보여줄 자격이 있었다.
-금빛 날개의 가속!
-바람 정령 소환!
-광분의 돌격!
태현처럼 기계공학 탈것은 아니지만, 그들 모두 살아 있는 탈것을 갖고 있었다.
랭커들의 레벨답게 탈것 하나하나의 수준이 상당했다.
여럿이서 스킬을 같이 사용하자 추가로 효과가 더 들어가는 건 덤!
평소에는 볼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하늘을 질주하는 랭커들 파티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좁혀지지 않는 거리!
“야. 이건 좀…….”
“이랬는데도 거리가 안 좁혀져?”
“성능이 장난 아니다. 애초에 생물형 탈것이 아니라 지치지를 않아. 지구력에서 비교가 안 된다.”
랭커들은 수군거리며 태현의 탈것에 대해 떠들었다.
“김태현이 기계공학 고급 찍었다는 소문이 진짜였나 본데?”
“아니, 대체 도적 계열 직업으로 어떻게 기계공학을 고급 찍은 거야?”
“도적 계열 직업 아닌 거 같던데. 라제단 대장장이로 전투 계열 스킬을 엄청 올린 거 같아.”
“대장장이+도적 하이브리드? 그런 똥캐를 누가 키워?”
“그게 사실이면 진짜 판온 1 김태현 같은 놈이네. 판온 1 김태현 팬이라고는 했는데 저런 거까지 따라 하나?”
방향은 다르지만 어쨌든 원했던 곳으로 흘러가는 대화!
제카스는 그 대화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쑤닝은 만족하지 않았다.
저기 원수의 등짝이 저 멀리서 아른거리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뭐라도 해봐! 원거리 공격은 닿을 거리잖아!”
“지금 저걸 맞춰보라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데다가 모두 다 허공을 달리고 있는 상황.
이 상황에서 태현을 맞춘다는 건 최고 난이도였다.
“그것도 못 하냐! 랭커라는 놈들이!”
“지가 아쉬워서 불러 놓고 되게 난리 치네.”
“애초에 김태현이 회피력이 너무 좋아서 공격하는 방법에 한계가 있다고. 대부분 공격은 다 피하거나 회피해 버리니까…….”
“어쩔 수 없다. 다른 놈들부터 공격하자. 다른 놈들은 김태현만큼은 아닐 테니까. 자기 파티원 공격당하면 김태현도 반응을 좀 보이겠지.”
그 말을 듣고 쑤닝과 제카스는 움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태현은 별로 반응을 안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괜히 불평할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랭커들이 ‘그만 좀 징징대라’ 하고 있는 상황.
불평했다가는 화살이 이쪽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누구를 노리지? 파워 워리어 길마 노릴까?”
“파워 워리어 길마 노려봤자 김태현이 눈 하나 깜박하겠냐. 파워 워리어 길마잖아.”
파워 워리어 길마, 이다비와 태현이 같이 다닌 지 꽤 됐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최상위권 랭커인 태현과 악명 높은 파워 워리어 길드의 길마가 같이 다닌다니!
덕분에 온갖 헛소문이 돌아다녔다.
-파워 워리어 길마가 김태현 약점 잡고 있다!
-아니다! 둘이 서로 이용해 먹는 거다!
헛소문이야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하게 생각했다.
-뭐든 간에 둘은 별로 안 친하겠지!
랭커들도 똑같았다.
“그러면…….”
“케인이군.”
“케인을 노려야지. 케인을 노리면 김태현도 가만히 있지는 못할 거다.”
“맞는 말이야.”
* * *
“난 안 해! 안 한다고!”
“농담이야. 진정해.”
케인의 항의에 태현은 그를 진정시켰다.
어차피 케인을 미끼로 쓸 생각은 없었다.
“뭔 일이 없는 한 거리는 못 좁힐 거야. 이대로 아탈리 왕국까지 간다. 저놈들도 머리가 있으니 아탈리 왕국으로 가는 게 보이면 도중에 적당히 물러설 거야. 쑤닝이랑 달리 잃을 게 많은 놈들이니까.”
“그, 그런 거였군.”
케인은 태현의 계획을 듣고 안심했다.
역시 여기서 케인을 미끼를 쓸 정도로 태현이 사악하지는 않구나!
쐐애액-
카캉!
“!?!?”
그 순간 뒤에서 날아들어 온 공격!
누군가 투창 공격을 했는지 창 하나가 시뻘건 오러에 휩싸여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창이 노리는 건 케인이었다.
“뭐야?! 여기 김태현이 있는데!”
“케인. 방금 그 말은 무슨 뜻이냐?”
케인은 방심하고 있었다.
태현이 그를 미끼로 삼으면 모를까, 태현과 같이 있으면 적들은 무조건 태현을 먼저 공격한다!
설마 태현과 그가 같이 있는데 그를 먼저 공격하는 놈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랭커들은 케인을 공격했다.
“자! 김태현! 어떻게 할 거냐! 네 친구 케인이 죽을 텐데!”
“막아봐라! 김태현!”
랭커들은 케인을 노리며 외쳤다.
그걸 본 태현은…….
“야!!!”
은근슬쩍 거리를 벌렸다.
왼쪽에 혼자 남은 케인!
케인은 이를 악물며 본격 기동에 들어갔다.
보는 사람도 감탄하게 만들 정도로 화려한 회피 기동!
[놀랄 정도로 어려운 난이도의 기동을 성공했습니다! 운전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스킬 <360도 턴>을 얻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사람의 잠재능력은 대단했다.
케인은 각종 방어 스킬과 화려한 회피 기동으로 랭커들의 공격을 몇분 동안 견뎌냈다.
랭커들이 케인에게 공격을 퍼붓느라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게 느껴지자, 태현은 바로 반격에 나섰다.
-용용아. 가서 도와줘라.
-알겠다, 주인이여!
파지지직…….
파아앗!
허공에서 드넓게 퍼져나가는 번개 폭풍!
용용이가 날개를 휘두르며 연속적으로 번개를 뿜어내자 랭커들은 기겁하며 방어에 들어갔다.
생각지도 못한 기습이었다.
“이런 젠장!”
“막아! 막아!”
“내 탈것이 마비됐어! 회복 좀 해줘…… 컥!”
탕!
번개를 피하던 랭커 한 명이 충격에 비틀거렸다.
태현이 머스킷을 꺼내 쏜 것이다.
“이, 이 거리를 맞췄다고?!”
궁수 랭커 수아나는 기겁해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의 직업에 대한 소문은 많았지만, 대체로 대장장이에 도적이나 전사 계열 직업이 섞인 게 아니냐는 추측이 가장 많았다.
실제로 마법이나 원거리 공격은 잘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 거리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랭커를 맞추다니!
‘설, 설마 사격 스킬도 고급을……? 사람인 이상 말도 안 돼!’
수아나가 경악하는 동안 태현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게 맞다니!
“이야. 그냥 위협하려고 쏜 거였는데. 케인, 봤냐? ……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