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86화
파아앗!
스크롤을 찢자 빛이 뿜어져 나오며 갈그랄에게 그대로 날아갔다.
파지직!
“?!”
“?!?!”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랐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르신, 뭘 준 겁니까?”
“그냥 부적 비슷하게 스크롤 하나 준 거였는데…….”
갈그랄은 더 이상 도망치지 못했다.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비틀거렸다.
쩌적! 쩌저적!
안에서부터 갈라지는 갈그랄!
막타를 친 김 전무는 스스로가 뭘 한 건지도 모르고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쓰러져 있었다.
-갈그랄, 지지 않는다…… 주인께…… 오늘 있었던 일을 꼭…….
“꼭 그렇게 불길하게 죽어야 하냐?”
[아다드의 가장 충실한 부하, 난폭한 폭군 갈그랄이 쓰러졌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아다드가 당신이 한 짓을 알아차립니다.]
[칭호:악마 사냥꾼을 얻습니다.]
……
……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드디어 태현은 레벨 80에 도착했다.
다른 랭커들은 레벨 180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래도 태현은 기뻤다.
이게 어디냐!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게임 서버 내릴 때쯤에는 레벨 100을 찍을 수 있겠지!
‘……왠지 슬퍼지는데.’
태현이 메시지창을 보는 동안, 유 회장은 김 전무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잘했네, 김 전무! 설마 했던 자네가 활약할 줄이야!”
“감, 감사합니다?”
김 전무는 얼이 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엄청나게 강한 적을 그가 쓰러뜨렸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 모두 그를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아직도 스크롤을 찢었을 때 짜릿한 감각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내가 이제까지 봐왔던 자네의 일 중 가장 잘한 일이었네.”
“……감,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기분 좋았다가 그 뒤에는 기분이 좀 묘해졌다.
‘이제까지 봐왔던?’
이제까지 그가 회사에서 해왔던 일들이 설마 저 몬스터 하나 잡은 것보다 못했던 건 아니겠지?
‘아니, 게임 내에서를 말하신 거겠지.’
혼란스러워하는 김 전무의 곁에서 유 회장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물론 자네는 계속 뒤에서 숨어 있다가 막타만 쳤지만 말이야.”
“……예?”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도 자네 아니면 저놈이 도망갔을 테니까. 잘한 건 잘한 거지. 잘했네.”
“…….”
“물론 고생은 내가 했지만 말일세. 저런 보스 몬스터를 한 번 잡아보고 싶었는데. 결국 그 영광을 자네가 가져갔군. 아, 뭐라고 하는 건 아니야. 자네가 안 나섰으면 도망갔겠지. 그렇지만 그 스크롤을 차라리 안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물론 이것도 농담일세.”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니야. 자네는 잘했어!”
‘차라리 죽여줘!’
김 전무는 속으로 절규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무슨 상황인지 깨달은 것이다.
유 회장이 잔뜩 기대하던 걸 그가 뺏었구나!
“그러고 보니 자네는 골프 할 때도 이랬던 것 같은데.”
“저, 저번에 잘했다고 칭찬해 주신 게 아니었습니까?”
“칭찬이지! 물론 칭찬이야!”
김 전무는 또다시 깨달았다.
저번 골프 때 유 회장이 말한 ‘자네 참 잘하는군. 차암~ 잘하는군!’이 칭찬이 아니었다는 걸!
유 회장과 김 전무가 떠드는 동안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각자 메시지창을 확인하고 있었다.
여기 있던 플레이어들은 모두 갈그랄 레이드에 참가했던 플레이어들.
당연히 보상이 들어왔다.
“진짜 잡을 수 있을 줄은 몰랐어!”
“김태현하고 이세연이 있잖아. 당연히 잡지!”
“와. 한 번에 레벨이 12 올랐다?”
“…….”
태현은 귀를 막고 아이템을 확인했다.
갈그랄의 저주가 서린 칼날 장갑:
내구력 450/450, 공격력 235
스킬 '악마의 주먹' 사용 가능, 스킬 ‘가속화’ 사용 가능, 스킬 ‘들러붙는 악마의 저주’ 사용 가능, 스킬 ‘투사체 잡기’ 사용 가능, 스킬 ‘에너지 드레인’ 사용 가능, 스킬 ‘악마의 생명력’ 사용 가능. 착용 시 악마들의 공격에 저항력, 신성력에 취약해짐, 공격 시 일정 확률로 마력 흡수.
레벨 제한 200. 힘 제한 500. 민첩 제한 500.
마계의 악마 갈그랄이 착용하는 장갑이다. 갈그랄의 정수가 담겨 있는 이 무기는 보통의 방법으로는 손에 넣을 수 없다.
만약 손에 넣었다면 갈그랄이 되찾기 위해 찾아올 것이다. 반드시!
불길한 설명문 빼고는, 갈그랄의 장갑은 엄청나게 좋은 아이템이었다.
에다오르의 대검이 자체적인 성능이 뛰어난 명품이었다면, 갈그랄의 장갑은 달린 스킬들이 하나하나 구하기 힘든 희귀한 스킬들이었다.
갈그랄이 쓰던 스킬들을 생각해 본다면 그 스킬들이 담겨 있는 장갑은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
다른 장갑들처럼 방어나 회복에 버프를 주는 장갑이 아니라 공격에 집중된 게 장갑!
<악마의 봉인을 풀어라-에슬라 퀘스트>
고대 드워프의 미궁에 봉인된 에슬라는 강력한 악마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봉인에서 풀려날 수 없다.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강력한 악마의 징표 세 개가 필요하다.
그는 당신에게 봉인을 풀어주는 대가로 힘을 빌려주기로 약속했다.
정말로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에슬라를 봉인에서 풀어낼 수 있다면 거대한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악마의 세 징표:
-에다오르의 에다오르의 뜨겁게 끓어오르는 진홍빛 대검 (1/1)
-갈그랄의 저주가 서린 칼날 장갑: (1/1)
-? (0/1)
보상:?, ??, 에슬라와의 동맹.
에슬라의 봉인을 푸는 퀘스트도 2/3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 받았을 때는 깨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는데, 이제 목적지가 눈에 보였다.
호구 악마 하나만 잡아서 징표를 뜯어내면 퀘스트 달성!
“으아아아악!”
“?!”
생각에 잠겨있던 태현을 깨운 건 비명 소리였다.
“왜 그래?”
“저주받았어!”
“나, 나도!”
“뭐야?! 다들 왜 그래?”
[갈그랄이 쓰러졌습니다.]
[악마화 스킬이 취소됩니다.]
[종족:악마가, 종족:저주받은 떠돌이 악마로 변경됩니다.]
[저주받은 떠돌이 악마는 마계의 악마 중에서 가장 추하고 더러운 이들입니다. 같은 악마들조차 이들을 싫어합니다.]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일정 확률로 폭주할 수 있습니다.]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일정 확률로 변이할 수 있습니다.]
갈그랄은 그냥 죽지 않았다.
가기 전 제대로 엿을 먹이고 간 갈그랄!
정확하게 말하자면, 악마화한 플레이어들에게만 엿을 먹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어들은 전부 우드스탁 길드원들이었다.
“어, 어떡하지? 김태현. 이거 어떻게 해야 하냐?”
우드스탁 길마는 당황한 얼굴로 태현을 불렀다.
처음 만났을 때 까칠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태현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내가 그러니까 남이 주는 거 함부로 덥석덥석 받아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겠어!? 어떻게 하지?! 방법 혹시 아는 거 있어?”
“캐릭 삭제 후 몇 년 후에 다시 들어오면 되겠네.”
“그걸 말이라고 하냐!”
우드스탁 길마는 방방 뛰었다.
종족이 바뀌자 능력치가 소폭 하락했다.
거기까지는 참을 만했다. 워낙 악마화 스킬이 준 이득이 많았으니까.
거기서 조금 깎여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저주받은 떠돌이 악마는 페널티가 너무 심했다.
신성 공격 같은 것에 더욱 약하고, <폭주>나 <변이> 같은 페널티는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까놓고 말해서 거의 저주나 마찬가지!
저주에 걸리면 최대한 빨리 해제 방법을 찾듯이, 지금 이 악마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부르르릉-
“??”
우드스탁 길마는 익숙한 오토바이의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태현, 이다비, 케인이 오토바이를 꺼내고 있었다. 태현과 케인은 각각 뒤에 유 회장과 김 전무를 태우고 있었다.
“……너희 뭐 하냐??”
“아, 이만 가보려고.”
“뭐?”
우드스탁 길마는 순간적으로 태현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뭘 간다고?
“이 주변 영지는 다 너 줄게. 알아서 가꿔봐.”
“야, 야! 야!!”
“고맙다고? 우리 사이에 뭘. 그런 감사 인사는 됐어.”
요새 밖에 랭커들로 구성된 파티가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런데 이 주변 영지를 준다니.
갖고 있어봤자 탈탈 털릴 게 뻔하지 않은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는 태현!
우드스탁 길마는 달려들어서 태현을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태현은 한발 빨리 출발했다.
“가자!”
“잠, 잠깐만! 최소한 같이 가자고! 야! 너 들리는 거 알아 이 자식아!”
우드스탁 길마는 고개를 돌렸다. 이세연과 김철수가 아직 떠나지 못한 상태였다.
“저, 저기 우리 그래도 같이 싸운 정이 있는데…….”
“같이 싸워서 즐거웠어요. 나중에 봐요!”
쌩!
재빨리 와이번을 불러내서 타고 날아오르는 이세연! 김철수도 잽싸게 탈것을 불러내서 타고 날아올랐다.
그제야 우드스탁 길드는 상황을 깨달았다.
지금 저건 그들을 버리고 가는 거였다!
“야! 야!!! 김태현!!!! 돌아와!!”
밖에는 이를 갈고 있는 랭커 파티.
다들 도망친다면 가장 뒤에 있는 사람이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탈 거! 탈 거 꺼내! 우리도 튀어야 한다!”
우드스탁 길드는 허둥지둥 탈것을 찾았지만,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출발해 봤자 태현 일행을 쫓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 * *
“갈그랄은 언제쯤 잡힐 거 같나?”
“아까 들어간 플레이어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 시간 정도는…… 뭐?! 잡혔다고!?”
“?!?!”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빨라도 한 시간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갑자기 잡히다니!
“어떻게 잡았……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들어간다! 회복할 시간을 주지 마!”
“이 주변에서 순간이동 마법은 못 쓰도록 해놨으니 싸우기만 하면 놈들은 끝난 거야!”
랭커들은 허겁지겁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박살 난 요새에서 탈것에 탄 플레이어들이 뛰쳐나왔다.
태현 일행과 이세연, 김철수였다.
“어?”
“어???”
쌔앵-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아나는 그들!
랭커들은 순간 멍해져서 자기들끼리 쳐다보았다.
기다리면서, 그들은 머릿속에서 어떻게 싸울지 계속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태현과 이세연. 둘 다 최상위권의 랭커. 게다가 케인이나 김철수 같은 랭커들도 있었다.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테니 그들도 긴장한 채 싸움을 대비하고 있었는데…….
상대는 그냥 도망!
“아, 아니…….”
“김태현하고 이세연이잖아! 싸우지도 않고 도망을 치면 안 되지!”
뒤에 있던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그게 모두의 진심이었다.
설마 저 유명한 랭커들이 싸워보지도 않고 그냥 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
최소한 체면이 있으니 몇 합 정도는 겨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만 되면 갈그랄과 싸우느라 제대로 회복도 못 한 태현 측이 압도적으로 불리!
순간이동 관련 마법도 쓰지 못하도록 주변에 방해를 걸어놨으니 도중에 도망치려고 해도 무리였다.
그런데 그냥 저렇게 도망을 쳐버리면…….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갈그랄을 바로 잡아버린 다음 그들이 접근하기도 전에 튀어버리다니!
“쫓아! 놓치면 안 돼!”
“따로 쫓아가면 위험하지 않나?”
“지금 그런 소리 할 때냐? 받은 게 있으면 밥값을 해라! 가! 쫓아가!”
랭커들은 당연히 탈 것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둘씩 탈 것을 꺼낸 다음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들 꺼림칙한 얼굴이었다.
포위한 상태에서 유리하게 싸우는 게 아닌, 이렇게 나눠서 쫓아가게 되다니.
이러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생각을 깨달은 쑤닝이 말했다.
“나눠서 쫓아갈 필요 없다! 김태현만 쫓아!”
“그거라면…….”
“오히려 낫지. 이세연이 빠졌으니까.”
이세연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둘이 갈라지면 적들은 더 미운 놈을 쫓아갈 거라고!